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시대』와 함께 읽는 <황산벌>
영화 <황산벌>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비롯해 당나라의 천자까지 4자 회담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계백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전투로 인해 백제는 망하게 된다는 것을. 이후 고구려도 망하고 신라로 통합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영화 <황산벌>은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다시 봐도 재밌다!^^) 2편 격인 <평양성>은 신라와 고구려와의 전투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첫번째 키워드: 사투리
가장 먼저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건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억양이다. 당나라 황제는 촐싹거리는 중국어 발음으로, 연개소문은 평안도 사투리로, 김춘추는 경상도 사투리로, 의자왕은 전라도 사투리로 옥신각신하고 있다. 순간, 관객들은 홀딱 깬다! 무슨 특별한 장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사실 사투리라는 말은 틀렸다. 각자 자기 나라 말로 한 것일 뿐이다. 그야말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재현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거지?
―고미숙, 『계몽의 시대』, 238쪽
왼쪽부터 을지문덕, 중앙 의자왕, 오른쪽 김춘추
맞다. 이 장면 기억에 남는다. ‘왕들이 사투리를 쓰네, 생각해보면 이게 자연스러운거였지!’라는 놀라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다른 지방의 말투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 다른 학교에서 온 아이들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들이 일본에서 온 줄 알았다. 처음 들었던 경상도 사투리가 일본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친구가 ‘경상도 사투리’라고 알려주었다.)
게다가 근엄한 4자 대면 자리에서 오가는 대사들이 심상치않았다. “천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의 축’으로 선포한다!”는 당나라의 천자의 대사를 들으며, 처음에는 이런 대사가 풍자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악의 축’하면 부시 대통령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부시가 2002년에 악의 축을 언급한 후, <황산벌>은 2003년에 개봉했다는 점~)
또, “전쟁은 정통성 없는 놈들이 정통성 세우려고 하는 기야”라는 연개소문의 대사도 기억에 남았다. ‘그래, 나 정통성 없어. 그래서 전쟁했다 어쩔래?’라는 이 노골적인 대사를 들으며 저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었다. 어쩌면 표준어로 점잖게 교양있게 대화를 나누는 4자 회담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그런 점에서 <황산벌>은 망치로 이 환상을 확! 깨버린다.
20세기 초 민족어의 신성함이 부각되면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작업이 표준어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와 더불어 언어의 지역적·계층적 차이들이 표준어의 장 속에 모조리 흡수·통합되었다. 이후, 사투리는 ‘덜 근대화되고, 좀더 가난하고, 덜 지적이고, 머리보다 몸을 쓰는 하층민의 언어’라는 이미지가 강력하게 각인되어 버렸다. 그래서 아무리 높은 지위나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사투리를 쓰면 누구든 친근하고, 만만하게 보인다. 정통사극에 나오는 상류층이 언제나 가장 세련되고 중후한 표준어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의 책, 239~240쪽)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계백이 “뭐시기 할때까정 병사들에게 갑옷을 거시기 하라고 전해라”는 말을 들은 신라의 첩자. 그는 자신의 진영에 똑같이 그 말을 전하지만 20년 경력의 암호해독 전문가도 그 비밀을 풀 수가 없었다. 거시기, 뭐시기는 맥락을 모르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보는 우리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병사들에게 갑옷을 벗지 말라고 전해라”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나중에 김유신이 장기를 두면서 그 의미를 파악할때까지, 신라측은 ‘거시기’ 때문에 참 ‘뭐시기’했다.
"지가예, 암호해독 20년에 이런 고난도 암호는 보도 듣도 몬했심니더."
_암호해독 전문가를 멘붕에 빠뜨린 거시기와 머시기!
