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함께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날, 지금의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모르지만 알 것 같다!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날




최근에 아주 감동적인 현장이 있었다.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20주가 넘는 기간 동안 매주 같은 시간에 모여서 미셸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것이다. 그 중에는 직장인,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 약사이신 분, 학교 선생님, 주부이신 분들이 섞여 계시다. 나이는 4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철학서를 읽어 본 것은 처음이다. 학인들은 감이당의 <중.남.미>(중년남성을 위한 인문의역학) 프로그램에 등록한 후에 강독자가 읽어 주는 것을 띄엄띄엄 따라 읽었다. 처음엔 정말 한 줄도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읽어 주는 대로만 눈으로 봤을 뿐이다. 강독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해했다. 역시 철학은 너무 공허하고, 쓸모없는 소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약선생님과 함께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학인들. 이들이 약선생님께서 처음 쓰신『자기배려의 인문학』의 "빛나는 장면들을 밝혀준 친구들"이 아닐까.



그러나 1주가 가고, 2주가 가고, 10주가 가고, 내친김에 보충수업까지 따라 15주가 가고, 마침내 20주째가 넘었다. 그 사이에 『주체의 해석학』이 말해주는 아름다운 소리들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뜻은 모르지만 푸코의 언어가 주는 울림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들이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의문시 했던 질문들이 갑자기 깨닫기도 했다. 그런 깨달음은 소박한 것이지만 우리들에겐 아주 중대한 사태다. 물론 많은 부분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겨졌다. 그러나 달라진 게 있다. 온 몸으로 읽어 나가면 제아무리 어려운 철학책이더라도 내 몸에 와서 박히는 거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친구가 아는 것은 친구가 읽어 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준다. 이런 식으로 철학뿐 아니라 의역학도 만나고, 인류학도 만나고, 자연과학도 만난다. 일반 교양서도 겨우 읽던 사람들이, 더군다나 ‘학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대가들이 쓴 철학 원전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7년 전 술·담배를 끊고 홀로 찾아가 만난 이 세계는 나에게 진정 새로운 삶을 안겨 주었다. ‘사회생활’에서 맺은 협소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는 끊겼으나, 이 세계에서 ‘우정의 공동체’라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얻었다. 이곳에서 형성된 지성의 연대는 이른바 ‘사회생활’에서 겪는 여러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아니, 그런 두려움은 두려움조차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여전히 은행원이고 평범하지만, 내가 딛고 있는 세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다.


- 『자기배려의 인문학』 「서문」 5~6쪽



푸코가 전해준 스토아주의자들의 말대로, 진실의 담론은 나의 근육에 와서 알알이 박히는 것이다. 수많은 개념들도 읽고 읽으면 언어가 걸어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몇 개의 진실담론이 와서 내게 박히면, 그 몇 개가 버티며 다음에 다가오는 진실 담론들을 받아 다시 내 근육에 심어준다. 진실의 담론들이 내 신체 위에서 릴레이를 펼친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내 신체에 다른 감각, 다른 쾌락이 생긴다. 이제 철학책을 읽는 이 시간을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철학의 언어들이 주는 강력한 힘에 매혹되어 이제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많은 부분을 모르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모름과 “다른 모름”이 생겨났다. 여기서 시작하면 될 것이다. 아무런 길도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묘한 일이다. 모르지만 알 것 같다! 우리는 그 출발점에 섰다. 이제 다시 시작할 것이다. 





글/사진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주체의 해석학 - 10점
미셸 푸코 지음, 심세광 옮김/동문선


설정

트랙백

댓글

  • 세븐 2014.08.06 08:44 답글 | 수정/삭제 | ADDR

    철학 원전은 아니지만 푸코의 책을 완독했을 때의 성취감은 무엇과 비길 수 없는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중남미 1학기 10주도 모자라 보충수업 10주까지 더해주신 약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또 포기하지 않고 함께 완주한 우리 중남미 학인들도 고맙구요...약 선생님이 한줄 한줄 낭독할 때 그 음파가 근육에 알알이 박히는 체험. 소중한 추억, 그리고 앞으로 공부해 가는 과정에서 돌파하는 힘이 될 것 같아요. 모두 수고하셨어요. 앞으로 4학기 니체 수업과 새로운 세미나로 멋진 만남이 이어지기를 기대할께요.^^ (주체해석학 완주자 세븐)

    • 북드라망 2014.08.06 11:06 신고 수정/삭제

      '음파가 근육에 알알이 박히는 체험'이라는 표현이 몹시도 신선하고...(무섭습니다. ^^;;;) 늘 즐거운 공부하셔요!

