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불을 품은 물
돼지고기가 보양식이라고?
소동파(蘇東坡)의 시 한 수를 감상해보자.
값은 진흙처럼 싸다.
돈 있는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요리법을 모른다.
적은 물에 담긴 돼지고기 약한 불로 충분히 삶으니
그 맛 비길 데 없어 아침마다 배불리 먹는다.
네 어찌 이 맛을 알소냐!
북송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황주에서 비참한 유형살이를 할 때 그에게 지상 최고의 보양식이 되어 준 돼지고기. 혹자는 의아해할 것이다. 무슨 돼지고기가 보양식이냐고? 일부 부위를 제외한다면 장마철 채소보다도 싸고 열량 많은 서민의 먹을거리가 아닌가. 순대, 보쌈, 감자탕, 소시지, 돈가스, 제육볶음, 김치찌개와 중국 요리의 대부분은 돼지고기를 재료로 한 것이다. 그래서 식당에서도 돼지고기를 빼면 만들 수 있는 메뉴가 몇 가지 없다. 우리는 하루걸러 돼지고기를 먹을 정도로 일상의 식탁에서 흔히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돼지고기가 보양식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번에는 일상적으로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하지만 귀중한 보양식인 돼지고기에 대해 알아보자.
돼지가 물에 빠진 날
돼지는 주로 인간이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크고 뚱뚱하게 키우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혐오하는 비만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먹으면 비만이 된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장수마을 오키나와나 우리나라의 임실 등을 보면 돼지고기는 오히려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 본토인의 2배(1년에 1인당 70kg 섭취. 우리나라는 약 20kg)에 가까운 돼지고기를 섭취한다. 육류는 거의 돼지고기만을 먹으며 주로 물속에 넣고 푹 삶아서 지방을 빼고 단백질 위주로 먹는다. 이렇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데도 비만과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하기는커녕 장수한다. 이처럼 돼지고기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몸에 좋은 음식이고 특히 물에 삶아 먹는 방식이 좋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어!!
『동의보감』에 의하면 “돼지는 수(水)에 속하는 가축이다. 그 맛은 달면서 짜고 성질은 약간 차서 먼저 신(腎)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신장으로 들어가 진액을 만들어 음을 보하고 비와 위로도 들어가 진액을 보충하며 간장의 음혈을 자양한다. 몸에 열이 많거나 진액이 마른 사람, 대변이 건조하고 마른기침을 하는 사람에게 효과가 좋다. 이처럼 돼지고기는 마른 사람을 살찌게 하고, 성장기 어린이의 발육에 좋으며, 노인의 허약함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이가 들면 몸에 진액이 부족하게 되고, 성장기 때에는 한창 자라느라 뜨거운 몸에 시원하고 촉촉한 물이 필요하게 된다. 돼지고기는 음양오행상 수의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액이 요구되는 신체의 균형을 맞춰준다. 돼지고기의 수(水)는 주역의 팔괘로 보면 감(坎 : ☵)이다. 감괘는 가운데 불(ㅡ)이 있고 위아래로 물(- -)이 싸고 있는 형상이다. 겉은 차갑지만 속에는 불을 품고 있다. 그런데 수는 뭉치면서 열을 내는 습성이 있다. 이것이 습열이 된다. 이런 탓에 몸을 자양하겠다고 돼지고기를 많이 먹으면 오히려 습열을 조장할 수도 있다. 습열은 응축되어 담이 되고, 담은 뭉쳐 열을 내며, 열은 풍을 생기게 한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조리 방법이 중요하다. 장수마을처럼 돼지고기를 물에 넣어 삶으면 돼지고기의 수(水)기운이 더욱 강화된다. 이 수 기운이 신장의 음기를 길러주고 비위를 보해 노약자들을 건강하도록 돕는다. 그럼 우리가 즐겨 먹는 삼겹살은 어떨까? 한의학적으로 지방질은 쉽게 열을 발생시켜서 풍을 잘 일으킨다. 그래서 삼겹살 같은 지방이 많은 부위를 구워먹는 방식은 돼지고기 안에 있는 화(火)의 기운을 더욱 부추겨 풍습열을 쌓게 한다. 보통 지방이 많은 삼겹살은 황사나 분진이 많은 사업장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돼지의 지방이 분진이나 황사를 씻어 내려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돼지고기가 신장 기능을 북돋워 비강이나 기관지 표면의 점액 분비를 촉진하고, 이 점액이 황사와 분진을 제거하는 것이다. 신장에 들어가는 효과를 강하게 하려면 오행상 신(腎)에 해당하는 색깔인 검은색이 더 좋다. 따라서 식용으로 집단 사육되고 있는 외래종 흰 돼지보다는 제주도 흑돼지처럼 검은색 돼지가 신(腎)에는 더 좋다.
