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소설, 등장인물소개로 맛보기 ⑤
맛볼 소설 : 이효석, 「산협」(山峽), 『춘추』 4호, 1941년 5월
*산협: 도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나 깊은 곳. 같은 말 ‘두메’
※ 1941년 3월호의 표지
시놉시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한 산골마을. 이곳 거농(巨農)인 공재도는 봄이 되면 소금을 사러 문막 나루까지 다녀오는데, 이 해 봄에는 소금이 아니라 어여쁜 20대의 첩을 얻어 돌아온다. 40대 중반이 되도록 무자식인 공재도가 자식을 낳기 위해 첩을 들인 것. 공재도의 누이가 남기고 간 아들로 공씨 부부가 내내 키워온 조카 안증근은 자기가 씨름에서 1등 해서 타온 소를 첩과 바꾸어 온 외삼촌이 못마땅하고, 공재도의 아내 송씨도 티를 내지 않으려 하나 속이 끓어오른다. 설상가상 첩(원주집)은 바로 임신을 하고, 삶의 의지를 잃은 송씨는 자살까지 하려 한다. 이런 송씨를 가엽게 여긴 재실(공재도의 사촌 아우)은 용하다는 점쟁이를 데려오고, 점쟁이는 송씨에게 길일을 잡아 합궁한 후 70리 길 동쪽으로 가서 100일 치성을 드리면 임신한다는 점괘를 내놓는다. 이에 송씨는 오대산 월정사로 석 달 치 양식을 가지고 조카 증근의 보필을 받으며 불공을 드리러 떠나고, 과연 100일 후 임신을 하여 돌아온다. 그해 가을 양식도 풍족하게 거두고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것 같던 그때, 공재도에게 악운이 한꺼번에 닥쳐오는데 ……….
잇 신(it scene)
#공재도와 첩(원주집)의 첫날밤, 마을의 풍속―소의 본성을 본받아 잘 낳고 잘 늘라는 뜻으로 외양간에 신방을 차림―에 따라 차려진 신방 외양간 주변에서 동네 여자들이 빙빙 돌며 킬킬거리는 장면.
#원주집의 등장과 임신에 살 힘을 잃은 공재도의 아내 송씨가 방앗간 구석에 자살을 기도하고 널브러져 있는 것을 조카 증근이 발견하여 급히 업고 집으로 가는데, 얼마간 정신을 차린 송씨가 증근에게 자신이 아니라 남편 재도가 불임의 원인임을 중얼거리는 장면.
#예년에 없는 풍년이 들어 어느 때보다 풍족한 가을날. 밤이나 대추, 머루, 다래 등도 지천으로 익어서 공재도의 임신한 두 아내, 송씨와 원주댁이 모두 부른 배를 두드리며 진종일 머루를 먹어 대고, 이것을 공재도가 행복감에 흠뻑 젖어 바라보는 장면.
#각서까지 쓰고 소를 받고 아내를 넘긴 대장장이가 공재도 마을에 나타나 다시 아내를 돌려달라며 떼를 써서 공재도와 대장장이 두 사람이 주재소와 면소에 모두 각서를 들고 가 판결을 내달라고 하자, 주재소에서도 면소에서도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하는 장면.
등장인물
▶공재도
고향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남안리
나이 : 40대 중반
성격 : 보통 때 성격은 더없이 순한 편. 사촌 아우 재실이 물려받은 재산을 노름과 장사로 다 날리고 돌아왔을 때도 타박하지 않고 몇 자리 밭을 내어 주고, 일찍 죽은 누이가 남긴 조카 증근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고, 원주집을 모함하여 내쫓으려 한 머슴 박동이도 다시 거두어 주는 등 정 많은 성격. 그러나 한번 제대로 폭발하면 작두 날 아래 사람 머리를 넣고 발로 밟으려 할 정도로 무서운 면도 있음.
걱정거리 : 자식이 없는 것. 맨 주먹에 족보 한 권만은 신주같이 위해 가지고 있었던 집안의 자손. 조부와 아버지가 자수성가하여 부근에서 일등 가는 거농이 되었는데, 이를 물려줄 자식이 없어 행여 재산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게 되어 선조의 무덤을 돌보지도 못하게 되면 그보다 죄스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함.
