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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발굴, <한서>라는 역사책

『한서』라는 역사책이 있었나니!

by 북드라망 2019. 5. 8.

『한서』라는 역사책이 있었나니!

 

 

사마천 『사기』의 라이벌, 『한서』의 현재

 

『한서』라는 역사책이 있다. 반고(班固, 32-92)라는 중국 후한 시대의 역사가가 전한 시대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예전 공부하는 선비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했던 책이다. 『한서』는 전한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기원전145-85(?))이 집필한 『사기』와 더불어 선비들의 필독서로써 역사계의 왕좌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당나라의 한유(韓愈, 768-824)가 『사기』에 주목하기 전까지 학자들은 『한서』를 더 중요한 역사책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이후 송·원·명·청나라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학자들은 『사기』와 『한서』를 비교하며 그 우위를 평가했다. 말하자면, 『사기』와 『한서』는 역사책의 라이벌로 시대에 따라 학자의 기호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우위를 다투었으니, 둘 중 어느 책이 더 탁월한지를 판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연구자를 제외하고 『한서』라는 역사책을 읽는 이가 거의 없다. 아니 『한서』를 아는 이조차 매우 드물다. 『한서』라는 책을 입에 올리면 금시초문(今始初聞)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혹간 고전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서』로 이불 삼고 『논어』로 병풍 삼았다’는 이덕무의 그 유명한 글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불에 성에가 끼어 버석 소리가 날 정도로 한파가 몰아친 겨울밤, 그나마 『한서』를 덮고서 간신히 얼어 죽은 귀신을 면하게 되었다는 가난한 선비의 웃픈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한서』라는 책명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서』는 운좋게(?) 책명만 알거나 아예 모르거나!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서』의 대중적 지명도는 정말 치명적일 정도로 낮다.

 

그에 반해 사마천의 『사기』는 동서양 통틀어 전무후무한 역사책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사기』는 현재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는 중이다. 『사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사마천의 역사 서술의 탁월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마천의 붓끝에는 감정이 흐르고, 편편의 이야기들은 인간학 교과서에 다름 아니라는 평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기전체(紀傳體)라는 역사 양식을 창조하고, 삼황오제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의 그 방대한 시공간의 이야기를 정리·해석했을 뿐 아니라 그 시공 위에서 활동했던 인간들의 욕망과 심리를 살아 움직이듯 표현한 그 필력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나도 『사기』에는 열광했지만 『한서』에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가 남긴 저서들을 공부했을 때, 이 저서들에 대한 정보의 출처는 예외 없이 『한서』의 「예문지(藝文志)」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서』라는 원전을 읽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니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하다. 이런 상태에서 『한서』를 찾아 읽으려 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고의 라이벌 사마천의 생애가 궁금해서 『한서』 번역본을 찾아본 것이다. 그런데 『한서』 「열전」의 극히 일부분만 선별하여 번역되어 있었고, 애석하게도 그 선집에는 「사마천 열전」이 수록되지 않았다. 이때에도 「사마천 열전」이 번역되지 않은 것만 아쉬웠을 뿐, 번역된 『한서』 선집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마도 『한서』를 읽고 싶게 만드는 어떤 추동력도, 필요성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나에게 한나라 역사는 『사기』에 기술된 이야기만으로 충분했다. 한나라 무제 이후의 전한 시대가 궁금하지 않았고, 『한서』라는 책이 지닌 매력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한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전령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런 해설서를 접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한서』는 닿기 어려운 저 멀리에 가려져 있었다. 

 

 

 『한서』를 읽는 까닭은? 

 

올해 여름 『한서』를 읽었다. 인생사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전혀 예정에 없던 『한서』를 읽게 된 것이다. 『한서』를 읽자는 제안이 왔을 때 나는 아주 편안하게 말했다. 부분만 번역되어 전체를 읽을 수가 없어, 라고. 이 무슨 일인가? 그 자리에서 검색하니 2017년 9월 『한서』의 「본기」와 「열전」 전체가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다. 읽으라는 계시인가?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장장 10권! 지구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재미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기에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10권을 읽자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세미나를 열면서도 끝까지 잘 읽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니 이럴 수가. 이 모든 것이 기우에 불과했다. 매주 1권씩 10주에 걸쳐 『한서』를 읽어가면서 나의 불안은 말끔히 사라졌다. 매주 한 권, 원문을 포함하여 약 600쪽의 분량을 읽어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역본을 내준 분들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하지만, 지명과 인명이 한자로 되어 있어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는커녕 흥미진진했다. 매 권마다 다른 이야기와 세계가 전개되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그렇고 그런 사건과 이야기들의 나열일까봐 지레 걱정했는데 깨알 재미가 넘쳤다.

 

10권을 다 읽고 뿌듯했다. 이 재미있는 『한서』를 읽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들-『한서』 읽기에 함께 한 길진숙·박장금·강보순-은 의기투합했다. 『한서』라는 책을, 『한서』의 이야기를 알리자. 『한서』에 대한 평가와 진단은 역사학계의 몫이지만, 우리는 전령사로서 『한서』의 그 풍성하고 중층적이고 구체적인 인물의 면모와 서사를 가감 없이 전하자. 이제, 『한서』를 읽으면서 느낀 즐거움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서』를 읽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련다.      

