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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약선생의 철학관

함께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날, 지금의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by 북드라망 2014. 8. 6.

모르지만 알 것 같다!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날




최근에 아주 감동적인 현장이 있었다.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20주가 넘는 기간 동안 매주 같은 시간에 모여서 미셸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것이다. 그 중에는 직장인,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 약사이신 분, 학교 선생님, 주부이신 분들이 섞여 계시다. 나이는 4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철학서를 읽어 본 것은 처음이다. 학인들은 감이당의 <중.남.미>(중년남성을 위한 인문의역학) 프로그램에 등록한 후에 강독자가 읽어 주는 것을 띄엄띄엄 따라 읽었다. 처음엔 정말 한 줄도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읽어 주는 대로만 눈으로 봤을 뿐이다. 강독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해했다. 역시 철학은 너무 공허하고, 쓸모없는 소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약선생님과 함께 『주체의 해석학』을 완독한 학인들. 이들이 약선생님께서 처음 쓰신『자기배려의 인문학』의 "빛나는 장면들을 밝혀준 친구들"이 아닐까.



그러나 1주가 가고, 2주가 가고, 10주가 가고, 내친김에 보충수업까지 따라 15주가 가고, 마침내 20주째가 넘었다. 그 사이에 『주체의 해석학』이 말해주는 아름다운 소리들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뜻은 모르지만 푸코의 언어가 주는 울림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들이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의문시 했던 질문들이 갑자기 깨닫기도 했다. 그런 깨달음은 소박한 것이지만 우리들에겐 아주 중대한 사태다. 물론 많은 부분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겨졌다. 그러나 달라진 게 있다. 온 몸으로 읽어 나가면 제아무리 어려운 철학책이더라도 내 몸에 와서 박히는 거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친구가 아는 것은 친구가 읽어 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준다. 이런 식으로 철학뿐 아니라 의역학도 만나고, 인류학도 만나고, 자연과학도 만난다. 일반 교양서도 겨우 읽던 사람들이, 더군다나 ‘학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대가들이 쓴 철학 원전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7년 전 술·담배를 끊고 홀로 찾아가 만난 이 세계는 나에게 진정 새로운 삶을 안겨 주었다. ‘사회생활’에서 맺은 협소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는 끊겼으나, 이 세계에서 ‘우정의 공동체’라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얻었다. 이곳에서 형성된 지성의 연대는 이른바 ‘사회생활’에서 겪는 여러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아니, 그런 두려움은 두려움조차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여전히 은행원이고 평범하지만, 내가 딛고 있는 세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다.


- 『자기배려의 인문학』 「서문」 5~6쪽



푸코가 전해준 스토아주의자들의 말대로, 진실의 담론은 나의 근육에 와서 알알이 박히는 것이다. 수많은 개념들도 읽고 읽으면 언어가 걸어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몇 개의 진실담론이 와서 내게 박히면, 그 몇 개가 버티며 다음에 다가오는 진실 담론들을 받아 다시 내 근육에 심어준다. 진실의 담론들이 내 신체 위에서 릴레이를 펼친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내 신체에 다른 감각, 다른 쾌락이 생긴다. 이제 철학책을 읽는 이 시간을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철학의 언어들이 주는 강력한 힘에 매혹되어 이제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많은 부분을 모르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모름과 “다른 모름”이 생겨났다. 여기서 시작하면 될 것이다. 아무런 길도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묘한 일이다. 모르지만 알 것 같다! 우리는 그 출발점에 섰다. 이제 다시 시작할 것이다. 





글/사진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주체의 해석학 - 10점
미셸 푸코 지음, 심세광 옮김/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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