조부 대에 북쪽 어느 땅에서 이 산골로 옮겨 와 자리를 잡고 지금은 알뜰히 재산을 불려 지금은 여러 섬지기 논과 밭, 산을 지니고 있음. 부지런하며 착실하게 생활하고 아내 송씨와도 단란히 지내 옴. 다만 꼭 자기 핏줄에게 재산을 물려 주고픈 마음이 간절하여 어느 봄날, 소금을 바꾸러 간 문막에서 우연히 만난 대장장이에게 소를 주고 어여쁜 아내(첩)를 얻어옴. 살갑게 굴기까지 하는 이 두번째 아내가 이내 임신을 하자 날아갈 듯. 자살할 마음까지 먹었던 첫째 아내 송씨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송씨도 점쟁이의 말을 믿고 100일 기도를 드리러 오대산 월정사에 갔다 돌아올 때는 부른 배를 안고 옴. 게다가 그해 가을에는 전례없는 풍년까지 들어 행복감에 푹 젖어들 때 불행이 찾아옴.
재도를 찾아온 첫번째 불행은 둘째 아내 원주집을 되찾으러 온 대장장이. 게다가 원주집의 뱃속 아기가 공재도 자신의 아이가 아닌 대장장이의 아이임을 알게 됨. 결국 두 사람을 떠나보내고, 송씨가 해산하기를 기다림. 춘삼월 드디어 송씨가 해산하여 장군감 같은 아들을 낳자, ‘이렇게 끔찍한 복이 정말일까’ 꼭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였음. 아들 이름을 만득이로 짓고 또 소금을 팔러 갈 준비를 하던 4월 어느 날, 아내 송씨가 다시 자살 기도를 함. 아내가 겨우 살아나자 이번에는 한 달이 갓 넘은 아이가 돌연사 함. 마음에 이는 무서운 의혹을 누르며 소를 몰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도는 소금받이를 떠남.
▶송씨
공재도의 아내. 아이를 낳지 못해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옴. 벌써 10여 년째 아침 저녁 한 번 빠뜨린 적 없이 칠성단에 정한 물을 떠 놓고 100번을 절하며 기도를 올려왔으나 허사. 기어이 남편이 어느 봄날, 첩(원주집)을 데려왔고, 이후 진종일 안방에 처박혀 있거나 베틀에 올라 길쌈으로 날을 보내곤 함. 그러던 어느 날 원주집과의 실랑이가 몸싸움으로 번지고, 원주집에게 “년이 돌소(새끼를 못 갖는 소)면서 심술은 고작이지”라는 말까지 듣게 됨. 그날 밤에 방앗간으로 가서 간수를 들이마시고 죽으려 하였으나, 정신이 혼미할 때 자신을 찾은 남편의 조카 증근 덕분에 목숨을 건짐. 이후 자신을 불쌍히 여긴 사촌 시동생 재실이 데려온 판수(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가 “길한 날을 받아 동쪽으로 70리를 가 백 날 동안 고산 치성을 드리면 그날부터 서조가 있어 옥 같은 동자를 얻는다는 괘”라고 하자 석 달 치 음식과 의복을 챙겨 소등에 싣고 증근의 보호를 받으며 오대산 월정사로 떠남. 정말 판수의 말대로 100일 후 임신을 해 돌아온 송씨. 그러나 그때부터 묘하게 송씨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증근이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마을을 떠났을 때도, 원주집이 그녀의 원래 남편과 떠나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무반응. 드디어 산달이 되어 옥동자 같은 아들을 순산하지만 출산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간수를 먹고 자살 기도. 다행히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는데, 이어서 갓난아기인 아들이 돌연사함. 공재도가 실성한 듯 소금받이를 떠난 날, 송씨는 사촌동서 현씨에게 중얼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함.
송씨의 한마디 : “왜 아직 목숨이 안 끊어졌을까. 돌소 돌소 하지만 난 돌소가 아니야. 아무에게도 말할 수는 없지만 알구 보면 삼촌이 불용이란다. 무이리 무당이 내게 가만히 뙤어주었어.”
