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소설, 등장인물소개로 맛보기 ③
맛볼 소설 : 최서해, 「전아사」(餞迓辭), 동광(東光), 1927년 1월호
*전아사: 작별하고 맞으며 새로 하는 말
시놉시스
1926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주인공 변기운은 외사촌이지만 친형처럼 지내왔던 인갑 형님께 자신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오게 된 사연을 담은 편지를 쓴다. 인갑 형님은 똑똑했던 동생이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어렵게 지내는 것을 알고 나서, 본인도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임에도 기운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라며 어렵게 여비를 마련해 돈과 함께 편지를 보내왔고, 이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기운이 쓰는 편지다. 면소 서기로 근무하던 변기운이 극진히 모시던 홀어머니마저 버리고 떠났던 속내와 5년간의 팍팍한 서울살이에서 겪은 일들을 이 편지에 풀어 놓는데……….
잇 신(it scene)
#변기운이 자신을 위해 내내 헌신하고 고생한 홀어머니의 환갑을 맞아 고량진미까진 아니더라도 음식을 많이 장만하고 어머니의 친구들을 많이 초대해 어머니와 함께 유쾌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결국 형편이 안 되어 어머니가 직접 본인의 환갑 생일상을 차리고 이웃집 노인 오륙 명을 청해 밥 먹는 자리에서 결국 쏟아져 나오는 눈물과 울음소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서 학생 하숙집에 기거하게 주인공 기운. 고향 함경도에서는 보지 못했던 할멈(하녀처럼 허드렛일을 하는 나이 든 여성)의 존재가 낯선 데다가 더욱이 젊은 하숙집 기거인들(심지어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이들도)이 할멈, 할멈 하며 각종 일을 하대하며 시키는 것에 분개하여, 자신은 할멈에게 절대 반말을 쓰지 않고, 자기 방의 허드렛일은 자기가 하는 등 존중해 주었으나, 도리어 할멈이 그것을 이용하여 기운에게는 반말을 하고 할멈이 하던 일도 해달라고 하는 장면
#처음 한 연애 상대에게 배신당하고, 생계를 위해 써지지도 않는 글을 억지로 쓰며 원고지를 채워 가던 어느날, 고향에서 온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원통함에 몇날 며칠 수차례 자살을 고민하던 주인공 기운이 내가 죽어도 세상은 그대로일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며 어떻게든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하며 구두닦이가 되려는 장면. “어제는 영화를 누리다가 오늘날 똥통을 멘다고 비웃기는 하지만 도울 줄은 모릅니다. 또한 똥통을 멘다고 그 인격에 손상이 생길 리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 탈을 못 벗은 까닭에 이리저리 끌리는 것입니다.”
등장인물
▶변기운
고향 : 함경도 어느 면소재지
나이 : 1926년 현재 스물여섯 살
연애경험 : 하....한 번
직업 : 현재 구두닦이, 과거 작가, 고향에서는 면서기
평생 잊을 수 없는 날 : ①홀어머니 환갑날 ②홀어머니를 떠나 서울로 야반도주하듯 떠나던 날 ③홀어머니가 임종하신 날
고향에서의 큰 고민거리 : ①늙은 어머니에게 조밥이나마 배불리 대접하지 못하는 것 ②서울로 공부하러 못 가는 것
서울에서의 큰 고민거리 : ①공부를 하고 싶은데 먹고살려니 공부할 짬이 나지 않는 것 ②신문기자가 되고 싶은데 학벌도 연줄도 달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서울생활 초기 가장 낯설었던 것: 할멈 혹은 어멈(허드렛일 해주는 하녀 같은 신분)과 거지의 존재
기운의 한마디 :
“세상은 비웃을 줄은 알아도 건져 주고 도와 줄 줄은 모릅니다.”
“신사니, 양복이니, 구두니, 안경이니, 명예니 하는 것이 참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 유년 시절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지만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람. 명절 때 새 옷을 지을 돈이 없으면 어머니는 젊은 날 지었던 자신의 비단옷을 뜯어 아들의 옷을 만들어 주셨음.
