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밀당의 고수 정조, 다산과 연암의 삼각관계(!)

다산과 연암, 그리고 정조



대개의 한국사람들이 그렇듯(응?) 저 역시 한국사를 드라마로 배웠지요. ㅋ 아마도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도 보긴 봤을 텐데 기억은 잘 나지 않고요, 제가 처음으로 본 사극으로 기억하는 것은 <하늘아 하늘아>입니다. 어린 소녀(당시 8~9세 ㅋ)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엄청난 스토리였기에 머릿속에 ‘팍’ 박힌 것 같습니다. <하늘아 하늘아>는 사도세자의 비극(임오화변)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그때 정보석(사도세자 역) 아저씨가 어찌나 무서웠는지……, 정말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때 정조(는 나중에 되는 거고 드라마상에서는 세손) 역할은 당대 최고의 아역 스타 이민우, 고 핏덩이 같은 것(무…물론 저보다 다섯 살 위시지만서도;;;)이 “할바마마, 아비를 살려주소서” 하며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어린 저의 가슴도 미어졌답니다, 흑. 할아버지 영조에게 매달려 아버지의 목숨을 청원하던 아이는 자라서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가 됩니다. 그리고 다산을, 연암을 만나게 되지요. 오늘은 다산과 연암 그리고 정조입니다.



역대(와 미래;;) 정조들입니다. 왼쪽 맨 위부터 보겠습니다. <성균관 스캔들>의 조성하, 그 밑에 세로로 길게 되어 있는 정조는 <바람의 화원>의 배수빈, 그 오른쪽 위는 <왕도>의 강석우(라디오 <여성시대> 좋아요!!^0^), 그 밑에는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남성진. 그 오른쪽 옆으로 익숙한 앳된 얼굴은 <하늘아 하늘아>의 세손 이민우(아역 시절부터 왕 전문 배우^^), 또 그 오른쪽 옆은 <이산>의 세손 박지빈(지금은 폭풍성장해서 복근 막 내놓고… 그…그러면 안돼ㅠㅠ), 위로 올라가면 <역린>에 캐스팅된 미래의 정조 현빈(사극이라니!+.+), 현빈 위의 왼쪽은 <추노>의 김갑수, 오른쪽은 <한성별곡>의 안내상(그러고 보니 맨위 왼쪽의 세 분은 <성스>에 함께 출연하셨는데 다들 정조 경력이 있으시네요 ㅎ 안내상 아저씬 <성스>에서 노안의 정약용이었지요;;), 그 오른쪽 상단의 길쭉한 이미지 왼쪽은 <영원한 제국>의 안성기, 오른쪽은 <이산>의 이서진, 그 아래는 <정조암살미스터리-8일>의 김상중입니다. 헥헥. 이밖에도 더들 계시겠지만 지금은 요 정도로만^^ 



다산과 정조


정조와 다산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노론 일당 독재를 견제하기 위한 남인 세력의 기용이 절실한 때에 혜성같이 등장한 젊은 피 다산, 정조의 오른팔이 되어 정조의 정책을 척척 수행하던 중 다산을 시기하는 세력에 의한 다산의 천주교 전력 공격, 다산에 대한 정조의 눈물겨운 비호……, “동궁께서는 노론/소론, 이조판서/병조판서의 일 나아가 조정의 일에 이르러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노골적인 안티(노론)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외로운 정조의 뜻을 알아주는 이는 오직 다산뿐이었을 것이라고, 또 정조가 마음을 줄 신하 역시 다산뿐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아니 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나 세상에, 그런데 이게 웬일? 일단 다산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여름 6월 12일 마침내 달밤이어서 한가롭게 앉아 있었더니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어 들어오도록 하니 내각의 아전이었다. 『한서선』 10질을 가져왔는데 하는 말이, 임금께서 유시하시기를 “오래도록 서로 보지 못했다. 너를 불러 책을 편찬하고 싶어서 주자소(鑄字所; 조선시대 중앙에서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내던 부서)를 새로 벽을 발랐으니 그믐께쯤 경연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하니, 위로의 말씀이 대단하셨다.


