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탕, 쌍(雙)으로 조화롭게(和) 해드려요~
지금은 간판조차 찾기 어려운 옛날 ‘다방’의 아침 풍경. “미쓰 김아~, 우리 사장님한테 달걀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 두우~ 잔!” 다방 마담이 동네 어른신 상대로 쌍화차 매출을 올리는 장면이다. 전날 얼마나 무리를 했길래? 예전에는 전날 무리를 했거나 말았거나 건강보조식품처럼 마시던 것이 쌍화차였다. 몸에 좋은 차에 달걀노른자까지 띄우면 그 얼마나 걸죽하고 찐한 건장차가 되겠는가? 그런데 이런 차를 즐겨 마시던 분들은 풍채 또한 좋은 분들이라 몸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건강차를 마신 셈이 된다. 쌍화탕은 몸에서 혈을 잘 만들어 저장해주는 사물탕과 기를 보하는데 좋은 황기건중탕을 합방한 약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쌍화탕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질비질 나오는 허약 체질인들이 먹어야지, 감기에 걸려도 땀 한방울 안흘리는 건강 체질들이나 음혈이 풍부한 사장님 체질들이 먹는 약은 아닌 것이다.
밤일 때문에 피곤하다면...
모두 4절로 된 <쌍화점(雙花店)>이라는 고려가요에는 당시의 개방적인 성윤리가 잘 나타나 있으며, 그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이 노래가 남녀상열지사, 또는 음사(淫辭)라 하여 배척을 받았다. ‘쌍화(雙花)’란 ‘상화(霜花)’의 음역으로서 호떡, 즉 만두라는 뜻이라고 한다.《악장가사(樂章歌詞)》에 전하는 가사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쌍화점에 쌍화(雙花) 사라 가고신, 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미 이 점(店)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 거디러 죠고맛간 삿기 광대네 마리라 호리라…”. 이를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만두집의 아랍인 이외에도 삼장사 주지스님, 우물 속의 용, 술집 주인까지 네 분이 차례로 누군가의 손목을 잡고 잠자리로 초청을 했는데 그 잔 곳이 무척 거칠고 지저분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온종일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무리를 했을 때, 그럴 때 먹어주어야 하는 것이 쌍화탕이다. 아침에 다방에서 마시는 쌍화탕에는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 궁중에서도 새벽에 필요한 보약이 있었으니 그것이 쌍화탕이다. 쌍화탕의 ‘쌍화’는 남녀간의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전 왕실에서 임금이 왕비와 동침한 다음날 새벽에 내놓았던 약으로 쓰일 만큼, 밤일로 인하여 손상된 음기(陰氣)를 보하는데 효과가 있다.
땀과 정은 혈의 다른 이름
이제 슬슬, 밤일과 쌍화탕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열심히 하면 보통은 땀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낮에 육체 노동으로 흘리는 땀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귀한 것이 밤에 하는 육체 노동의 댓가로 잃어버리는 정(精)이다. 물론, 精(!)이 손실된 만큼 情(?)은 쌓이게 되겠지만, 얻는 것에 비해서 잃는 것이 막대하다는 생각을 젊어서는 못한다. 그래서 아침 다방에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앉아계시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땀은 혈이나 마찬가지다. 음식과 산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기(氣)중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종기(宗氣)라고 할 때, 이 종기는 우리 몸에서 영기(營氣)와 위기(衛氣)로 나뉘어 사용된다. 위기는 체표밖을 돌면서 몸에 침입하려는 사기(邪氣)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고, 영기는 안에서 전체적으로 몸을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이 다 음양으로 나뉘듯 기운도 마찬가지. 몸 안을 도는 기운이라 영기를 음기(陰氣)라 하고, 몸 밖을 도는 기운이라 위기를 양기(陽氣)라 한다. 영기는 특히 혈과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에 그냥 영혈(營血)이라고도 불린다. 영기가 비위에서 흡수한 음식의 정미로움과 만나서 만들어지는 것이 血이다.
전에 설명했던 ‘사물탕편’을 보면 혈의 색소를 만드는 약재가 ‘당귀’이다. 땀은 색소가 빠진 혈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낮에 하는 노동으로 빠져나간 ‘땀’은 ‘맑은 피’며, 다른 말로는 기운과 진액이다. 즉 ‘땀’을 흘린다는 것은 ‘진액’과 ‘기운’이 함께 몸밖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땀으로 나오는 기운은 음기가 아니라 체표 주변에 있던 양기다. 그래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이면 양기가 허(虛)하다 하여 양기를 보하는 음식이나 약을 먹는다. 진액은 몸안에서 대사를 마친 노폐물을 동반하기 때문에 땀을 충분히 흘리는 것은 몸의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많이 흘리면 노폐물의 배출보다 기운의 손실이 더 심하기 때문에 지나친 노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精은 기운이 모이고 쌓여서 압축된 형태다. 精은 평소에는 영기로 혈속에서 운행하다가 그 순간(!)이 되면 신장 옆의 명문으로 모여서 精으로 변신한다. 정이 모여서 배출된 것이 흔히 말하는 정액(精液)인데, 이렇게 초고밀도의 음에너지가 한순간 몸밖으로 배출되는 것이 밤일의 마무리 절차라... 옛 성인들은 情을 얻기 보다는 精을 갈무리하는 것을 높이 쳐서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으니, 자식을 두는 일에조차 아낀다고 하였다. 이제 이해하시겠는가? 어째서 밤일에는 엄청난 음기가 헐려나간다는 것인지~. 이렇게 빠져나간 음기는 고품질 고농축 혈이나 다름이 없다. 땀이 색소 빠진 혈이라면 정액은 색소 빠진 혈농축액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러니 밤일은 물론이고 심한 노동을 통해 배출된 많은 땀도 결국에는 피라는 뜻이다. 빠져나오는 통로가 다르고 농도가 차이나는 것일뿐 혈이 배출되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몸에서는 과도한 음기 배출이 되면 혈이 부족해진다. 고로 쌍화탕에는 혈을 만드는 기본방인 사물탕이 들어간다.
