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발! 인문의역학! ▽/본초서당

피부가 건조한 계절, 회춘의 명약 - 경옥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4.

회춘의 명약, 경옥고
             


몇 년 전 제부(弟夫)가 80대인 장모님을 위한 보약이라며 경옥고를 사왔다. 보약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시던 어머니께서 인삼이 들어갔다는 설명이 이어지자 손사래를 치시며 절대 드시지 않겠단다. 그렇지 않아도 몸에 열이 많아 고생인데 웬 인삼이냐고 하시면서. 그러고 보니 복날에도 어머니는 인삼을 뺀 삼계탕을 드신다. 그때마다 나는 '앙꼬 없는 찐빵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하면 '너도 한번 나처럼 몸이 후끈후끈해 보면 알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추위에는 매우 민감하지만 더위는 별로 타지 않는 편이라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인삼을 달여 먹어도 몸에 별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나를 가리키며 어머니께서 “만날 추워하는 네가 먹어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졸지에 경옥고를 먹게 되었다. 나에게 적합한 보약인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과연 나는 경옥고의 효능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었을까? 먼저 경옥고의 효능부터 알아보자.



360살은 기본! 500살까지도 거뜬한 불사약?!


경옥고는 원래 폐(肺)의 진액(津液)이 부족해져 발생하는 마른기침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처방이었다. 폐는 건조한 것을 싫어하는데 화열(火와 熱)로 인해 폐에 진액이 부족해졌을 때 마른기침을 하게 된다. 이때 진액을 보충해 주면 마른기침이 멎게 된다. 폐가 영양물질과 진액(물)을 오장육부와 기타 조직 및 피부에까지 골고루 산포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옥고의 약효가 매우 뛰어나서인지 여러 의서에서 언급되었고 그 효능에 대한 내용도 점점 보충된 결과 과장으로 여겨질 만한 내용도 들어있다. 『동의보감』의 다음 내용에서 확인해보자.


정(精)을 채우고 수(髓)를 보해 주며, 진기(眞氣)를 고르게 하고 양성(養性)을 도우며, 노인을 젊어지게 하고, 모든 허손증(虛損證)을 보하며 온갖 병을 낫게 한다. 또한 정신이 좋아지고 오장이 충실해지며 백발이 다시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오며 걸음걸이가 뛰는 말과 같아지도록 해준다. 하루에 수차례 먹으면 종일토록 배고프거나 갈증이 나지 않는 등 이 약의 효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한 제를 다섯 몫으로 나누어 쓰면 탄탄(癱瘓) 환자 5명을 치료할 수 있고 한 제를 열 몫으로 나누어 쓰면 노채(癆瘵)환자 10명을 치료할 수 있다. 만약 이 약을 27세부터 먹기 시작하면 360까지 살 수 있고, 만약 64세부터 먹기 시작하면 500까지 살 수 있다.


─ 『동의보감』, 법인문화사,「내경편」,220p


아니, 세상에 이런 약도 있나? 오장을 튼튼하게 함은 물론 몸의 정기와 기혈이 부족해서 생긴 허손증, 중풍으로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병증인 탄탄, 결핵과 비슷한 병인 노채 등도 모두 치료한다니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게다가 회춘은 물론 360살 혹은 500살까지 살 수 있다니 경옥고의 뛰어난 효능을 강조하려는 과장된 표현이라 치더라도 이 정도면 진시황이 찾으라고 명했던 불로초를 능가하는 것 아닌가? 특히 “27세부터 먹기 시작하면 360까지 살 수 있고, 만약 64세부터 먹기 시작하면 500까지 살 수 있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경옥고는 늦게 먹기 시작할수록 더 장수할 수 있다는 뜻. 즉 몸에 좋다고 젊어서부터 먹어봐야 장수효과는 더 떨어지니까 노인이 되었을 때나 먹어 보라는 뜻으로 읽히니 말이다. 젊어서부터 가입하면 훨씬 유리하다고 유혹하는 요즈음의 보험 상품과는 참 대조적인 점도 흥미롭다.



폐기(肺氣)를 돋우면 피부가 살아나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오장의 기능이 약해진다. 동시에 주름살과 흰머리가 늘어나고 뼈와 치아가 약해진다. 흰머리나 약해진 치아는 주로 진액 부족에 의한 변화라면 주름살이나 거칠어진 피부는 폐의 산포 기능과 더 관계가 있다. 폐는 우리 몸의 기(氣)를 주관하는데 그 기운으로 진액을 피부에까지 골고루 흩어서 뿌려주기 때문이다. 진액은 정액, 호르몬, 오줌, 땀, 침 등 혈을 제외한 몸속의 모든 액체를 말한다. 즉, 진액이 충분하더라도 폐의 산포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면 몸 안에 담음이 생기거나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기 쉽다. 반대로 진액 생성과 폐의 기능이 원활하면 노화의 진행이 더뎌지고 피부는 탄력과 윤기 있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런 변화들을 회춘이라고 본다면 회춘에 좋은 약이 바로 경옥고다. 경옥고는 폐를 비롯한 오장의 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진액을 생성해주는 약재들로 만들어진 약이기 때문이다. 



