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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배움, 내 자신이 즐거운 것

by 북드라망 2014. 8. 22.

진정한 호모 쿵푸스 『행복한 청소부』가
가르쳐 준 배움 그리고 행복

― 일과 함께 배우고, 일과 함께 익히고, 자기 현장을 떠나지 않기




한 청소부가 있다. 그의 일은 거리명이 쓰여 있는 표지판을 닦는 것. 닦아 놓아도 금방 더럽혀지곤 하는 표지판을 닦는 이 일을 그는 정말 사랑한다. 얼마나 깨끗하게 닦던지 그가 맡은 구역의 표지판은 늘 새것으로 보일 정도다. 그가 맡은 거리는 작가와 음악가들의 거리.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모차르트 거리, 괴테 거리, 실러 거리, 토마스 만 광장 등등이라고 써져 있는 표지판을 그는 날마다 닦는다. 


아저씨는 행복했어.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자기가 맡은 거리와 표지판들을 사랑했거든. 만약 어떤 사람이 아저씨에게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면, “없다”라고 대답했을 거야.

어느 날 한 엄마와 아이가 파란색 사다리 옆에 멈추어 서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랬을 거야.

- 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행복한 청소부』, 김경연 옮김, 풀빛, 2000 중에서



어느 날 한 아이가 표지판을 보며 자기 엄마에게 한 질문은 그가 날마다 닦는 거리의 이름인 음악가와 작가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닫게 했고, 그날부터 청소부는 “이대로는 안 돼” 하며 공부를 시작한다. 음악가들을 알기 위해서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 등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공연장에 갔고, 매일매일 음악을 들어서 그 음악을 외워 휘파람으로 불 정도가 되자 작가들에 대한 공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시립도서관 최고의 단골이 되도록 책 속에 잠겨들었다.


아저씨는 행복했어. 아저씨는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들을 자꾸만 만나게 되었어. 어떤 말은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지만, 어떤 말은 이해되지 않았어. 그래서 무슨 뜻인지 알게 될 때까지 되풀이해서 읽었어. 

저녁이면 저녁마다 아저씨는 책 속의 이야기들에 잠겨 있었어.

- 『행복한 청소부』중에서




 이렇게 해서 글들의 맛도 알게 된 청소부는 모든 작품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일을 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든 구절(씨앗문장?!)을 혼자 읊조리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저씨는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며, 시를 읊조리고, 가곡을 부르고, 읽은 소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표지판을 닦았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는 걸음을 멈추었어. 파란색 사다리를 올려다보고는 깜짝 놀랐지. 그런 표지판 청소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거든. 대부분의 어른들은 표지판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시와 음악을 아는 사람 따로 있다고 생각하잖니. 청소부가 시와 음악을 알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아저씨를 보자 그들의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진 거야.

- 『행복한 청소부』중에서


이렇게 그의 공부는 끝났을까? 아니다. 그는 이제 시립도서관에서 음악가와 작가들에 대해 학자들이 쓴 책을 빌리기 시작한다. 당연히 어려웠고, 끝까지 읽어내는 것 자체가 힘들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세월이 꽤 흐른 후, 이제 그는 표지판을 닦으며 강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한 강의가 아니라 자신이 읽은 책들 공부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 자기 생각을 자신에게 말한 거였지만, 어느 새 사람들이 그가 표지판을 닦는 사다리 아래에 모여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이 청소부 이야기의 결말은 잘 알려져 있듯이, 방송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청소부에게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을 한 네 군데의 대학에 그가 거절의 답장을 쓰는 장면이다.



“나는 하루 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행복한 청소부』중에서



이 책 『행복한 청소부』는 초등학생용의 그림책이지만, 단언컨대 어른들에게 더 흥미로운 책이다(글쎄…… 사실 어느 연령층에게 맞는 책이 따로 있는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하고, 그 일과 관련된 것에 대해 배우고, 그 배움을 자기 몸으로 익혀서 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더 큰 명예나 돈을 위해 자신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삶은 아마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 책의 결말, 그러니까 교수직을 거부하고 청소부로 살기를 원하는 주인공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지만, 물론 나도 그랬지만, 다시 읽을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가 배움을 익혀가는 과정이었다.


음악가를 알기 위해 그는 듣는 데 익숙지 않은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에 뛰어들어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다. 알 수 없는 단어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책들을 읽기 위해 그는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 그 다음에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이번에는 그들을 다룬 학술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현장(일터)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좀더 공부에 몰입하기 위해 대학을 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더 나은 미래(보통은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현장을 지키며 공부하고 그래서 늘 행복한 청소부, 그는 진정한 호모 쿵푸스다



그의 공부는 표지판을 닦는 일과 나란히 가고, 그 일과 어우러진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가 그 일과 공부가 어우러지게 만든 것이다. 표지판을 닦으며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강의가 되고, 그 강의를 듣기 위해 저절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간다. 어디에서도 과시나 부자연스러운 구석을 찾을 수 없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더 나은 미래(보통은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현장을 지키며 공부하고 그래서 늘 행복한 청소부, 그는 진정한 호모 쿵푸스다(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만든 말. 공부는 쿵푸, 곧 몸으로 하는 것이고 몸을 단련하고 인생을 바꾸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일상의 모든 것을 공부거리로 삼는 사람을 호모 쿵푸스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그의 배움은 율곡 이이가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공부라는 것은 일상생활과 일 속에 있다”라고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 배움은 자기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어울리고 싸우고 아프고 고되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삶의 모든 국면 속에 공부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문제는 어떤 거리를 잡아서, 외울 만큼 몸에 습관으로 붙을 만큼 오롯이 집중하는가이다.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유행을 따라 떠돌고(패션에만 유행이 있는 게 아니라, 철학공부에도 유행이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배우고, 남에게 있어 보이기 위해(혹은 무시받지 않으려고) 하는 공부에서는 오롯한 배움도 행복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또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철학적 개념이든 그 무엇이든) 배움의 열망에 사로잡혔던 순간, 더 배우고 싶다, 더 알고 싶다, 고 말할 수밖에 없던 순간의 느낌을. 그 충만한 즐거움을. 그렇기에 왕심재(중국 명나라 중기 양명좌파의 사상가)가 말한 다음의 문장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게 아닐까.


즐겁지 않으면 배움이 아니고, 배우지 않으면 즐거움도 없다.

즐거운 연후에야 배운 것이고, 배운 연후에야 즐겁다.

고로. 즐거움이 배움이고 배움이 곧 즐거움이다!

아아! 세상의 즐거움 중에 이 배움만 한 것이 또 있을 것인가.



아아! 세상의 즐거움 중에 이 배움만 한 것이 또 있을 것인가.



행복한 청소부 - 10점
모니카 페트 지음, 김경연 옮김,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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