 

먼저 『한서』 편찬에 얽힌 이야기를 좀 더 정확히 풀어보자. 반고의 아버지 반표(班彪, 3-54)는 사마천의 『사기』를 잇는 역사서 『사기후전』 65권을 저술하고 반고의 나이 22살 때 세상을 떠난다. 그 후 아들 반고는 26살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역사책 집필을 시작하여 80년에 『한서』의 완성을 목전에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반고가 대역죄인 두흔의 측근으로 투옥되어 옥사하면서 『한서』는 미완성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에 여동생 반소(班昭, 45?-117?)가 그 뒤를 이어 「표」와 「지」를 보완하면서 『한서』 쓰기의 대장정은 완수된다. 그러니까 『한서』는 반씨 집안이 전력투구하여 만들어낸 역작이었던 것이다. 

 

반씨 집안은 후한 시대를 살면서 전 왕조의 생장쇠멸(生長衰滅)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이전 왕조의 흥성과 쇠망을 길잡이 삼아 자기 왕조의 현재 그리고 내일을 통찰하고 돌봐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씨 집안 사람들을 움직였음에 틀림없다. 이리하여 단대사(斷代史)라는 역사학의 전통이 만들어진다. 『한서』가 정사로 인정받으면서 이후 출현한 왕조들은 전대 왕조를 조명·정리하는 역사책 편찬을 대업의 하나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반씨 집안의 이 공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 단대사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사마천의 『사기』 덕분에 전한 시대의 고조·여태후와 혜제·문제·경제·무제까지의 왕력에는 익숙하지만 그 이후의 왕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나마 전한을 멸망시킨 장본인 왕망(王莽, 기원전 45-기원후 23)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텐데, 왕망을 아는 정도라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편에 속한다. 한나라 무제 이후, 소제·선제·원제·성제·애제·평제는 『한서』 안에 박제된 채 소환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한나라 시대를 조망하게 만들 정도로 문학·예술·사상·종교가 강렬하고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한나라 시대가 문화적으로 암흑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려나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나라 하면 떠오르는 것을 따져 보자. 동중서의 『춘추번로』, 유안의 『회남자』, 육가의 『신어』, 양웅의 『법언』, 사마상여의 부, 왕충의 『논형』 등등. 제자백가의 사상이 통섭되는 시기이면서 몸·국가·우주를 하나로 보는 사유가 꽃피던 때였다. 그런데 이런 지적 경향이 오히려 한나라에 대한 기대치를 떨어뜨리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여러 사유들을 통일·융섭하는 경향 때문에 새로운 사유가 범람하던 춘추전국시대와 비교하여 창조적이기보다는 잡스러운 것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지의 기운과 인간의 기운이 서로 교통하고 감응하는 측면에서 인간의 몸과 정치를 해석하는 까닭에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술수나 비의처럼 취급되어 음지로 밀려났던 것이다. 

 

우리가 『한서』를 읽기로 작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위에 열거한 한나라 시대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인간의 몸과 정치를 해석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고, 그 이해를 위해 한나라 시대에 대한 탐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곧 인간의 몸과 정치의 관계, 천지자연의 이치와 음양오행과 인간과 국가의 역학에 이토록 관심이 많았던 때가 있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사유가 출현했는지, 왜 한나라 때 사람들은 몸과 우주의 관계를 통해 인간 삶을 해명하는데 집중했는지, 그리고 한나라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의 답을 찾기 위해 그 시공을 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서』 읽기는 시작되었다. 세미나가 준 행운이랄까? 『한서』를 읽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되었다. 역사책으로서의 『한서』가 지닌 매력과 미덕 때문이다. 진나라가 중국 천하를 통일했지만 허망하게도 15년 만에 무너지고 만다. 다시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는 200여 년 동안 제국을 지켜낸다. 안정된 관료제로 그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번영을 구가했던 천하의 제국 한나라! 반고는 한나라라는 이 특정 조건 위에서 200여 년의 시간 동안 명멸해간 인간들의 말과 행위에 주목한다. 인간들이 얽혀 빚어내는 사건과 사고(事故)와 마음을 다각도에서 비추어 보여준다. 그럴 때 하나의 사건, 한 사람의 행위는 단선적이지 않다. 일례로 반고는 행정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고 정확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잔인한 동시에 남 잘되는 걸 볼 수 없는 찌질한 인간의 이면을 디테일하게 해부한다. 또한 모든 걸 다 가졌으나 오히려 이것이 제 무덤을 파는 원인이 되는 삶의 역설과 그 매트릭스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낸다. 반고가 해부한 인물 열전을 읽으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시공을 뛰어넘어 인간이 넘어야 할 문턱은 무엇인지, 이 드넓은 천지와 교감하는 한 생명체로 돌아가 삶의 기본과 그 심연을 묻고 또 묻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한서』를 읽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후 『한서』에 대한 본격적인 토크가 전개될 터, 개봉박두!      


글_길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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