경옥고에는 생지황, 인삼, 백복령, 백밀(꿀) 이 네 가지 약재가 들어가는데 우선 각 약재의 효능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생지황(生地黃)은 혈액이나 골수 등의 진액 생성에 필요한 물기를 대주는 대표적인 약재이다. 따라서 간장과 신장을 보익(補益)하여 신음(腎陰)부족과 심간혈허증(心肝血虛證)에 효능이 뛰어나다. 인삼은 보기약(補氣藥)의 대표 약재로서 원기를 보해 주고, 비장과 폐장을 튼튼하게 하여 허약해진 폐의 기운을 북돋아주며 소화기의 기능을 향상시켜준다. 그리고 진액을 생성하여 갈증을 멈추게 하고 정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 인삼은 폐(肺), 비(脾)는 물론 심(心), 신(腎)을 튼튼하게 한다. 백복령(白茯笭)은 소나무의 뿌리에서 자라나는 것으로, 소나무의 맑은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약재이다. 이수(利水)작용으로 몸속의 불필요한 노폐물을 배설하고 담음을 제거하여 심신(心神)의 안정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꿀은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기를 돋우며 단맛으로 중초를 보한다. 또한 아픈 것을 멎게 하고 독을 풀어주며 온갖 약을 조화시킨다. 이렇듯 경옥고에 들어가는 약재 모두가 오장에 좋은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약재들이 한데 어우러져 오랜 시간 숙성·발효되면 훨씬 뛰어난 약효를 지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옥고의 탄생이다! 그럼 그 경옥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지성감천의 명약


먼저 생지황 즙 16근, 인삼을 곱게 가루 낸 것 24냥, 곱게 간 백복령 가루 48냥 그리고 백밀(꿀) 10근, 이 네 가지 약재를 섞어 사기 항아리에 넣고 기름종이로 다섯 겹, 두꺼운 베로 다시 한 겹 하여 입구를 단단히 싸서 봉한다. 이것을 구리 솥 안에 넣고 뽕나무장작으로 3일간 주야로 불을 땐다. 구리 가마는 열전도율이 높은데다 열이 골고루 잘 퍼져 항아리 내부의 약물이 동일한 조건에서 숙성되게 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뽕나무를 때는 까닭은 다른 나무에 비해서 불이 오래 가기 때문이란다. 3일 후에 항아리를 꺼내 다시 밀랍을 먹인 종이로 입구를 단단히 싸서 봉한다. 이것을 우물 속에 주야로 하루 동안 담가두었다가 꺼내 다시 먼저 끓이던 물에 넣고 주야로 하루 동안 달여 물기를 졸인 다음 꺼낸다. 먼저 조금 떼어내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낸 후 복용한다. 요약하여 정리하면, 경옥고는 3일간 중탕한 후 하루 동안의 냉탕을 거쳐 마지막 하루 다시 중탕하여 5일 만에 완성된다. 그리고 천지신명과의 교감을 거친 후 약으로 쓰인다는 말이다.

여기서 약이 완성되는 데 걸린 시간성에 주목해서 좀 더 생각해보자. 5일이라는 시간은 성질이 다른 약재들이 항아리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작용하여 질적 변화 즉, 개개의 약재보다 훨씬 뛰어난 효능의 보약으로 바뀌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먹은 음식이 소화되는 것을 떠올려보라. 이물질(음식)이 들어와 몸에 동화(영양분)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각각의 약재가 경옥고라는 보약이 되기까지는 5일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즉 중탕과 냉탕을 거치는 과정 중에 약효의 질적 변화가 거듭되었을 것이다. 그 기운들이 항아리 속의 약재에 집적된 결과 열기(양기)와 냉기(음기)를 함께 지닌 조화로운 보약으로 되었다는 말이다.



요컨대 경옥고는 완성되기까지 좋은 약재들을 잘 배합하고, 세심한 주의와 정성 그리고 닷새라는 긴 시간성이 더해져 약효가 더욱 높아졌다. 두서너 시간 달인 후에 복용하는 보통 한약에 비하면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성을 품은 약효가 노인의 회춘과 장수를 돕는 특효로 나타난 것 아닐까.

서두에서 언급했던 나의 경옥고 복용 효과를 말하라면 딱히 특별한 약효 같은 것을  체감하지는 못했다. 인삼이 들어간 보약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냥 먹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옥고는 폐 기능 향상과 진액 생성에 좋은 특효약 아닌가. 두 가지 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인 내가 먹었으니 어찌 그 효과를 느낄 수 있었겠는가. 마치 배부른 상태에서 먹는 밥이 맛있는 줄 모르듯이 말이다.


결론적으로, 경옥고의 효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내 몸에 절실한 것이 아니라면 그 약효는 없거나 미미할 수밖에 없다. 만인에게 좋은 약도 만인에게 나쁜 약도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보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맹신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체크한 후에 복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안순희(감이당 대중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