√ 17~20세 : 17세에 면소에 서기로 들어가서 십여 원 남짓한 월급으로 근근이 지내던 중 문예에 뜻을 두고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음. 함께 소학교와 글방에 다니던 동무들은 어느새 서울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 동경(도쿄) 어느 대학에 입학했다는 등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오름. 무엇보다 글방에서 너나없이 지내던 친구들이 고향의 학교와 군청에 교사로 주사로 부임하면서 면소에 출장을 나오면 꼭 배 내밀고 행세하고 싶어하는 것을 참기 어려움. 하지만 19세였던 기미년에 일어났던 운동(3.1운동) 때도 어머니를 생각해 만세를 부를 수 없었던 효자 기운에게 홀어머니를 두고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음.
√ 21세(1921년) : 어머니의 환갑날이 1921년 6월 22일. 환갑 잔칫상을 어떻게든 차려드리고 싶어 환갑날 하루 전 돈을 빌리러 갔던 동네 부자 김초시에게 멸시를 당하고 초라한 어머니의 환갑상 앞에 눈물을 쏟은 후, “나도 남과 같이 적자(適者)가 되자. 자연도태를 받지 말자. 시대적 인물이 되자”는 마음이 참을 수 없이 일었고, 적자가 될 만한 공부를 할 여유가 없는 것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짐. 결국 ‘어머니는 나의 큰 은인인 동시에 큰 적이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며, 어머니를 떠나 서울로 향함. 고향에서 배를 타고 원산에 가서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그렇게 여비로 한 달치 월급을 거의 다 쓰며 늦가을 무렵에 도착한 서울. 계동의 학생 하숙집에 머물며, 한겨울을 가을에 입고 온 옷만으로 이불 없이 지내며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며 책을 읽으려 하지만 마음처럼 책이 잘 읽히지는 않음.
√ 22세(서울 생활 1년차) : 드디어 봄에 한 잡지사에 들어가 원고도 모으고 교정도 보는 일을 하게 됨. 하지만 서울에 올라온 목적인 학교에 입학하는 일은 먹고사는 데 빠듯하여 여전히 요원함.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읽음. 그러다 문인들을 사귀고 소설을 써서 잡지에도 실리게 됨. 차츰 글을 많이 쓰게 되면서 어떤 신문사나 잡지사 초대로 명월관이나 식도원 같은 곳에 가 평생 못 먹던 음식상과 기생의 웃음도 받게 되니 으쓱해짐. “내가 허영에 빠지나. 나는 안일을 구할 때가 아니다”라고 마음을 다잡아도, 길에 나서면 먼저 옷에 마음이 가고 누구를 대하면 나는 글쓰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일어남. 이렇게 허영에의 유혹과 그 유혹을 뿌리치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유치원 교사인 인숙을 만남. “신비로운 연애라는 것”에 돌입. 가난한 자신의 처지와 부유한 인숙의 처지가 비교될 때마다 괴롭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쓰디 쓴 연애가 그때는 어찌나 달던지, 그 단맛에서” 헤어나오기가 어려움.
√ 23세(서울 생활 2년차) : 잡지사에서 나와 두 달여가 지난 어느 봄날, 인숙을 찾아갔으나 이사갔다는 대답만 돌아옴. 며칠 뒤 인숙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일을 알게 됨. 배신감을 풀 새도 없이 먹고살기 위해 붓을 잡고 나오지도 않는 글을 계속 써 댐. 쓰다 쓰다 나중에는 나와 주의주장이 다른 단체에서 내는 기관지에는 절대 글을 쓰지 않겠다는 맹세도 변하여 “쓴다, 어디든지 쓴다, 돈만 주면 쓴다” 하게 됨. 이에 친구나 지인들은 절개를 팔았다고 욕을 했으나, 맘에 없는 글도 쓰고 맘에 없는 웃음도 웃어 보이며 지내다가, 신문기자 한자리를 얻어 볼까 하여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이 또한 학벌과 연줄 없이는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됨.
√ 24세(서울 생활 3년차) : 매문(賣文:돈을 벌기 위하여 실속 없는 글을 써서 팖)도 여의치 않아지고, 먹고살기 위해 아무 데서 똥통이라도 메자, 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켠의 허영과 체면은 그것을 허락지 않음. 결국 되지도 않을 신문기자 자리를 찾으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냄.
