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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본초서당

기운도 없고 속이 허하다고요? 닭고기로 보양하세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8. 15.

   뜨거운 치킨과 시원한 삼계탕


한국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 비상이 걸리는 곳은 어딜까? 그곳은 뭐니뭐니해도 치킨가게다. 제아무리 산더미처럼 닭을 튀겨둔들, 가가호호 골목골목 모여 앉은 사람들의 주문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치킨 먹으며 축구보기 국민행동운동본부라도 있는 거 아닌가 싶지만, 물론 그럴리가 없다. 아무튼 몇 시간 전부터 서둘러 주문해놓지 않으면 그날 치킨은 포기해야한다. 


이번엔 닭이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축구와 치킨은 한 세트가 되었다. 하긴 닭은 축구하고만 세트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전래로 닭은 장모의 사위사랑이나 한여름 복날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한때 히트쳤던 책의 제목으로 미뤄보자면 서양에선 닭이 영혼을 위로하는 대표 식자재이기도 한 모양이다. 국, 찜, 구이, 튀김, 백숙, 볶음에 꼬치, 샐러드까지 취향껏 다양하게도 요리되는 닭. 이렇게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한다는 것은 닭이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선호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닭은 덩치가 작고 빨리 자라므로 상대적으로 키우기 쉽고 잡기도(?) 쉽다는 점도 한 몫 했으리라. 소, 돼지 잡는 일은 동네 잔치라도 벌일 때나 가능했겠지만, 닭은 그렇게 큰 맘 먹지 않아도 잡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현대에 와서도 닭고기는 여전히 인기가 좋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구성물질의 몇 할 정도가 닭에게서 온 걸까?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을 살짝 빌린다면, ‘나를 키운 건 몇 할은 닭이다’라는 표현도 가능하겠다. 여기다 이날 이때껏 꾸준히 먹어온 수많은 달걀까지 포함한다면 닭의 비중(?)은 퍽 높아지리라. 어제가 말복이었다. 말복하면 또 닭 생각이 난다. 본초서당이 이럴 때 닭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내 몸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닭, 본초로서 닭은 과연 어떤 기운을 갖고 있을까?



축구와 치킨에 대한 본초적 해설


다시 돌아가서, 축구 팬들은 왜 치킨을 선호할까? 축구를 더 신나게 즐기기 위해서이다. ‘내가 먹는 게 나’라는 관점으로 세상만물을 보는 본초적 시각에서 ‘치킨을 주문한다’는 사실은 ‘나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를 취하겠다’는 결정과 같은 값을 지닌다. 그러니 우리는 질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써보도록 하자. 축구라는 기운의 장은 왜 닭, 그중에서도 ‘튀긴’ 닭의 에너지를 취하고자 하는가?^^ 



닭고기는 사람 살과 같기 때문에 바로 비위(脾胃)로 들어가 기운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닭 같은 조류는 몸이 가벼워야 날 수 있기 때문에 뼈가 비어 있다. 그래서 개에게는 닭뼈를 주지 않는다. 속이 비어 있어서 씹으면 날카롭게 바스라지기 때문이다. 조류의 예민하고 민첩하며 잘 놀라는 특성은 뼈가 비어 허열이 잘 뜬다는 특징과도 관계가 있다. 이러한 연유로 닭은 오행 중 목(木)과 화(火)의 기운을 품고 있다고 본다. 뻗고 타오르는 기운! 이러니 축구와 딱맞을 수 밖에. 간혹 차분한 관람문화를 선호하는 팬들이 있다치더라도, 어쨌든 대다수의 축구팬은 경기를 보면서 함성과 야유와 삿대질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 모든 행위에는 치킨이 맞춤하다.


그런데 평소 야식계의 호적수랄 수 있는 족발, 보쌈, 탕수육 따위는 어째서 치킨에게 밀리는 걸까? 답은 역시 기미(氣味)에 있다. 윤기 좔좔 흐르는 촉촉한 돼지고기는 치킨 못지않은 훌륭한 열량을 담고 있으나 오행상으로는 수(水)의 기운을 지닌다. 수는 음(陰)중 음(陰)이다. 수는 위가 아닌 아래, 발산이 아닌 수축, 열기가 아니라 차가움을 지니는 기운인 것이다.


반면 닭의 목(木), 화(火) 기운은 양(陽)적인 기운이다. 이는 잠깐이라도 닭을 관찰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빛이 퍼지기도 전에 그 기운을 감지하고 홰를 치며 뽑아내는 닭 울음도 그렇고, 끊임없이 땅을 쪼고 파헤치고 다니는 성미도 그렇다. 시골집 안마당에서 풀어 키우는 장닭에게 쫓겨본 적이 있으신지? 개보다 더 무섭다. 양기는 이렇게 빠르고 가볍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운이다. 축구경기를 볼 때 삼삼오오 모여서 보려는 이유는 혼자 보면 제 아무리 멋진 경기도 썰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음식도 양기 가득한 닭요리가 제격이다. 가스처럼 가볍고 쉽게 불붙는 양기는 축제의 열기를 더 뜨겁게 달군다. 게다가 그 닭을 펄펄 끓는 기름에 파삭하게 튀겨냈으니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그 힘은 치킨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뜨거워야 시원하다