이렇게 이 영화는 근대 이전, 한반도 안에는 무수한 언어들이 범람하고 있었음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말과 말들이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사건들의 연쇄! … 암호명 거시기, 욕설대결 등은 그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이 이질적 언어들의 각축을 따라가다보면, 다만 민족어의 고유한 표상은 물론이려니와 삼국통일이라는 ‘대서사’에 담긴 중력장마저 와해되어 버린다. 그것은 고매하고 신성한 기념비적 사건이 아니라, 그야말로 온갖 이질적인 힘들의 좌충우돌이 낳은 우발적 사건일 따름이다. (위의 책, 242쪽)
두번째 키워드: 전쟁과 일상
백제군들이 성 위에서 신라군을 감시한다. 신라군 병영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걸 확인한 병사들이 이렇게 외친다. “신라군 밥 먹는다. 우리도 밥 먹자!” 백제군 병영에서 김이 솟아오르는 걸 풀숲에서 지켜보던 신라 병사들도 병영으로 뛰어들며 “백제군 밥 먹는다, 밥 먹자!”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전쟁터에서 쌀을 씻고 물을 맞춰서 밥을 해먹는 모습이 우리는 참 낯설다. 대개 영화 <300>이나 <반지의 제왕>처럼 멋지게 싸우는 장면 자체만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산벌>의 전투는 달랐다.
<황산벌>의 전투는 세 차례의 기싸움이 있다. 먼저 탐색전. 선발된 장수들이 자웅을 겨룬다. 병사들은 응원가를 부르며 사기를 북돋는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명랑한 분위기이다. 김유신은 정해진 날짜 안에 쌀을 배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당나라의 군사들이 군량미를 안 챙겨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백은 문을 꽉 걸어닫고 도통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라는 백제를 도발해보기로 한다. 다음으로 펼쳐지는 신경전에서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욕 배틀이 등장한다.
신라 병사들이 무장해제하고 백제 병사들 앞에서 욕을 날리면서 깝죽거린다. 여기에 열받는 백제군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병사들 셋을 데려온다. 날때부터 욕을 탑재했다는 보성, 벌교 출신들이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욕을 쏟아내면 “씨벌~”하는 코러스가 따라붙는다. 거기에 “우리는 한 끼에 반찬 40가지를 먹는다”는 폭탄발언까지! 신라 병사들은 결국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이 시퀀스는 두 가지 점에서 전복적이다. 하나, 이미 짚었다시피, 우리의 고유한 말이라든가 민족어라는 표상에 숨어 있는 고귀함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욕설의 향연에서 민족어의 고귀한 기원을 찾는 이는 없으리라. 신성한 소리, 고귀한 언어 따위는 없다. 삶이 잡스러운 만큼 언어도 잡되다. 욕설만큼 그 잡스런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시 어디 있으랴. 다른 하나는 암호명 거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어가 지시적 기호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감응을 통해 소통하는 것임을 환기한다. 욕이란 무엇인가? 언어의 지시성이 아니라 잉여성이 고도로 발휘되는 언표행위다. 욕은 개념이나 의미로 승부하지 않는다. 그것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주체와 대상 모두에게 강력한 신체적 울림(역겨움, 낯뜨거움, 끓어오름 등등)을 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무기보다도 더 효과적이다. 언어의 물질성 혹은 신체성의 가장 뚜렷한 증거! 미제국주의에 맞서 멕시코에서 무장투쟁을 하고 있는 사파티스타의 구호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이걸 살짝 패러디해서 말해 보면, “우리의 욕은 우리의 무기다!” (위의 책, 252~253쪽)
앞에서 등장한 계백, 김유신 외에도 황산벌 전투와 관련된 사람들을 우리는 몇 명 알고 있다. 계백의 부인, 화랑 관창이다. 계백이 출전하기 전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다. 포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산벌>에서 계백과 부인이 대치하는 장면이 무척 발칙하게 느껴진다.
계백의 아내: 씨만 뿌리고 네가 한 일이 뭣이 있다고, 이제 와서 내 새끼들을 죽인다 만다여?
계백: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어. 깨끗이 죽그레이, 추하게 그러들질 말구.
계백의 아내: 아가리는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제. 호랑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것이여!!
맞다, 어쩌면 실제로는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약을 먹고 죽으라는 남편의 배려(!)에 악을 쓰며 덤벼드는 계백의 아내. 애를 셋 낳고 키울 동안 집안일이라고는 돌보지 않았던 남편이 이제는 죽어달라니, 아내 입장에서는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었겠는가. 결국 계백은 칼로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다. 김유신은 백제군의 사기가 계백이 처자식을 죽이고 출전했다는 사실에서 나왔음을 잘 알고 있었다. 세번째 전투인 외눈 장군끼리의 전투에서도 백제군이 이긴 상황에서, 김유신은 ‘화랑’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화랑 반굴은 자신의 아버지가 역사에 이름이 남으려면 “짧고 굵게” 살아야 한다며 자신에게 죽음을 요구하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은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고 한다. 반굴의 아버지는 자신도 죽고싶다며, 그런데 자신은 죽어봤자 약발도 안 먹힌다고 한다. 관창 역시 마찬가지이다.
