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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별자리서당

별자리 서당의 마지막 별자리, 허수(虛宿)와 위수(危宿)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25.

양기 퇴장, 음기 입장- 허수와 위수



벌써 일 년


며칠 전 한 연구실 학인 분이 내게 이런 말을 건냈다. “혈자리 서당, 본초 서당, 절기 서당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근데... 별자리 서당도 있더라구...” 그렇다, 별자리서당...^^;; 작년 4월 연재를 시작해, 홀로 외로이, 꾸역꾸역, 격주 마다 원고를 뱉어 냈다. 그게 어느덧 28개. 어느덧 마지막 원고를 써야 할 시점이 왔다. 평소에 별에 관심이 있던 것도, 천문학에 기본적인 소양이 있던 것도 아닌 내가, 그저 꿈에 암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시작한 연재였다. 매연과 공해로 뒤덮인 서울 하늘에서 잘 뵈도 않는 별을 짚어가며 하늘바라기 노릇을 해 본 것, 정말이지 남다른 경험이었다. 자정마다 남산의 으슥한 봉우리를 서성거리면서, 28수 별자리를 따라 펼쳐진 옛 사람들의 지혜와 비전을 읽어낼 수 있길, 간절히 염원했다. 


어느 덧 별자리 서당의 마지막이라니 ㅠ.ㅠ


하지만 동양 고대 천문학은 원체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늘의 무늬를 읽는다는 천문(天文)은, 이름에서 풍기는 낭만적인 정조와는 달리 수 세기 동안 군사와 국정을 점치는 일에 복무해왔다. 그만큼 철저한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서양의 점성학이 인간의 몸을 보는 일에, 그리고 개인의 운명을 보는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연구서도 의외로 많지 않았다. 조선조의 천문가 이순지가 정리한 『천문류초』와 사마천의 『천문서』, 『회남자』 정도가 고작이었다. 28개 별자리에서 몸과 마음의 지도를 읽어보겠다는 계획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별자리서당은 내게 더 없는 스승이 되어 주었다. 이렇다 할 레퍼런스(reference)가 없다는 것, 그건 다른 한편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그 어떠한 의지처 없이 맨몸으로 텍스트와 부딪쳐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별자리서당은 더없는 스파링 파트너(sparring partner)였다. 천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연재를 시작한 자리로 돌아온 시점, 이룬 것도 남은 것도 없다. 여전히 ‘하늘 공부는 이제 시작이다’ 라는 마음뿐이다.^^ 허나 연재는 마치지만 공부는 계속된다는 일념으로, 서울하늘에서 별 보는 우매한 별바라기의 길을 나는 계속 갈 것이다. 


어쨌거나 1년에 걸친 장기 레이스를 자축하며, 나의 마지막 길을 밝혀줄 두 개의 별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 주인공답게 음기(陰氣) 충만한 별들이어서 더 반갑다. 이름만으로도 으스스한 음기가 느껴지는 허수(虛宿)와 위수(危宿)가 그들이다. 보름이 넘게 서울 하늘을 무겁게 짓누르던 장마가 그치고 드디어 맑은 하늘이 얼굴을 드러냈다. 은하수가 펼쳐진 여름 하늘을 볼 절호의 기회다. 자, 함께 저 하늘을 올려보자!



양기는 허공에, 허수



허수(虛宿)와 위수(危宿)는 지난 회[여수의 추억]의 주인공 여수(女宿)와 함께 서양의 물병자리에 겹쳐지는 동양 별자리이다. 이 별들은 모두 하지(夏至)가 지나면서 양기가 시들고, 음기가 자라는 역전의 시기를 주관한다. 음기 충만한 별들답게, 몹시도 어두운 밝기를 자랑한다. 서울 하늘에서 이 별들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은 여수의 사다리꼴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만나게 되는 두 개의 별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허수를 찾는 또 다른 방법은 ‘페가수스’를 찾는 것이다. 자정이 넘어가면 동쪽하늘 낮은 곳에서 페가수스의 ‘가을철의 사각형’이 떠오른다. 사각형의 서쪽 변에서 서쪽으로 짚어 나가면 금방 위수와 허수를 만날 수 있다. 이 중 후자의 것이 보다 쉬운 관측법이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위수와 허수입니다.