  • 계수나무 2014.08.06 10:00 답글 | 수정/삭제 | ADDR

    -고전기 그리스 사유에서 먼저 세계는 techne(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기술)를 통해 인식되기 위해 사유되기를 중단하며, 다시 중요한 변동과 변형을 통하여 세계는 생(bios)을 통해 경험이 되고 이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고 인식하며 알게 된다는 것, 즉 생(bios)은 단련, 경험, 수련의 상관물이 되기 위해 techne의 대상물이기를 중단한다..-(본문514p 하단)
    장장 515쪽에 이르는 '푸코'라는 어려운 사유를 약선생님의 길잡이를 따라서 읽고 또 읽어서 마침내 단련과 수련의 첫걸음을 내딛은 뿌듯함과 설레임을 느낍니다. 함께 한 도반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에 가능했고요.. '배움'이 은혜가 되어, (갚아야 한다는 부담?에) 벌써 슬며시 걱정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일단 그 걱정을 더는 것이리라 믿으며, 스승과 도반을 떠나지 않고 따라가 보려 합니다^^*

    • 북드라망 2014.08.06 11:07 신고 수정/삭제

      공부에서 스승과 도반을 찾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인듯합니다!
      거머리처럼 매달려서 앞으로도 고고싱~~~!!

  • 정문 샘 2014.08.06 11:32 답글 | 수정/삭제 | ADDR

    중남미 1학기 강의 때보다 보강 완독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업에 참여 하는게 유일한 노력이었지만, 같이하는 학인이 있어 따라 갈수 있었습니다. 이제 약샘 따라 겨우 읽어 봤으니, 깊이를 더하는건 저의 몫이 겠지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추억하며, 다음엔 근육에 박히는 철학 공부를 어떻게 할지 고민입니다. 4학기 수업도 기대 됩니다

    • 북드라망 2014.08.06 12:28 신고 수정/삭제

      뭐랄까 ... '근육철학강독', 꾸준히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

  • 희자 2014.08.06 12:49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약샘과 푸코와 친구들과 함께했던 지난 5개월이 꿈같이 느껴집니다.한글을 읽고 있으나 도무지 뭔소린지 알수없었던 글들이 어느날 내게 말을 거는듯 싶더니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그간 잘 살아왔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목이 왜 주체의 해석학인지 알것 같다가도 모르는것 같기도 하지만 제 근육에 새겨진 미세한 움직임들은 장비가 되어 제가 사건과 만날때 등장하리란걸 알아요.긴 여정 함께하는 행운을 누릴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 미자 2014.08.06 18:19 답글 | 수정/삭제 | ADDR

    수업시간에 책을 읽었을 때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처음 앞 부분만 읽다 마는 거 아냐' 했는데..시간이 갈수록 끝까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다른 책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 아마도 푸코의 언어가 주는 울림에 몸이 떨린게 아닐까요.^^ 아직 저의 근육에 박히지는 않았지만 꽉~~박히도록 애써볼려고 합니다. 같이 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북드라망 2014.08.06 18:23 신고 수정/삭제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따름이다. -고미숙, 『호모 쿵푸스』"

      한걸음씩이 가장 중요하죠!

  • 지O 2014.08.06 21:35 답글 | 수정/삭제 | ADDR

    care of self,
    '자신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나를 언제 보살펴 준 적이 있나?
    ㅠ ㅠ
    선생님이 끌어주시고 동무들이 밀어주어 어울렁 더울렁 마쳤습니다.
    서툴게 나를 돕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 북드라망 2014.08.07 11:09 신고 수정/삭제

      스스로 돕고, 동료들이 밀어주고, 스승이 끌어준다면 세상에 배우지 못할 공부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열공하셔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