사람의 평균 체온은 36.5도이다. 그럼 닭은 어떨까? 무려 41.1도이다. 그래서 갓 낳은 달걀을 집으면 따끈따끈한 것이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면 해마다 빠지지 않는 뉴스가 있다. 양계장 닭이 집단 폐사했다는 소식이다. 새우깡 공장에서 새우깡 찍어내듯 달걀을 뽑아내고자하는 인간의,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설계 덕에 닭들이 죽어나는 것이다. 닭과 개는 양기가 많은데다 땀구멍도 없어 더운 여름을 나기가 쉽지 않다. 개는 발바닥에 땀샘이 있고 닭은 살이 노출된 벼슬 부위를 이용해서 체온을 식힌다. 개처럼 닭도 더우면 입을 벌리고 숨을 쉰다. 그러다 더 더워지면 그늘을 찾아 피서를 떠나거나 흙 목욕을 하기도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열을 내보내려고 날개죽지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난닝구 ’바람으로 골목을 활보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떠올라 우스운 생각이 든다.


다행히 닭과는 다르게 사람의 몸에는 땀구멍이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알게 모르게 이 땀구멍으로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자연스레 목이 마르게 되고 이전보다 더 자주 물을 마시는데도 소변의 양은 줄어들기 쉽다. 체온조절을 위해 땀으로 내보내는 양이 훨씬 더 많다보니 소변으로 나올 것은 많지 않은 것이다. 겨울엔 그 반대로 땀이 적어지므로 소변 양이 늘고 색깔도 옅어진다. 여름에 우리 몸은 열 수 있는 구멍은 최대한 다 열어 열을 발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여름보다 겨울에 화장이 잘 받는다고 하는 건 여름엔 모공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건 다 우리가 항온동물이기 때문이다.


비위가 허해지는 여름, 삼계탕으로 보양하세요.


이렇게 열이 체표로 몰리다보면 속은 상대적으로 냉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속, 즉 사람의 중초는 비위(脾胃)라 하여 외부로부터 음식을 통해 후천지기를 받아들이는 매우 중요한 장부이다. 비위가 냉해지면 에너지 공급에 당장 이상이 생기니, 먹어도 소화가 잘 이뤄지지 않으며 아예 식욕마저 잃기 쉽다. 덥고 입맛을 잃으면 당장 입에 달고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만 생각이 난다. 이런 것들은 먹는 즉시 빠르게 체열을 떨어뜨리고 당분을 공급해준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속은 더 차가워지니 악순환의 반복이 계속되는 것. 이때가 바로 중초로 들어가서 속부터 따끈하게 덥혀주는 보양식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속을 따뜻하게 보해주면 비위가 제 구실을 하면서 기력이 생긴다. 또 한 쪽으로 쏠려서 정체된 기혈이 순환되기 시작하면 헛배 부르고 찌뿌둥한 몸이 소통되어 개운해진다. 찬물을 들이켜도 좀체 풀리지 않던 갈증도 비로소 해소되니 ‘시원하다!’ 소리가 절로 난다. 뜨거운 목욕탕에서 연신 ‘어~시원하다’를 외치는 어르신들의 말은 정말, 참말이다. 뜨거운 것이 정말 시원할 때가 있는 것이다.



닭의 오행적 속성을 묻다


게다가 닭은 고기 중에서도 지방이 적고 근육은 연하여서 소화에 부담이 적어 비위를 바로 도울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닭고기를 토(土)에 배속하고 있는 까닭은 이런 특징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토는 장부로는 비위이고 방위로는 중앙이다. 하지만 황제내경에서는 닭을 금(金)에 배속한다. 왜일까? 아마도 닭 자체가 지닌 전반적인 의미나 12지지로서의 상징성에 더 비중을 둔 듯하다. 닭 유(酉)는 가을, 저녁, 성숙의 의미를 지닌 글자로 색깔로는 흰빛이며 방향은 서쪽에 해당한다. 닭고기 빛깔이 흰 것도 금에 해당하는 속성이다. 김알지 설화에서나 전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닭은 상서로우며 어둠을 물리치는 신성성을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닭이 토냐 금이냐 따져 묻는 일은 실은 무의미하다. 닭은 맛있는 닭고기면서 벽사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따져 묻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알아차리려면 살피고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이거냐 저거냐하는 질문은 단답을 요구한다. 삼계탕은 좋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만 맞기 때문이다. 아무리 삼계탕이 좋다해도 허열이 잘오르는 사람에게라면 좋을 리가 없다. 사실 더 따지고 들면 닭이라 해도 같은 닭이 아니다. 암탉과 수탉이 다르고 빛깔에 따라, 부위에 따라 약성이 다 다르다. 또 동종의 닭이라해도 윤기 있고 없음에서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단답, 하나의 답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까? 아마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때 그때 매번 새롭게 알아차리는 일이 아닐까? 내 몸의 상태도, 나를 둘러싼 그 외의 숱한 변수들도 고정될 수 없을테니 말이다. 여름도 이제 끝물이다. 더위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제 서서히 그 기세를 잃어갈 것이다. 참, 다행이다.


김주란(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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