음식은 가급적 그 성질에 맞게 먹어야 한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돼지의 수(水)의 속성을 살려 먹는 것이 유리하다. 절실하게 몸에 따뜻한 기운이 필요하다면 돼지를 불에 구워 먹거나 돼지 지방을 먹기보다는 뜨거운 성질을 가진 양고기나 개고기를 먹는 것이 좋다.
돼지 속에 비친 욕심
보통 돼지는 더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돼지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다. 특히 돼지는 목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배설물도 일정한 장소에서 처리한다. 돼지는 땀샘이 없어서 몸에서 열이 발생하면 발산하기 힘들다. 발굽은 단단하고 귀가 좀 넓긴 하지만 귀로 열을 발산하는 것은 역부족. 그래서 진흙탕이라도 뒹굴면서 기화열을 통해 열을 발산시켜야 한다. 돼지가 불결하다는 이미지는 여기에서 왔다. 하지만 물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어느 정도의 사육공간을 제공해준다면 돼지만큼 깨끗한 동물도 없다.
돼지가 진흙목욕을 좋아하는 것은 몸이 온도를 내리고,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서죠.
몇 해 전에 지인의 돼지농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곳의 지독한 냄새는 참을 수 없는 정도였다. 돼지들 대부분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칸막이 안에 갇혀있었다. 돈을 적게 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농장 주인이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간헐적인 구제역과 돼지 파동 등으로 10억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었다. 이와는 다른 조건의 돼지들이 있다. 며칠 전 한 학인으로부터 행복한 돼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중국 운남성의 고산지역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는 까맣게 반질거리는 날씬한 흑돼지들이 마음대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연과 더불어 지낸다고 했다. 더러운 돼지를 만드는 것은 더 많은 이윤을 내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아낌없이 주는 돼지
또 우리는 돼지를 탐욕의 무리인양 취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먹을 것에 욕심을 내어 혼자 먹는 사람을 보고 ‘돼지’라고 놀린다. 돼지가 들으면 서운할 일이다. 돼지는 어미와 새끼를 한 우리에서 기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미돼지가 새끼를 위해서 먹이를 양보하여 살이 많이 찌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돌려준다. 우리는 살과 뼈만 먹는다고 알고 있지만, 병이 나면 골수에서부터 염통, 허파, 콩팥, 담석, 쓸개, 창자, 밥통 심지어는 똥, 이빨까지 인간의 질병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 돼지의 생(生)이다. 돼지가 탐욕스럽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을 전가한 것일 뿐 돼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돼지가 훔쳐 먹는 것도 아니고, 먹기 위해 다른 존재를 해치는 것도 아닌데, 잘 먹는다는 게 무슨 잘못인가!
다른 한편 돼지는 부와 복의 상징이다. 사업이 잘되라고 돼지머리 놓고 고사 지내고, 돼지꿈을 꾸어서 횡재하기를 바라며, 돼지 저금통을 채우며 풍요로운 미래를 꿈꿔왔다. 번식 속도가 빨라서 가계에 도움이 되었던 돼지는 생활이 풍족하기를 바라던 어려운 시절에 부와 복의 은유였다. 그래서 돼지가 부를 가져오는 복덩어리로 생각했던 과거에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하는 수단으로 새끼돼지를 한 마리씩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 새끼돼지가 잘 자라 다시 새끼를 낳으면 그 중 한 마리를 갚게 되는데 그러면 부자는 새끼돼지를 다른 가난한 사람에게 다시 적선했다. 이렇듯 돼지는 인간과 너무도 가까운 동물이다. 인간은 돼지 속에 자신을 투영했고 일상 속에서 돼지고기로 몸과 마음을 살찌웠다.
몸에 맞아야 진정한 보양
보양식하면 특별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에 먹기 힘든 것들을 따로 먹으면 몸보신했다고 믿는다. 비싸고 구하기 힘든 것일수록 더욱 보양의 효과가 클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재되어 온 보양식을 통해서 알 수 있듯 각각의 고기들은 고유의 성미가 있어서 이에 적합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만 보양식이 된다. 돼지고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좋은 보양식은 없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취했을 때만 보양이 되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을 먹는 것은 자신의 몸을 망칠 뿐이다. 과유불급! 크게 욕심내지 않는 마음, 일상의 식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진정한 보양이다.
너무 욕심내지 마세요~
송미경(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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