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만 원에 그려진 천문도, 알고 계세요?

만 원 뒤에 천문도가?



만 원짜리 뒤에 ‘별 지도’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저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2007년 이전에 나온 구권의 뒷면에는 경회루가 있었지요. 그런데 신권으로 바뀌면서 경회루 대신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혼천의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금했습니다. 이 별자리는 무엇일까, 하고 별을 찾아보니 북두칠성은 구분할 수 있겠더군요! 여러분도 지금 바로 만 원짜리를 꺼내시고, 뒷면을 보세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별 지도라고 합니다. 이 천문도를 우리가 만 원에서 만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때는 조선 건국 시기로 올라갑니다. 요즘 대세인 드라마 <정도전>도 있습니다만… 여튼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웁니다. 이성계는 즉위 초반에 민심을 두려워하여 나라 이름을 ‘고려’로 그냥 썼다고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무엇이었을까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겠지요. 마침 그때 고구려 시대의 천문도 탁본을 어떤 노인이 이성계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탁본의 별자리와 실제로 보는 밤하늘의 별자리의 위치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성계는 천문학자들을 불러 ‘지금 조선 하늘 버전’으로 새롭게 천문도를 그리도록 명을 내립니다. 눈치 채셨지요? 네, 바로 이 천문도가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이때의 천문도는 흑요석에 새겨 비석으로 세워졌습니다. 이 첫번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국보 228호라고 하네요. 그 이후로도 세종, 숙종, 선조 때에도 이 천문도를 보완하는 작업을 합니다.

중국의 경우에도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면 역법(曆法)의 제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지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 정월은 양력으로 3월입니다. 이는 한(漢)의 기준에 따른 것입니다. 진나라 때에는 10월을 정월로 삼았다고 해요. 여하튼 조선은 고려와 달리 역법 제정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혼천의와 같은 문화유산이 만들어진 맥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농업이 기반이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천문이나 기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던 점도 있지요. 별의 움직임이 땅의 질서, 특히 정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을 관장하는 관상감(觀象監)의 최고 책임자가 재상이었습니다.


천상(天象), 하늘의 조짐을 읽는다는 뜻이다. 천체의 움직임이 지리(地理)와 인사(人事)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궁리하는 게 천문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하늘에 나타난 조짐을 해석할 것인가? 그걸 알려 주는 게 열차(列次)와 분야(分野)다. 열차에서 차(次)는 목성의 공전주기를 따라 하늘의 적도를 12개의 구역으로 나눈 것이다.


─손영달, 『별자리 서당』, 99쪽


중앙에 자미원, 그 옆에 천시원과 태미원이 있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별을 12개의 구역으로 나눈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서양별자리와 달리 하늘에도 각각의 부서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중앙에 북두칠성이 있는 부분은 긴 담장이 쳐진 궁궐을 의미합니다. 담장 안에는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이라 이름 붙은 3원이 있지요. 가장 중요한 임금이나 왕비, 태자를 상징하는 별들은 모두 자미원 안에 있습니다. 태미원은 천자가 정사를 펴는 조정을, 천시원은 하늘의 시장 혹은 제후들의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별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구분했지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테두리를 보면 자, 축, 인, 묘… 이렇게 십이지지가 적혀있습니다. 이것은 방위와 계절을 나타냅니다. 봄은 인월, 묘월, 진월이죠. 동청룡이 바로 이 영역에 있는 것이지요. 가을은 신월, 유월, 술월이며 서백호가 가을의 별들을 관리(!)합니다. 여름은 사월, 오월, 미월입니다. 오잉? 그런데 천문도에는 해, 자, 축의 별들이 보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경복궁을 둘러싼 방위를 떠올려보세요. 왕이 궁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남쪽이 됩니다. 그러므로 위쪽이 북현무, 오른쪽이 동청룡, 왼쪽이 서백호, 아래쪽이 남주작이 됩니다. 그런데 하늘의 입장에서는 땅을 내려다보는 방향이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보고 있는 방향과 달라지게 됩니다. 풍수지리를 미신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알고 보면 하늘을 구획 짓는 것과 같은 논리가 담겨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천문과 풍수지리가 모두 ‘과학’이었던 셈이지요. 물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말입니다.


명당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을 취하면, 왼쪽이 동쪽 오른쪽이 서쪽이 됩니다.



고대에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땅에도 똑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했지요.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증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봄철의 별자리인 동방청룡칠수 중 심성(心星)은 청룡의 심장을 상징합니다. 심성은 소만(양력 5월 21일 무렵)에 뜨는데요, 태조 실록에 남아 있는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태조 2권 1년 9월 5일 (계미) / 달이 심성을 가리다
태조 6권 3년 8월 8일 (을해) / 달이 심성을 범하니 유배한 사람을 용서하다
태조 7권 4년 2월 21일 (을유) / 달이 심성을 범하다
태조 8권 4년 7월 11일 (임인) / 달이 심성을 범하다
태조 9권 5년 1월 21일 (경진) / 달이 심성 앞별을 침범하다
태조 10권 5년 8월 16일 (신축) / 태백성이 심성을 범하다
태조 11권 6년 1월 16일 (기사) / 유성이 심성에서 나와 남녘으로 흐르다


태백성(금성)이 심성을 범하는 현장 포착! (프로그램 덕분에 태조 5년 신축일의 밤하늘을 재현해볼 수 있었습니다.)



금성은 태백성(太白星)이라고 하는데 서방(西方)의 금에 배속된 행성이다. 금성은 군사를 주관하기에 금성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하면 군대가 패하거나 임금이 왕위를 찬탈당한다. (위의 책, 95쪽)


태백성이 왜 중요하게 다뤄졌는지, 느낌이 오네요. 이처럼 고대인들은 별의 위치를 보며 기후를 예측하기도 하고, 특정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뿐 아니라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사기』에도 별의 움직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알고 난 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때의 사건이 훨씬 더 생생하고 풍부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사마천을 위시한 사관(史官)들은 왕실의 역사가이자 점성술사였다. 이들은 제왕에게 천명을 예고하고 해석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늘에 나타나는 미세한 조짐들에서 하늘의 뜻, 곧 천명을 읽어내 정치에 반영했다. 왕은 이들의 말에서 자신의 덕과 정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즉 이들의 존재는 왕의 전제 권력에 대한 브레이크와 같았다. … 동양의 하늘 읽기는 여기서 출발했다. 동양인들이 하늘에서 얻고자했던 건 우주에 관한 순수한 이론적 앎이 아니라 역사의 지도였다. 우주의 운행이 어떠한 시공의 변화를 가져오는지, 그 안에서 인간 공동체의 운명은 어떠한 부침을 일으킬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위의 책, 36쪽)


역사도, 별도 흐릅니다. 쭈욱~~~~~



마케터 M

별자리 서당 - 10점
손영달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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