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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한국근대소설극장

[근대소설극장] 그남자와 그여자의 격렬한 부부싸움 -「처(妻)를 때리고」

by 북드라망 2014. 3. 21.

한국근대소설, 등장인물소개로 맛보기 ➁



맛볼 소설 : 김남천, 「처(妻)를 때리고」, 『조선문학』, 1937년 6월호



시놉시스 


1937년 초봄의 서울.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늦은 밤, 부부싸움이 격렬해져 간다. 싸움의 주인공은 옛 ○○계의 거두로 사회주의운동을 하다 6년 옥살이까지 한 남편 남수와 그의 처 정숙. 20년간 패트론이 되어준 허 변호사의 출자와 신문기자 준호의 도움으로 출판사를 차릴 계획에 부풀어 있던 무직자 남수는 정숙이 준호와 저녁 산책 한 일을 감춘 것을 계기로 다투게 되고, 급기야 정숙을 때리기에 이른다. 격렬한 싸움의 와중에 정숙은 분함을 쏟아내며 허 변호사가 그들의 생활비를 대주는 명목으로 정숙을 성희롱했던 사실을 밝히는데……….




잇 신(it scene)   


# 돈을 빌리러 허창훈 변호사(이하 허변)의 집에 갔다가 술에 취한 허변이 정숙의 가슴을 움켜쥐자 그대로 허변에게 귀싸대기를 올린 정숙. 그 차진 소리에 자신마저 놀라 허겁지겁 허변의 집을 나서는데, 맞아야 정신이 드는 놈이었는지 정숙을 따라와 엎드려 용서해 달라고 비는 허변. 마음으론 발길질이 나가지만 몸은 그를 비껴 대문을 나서려는데, 허변은 다시 쫓아와 돈봉투를 내민다. 거절하고 가려는 정숙에게 꽂듯이 내던지고 사라지는 허변. 울면서 한참 그 자리에 있던 정숙이 그래도 그 봉투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 싸움 중 아내 정숙으로부터 허변이 정숙에게 한 짓을 듣고 허변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 남수. 그런데 곧 “계집에게서 매력을 느낄 때에 그것이 자기에게 어떤 관계에 서는 계집인 줄을 잊고 성적 충동과 흥분을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아니 진실로 인간적인 한 개의 사람”이라며 남자동물로서의 허변을 이해하더니 “네가 나에게 정책적으로 논다면 나는 너한테 지지는 않을 게다. 어떻게 했든 나는 눈을 감고 이번에 5만 원은 출재(出財)키고 말겠다. 네가 눈 가리고 아웅하면 나도 한다”며, 궁극의 자기애를 보여 주는 장면.


# 남수와 정숙이 한바탕 싸움을 한 다음 날. 서로에게 할 말 못할 말, 쌓였던 말 생각지도 않았던 말 등등을 고루 쏟아내고 육탄전까지 치렀지만, 또 서로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움트던 아침. 식전 댓바람부터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던 밀당의 고수 신문기자 준호가 찾아온다. 전 날 싸움 후에 혼자서 허변과 준호에 대해 이들을 이용하여 출판사를 차리고 말겠다며 그들이 정숙을 농락한 일은 없던 일처럼 하고 약삭빠르게 굴려 하는, 스스로 자부하기를 “원수와 마주 대하여 앉아서도 불쾌한 낯을 나타내지 않을 만한 사교적 세련은 치러”온 남수에게 준호가 자기는 출판사를 같이 못하겠다며, 사실 남수 몰래 어느 신문사에 취직자리를 알아보았는데 총독부 출입도 하는 사회부 기자로 가게 되었다며, 홀랑 자신은 이 출판회사 조직에 직접 관계는 끊고 조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웃는 얼굴로 남수에게 침 같은 말을 뱉는 장면.



작품 속 속담 하나 


“소한테 물렸다” : 순하고 잘 따르는 짐승인 소한테 물렸다는 뜻으로, 엉뚱한 데에서 뜻밖의 손해를 본 경우를 이르는 말. 작품 말미쯤에 자신은 좋은 취직자리가 났으니 출판조직에 발을 빼겠다고 말하는 준호를 보며 남수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 등장함.