√ 25세(서울 생활 4년차) : 이 해 2월 초사흗날, 인갑 형님으로부터 ‘모주 작고’라는 전보를 받음. 하늘이 무너진 심정이 된 기운은 몇 번이나 한강에 죽으려고 갔다 오고, 칼을 빼어 들기도 함. 하지만 결국 “내 한몸 없어졌다고 누가 코나 찡그리겠는가. 세상에는 나밖에 믿을 놈이 없다”며 비로소 결심을 굳게 하고 구두닦이로 나서게 됨. 구두를 닦는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나를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구둣짐을 진다고 인격에 흠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생활해 오고 있음.
√ 26세(현재. 서울 생활 5년차) : 어느 여름날, 인갑 형님이 기운을 보러 서울에 옴. 구두닦이를 하는 기운의 모습과 추레한 행색에 충격을 받고 함께 고향에 내려가기를 권함. 그러나 결국 형님은 닷새간 머물고 홀로 떠남. 찬바람이 불자 기운이 걱정된 형님은 노잣돈까지 부치며 고향에 돌아오라고 간청했으나, 기운은 허영에 들떠서 살았던 때보다 구둣짐을 지고 “구두 약칠하십시오”라고 외치고 다니는 지금이 훨씬 편하다며, 어머니를 버리고 임종도 못 지킨 자신에게는 안일을 구할 권리도 없다는 생각을 전함. “이 목숨이 하루라도 더 붙어 있으면 그만큼 이 두 눈은 이 세상이 되어 가는 꼴을 똑똑히 볼 것이요, 이 팔과 다리는 하루라도 더 싸워 줄 것입니다. 형님, 어머니의 원혼을 위로하고 제 원한을 풀 길은 이밖에 없습니다”라며.
▶인갑
기운의 외사촌 형. 그러니까 기운 어머니의 오라비의 아들. 고모인 기운의 어머니를 ‘고모’라고 부르지 않고 꼭 ‘어머니’라고 부르며 살뜰히 챙겼고, 기운과도 친형제처럼 지냈다. 기운의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기운이 면소에 서기로 들어가던 해에 수재로 얼마 안 되던 밭을 잃고 아내와 아들 용손과 함께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항구나 길을 닦는 공사장 등을 전전하며 먹고사는 와중에도 기운과 기운의 모친을 살뜰히 챙겼고, 기운이 홀어머니를 두고 서울로 떠난 뒤에는 그 소식을 알고 기운의 어머니를 모셔가서 보살핀다. 이후에도 서울에서 홀로 힘들게 생활하는 기운이 안타까워 고향에 내려와 같이 살기를 권유하며, 자신에게 처자식만 없다면 서울에서 날품이라도 팔아 기운의 학비를 대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 인갑이 고향에 돌아오라며 서울의 기운에게 보낸 편지 :
아우야, 날씨가 추워지니 네 생각이 더욱 간절쿠나! 삼각산 찬바람에 네 낯이 얼마나 텄니? 네 형수는 늘 네 이야기요, 어린 용손[인갑의 아들]이는 아재씨가 언제 오느냐고 매일 묻는다.
이 글을 내가 부르고 용손이가 쓴다. 그놈이 금년에 4학년인데 국문은 곧잘 쓴다.
어서 오너라. 노비 20원을 부치니 곧 오너라. 밥값 [외상]진 것이 있으면 내려와서 부치도록 하여라. 한꺼번에 부쳤으면 얼마나 좋겠니마는 그날 그날 빌어먹는 형세라 어디 그렇게 돼야지! 이것도 용손의 저금을 찾았다. 그놈이 저금을 찾는다면 엉엉 울던 것이 네게 보낸다고 하니 제가 달려가서 찾아가지고 오는구나!
용손이 정을 생각하여 너는 오너라. 아재씨―서울 아재씨를 기다리는 용손이는 잠을 못 잔다. 매일 부두로 마중 간다고 야단이다.
▶기운의 어머니
젊은 날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어 바느질삯으로 어렵게 외아들 변기운을 키웠다. 역시 젊은 날 죽은 오라비의 유일한 혈육인 인갑도 정성으로 대했고, 기운과 인갑에게 늘 너희는 친형제와도 같으니 서로 위해 주며 지내라고 당부했다. 눈이 어두워져 바느질을 못하게 되고 기운의 면서기 월급만으로 살아가게 되자 모자는 조밥도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의 걱정은 기운을 장가보내지 못하고 자신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환갑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미안함과 서러움에 우는 아들의 눈물을 닦아 주며 위로했는데, 이후로 아들이 뭔가 변해 가는 듯했다. 환갑날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가을날 저녁, 그날따라 유난히 밥을 잘 못 넘기는 아들이 안쓰러웠는데, 그 밤, 책보를 들고 나가며 좀 늦을 거라던 아들의 얼굴을 결국 이후로 다시 볼 수 없었다. 며칠 후 아들이 배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서 서울로 떠난 것을 알았고, 인갑이 같이 살기를 청해 인갑의 가족과 함께 4년여를 지냈다. 어느날 사흘간 두통과 가슴 울렁거림에 밥도 못 삼키다 갑자기 피를 토하며 가슴을 치면서 외아들 기운의 이름을 수십 번 부르고는 운명을 달리한다.