먼저 허수를 만나보자. 이순지의 『천문류초』에서는 “허는 위와 아래로 각기 한 개의 별이 구슬을 이은 것 같은” 모양이라 노래하고 있다. 노랫말은 퍽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별자리의 모습은 한눈에 보기에도 으스스하다. 구슬보다는 뼈다귀나 해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허수의 영역에는 모두 10개의 별자리가 속해 있는데, 그 중 7개의 별자리가 이처럼 2개의 별이 연이은 모습이다. 허수가 지배하는 영역은 광대한 묘지, 혹은 뼈다귀 무덤을 연상시킨다. 


(虛)는 빌 허다.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없다는 뜻인가? 보통은 양기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때는 바야흐로 입추가 가까워오고, 하지 이후 성장을 멈춘 양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지 오래인 시점. 양이 비워놓은 공허의 자리에 서서히 음이 자라난다. 찬밥신세로 밀려난 양의 신세! 하지만 절대적인 소멸은 아니다. 사마천은 『율서』에서 “허(虛)란 실할 수도 있고 허할 수도 있는 것으로, 양기가 허공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고 풀어 놓았다. 허할 수도 실할 수도 있다니, 이 무슨 말인가? 양이 지금 비록 쇠퇴일로를 걷고 있지만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며, 동지가 지난 다음에는 다시금 자라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양기가 ‘허공에 감추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절묘한 표현이다! 양이란 것이 원체 무형(無形)의 기운이기에 딱히 돌아갈 곳이나 숨을 곳이 따로 있지 않다. 그저 허공에 맥 없이 흩어질 뿐! 하지만 흩어지는 듯 감추어졌다가 때가 되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양이다. 허공에서 나서 허공으로 돌아가는 것, 이게 양의 운명인 것이다. 


허수는 이런 양의 무덤, 혹은 허공의 집이 된다. 이순지는 『천문류초』에서 이렇게 푼다. “허수는 빈 집(虛堂)이다.” 허공에 흩어져버린 양을 상징하는 자리, 그게 바로 이 허수다. 그럼 이 별은 무엇을 주관하는가. 보아하니 허수는 양이 힘을 상실하여 흩어진 시점, 하지만 그렇다고 음의 활약은 아직 미흡한 시기를 지키는 별이다. 양이 주관하는 영명한 정신이 힘을 잃고, 음이 주관하는 바 몸마저 얻지 못하였으니, 분명 망자의 자리임에 틀림없다. 허수는 죽은 이의 신주를 모셔놓은 사당에 비견된다. 묘당과 제사의 일을 주관하며, 나아가 바람과 구름 죽음에 관한 일을 주관한다. 모든 부유하는 것들의 고향, 정처 없이 흐르고 떠다니는 희미한 것들의 대합실, 그것이 빈 집, 허수의 이미지이다. 


허수의 해석에서 중요한 건 모든 변수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흔들려도 안 되고 작아져도 안 되고,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도 안 되고, 오성이 침범해서도 안 된다. 제사를 주관하는 성스러운 영역이어서인지, 이곳은 그 어떠한 이변이나 이질적인 요소의 틈입도 허락하지 않는다. 보통 이 별에 이상이 생기면 그것은 병란과 천재지변으로 곡하는 소리가 늘어날 조짐으로 해석된다.


허수의 영역에 동반된 뼈다귀 모양 별들은 각각 사명(司命), 사록(司祿), 사위(司危), 사비(司非), 그리고 읍(泣), 곡(哭)이라 불린다. 사(司)자가 들어가는 네 별은 상벌을 주관하여 부정한 것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며 곡과 읍은 죽음을 주관한다. 사마천의 『천관서』에는 ‘허수는 울부짖음을 주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는 읍과 곡을 칭하는 말로 짐작된다. 여튼, 허수는 죽음의 자리, 혼령의 자리다.