“난 죄 많은 계집이오. 왜 얼른 벼락이 떨어져 이 목숨을 차가지 않는지 이상해 죽겠구료. 그렇게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안증근
공재도 누이의 외아들. 재도의 누이는 30리쯤 되는 산 너머 마을로 출가를 했었는데 요절하고, 남편마저 그 뒤를 따라 세상을 등지니 의지가지없는 증근은 외삼촌인 공재도의 집에 살게 되었고, 백모 송씨의 보살핌 속에 늠름한 장정으로 자라남. 증근의 조상 중에 범의 허리를 안아 넘어뜨린 장골이 있다는데, 그 피가 흘러서인지 남다른 힘의 소유자. 단옷날 열리는 읍내의 대회에서 해마다 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황소를 한 마리 타내 군내에서도 이름이 제법 알려지게 됨. 그 황소를 소금받이 한다고 데려가서는 젊은 여자와 바꾸어온 삼촌 재도가 못마땅하고, 송씨가 안쓰러움. 원주집의 잔소리나 삼촌의 책망에서 송씨를 막아주고 싶은 생각뿐. 그러다가 100일 치성을 드리러 오대산으로 떠나는 숙모 송씨를 보필해 소 등에 짐을 싣고 떠났다가 예상보다 일찍 열흘 만에 마을에 돌아온 증근은 어쩐지 좀 사람이 변한 느낌. 벌써부터 얘기가 오가던 분이와의 혼인도 하지 않으려 하고 불쑥 산속에서 밤을 보내고 오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함.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곰 한 마리를 사냥해 웅담값을 톡톡히 받게 되었는데, 그 다음 날로 마을에서 홀연 자취를 감춤.
안증근의 한마디 : (신작로가 정말 크더냐고 묻는 머슴 박동이의 물음에) “크구 말구. 신작로는 한없이 곧게 뻗친 위를 우차가 늘어서구 자동차가 하루에두 몇 번씩 달아난다네. 자동차 첨 보구 뜨끔해서 길가에 쓰러졌다네. 돼지같이 새까만 놈이 돼지보다두 빠르게 달아나거든.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세상이 넓지. 마당 같은 넓은 길을 걷구 있노라면 이 산골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어져. 어디든지 먼 데루 내빼구 싶으면서.”
▶원주집
공재도의 첩. 재도의 마을에서 꼬박 나흘길이 걸리는 대처 문막의 대장장이 아내였으나 황소 한 마리와 바뀌어져 재도네에 오게 됨. 달걀같이 희멀건 피부에 고운 자태, 문명의 냄새가 물씬 나는 그녀에게 사람들이 칭호를 ‘원주집’이라고 한 건, 바로 근방에서 제일 개화한 읍이 원주이기 때문. 실제로 그녀는 “세수를 할 때 팥가루 대신에 비누란 것을 썼고 동그란 갑에든 향내 나는 분가루는 정말 장에서 파는 매화분 따위”는 아닌 것을 썼음. 게다가 엽초밖에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낯선 흰 권연을 태움. 머슴 박동이는 그 하얀 권연 한 개를 얻으려고 애쓰곤 함. 꽤 큰 살림을 하는 공재도 집에서도 부지런히 일을 거듦. 다만 첫째 부인이 하루 종일 베틀에 올라 엎드리고만 있어서 자기 혼자 이 큰 살림을 다 해야 하는 것이 부아가 나서 송씨와 한판 붙음. 송씨가 100일 기도를 드리러 떠난 후 아무 데서나 권연을 푹푹 피우며 내로라하고 활개 피며 지냄. 어느 날 난데없이 공재도가 박동이와 바람을 피우는 것 아니냐며 드잡이 할 때 기가 막혀 이런 대접 하려면 차라리 고향으로 가겠다고 짐을 싼 일도 있음(이 일은 공재실과 박동이의 음모로 밝혀짐). 가을이 오자 홀연 문막에서 대장장이 남편이 자신을 찾으러 옴. 재도와 대장장이 사이에서 누구를 따를지 결정을 못 내리다가, 결국 대장장이와 함께 근처 읍내 창말에서 머무르며 해산까지 함. 그녀가 낳은 딸아이는 대장장이의 아이였음.