어머니의 한마디 : “얘, 내 환갑 걱정은 말아라. 금년에 못 쇠면 명년에 지내지..... 그까짓 게 걱정될 거 있니? 앞이 급한데.”
▶김초시
기운이 어머니의 환갑상을 잘 차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돈을 빌릴 곳을 궁리하다가 김초시를 찾아간다. 옛날에 혈혈단신 의지할 곳 없던 김초시를 기운의 아버지가 돌봐주어 지금은 꽤 부자가 되어 있기에, 얼마쯤은 돈을 빌려 주리라 예상하고 찾아간 것. 그러나 김초시는 사정은 딱하지만 자신의 형편도 좋지 않다며 게트림(거만스럽게 거드름을 피우며 하는 트림)을 하고 부른 배를 슬슬 만지면서 기운의 청을 단칼에 거절한다.
김초시의 한마디 : “허, 그것 안 됐네만 나도 요새 어떻게 군졸(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넉넉하지 못하여 어려움)한지 한푼 드릴 수 없네! 그것 참 안됐는데! 우리 집에 닭이 있는데 그거나 한 마리 갖다가 고아 대접하게.”
▶하숙집 할멈
기운이 서울에 와서 가장 낯설었던 존재 중 하나. 기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할멈이란 “계집하인인데 늙은 것은 '할멈'이요 젊은 것은 '어멈'이라 하여 꼭 하대를 합니다. 소위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다는 이들도 이렇게 하인을 두고 얘, 쟤 하대를” 하는 존재이다. 이 방 저 방 허드렛일을 하고 군불을 때러 다니는 할멈을 보면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짠했던 기운이 자기 방의 군불은 자기가 때겠다고 나서고 말씨도 존대를 해주자, 도리어 기운을 만만하게 생각한 할멈은 기운에게 하대를 하며 이 일 저 일 시킨다.
할멈의 한마디 : “서방님, 저 부엌 불도 좀 때주구려.”
▶하숙집 주인
계동 막바지의 학생 하숙집 주인. 함경도 시골에서 온 촌놈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멈에게 친절하게 굴면서 할멈 버릇을 나쁘게 만들 땐 언제고, 할멈이 자신을 시켜먹자 열을 내더니, 할멈뿐만 아니라 주인에게도 한바탕 퍼부어 댔다. 이후 주인은 기운에게 빌려주었던 담요도 빼앗고 밀린 밥값 독촉도 말도 못하게 심해짐.
주인의 한마디 : “저게 함경도 상놈의 자식이야! 하는 수 없어, 제 버릇 개를 주겠나?”
▶김군
문인들과 어울리며 기운과 가까이 지내게 된 청년. 어느날 자기 고향 사람이라며 인숙을 기운에게 소개해 주고, 이후 기운이 인숙에게 관심을 보이자 중매라도 하겠다며 나선다.
김군의 한마디 : “왜 자네 생각 있나? 둘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도록 내가 중매함세.”
▶정인숙
열아홉 살의 유치원 교사. 미인은 아니지만 동그스름한 얼굴에 어글어글(널찍널찍하여 시원스러운 모양)한 눈길을 지녔다. 김군에게 소개받은 기운에게 서로 호감을 느껴 사귀게 된다. 땟국이 흐르는 두루마기를 걸친 청년이었지만 뭔가 끌리는 게 있었고, 열렬한 연애에 돌입. 그러나 피아노도 사고, 비단옷을 걸칠 수 있는 인숙과 기운은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고, 결국 1년 남짓 교제한 뒤, 어느날 기운이 인숙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사간 뒤였고, 인숙은 김군의 아이를 가진 지 삼사 개월째였다.
인숙의 한마디 : “그까짓 돈이 다 뭐요. 정으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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