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옛날에는 여편네가 배우지 않아도 수부다남(壽富多男)하고 잘만 살아왔다.
여편네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이 많단다.
얘, 공부한 여학생들도 보리방아만 찧게 되더라." - 나혜석, 「경희」
"비녀 쪽진 부인들을 보면 매우 불쌍히 생각하였다.
‘저것이 무엇을 알고 저렇게 어른이 되었나.
남편에 대한 사랑도 모르고 기계같이 본능적으로만 저렇게 금수와 같이 살아가는구나.
자식을 귀애하는 것은 밥이나 많이 먹이고 고기나 많이 먹일 줄만 알았지
좋은 학문을 가르칠 줄은 모르는구나. 저것도 사람인가?’" - 나혜석, 「경희」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
공부를 하면 많이 해야겠어요. 그래야 남에게 존대를 받을 뿐 아니라 저도 사람 노릇을 할 것 같아요 ……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 - 나혜석, 「경희」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철원 김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나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잠깐 들씌운 가죽뿐 아니라 내장의 구조도 확실히 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
오냐 이 팔은 무엇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 나혜석, 「경희」
"봉건적 족쇄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갈 길은?
민족의 당당한 일원인 남성들을 받쳐 주거나 남성과 같은 수준에 오르거나 해야 한다.
방법은? 교육과 지식으로 무장하면 된다. 너무 간단하다고?
교육과 지식은 계몽의 담론이 내세운 모토이자 문명의 길, 구국의 길이다.
따라서 계몽의 논리에 따르면, 문명의 지식을 갖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애국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들은 오직 이 길을 수락할 때만이 공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 고미숙, 『연애의 시대』, 34쪽
“자고이래로 왕후장상과 영웅호걸이 다 여자의 뱃속으로 나오며
여자의 손 아래서 길러 내었으니 만일 남자를 교육할 경영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여자를 교육하여야 차제가 분명하고 남자의 교육도 성취가 될지라 ……
여자는 남자를 낳고 기르는 근본이니 어찌 근본을 놓고 문명기초를 도모하리오 ……
여인이 무식하고 그 소생된 남자가 명철하기를 어찌 바라리오
동양보전하려는 군자들은 여자교육을 깊이 주의할지니라."
「매화노고와 송백거사」,『제국신문』1901년 4월 5일, 『연애의 시대』에서 재인용
"그해 가을과 겨울도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된 때는 ……
동경 처음으로 올 때(겨우 일 년 반 전이다)와는 전혀 다른 처녀가 되었다.
우선 자부심이 생겼다. 조선 여성계의 선각자라 하는 자부심이었다.
선각자가 될 목표도 섰다.
여류문학가가 되어 우매한 조선 여성을 깨쳐 주리라 하였다." - 김동인, 「김연실전」
"그러나 만세열이 식어 가는 바람에 하나씩 둘씩 모두 작심삼일이 되어 버려서
점점 제 몸의 안락만을 찾게 되었다.
처음에 한 사람이 시집을 가 버리면 마음이 변한 것을 책망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시집을 가서 돈도 잘 쓰고 좋은 집에 아들딸 낳고 사는 것을 보면
그것이 부러운 마음이 점점 생겨서 하나씩 하나씩 시집들을 가 버렸고
아직 시집을 못 간 사람들도 내심으로는 퍽 간절하게 돈 있는 남편을 구하게 되었다.
한국을 위하여 몸을 바친다는 것은 옛날 어렸을 때 꿈으로 여기고
도리어 그것을 비웃을 만하게 되었다." - 이광수, 『재생』
"앞에는 지금 두 길이 있다. 그 길은 희미하지도 않고 또렷한 두 길이다.
한 길은 쌀이 곳간에 쌓이고 돈이 많고, 귀염도 받고 사랑도 받고 밟기도 쉬운 황토요,
가기도 쉽고 찾기도 어렵지 않은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한 길에는 제 팔이 아프도록 보리방아를 찧어야 겨우 얻어먹게 되고
종일 땀을 흘리고 남의 일을 해주어야 겨우 몇 푼 돈이라도 얻어 보게 된다.
이르는 곳마다 천대뿐이요, 사랑의 맛은 꿈에도 맛보지 못할 터이다." - 나혜석, 「경희」
그리고, 21세기……
"<시크릿 가든>, <해를 품은 달>, <별에서 온 그대>.
지난 몇 년에 걸쳐 공전의 히트를 친 멜로드라마들이다.
남자주인공들의 변천사가 흥미롭다.
재벌 2세(시크릿 가든)에서 조선의 왕(해를 품은 달), 그리고 외계인(별에서 온 그대)이다.
부와 권력은 물론이고 이젠 초능력까지 필요하다. 여성들의 눈이 이렇듯 높아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외모도 뛰어나야 한다. 훈남에 동안은 기본이다. ……
이게 다가 아니다. 이런 남자가 지고지순한 순정을 바쳐야 한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사랑해주고 또 지켜 줘야 한다. 죽을 때까지 주욱~
근데, 좀 이상하다. 지금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유능하다. 이렇게 대단한 ‘넘’을 만날 필요가 없다.
지켜 주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나약하지도 않다. 근데 왜? ……
사랑은 아무리 원해도 괜찮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어떤 욕망도 다 용납된다, 왜?
사랑은 순수하고 아름다우니까. 더 나아가 이런 사랑을 받아야 비로소 여성의 삶은 완성된다고 간주한다.
아무리 성공해도, 그 어떤 성취를 이룬다 해도 이런 지순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여성의 존재감은 추락하고 만다. 결국 이 ‘후천개벽’의 시대에도 여성은 남성을 통한 인정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은 대체 언제나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대체 이런 ‘여성’ 혹은 ‘여성성’은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 고미숙, 「‘멜로의 판타지’와 연애의 시대」, 『연애의 시대』, 5~6쪽
궁금해요? 궁금하면……
우리 안의 '근대성'을 찾아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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