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쓸 뿐! 오직 싸울 뿐!
웹, 혹은 다른 공간에서 자신의 글을 내보인 사람들은 한번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어떻게 느낄까?’ 하는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 공감을 하거나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오면 짜릿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어쩐지 좀 서운하다. 차라리 악플이라도 달리면 누군가 읽긴 했구나 싶다. (하지만 안 읽고도 달 수 있다는 게 함정;)
웹에서 무플 방지(댓글이 안 달리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이미지들이 생산되는 것을 보라! 반응을 얻기 위한 그 몸부림을! ㅠㅠ
『두개의 별 두 개의 지도』에서 만난 다산과 연암에게도 이제는 너무 식상한 비유가 된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란 말이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었다. 다산의 글은 당시 읽어주는 이가 드물었고, 따라서 비난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연암은 높은 인기만큼 많은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궁금하신 분들은 다산과 연암의 안티와 악플러들을 만나보시라!) 그래서 궁금해졌다. 연암의 글은 어찌 이리 팔딱팔딱, 생동감이 넘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글쓰기의 전략을 어찌하면 배울 수 있는지.
글을 잘 짓는 사람은 병법을 잘 알고 있다.
글자는 말하자면 군사요, 글뜻은 말하자면 장수요, 제목은 적국이요, 나라의 옛 이야기는 싸움터의 보루다. 글자를 묶어서 구로 만들고 구를 합해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지어 행진하는 것과 같으며, 성운으로 소리를 내고 문채로 빛을 내는 것은 종이나 깃발과 같다. 조응은 봉화에 해당하고, 비유는 유격 기병에 해당하고 억양 반복은 가열한 육박전에 해당하고, 제목을 풀어 주고 결속을 짓는 것은 적진에 먼저 뛰어들어 적을 생포하는 데 해당하고, 함축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늙어 소용없는 적의 병사를 잡지 않는 데 해당하고, 여운이 있게 한다는 것은 기세를 떨치어서 개선하는 데 해당한다.
… 글을 짓는 사람의 걱정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 길을 잃어버리고 요령을 잡지 못하는 데 있다. 길을 잃어버리고 나면 글자 한 자도 어떻게 쓸 줄을 몰라서 붓방아만 찧게 되며, 요령을 잡지 못하면 겹겹으로 두르고 싸고 해 놓고서도 오히려 허술치 않은가 겁을 낸다. 비유해 말하자면 군대가 한번 제 길을 잃어버리는 때에는 최후의 운명을 면치 못하며, 아무리 물샐틈없이 포위한 때에라도 적이 빠져 나가 도망칠 틈은 있는 것과 같다. 한 마디 말을 가져서도 요점만 꽉 잡게 되면 마치 적의 아성으로 질풍같이 쳐들어가는 것이요, 반쪽의 말을 가져서도 요지를 능히 표시하면 마치 적의 힘이 다할 때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진지를 함락시키는 것이 된다. 글 짓는 최상의 묘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박지원 씀, 홍기문 옮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몇백 번 싸워 승리한 글」, 219~221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바둑이 떠올랐다. 바둑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 한 수씩 겨루며 상대방의 돌을 많이 빼앗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어떤 돌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자리에 놓는지 매순간이 중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글을 쓰고자 하는 의도가 어떻게 전달될 것인지, 바둑알을 고르고, 배치하는 것.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 선택하는 것.
적재적소에 어떤 장수를 배치할까를 고민하는 장군의 마음!
연암에게서 ‘최고의 문장가’라는 후광을 본다. 하지만 그의 글은 갑작스레 영감을 받아 탄생한 그런 것이 아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백 번 치열하게 싸웠던 격렬한 전투의 결과인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지금 길을 잃지는 않았는가? 싸움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태도일지 모르겠다. 또, 패한다면 어떠한가. ‘오직 싸울 뿐!’인 그 순간을 즐길 수만 있다면!
『열하일기』에는 두 개의 독법이 있다. 하나는 여행의 스텝을 차근차근 따라 가는 것. 다른 하나는 그냥 책을 편 다음, 마음과 눈이 가는 데서부터 읽어 가는 것. 사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호질」과 「일야구도하기」, 「야출고북구기」, 「상기」 등은 아예 『열하일기』를 떠나 독자적으로 읽히고 자체적으로 의미를 증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 이 문장들이 『열하일기』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이 망각되기도 한다. … 여행일지의 일부였음에도 워낙 '멋지다' 보니 마치 독립된 문장처럼 이름이 붙여진 경우다. 그래서 또 자칫 이 문장들이 열하로의 머나먼 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야말로 본말전도, 종횡무진의 연속이다.
이런 식의 배치를 '고원'이라 한다. 고원은 무한히 다른 봉우리들이 연결되어 있을 뿐 정상이 따로 있지 않다. 이 봉우리와 저 봉우리는 서로 다를 뿐이다. 그 다름조차 배치와 조건에 따라 다르게 구현된다. 차이들의 무수한 펼쳐짐! 그래서 『열하일기』는 글쓰기의 맛과 도를 터득할 수 있는 최고의 텍스트다.
─고미숙,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263~264쪽
마케터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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