▶공재실
공재도의 사촌 동생. 조부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고, 따라서 공재실 집도 원래는 재도네 만큼 재산이 있었는데, 한때의 허랑한 마음으로 읍내에서 노름에 정신을 팔고, 또 장사를 하노라고 흥청거리다가 모두 탕진해 버렸음. 알몸으로 돌아온 재실에게 집 한 채를 내주고, 밭도 소작하게 해준 재도가 고맙긴 하지만 원래 허랑한 구석이 있는 재실은 자신의 아이 일득을 사촌형에게 양자 보내고 그 덕에 어려운 살림살이를 고쳐보자 궁리함. 그러던 중 형 재도가 문막에서 첩을 얻어오자 자신의 양자 계획이 틀어지게 되고 다른 수가 없는지 또 궁리. 원주집이 임신까지 하자, 재실은 그녀를 내쫓기 위해 머슴 박동이를 꼬셔서 형 재도가 원주집과 박동이가 바람을 피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하는 꼼수를 내지만, 형의 서슬 퍼런 행동에 질린 박동이가 사실을 털어놓아 버림. 이에 재도가 재실을 찾았으나 이미 재실은 마을에서 감쪽같이 사라짐. 주변 얘기로는 그후 읍내에서 여러 날 술에 취해 뒹굴더니 깊은 산에 들어가 치성을 드리고 삼을 태보겠다면 표연히 심산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함.
▶현씨
공재실의 아내. 공재도의 종수(從嫂; 사촌 형이나 사촌 아우의 아내). 송씨와도 원주집과도 잘 지내며, 공재도 집안의 일을 두루 도와줌. 나중에 송씨가 해산할 때도 옆에서 아기를 받아주고, 공재도에게 덕담을 건넴. 그로부터 한 달 뒤 송씨의 갓난아기가 돌연 죽고, 공재도가 소금받이 떠난 후 방에 송씨와 단둘이 남게 되었을 때 송씨가 “우리끼리니까 말이지만”이라며 힘없이 중얼거리며 입을 떼자, 현씨는 윗동서의 손을 잡으며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침착한 낯으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함. 그러나 이어지는 송씨의 말들에 답하는 현씨. “그만둬요. 말하지 않아두 다 안다니깐. 증근이 내뺀 곡절이며 뭐며 다 알아요.”
▶박동이
공재도 집 사랑에 머슴 살고 있음. 어릴 때부터 공재도의 집에 의탁해 온 증근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 공재실의 꾐에 빠져 원주집을 쫓아내려고 하얀 권연을 얻어 피우는 척 하며 남이 보기엔 원주집과 한방에서 뒹군 듯 굴기도 함. 그러나 공재도가 예상을 뛰어넘어 화를 내면서 심지어 작두에 박동이의 목을 밀어 넣고 발로 금방이라도 밟으려 하는데 질려서 바로 공재실을 일러바침. 한편 송씨를 오대산에 데려다 주고 온 뒤로 증근이 뭔가 어색해하고 수줍어하고 얼이 나가 있는 걸 가장 잘 알고 이상하게 여김.
▶대장장이
문막에서 공재도에게 황소 한 마리와 아내를 바꾼 남자. 원주집의 남편. 어느 가을 날, 동네도 안 가르쳐 주고 떠났던 공재도를 몇 달에 걸쳐 물어물어 찾아내 마을에 나타남. 소는 얼마 못 가 죽었다며 값을 치러주겠다면서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함. 지장까지 찍은 각서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공재도가 따지자, 아내와 싸운 뒤라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뻗댐. 게다가 원주집 뱃속 아기도 자기 자식이라고 주장. 주재소와 면소에서도 누가 아내를 데려갈지 판결이 안 나자 근처 읍내인 창말에 숙소를 정하고 매일 조르러 오기 시작함. 결국 공재도가 져서 원주집이 몸을 풀 때까지 창말에서 둘이 지내게 함.
▶임서방
증근과 혼삿말이 오갔던 분이의 부친. 농사보다 사냥으로 살아감. 사윗감으로 증근을 원했는데, 사냥 재주가 자기도 못 미치게 뛰어남을 알아보았던 까닭. 그래서 자기가 그간 터득한 묘리까지 알려주면 그 고장 제일의 사냥꾼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음. 게다가 딸 분이도 마을에서 바느질은 물론 길쌈으로도 당하는 처녀가 없는 괜찮은 아이인데, 증근이 영 말을 듣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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