등장인물


▶차남수


38세. 옛날 ○○계의 거두로 사회주의자. 6년간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후 3년째 무직.
가족관계 : 시골에 부모님, 본처, 아들, 딸 있음. 현재는 동지이자 애인이자 아내인 최정숙과 서울에서 살고 있음.
현재 계획 : 변호사 허창훈의 돈과 신문기자 준호의 인맥으로 출판사와 인쇄소 주식회사를 차려 문화사업을 해보려 함. 
가장 바라는 것 : 출판사 차리는 것.
남수를 둘러싼 세간의 소문 : “허변호사는 영리한 놈이라 차남수가 옛날엔 ○○계 거두니까 돈이나 주어 병정으로 쓰구 제 사회적 지위나 높이려구 한다. 또 차남수는 자기가 이용되는 줄 알면서 그것을 거꾸로 이용하여 생활비를 짜낸다.”
부부싸움 후 남수의 결심 : “오늘 밤 한 말은 아내로서 할 만한 말은 아니었으나 그가 불만을 과장해서 지적하고 나에게 대든 것은 나에게는 좋은 약이 되겠지. 지금은 처가 저렇게 흥분하고 있으나 곧 본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하튼 출판사는 해야만 한다. 결심한 이상 꼭 해놓고야 말 것이다. 사업이 아니라면 장사라고 불러도 좋다. 주식회사가 되기까지는 허창훈이도 필요하고 김준호도 절대로 필요하다. 허창훈 ― 너는 돈을 가졌고, 김준호 ― 나는 너의 기술이 필요하다. 자본가를 끌기 위하여는 김준호,  네가 꼭 있어야 한다.


시골 천석꾼의 아들로, 서울에서 사회주의운동을 하다 10년 전 정숙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었고, 현재 사실혼 관계에 있다. 6년간 옥바라지를 한 정숙과 출감 후에도 3년째 같이 살고 있다. 정숙 몰래 가끔 시골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다녀온다. 비록 현재 돈벌이는 못하고 있으나 패트론인 허 변호사가 있어 굶고 살진 않는다(자기 손으로 쌀 한말 사온 적 없다. 돈 받아오는 일마저 언제나 아내 정숙에게 맡긴다). 20대 시절 화려했던 경력 덕분에 아직까진 어디를 가도 청년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모여들어 주고, 나눌 정치담과 시국담이 끊이질 않는다. 이젠 뭔가 번듯한 사업을 펼치고 싶은데, 마침 허 변호사가 이런 뜻을 알고 출판사를 해보라며 돕겠다고 나섰다. 호남의 유지들을 잘 아는 신문기자 준호까지 붙어주니, 이제 주식회사를 만들어 문화사업에 나설 일만 남았다. 만난 이래 계속 준호를 욕하는 정숙의 말이 왠지 마음에 걸리고, 사실 그 이유도 잘 알 것 같지만 모른 척한다. 왜냐면 그는 지금 꼭 출판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정숙


서른다섯 살, 차남수와 사실혼 관계에 있음.
가슴에 남은 상처 : 남수가 애는 운동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낙태 수술을 한 일(아마 수술이 잘못되었는지 다시는 애를 못 갖게 되었음)
은근히 기대하는 것 : 준호와의 연애
알면서 모른 척 한 일 : 남수가 정숙에게는 다른 일로 출장 간다고 하고, 시골집에 아이들 만나러 다니고, 심지어 정숙이 빌려 온 돈으로 아이 학비까지 몰래 보낸 걸 다 알면서 모른 척 해 주고 있었음
정숙의 울분 : “정치담이나 하구 다니면 사회주읜가. 시국담이나 지껄이고 다니면 사회주읜가. 백 년이 하루같이 밥 한술 못 벌고 십여 년 동안 몸을 바친 제 여편네나 때려야 사상간가. 세월이 좋아서 부는 바람에 우쭐대며 헌수작이나 지껄이다가 감옥에 다녀온 게 하늘 같아서 백 년 가두 그걸루 행셋거릴 삼아야 사회주의자든가. 


그런 사회주읜 나두 했다. 난 남의 은혜를 주먹으로 갚지만 못했다. 애 낳는 것까지 두려워 수술을 해가면서두 오늘 이 꼴 당하게 될 생각만 못 가졌다. 미련한 이년은 십 년이 하루 모양으로 남편을 하늘같이 알고 비방과 핍박 속에서 더울세라 추울세라 남편만을 섬겼건만 그날 뒷날 첩으로 되어 쫓겨나게 될 줄만 몰랐다!”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청년회관에 드나들며 활동하다 남수를 만난 듯하다. 당시 정숙을 좋아하는 남자도 많았는데, 어쩌다 하필 남수와 동거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남수와 만난 10년 동안 6년은 옥바라지로, 3년은 그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여기 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고, 허 변호사에게 돈 받으러 다니며 보냈다. 그 돈으로 배추 사고 무 사고 고추 사고 하는 동안 남편이라는 작자는 자기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한번 안 하고 살아왔다. 남수가 감옥살이 할 때 남수의 시골집에서는 1전 한푼 보태주지 않았고, 남수는 툭 하면 전보질을 해서 정숙을 부르고 차입도 정숙에게만 해 달라고 했다. 처음부터 남수 시골집에 도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아들이 옥살이를 하는데, 그의 아버지란 영감은 “아들이 옥에 간 건 그 몹쓸 년 탓이라구 물을 떠놓고” 빌었단다. 정숙이 죽어야 아들이 산다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동지이자 연인으로 그를 구해내고자 “뼈가 가루가 되도록 미친년같이” 헤맸던 정숙이지만, 옥살이 6년 바라지 후에도 돈 한푼 벌 생각 없이 사람들에게 ‘선생’ 소리 듣는 데 취해 지내는 남편을 보고 살자니 속으로 화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던 중 남편이 벌이고 싶어하는 문화사업(출판사) 때문에 만난 신문기자 준호가 어느 순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끌리는 마음을 감추고자 그의 험담도 하고, 그의 나쁜 점을 일부러 더 보려 애쓰기도 했으나, 그럴수록 여자 마음 알아주는 준호의 넉살과 웃음에 마음은 점점 기울어 가고, 결국 남편이 출장 갔을 때 준호와 산책한 일을 감추었다가 부부싸움이 시작된다. 


