방을 쓸지 않는 자,
어찌 천하를 쓸 수 있겠는가?
지난번에 했던 괘를 살짝 복습하자. ‘화지진’은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기세와 같고, ‘지화명이’는 서쪽으로 태양이 저무는 것과 같다. 지난주에 했던 지화명이는 상괘가 곤(땅), 하괘가 리(불)이므로 땅속에 불이 있는 형상이었다. 「서괘전」은 64괘의 설명을 순서대로 붙여놓은 것인데, 여기에서는 지화명이의 핵심을 이렇게 보았다. 언제까지고 성장하고 나아갈 수만은 없으며, 반드시 傷(상)이 오는데 이것을 일러 명이(明夷)라고 했다.
지난번에는 난세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웠다면, 오늘은 그다음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괘전」에서는 가인괘를 “夷者(이자)는 傷也(상야)니 傷於外者(상어외자) 必反其家(필반기가)라 고로 受之以家人(애지이가인)”이라 하였다. 밖에서 傷(상)한 사람이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家人(가인)’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뜻이다.
불과 바람의 괘~ 풍화가인~
먼저 풍화가인(風火家人)의 괘상을 살펴보자. 하괘는 불, 상괘는 바람이다. 바람과 불은 상성이 좋다. 상성이 좋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관계라는 의미이다. 요즘 인기 프로그램인 <삼시세끼>를 떠올려보자. 매 끼니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바로 불을 피우는 일이다. 불꽃을 살리기 위해 부채질을 하고, 불길의 뜨거운 바람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불과 바람은 우리를 이롭게 한다.
풍화가인 괘사
家人 利女貞(가인 이여정)
가인은 여자가 貞하면 이롭다.
여기서 貞(정)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順(순), 두 번째는 正(정), 세 번째는 久(구), 네 번째는 守(수)이다. 가인괘의 전체 콘셉트는 여자가 잘 따르고, 그 뜻을 바르게 하며, 오랫동안 지키는 것이 이롭다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집안의 일과 바깥의 일을 구분했다. 집안의 일은 여성이 담당했는데, 이때의 ‘家(가)’는 3~4명 규모의 가족이 아니었다. 이번 이야기에서의 ‘집’은 하나의 공동체 단위로 보는 것이 좋다.
彖曰 家人女正位乎內(단왈 가인여정위호내)
단에 이르기를 가인은 여자가 안에 자리를 바르게 하고
男正位乎外 男女正天地之大義也(남정위호외 남녀정천지지대의야)
남자가 바깥에 자리를 바르게 하니 남녀가 모두 바른 것이 천지의 큰 뜻이다
家人有嚴君焉 父母之謂也(가인유엄군언 부모지위야)
가인에 엄군이 있으니 부모를 말함이라.
父父子子 兄兄弟弟 夫夫婦婦(부부자자 형형제제 부부부부)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동생은 동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우면
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이가도정 정가이천하정의)
집안의 도가 바르니 집안을 바르게 해야 천하가 평안하리라.
단전에서도 남녀가 각기 바른 자리에 있을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 곧 천지의 도라는 것이다. 요즘은 성별 역할 분담이 많이 바뀌는 일도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것을 왜 천지의 도라고 했을까.
음양으로 보자면 男(남)은 陽(양)이고, 女(여)는 陰(음)이다. 천지에는 두 가지의 방향성이 다른 운동이 있다. 그것이 하나는 양이고, 하나는 음이다. 양은 바깥을 향해 나아가려는 힘이고, 음은 안을 향해 집중하는 힘이다. 이러한 기운이 인체를 통해 표현될 때에는 남성, 여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가 밖에서 일하는 것과 여자가 집안일을 돌보는 것은 같은 이치이고, 그 영역이 다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담당하는 영역이 그 신체성에 더 적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각기 바른 자리에 있을 것!
어떤 사건을 대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을 남녀가 다르게 하는 것 역시 이러한 ‘다른’ 방향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치가 바르게 자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집안이 들쑥날쑥 정돈되지 않았을 때에는 ‘엄한 군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을 ‘부모’라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어머니는 어머니의 역할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위치에 따라 그때그때에 맞춰 그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해야 천하가 평안하다.
象曰 風自火出 家人 君子以言有物而行有恒(상왈 풍자화출 가인 군자이언유물이행유항)
상에 이르길 풍이 화로부터 나옴이 가인이니, 군자는 이로써 말에는 物에 있으며 행동에는 恒이 있나니라.
상전에서는 가인괘를 본 군자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냥 ‘그렇구나, 바람이 불에서 나오는구나!’라고 넘기지만, 군자는 이런 현상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하고, 행동할 때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참 쉽지 않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와 다투게 되면, 금방 흥분해서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 버리고, 마음이 상하면 그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지니 말이다. 이 구절은 자칫하면 달라지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함을 상기시켜준다.
풍화가인 효사
初九 閑有家 悔亡(초구 한유가 회망)
초구는 집에 있어서 막으면 후회가 없으리라
象曰 “閑有家” 志未變也(상왈 한유가 지미변야)
상전에 이르길 “한유가”는 뜻이 변치 않음이라
이제 효사 이야기로 넘어가자. 초구는 양의 자리에 양이 있다. 이제 막 가족원이 구성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운이 위로 막 솟아오르려 한다. 그렇기에 바르지 못한 것을 경계해야 후회가 없다고 하였다. ‘閑(한)’은 편안하다는 뜻도 있고, 막는다는 뜻도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뜻을 취했다.