기와 혈을 동시에 보하는 약
도대체 쌍화탕에는 뭐가 들었길래, 쓰나미처럼 빠져나간 음기를 보해준다는 것인가? 쌍화탕은 사물탕의 약재들인 숙지황, 백작약, 당귀, 천궁 이외에 황기건중탕에 들어가는 황기, 계지, 감초가 주된 약재이다. 황기건중탕에는 황기, 계지, 감초 외에도 작약과 엿이 들어가지만, 쌍화탕에서는 엿을 뺏다. 작약이 사물탕과 황기건중탕에 공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작약의 작용력이 중요하게 된다. 작약은 신맛이 나는 약으로 간에 장혈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쌍화탕이 작약의 수렴력을 이용하여 간기능을 회복하는데 주력하는 약이 된다는 뜻이다. 황기건중탕에서는 엿이 가장 많이 쓰이는데, 엿을 뺀 이유는 엿이 단맛으로 비위을 돕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위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간이 비토의 극을 받기 때문(간목이 비토를 극하는 것이 순리인데, 비토가 너무 강하면 비토가 오히려 간목을 치게 마련이다.)에 간장혈을 기본으로 하는 쌍화탕 방제에서는 빠지는 것이다.
사물탕은 부족해진 혈을 만들어서 간에 장혈한다. 주리까지 온몸의 기운이 퍼져나가도록 끌고 가는 것은 계지가 하는 역할이다. 황기는 만들어진 기운이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주리를 튼다. 감초는 중초의 중심을 잡고 모든 약재들이 제역할을 하도록 조화를 도우며 속도 조절을 해준다. 간단하게 말하면, 혈을 생성해서 만든 기운이 온몸에 퍼지도록 하면서도 밖으로 나가는 기운은 없도록 방비하는 것이 쌍화탕이다. 사물탕으로 혈을 만들어서 간에 저장하면, 근육에 힘이 생기고 그 힘으로 일상을 산다. 보통은 매일 먹는 밥에서 혈을 얻고 그 혈이 몸에서 에너지로 쓰인다. 일상적인 정도를 지나칠 만큼 혈을 배출하게 되었을 때, 다량의 혈(땀과 정도 포함해서...)을 짧은 시간 안에 보충하기 위해서 약이 필요한 것이다.
아 쌍화탕이 이렇게 좋은 약이었다니!!
앞에서 혈은 진액을 포함한 영기(음기)라는 기운이라고 했다. 그러니, 땀이나 혈이나 정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기운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쌍화탕이 기와 혈을 동시에 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혈과 기는 결국 한쌍으로 붙어 다니기 때문이라는 거. 그래서 가까이에 두고 먹다보니 차를 마주하듯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된 약이다. 지금까지 밤일을 중심에 두고 글을 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읽는 사람들의 눈을 붙잡아놓기 위한 방편이었고, 쌍화탕은 공부든 고민이든 정신을 심하게 사용해서 精이 고갈된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좋은 약이다.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 기혈(氣血)과 精이 쓰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예전에 나는 감기와 몸살 기운이 함께 오면 습관적으로 약국에 달려가서 쌍화차를 한병 사서 먹었다. 따끈한 쌍화차를 마시면 몸이 훈훈해지면서 감기 몸살이 풀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약국에서 감기약으로 쌍화차 대신 갈근탕을 주기 시작했다. 전에 먹던 거 달라고 해도 그건 감기약이 아니라고 다른 약을 주었다. 그때는 속으로 제약회사에서 약 팔아먹으려고 꼼수 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쌍화탕을 공부해보니, 쌍화탕을 감기약으로 사용하는데는 조심할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땀이 안나고 열이 심한 열성감기에는 황기가 들어있는 쌍화탕은 맞지 않는다. 이런 체질은 주리를 열어 땀과 열을 빼주는 갈근탕이 감기약으로 딱이다. 쌍화탕은 황기가 주리를 틀어쥐어 기운이 못빠져나가게 하기 때문에 체표에 있는 초기 감기 기운까지 함께 붙잡아두는 약인 셈이다. 그러나 허약 체질이라 감기만 걸리면 땀부터 비질비질 흘리는 사람에게는 쌍화탕이 나름 도움이 된다. 쌍화탕은 땀을 많이 흘린 사람에게 기혈을 보해주기 위해서 먹는 약이다. 그러나 병사가 침입해 있는 상황에서 보약을 먹어주면 몸보다는 병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흔하므로, 쌍화탕은 감기에 걸리지 않은 평소에 먹는 것이 허약 체질인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약국에서 급하게 한방 감기약을 구입해야할 때는 자신이 땀을 잘 흘리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풍미화(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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