관창: (빈정거리며) 아부지, 지금 누가 시켜가 이러는 거 아이지예?
김품일: 하모. 시상에 누가 시킨다고 지 새끼 디지라고 등 떠밀 애비가 어딨겠나?
관창: 아부지, 이거 진짜 개죽음 아니지예?
김품일: 장난하나? 니는 뜬데이. 뜬데이. 반드시 뜬데이. 화랑 관창. 역사에 길이 남으리. 관창아, 꿈은 이루어진데이. 그럴라믄 니 그냥 죽으면 안 된데이. 정신 바짝 차리고 죽어야 한다. 폼~나게. 비~장하게. 장~렬하게.
계백에 살려보낸 관창을 다시 전장으로 보내는 아버지. 결국 관창은 시체가 되어 진영으로 돌아가게 된다. 계속해서 화랑들은 백제군에게 죽으러 간다. 죽이는 백제군들의 울먹이는 표정,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자식을 죽으라고 내보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계속 아이들을 전장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하는 김유신. 전쟁은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그런 것임을 말로,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화랑이라는 역사적 기호에 덧씌워진 낭만과 신화를 처참하게 묵사발내 버린다. 신화는 없다! 서기 660년 황산벌에선 전쟁이 있었고, 전쟁에 이기기 위해선 군사들을 “미쳐 날뛰게” 만드는 피의 향연이 필요했다. 그래서 화랑은 그 향연의 제물로 동원되었을 따름이다. 요컨대,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진정 원한 것인지 아니면 장군과 아버지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따로이 욕망의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배치가 있을 뿐이다. 피의 순교를 요구하는 욕망의 배치가. (257~258쪽)
결과적으로는 김유신의 전략이 먹혔다. 백제군들이 갑옷을 옷에 꿰맨 것을 간파했기에 진흙 덩어리를 적진에 쏟아부어 단숨에 성을 함락한 것이다. 계백은 김유신의 전략을 눈치채고 백제군이 패하게 된 것을 직감했다. 자신을 탈출시키기 위해 개구멍(!)을 만드는 계백의 장수, 그 모습을 본 병사 ‘거시기’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며 깨끗하게 죽자고 오히려 싸우자고 말한다. 이 말을 듣던 계백이 병사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자기 이름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냐며, 그냥 ‘거시기’라고 부르라는 병사. 계백이 또 묻는다. “자넨 뭣하다 왔는가.” 거시기 병사는 울먹거리며 농사짓다 왔다고 한다.
“시방 나락이 거진 다 여물었을 것인디. 울 엄니 혼자서 겁나게 고생하게 생겼네, 씨……”
그러자 계백이 뚜벅뚜벅 걸어가 거시기 병사에게 말한다. “죽을땐 죽더라도 뭔가 하나는 냄겨야 하지 않겠는가. 거시기! 난 자네를 냄기고 싶구마”라며. 그리고 거시기 병사는 빠져나가게 되고, 남아있던 계백과 나머지 병사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다.
계백과 병사 거시기
벼이삭들이 물결치는 푸르른 논두렁이 펼쳐지고 몇몇 여인네들이 나락을 거두고 있다. 저 멀리 거시기가 달려오고 엄니는 멀리서도 ‘거시기’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듣는다. 거시기와 엄니의 뜨거운 포옹!
“엄니, 엄니, 저 왔으라!”
“아이구, 내 거시기, 내 거시기!”
“살아왔어라, 엄니.”
“아이구, 세상에! 반쪽이 디았네, 반쪽이.”
“엄나, 배고파라우.”
“밥 묵으야제.”
가슴이 저릿하고 코끝이 찡한, 한마디로 ‘겁나게 거시기한’ 장면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위의 책, 263쪽)
거시기와 엄마의 재회! 거시기는 논산에서 벌교까지 머나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지 않았을까. 나락을 베며, 그렇게 또 삶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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