六二 无攸遂 在中饋 貞吉(육이 무유수 재중궤 정길)
육이는 나아가는 바가 없고 가운데서 음식을 하면 바르기 때문에 길하다
象曰 六二之吉 順以巽也(상왈 육이지길 순이손야)
상전에 말하길 육이의 길함은 순종으로써 겸손할세라
육이는 아내의 자리이다. 음의 자리에 음이 있으니 正中(정중)이다. 아내가 집에서 음식을 해서 먹이는 것이 바르고, 그것이 길하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아내가 남편의 말을 잘 따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므로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九三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嘻嘻 終吝(구삼 가인학학 회려 길 부자희희 종린)
구삼은 가인이 엄하게 하니 위태하고 후회하나 길하니 부녀자가 희희낙락하게 하면 바름을 잃게 되리라
象曰 “家人嗃嗃” 未失也 婦子嘻嘻 失家節也(상왈 "가인학학" 미실야 부자희희 실가절야)
상전에 이르길 “가인학학”은 잃지 않음이요 “부자희희”는 집안의 正을 잃음이라
여기서 구삼은 집안의 어르신이다. 양의 자리에 양이 있으니 너무 강하여 집안사람들이 어려워한다. 이로 인해 위태하고 후회할 일이 생기지만, 결국은 길하다. 그런데 만약 부녀자들이 희희낙락하게 되면 나중에 굴욕을 당한다고 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차라리 엄하게 하라’는 것이다.
가족공동체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생긴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타일러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순간적으로 문제를 봉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아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엄하게 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위태하고 후회할지 모르나 큰 맥락에서는 집안의 바름을 잃지 않으니 길하다.
六四 富家 大吉(육사 부가 대길)
육사는 집안의 부가 커지니 크게 길하다
象曰 “富家大吉” 順在位也(상왈 "부가대길" 순재위야)
상전에 이르길 “부가대길”은 순으로 자리에 있음이라
육사는 음의 자리에 음이 있으니 得正(득정)이다. 하괘의 초구와 상응하고 상괘의 구오를 받들고 있다. 여기에서 陽剛(양강)을 얻으니 더욱 부유해지고 더욱 길하게 된다.
九五 王假有家 勿恤 吉(구오 왕가유가 물휼 길)
구오는 왕이 집을 지극히 하니 근심하지 않아 길하다
象曰 “王假有家” 交相愛也(상왈 "왕가유가" 교상애야)
상전에 이르길 “왕가유가”는 서로 사랑함이라
구오는 양의 자리에 양이며, 가운데 자리에 있다. 이때의 ‘假(가)’는 ‘이르다’는 뜻으로 ‘至(지)’의 의미이다. 하괘의 육이와 호응하며, 집안일에 밝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니 길하다.
上九 有孚 威如 終吉(상구 유부 위여 종길)
상구는 믿음을 두고 위엄 있게 하면 마침내 길하리라
象曰 “威如之吉” 反身之謂也(상왈 위여지길 반신지위야)
상전에 말하길 “위여지길”은 몸으로 돌이켜봄을 이름이라
상구는 음의 자리에 양이 왔다. 집안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보통 상구의 자리에 있는 경우 안 좋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인괘에서는 좋게 풀이했다. 집안의 어른이 위엄 있게 하면 끝내 길하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식, 형제, 부부가 각자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면 집안이 올바르게 다스려진다. 군자는 집안에서 언행이 일치하며 한결같이 행동해야 하고, 주부는 겸손하며 올바른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 또, 집안을 다스릴 때 감정에 치우쳐 너무 관대하기보다는 엄격한 것이 차라리 더 낫다. 각각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직분에 온 힘을 다하고 서로 돕고 의지해야 집안이 화목하고 번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집안을 다스리는 기본 원칙은 ‘성실’이며, 집안의 어른이 직접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이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나라 말기에 진번(陳蕃)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뜻을 크게 품고, 늘 방에서 책을 읽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와 그의 방을 들렀다. 그런데 방안이 너무 지저분한 것이었다. 진번에게 왜 방이 지저분하냐고 묻자 그는 “대장부가 천하를 쓸어야지 어찌 방안을 쓸 수 있겠나이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어른은 웃으면서 “방안을 쓸지 않는 자가 어찌 천하를 쓸 수 있다더냐?”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진번은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어 그때부터 열심히 자신을 단련하였다.
방안부터 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옛사람들은 가까운 것들부터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 가끔 <삼시세끼>를 본다. 영화나 TV에서는 늘 멋진 남자로만 나오던 차승원이 매 끼니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만드는 모습이 신기했다. 차승원은 그동안 숨겨졌던 살림실력을 한껏 펼치고 있다. 그래서 ‘차줌마’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 혼자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함께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귀찮은 것이 아니라 아주 근사한 일이다.” 차승원은 자신의 집에서는 가끔 요리하는 아빠였지만, 만재도 집에서는 다른 식구들을 먹이는 엄마가 된다. 고정된 역할 분담을 넘어 그때그때 바뀌는 그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풍화가인괘가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일 것이다.
글_만수(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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