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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796

'영적 미니멀리즘' -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Fratres)> 고백과 반성의 음악 - 아르보 패르트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황지우 시인의 시 「뼈아픈 후회」의 도입부다. 게으름, 나태함, 고의적 실수. 깨진 신뢰와 어긋나는 약속. 잘난 척에 폭력에 가까운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선 후. 왜 그랬냐고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책망할 때마다, 늘 이 시구가 머릿속을 맴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지 모를 작곡을 한답시고 작업실에 처박혀 마치 ‘고도’(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는 음악을 멍하니 기다리다가 마감 날짜를 지나 무심히 무섭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도 잘 하고자 하는 마음뿐인 가슴은 폐허가 되어 버리곤 한다. 그렇게 나를 질책하고 다시 추스르기 위한 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 .. 2016. 4. 26.
[약선생의 도서관] 『문학이란 무엇인가』- 쓰기는 독자의 읽기를 통해 완성된다 읽기는 창조다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사르트르가 데모에 나섰다가 우연히 함께 찍힌 사진을 좋아한다. 그 사진에서는 들뢰즈가 푸코를 바라보고 있고, 사르트르가 뒤에서 그런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순간이 절묘하게 잡혀 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푸코나 들뢰즈 보다, 사르트르에게 더 눈길이 가게 된다. 이들 젊은 세대에게 수모를 당한 사르트르의 처지가 저 알 수 없는 시선에 묻어나 보여서다.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맑스주의가 얼마간 파문을 일으킬지는 모르겠으나 기껏해야 ‘찻잔 속의 폭풍’(tempêtes qu'au bassin des enfants, ‘아이 세숫대야의 폭풍’)에 불과할거라고 좀 세게 조롱했었다. 맑스주의가 서양의 인식론적 배치(disposit.. 2016. 4. 19.
고정희 시집 『이 시대의 아벨』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 『이 시대의 아벨』 왜 태양은 빛나는지 왜 파도는 밀려오는지 당신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세상이 끝났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왜 새들은 노래하는지. 왜 별들은 반짝이는지. 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었을 때 세상도 끝났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궁금해하죠. 모든 것이 그대로인 이유를.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세상이 이전과 똑같이 흘러가는지. 왜 내 가슴은 계속 뛰는 걸까요. 왜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는 걸까요. 당신이 내게 이별을 고했을 때 세상이 끝나버린 걸 모르는 걸까요.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 2016. 4. 18.
역사 속의 김부식 - 위대한 역사가에서 치졸한 사대주의자까지 중세 보편주의 지식인, 김부식의 영광과 오욕 “김씨는 대대로 고려의 큰 씨족이 되어 전사(前史)로부터 이미 실려 오는데, 그들이 박씨(朴氏)와 더불어 족망(族望)이 서로 비등하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문학(文學)으로써 진출된 사람이 많다. 부식은 풍만한 얼굴과 석대한 체구에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널리 배우고 많이 기억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 일을 잘 알아, 학사(學士)들에게 신복(信服)을 받는 것이 그보다 앞설 사람이 없다.” - 『고려도경』 고려 인종 때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서긍 (徐兢)은 『고려도경』이란 책에서 김부식의 인물됨을 이와 같이 기록했다. 고려의 일개 접반사였던 김부식은 서긍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김부식의 화상까지 그려서 황제에게 바치고, 그의 세가.. 2016.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