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네그리/하트 - 가족과 기업의 '공통'적인 것을 위한 싸움

# 가족, 회사 – 피부 – 네그리/하트

피부에서 싸운다


삶에 가족과 회사만한 게 또 있을까. 언제나 회사에 머물거나, 가족과 함께한다. 그만큼 삶은 이 두 곳에 꽂혀있다.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매일 회사로 떠나고, 일터의 성취를 안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아마 그러다 기력이 쇠진하면 사라질 것이다. 삶이 그러하므로 죽음도 새끼들과 밥벌이 사이 어딘가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읊조리면 포근하고, 끈끈한 뭔가가 있다. 이어서 그런 포근함과 끈끈함을 계속 보호해야할 의무감 같은 것도 솟아난다. 어쩌면 그런 포근함과 끈끈함, 그리고 그걸 지키려는 의무감이 뒤섞여 생활을 만들어 내는 것일지 모른다. 사실 가족과 기업만큼 우리 자신을 진심으로 쏟아 붓는데도 드물다.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이 그곳에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은 가족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격전의 장소다. 회사는 일과 책임의 균형을 지키느라 신경전이 끊이질 않고, 가족은 사랑과 억압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한다. 어쩌면 그런 와중에 그곳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끔찍함에서 탈출하여 기업의 따뜻한 품에 안기려고 하거나, 반대로 기업에서 탈출하여 가족에서 피난처를 찾으려고 한다. 많이 논의되는 직장과 가족의 '균형'은 실로 차악들 사이의, 공통적인 것의 두 부패한 형태들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족과 기업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the common)에의 접근-그것이 아무리 왜곡된 것일지라도-을 제공하는 유일한 사회적 공간이다.

-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지음 『공통체』 정남영·윤영광 옮김, 238쪽


여기서 ‘공통적인 것들’이란 물질적 세계의 공통적 부, 즉 물, 공기, 땅의 결실을 비롯한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이다. 더 나가서 사회적 상호작용으로만 생성 가능한 것들 즉, 지식, 언어, 코드, 정동(affection) 등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공동소유라야 더 잘 생산되고 증식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과 기업은 공통적인 것을 생산하는 출발점이다. 끈끈함과 포근함이야말로 이를 드러내주는 징표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것을 독점하려는 자본의 힘이 가장 첨예하게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썩은 호스가 들어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반하는 행동과 주장을 한다.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일순간 가족 그 자체를 부패한 것으로 만든다. 또 기업 이데올로기는 기업에 좋은 것은 공동체에도 좋은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물건을 팔아댄다. 결과적으로 구성원들을 기만과 부패에 기여하게 만든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자기 몸을 버리면서까지 ‘공통적인 것들’의 부패에 기여하고 몰두한다. 비극이다.





바로 이 의미에서 가족과 기업은 사회-신체의 피부다. 많은 병은 반드시 피부와 모발에서 시작한다. 사기(邪氣)는 주리로 들어와 낙맥(絡脈)으로 침투한다. 낙맥이란 경맥으로부터 나와 피부 가까이에 흐르는 맥이다. 그러니까 외부와 가장 가까이 있다. 이 지대에서 사기를 없애지 못하면 사기는 곧장 경맥(經脈)으로 전진한다. 여기서 다시 허물어지면 이제 오장육부로 들어가고 만다. 


다시 말하면 가족과 기업이라는 피부는 사적 소유라는 사기(邪氣)가 침투하여 ‘공통적인 것들’을 최초로 부패시키는 곳이다. 이곳은 사회구성체의 경제적 토대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사실 피부는 폐인 것이다(『동의보감』 797쪽). 그렇다면 가족과 기업의 비윤리와 싸울 줄 아는 것, 우리 자신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성찰을 할 줄 아는 것, 바로 그것이 사회의 핵심적 토대와 싸우는 것이다. 피부가 사실상 중심이다. 우리는 바깥에서 싸워야 한다. 피부가 전쟁터다.


글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공통체 - 10점
안토니오 네그리 외 지음, 정남영 외 옮김/사월의책
자기배려의 인문학 - 10점
강민혁 지음/북드라망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