양기가 허물어지는 자리, 위수


위수(危宿)는 세 개의 별이 꺾쇠 모양으로 모인 별자리다.(북방 현무 7수에 속한 위수(危宿)는 서방 백호에 속한 위수(胃宿)와 발음이 같다.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위수(危宿)를 위험 위수, 위수(胃宿)를 밥통 위수라 부른다.)(危)는 위태로울 위자다. 앞의 허수와 마찬가지로 이름만으로 무겁고 음산한 분위기가 강하게 전해져 온다. 사마천은 『율서』에서 “위는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양기가 여기에 이르러 허물어지는 까닭에 위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풀었다. 사마천처럼 위(危)자를 ‘허물어지다’로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 위수는 허수에서 흩어진 양기가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자리다.

이순지의 『천문류초』에서는 위수를 이렇게 해석한다. 


위는 하늘의 곳간이고, 하늘의 시장에 지은 집으로 물건을 잘 간직하는 일을 맡아한다. 또 바람과 비를 관장하고 분묘(墳墓)의 일 및 상사(喪事)가 나서 사람이 죽고 그에 따라 곡을 하고 우는 일을 맡아하니 도읍에 거처해서 묘당(廟堂)과 사당(祠堂)의 일을 맡은 총재(冢宰)의 직책에 해당한다.


일단은 윗 장에 언급한 허수와 비슷하게 죽음과 상례를 주관하는 별로 볼 수 있다. 여염집의 상례에서부터 나라의 제사까지, 죽음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다루는 하늘의 장의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허수보다 음기가 더 자라난 시기이므로, 음기를 써서 물질적인 것, 유형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주관하기도 한다. 인용구 서두의 ‘물건을 간직하는 일을 맡는다’는 뜬금없는 구문은, 음기를 써서 어떤 것을 지키고 소유한다는 의미다. 나아가 유형의 물건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 위수는 토목공사나 건축물의 축조를 점치는 별이기도 하다. 위수가 흔들리거나 오성의 침범을 받으면 울 일이 많아지는 형국이므로 세상에 죽음이 창궐한다. 혹은 음기를 써서 뭘 도모할 일이 많아지므로, 토목공사가 벌어진다거나 부역에 동원될 일이 많아지고, 병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흠...위수가 뜬 것을 보니 곧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겠군...


위수의 영역에 속한 그 밖의 별들은 무척 서민적인 별들 일색이다. 음기가 부쩍 자라난 탓인지 구체적인 물질적 필요를 주관하는 별들이 많아지는 듯. 야간 순찰과 치안을 주관하는 별 인성(人星), 곡식을 찧는 일을 주관하는 저(杵)와 구(臼), 비단 창고를 주관하는 천전(天錢), 수레 창고를 주관하는 거부(車府), 천구(天鉤), 말을 주관하는 조보(造父), 묘지와 매장의 일을 주관하는  분묘(墳墓)와 허량(虛梁) 등. 이 별들은 백성의 구체적인 삶을 주관하는 별들이기에 “민성(民星)” 이라고도 부른다. 


양기가 물러나고 음기가 살아난다! 이제 양기를 써서 펼쳐낸 기운을 음기로 수렴시켜야 할 시기가 되었다. 확장을 멈추고 결실의 때를 향해 가야한다.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고, 어떻게 무르익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수확과 결실의 가을이 임박해 있다! 오늘의 주인공 허수와 위수는 양에서 음으로 전세가 엇갈리는 거대한 전환의 마디를 일러주는 등대다. 어둡고 무거운 음의 별이 뜨는 시기, 각자의 일상을 돌아보자. 양기 퇴장, 음기 입장이렷다!



달군(남산강학원)


아.. 별자리 서당이 끝나버리다니... 별자리 서당 한번 더 정주행??



※ 마지막은 늘 아쉬움이 남네요. 그동안 별자리와 함께했던 달군님과 이 코너를 애독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비가 개였으니, 오늘 밤에는 별을 볼 수 있을까요? 밤하늘의 별이 궁금할때, 다시 별자리서당을 찾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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