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들은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금기시한다”
― 몸과 마음에 시간을 주자
근대인들은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금기시한다. 아주 작은 고통조차 약으로 제압하려 든다. 그에 비례하여 신체의 저항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세심하게 관찰해 보면, 고통을 금기시하는 이면에는 불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속성이 작용하고 있다. 피나 고름, 구토와 설사 등 고통을 야기하는 것들은 대개 ‘더럽다!’ 그리고 그 더러움은 시각적으로 몹시 불편하다. 따라서 가능하면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된다. 따라서 무조건 약이나 수술로 막아 버리려 든다. 뿐만 아니라 고열이나 피고름, 가래와 기침 등 지저분해 보이는 증상들은 실제로 몸이 스스로를 정화하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다.
─고미숙, 『나비와 전사』, 310쪽*
*고미숙 선생님의 『나비와 전사』는 곰숙 샘의 다른 몇 권의 책들과 함께 올 봄에 북드라망에서 『계몽의 시대』, 『연애의 시대』, 『위생의 시대』라는 3권짜리 시리즈로 재탄생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근대인들은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금기시한다.” 예전에는 참고 넘어갈 수 있던 고통도, 그것을 즉각 제거해 줄 수 있는 여러 기술의 발명으로 인해 견딜 필요(?)가 없어졌고, 그와 더불어 ‘고통을 견디’는 것에는 우둔함의 냄새마저 더해졌다. 나만 하더라도 어릴 때는 감기에 걸렸다고 병원에 간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좀 유난스럽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콜록거리면서도 가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미련스럽게 느껴진다. 또 두통이 잦은 편인 내가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두통은 약 안 먹고 버티는 게 미련스러운 거래. 빨리 약 먹어”류의 이야기다. 진통제 몇 알이면 편해지는 걸 몇 시간씩 머리를 싸매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레메디오스 바로, pain, 1948
언젠가부터(아마 콜록대면서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 미련스럽게 느껴지면서부터일 테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아플 때 그것이 가벼워 보이는 것이건 무거워 보이는 것이건 무조건 입에서 먼저 “병원에 가봐(요)”라는 말이 나온다. 그이가 왜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얼른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내 앞에서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신경 쓰이니까)는 마음이 뒤섞인 채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뱉게 되는 말이다.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될 때 스님이나 마음병 전문가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자기 마음을 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아픈지,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왜 그렇게 슬픈지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데서 고통을 가라앉힐 첫걸음을 딛는 것이다. 그렇다면 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중한 병의 경우는 또 다를 수 있겠으나) 감기처럼 일상에서 누구나 겪는 병에 걸렸을 때, 병원으로 가거나 약을 사먹는 데서부터가 아니라 평소의 내 식습관과 내 생활패턴을 잘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하기. 그냥 약을 먹고 그때그때를 넘기면 환절기마다 돌아오는 감기를 앓으면서 스스로 ‘약한 체질’임을 자랑(?)하게 될 뿐, 몸은 점점 고통에 무능력해져만 갈 뿐.
물론 아픈 것보다 아프지 않은 게 당연히 좋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누구도 ‘고통’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당장 눈앞에서 치워 버려도 언제고 다른 모습으로 어떻게든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우리에게 진통제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게다가 모든 약에는 내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작은 고통도 금방 금방 잠재우는 데 익숙해진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그보다 훨씬 센 고통을 직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고통을 무조건 참고 견뎌 보자는 말이 아니다. ‘고통’이 왔을 때 (그것이 신체적인 것이건 마음의 것이건) 무조건 없애려고 달려가기보다 그 이전에, 그 고통이 어떤 모습인지, 왜 왔는지, 조금 견뎌보며 보낼 수 있는 것인지, 다른 도움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느껴 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좀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이 우리 마음이 스스로를 정화할 시간을 조금만 주어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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