정숙의 한마디 : “너한테 십 년 동안 뼈가 가루 되도록 해 바친 게 죄가 돼서 이년 소리를 듣구 더러운 욕을 먹어야 되니. 입이 밑구멍에 가 붙어두 그런 말은 못 하는 법이다. 입이 열 개래두 그런 수작은 못 하는 법이다!”    



▶김준호 : 이십대. 신문기자. 바람기 다분. 남수 표현에 따르면 준호는 “언뜻 보면 여자에게 흥미를 가지고 호의를 느끼는 듯이 보이면서 또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 다른 사람들은 낯을 붉히고 부자연한 태도를 가지고야 말할 수 있는 것을 대번에 싱글싱글 웃어 가며 참말같이 또는 농말도 같이 말해 버리는” 태도로 여자 마음을 훔치는 남자다. 어떤 때는 그녀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같이 행동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전혀 남인 듯이 대하는 밀당의 고수. 남수가 출장으로 집을 비운 어느 날 저녁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정숙에게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하여 식사 후 산책까지 함께 한다. 별스런 이야기가 오간 건 아니지만 분위기상 뭔가 남수에게는 비밀로 할 만한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생각해 굳이 입단속을 안 해도 남수에게 말하지 않겠지 싶었던 건 정숙의 오판. 준호는 며칠 후 남수를 만나자마자 정숙과 산책한 일을 고해바친다. “내가 핸드백이 된 셈이죠. 어쨌거나 우당 선생(남수) 주의하슈. 그만 연세가 꼭 스왈로(제비)를 기르고 싶을 시깁니다” 운운해 가면서. 남수와 허 변호사와 함께 출판사를 차리자고 여러 궁리도 하고 주주를 모으는 활동도 하더니, 사실은 뒤로 호박씨를 까고 다른 신문사를 알아보고 있었다. 앞으로 함께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종이 값이 좀 내릴 것 같더니 오늘 시세도 그만”이라며 종이 값이 내릴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남수의 출판사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언급까지 굳이 해주는 밉상. 


준호와 카페 여급의 희롱 한 장면 : “당번 여급이 보아하니 활량인데 이걸 턱 옆에다 앉히더니, 자 내가 하나 물으니 대답하면 내가 한턱 내구 지면은 너의 제일 귀한 걸 내게 바쳐야 한다. 또 나도 제일 귀한 걸 바치라면 그걸 걸어도 좋지. 이러고는 그 앞에 있는 네모난 흰 종이를 쓱 들더니 자 이게 무슨 그림인가. 여급이 아무리 봐야 백지밖에. 쳐들고 보아도 안 보이고 스쳐보아도 안 보이니 그 여자의 대답도 걸작이지. 하는 말이 바람을 그렸다. 바람은 눈에 안 보이니까. 준호는 고개를 쭝긋쭝긋하며 그 말도 비슷하나 가작이지 걸작일 수는 없다. 내 해석은 이렇다. 이 그림은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가는 그림이다. 거북은 앞서서 이미 이 종이 밖으로 달려가고 토끼는 늦어서 아직 종이까지 오지 못했다. 계집애도 좋아라고 손뼉을 치니 준호 하는 말이 너도 낙제는 아니니 키스쯤으로 용서한다고 막 야단이겠지.”



▶허창훈 : 변호사. 남수의 패트론. 안경 끼고 콧수염 난 점잖은 얼굴에 20년간 남수를 돌보아 주어 “애비보다 에미보다 낫다”는 평을 듣는 인물. 어느 비오는 날, 돈을 가져가러 오라고 부른 정숙을 술 취한 채 성희롱 하다 뺨을 맞고 만다. 남수와는 서로의 이익이 잘 맞는 공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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