정조가 승하한 1800년 6월의 이야기입니다. 이 해 봄에 다산은 자신을 공격하는 세력을 피해 고향 마재로 돌아옵니다. 그런 다산에게 정조가 ‘보고 싶구나’ 하며 책을 보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임금의 건강에 탈이 났고 28일에 이르러 하늘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다산의 글만 보면 마치 정조는 건강이 악화되기 직전까지도 다산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일 날만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꾸 <성균관 스캔들>로 예를 들어서 죄송합니다;; 정조 출연 드라마는 본 것이 이것 뿐인지라. 왼쪽이 정조, 오른쪽이 정약용입니다.


그러나 2009년! 한국사학계를 멘붕에 빠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조의 어찰첩이 뭉치로 공개된 것이었는데요, 수신인은 노론의 거두 심환지. 그는 무려 정조의 독살설에서는 독살을 주도한 용의자(?)이기도 합니다. 하여 정조와 심환지는 언제나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당연히 여겨지고 있었지요. 헌데 정조는 1796년부터 죽기 보름 전까지 300통에 가까운 편지를 심환지에게 보냅니다. 다시 말하면 6월 12일 정조가 다산에게 책을 보냈을 때, 동시에 심환지에게도 어찰이 갔고, 심지어 다산이 동부승지 등으로 정조 곁에 딱 붙어 있었을 때도 정조는 비밀연락망을 통해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지요. 궁중에서 혹 티가 나지 않게 낯빛과 말투를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까지요. 다산이 ‘왕의 남자’였던 것은 확실하나 정조에게 ‘왕의 남자’는 다산 말고도 여럿이었던 것이지요. 정조는 열수(洌水; 다산의 다른 호)만이 아닌 ‘만 개의 강을 비추는 달’(그래서 자기 호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하였지요)이어야 하는 존재였으니까요.


정조가 살았을 적 다산은 패기만만한 젊은 관료의 하나였다.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다산선생’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조가 다산을 아낀 건 맞지만 다산에게만 마음을 줄 처지는 결코 아니었다. 정조의 측근은 어디까지나 노론 벽파였다. 심환지와 김종수, 유언호, 이서구 등에 대한 신뢰와 총애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았다. …… 물론 남인들도 탕평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국정의 파트너였다. 하지만 핵심인물은 채제공과 이가환이었다. 다산은 초계문신이자 남인의 젊은 유망주 정도에 불과했다. 정조는 이 각 계파들을 고루 사랑하고 관리해야 했다.(『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129쪽)


우리가 다산만을 정조의 남자로 생각하게 된 건 다산 때문입니다. “임금 곁에서 중요한 정책을 수립할 때도 임금의 뜻과 내 뜻이 부합되었던 게 많았는데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많았다”, “태학에서 달마다 내리는 과제와 열흘마다 보는 시험에 높은 점수로 뽑혀 서적이나 종이·붓 등을 자주 하사받기도 하고 경연에 올라가는 가까운 신하처럼 임금께서 자주 면담”을 했다. “임금께서 모든 글자를 바싹 다가서서 보시고는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으니 나를 대해 주시던 일이 이와 같았었다”, “임금님의 보살핌과 관심을 가져 주심이 날로 깊어져 밤이 깊어서야 문답이” 끝났다는 어찌 보면 참으로 낯간지러운(다산선생은 훌륭하신 분이긴 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표현들이 어쩐지 쫌;;; 나 이렇게 예쁨 받았다~ 이런 느낌이라;;) 이야기들을 이렇게 자세히 써놓으셨으니 말입니다. 당대의 누구도 정조와의 에피소드를 이리 꼼꼼하게 남겨놓지 않았으니까요(이런 걸 보면 기록을 남겨놓는 사람이 짱인 겁니다;;). 다산이 유일한 왕의 남자가 아니라 왕의 남자‘들’ 중 하나였다고 해서 다산이 남겨놓은 기록이나 정조가 다산에게 보여 주었던 마음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가 정조’가 가진 여러 얼굴 중 하나를 본 것뿐이지요, 뭐.


다산이라면 왠지 자신이 왕의 남자'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 이런 표정을 지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



연암과 정조


그럼 정조는 연암에게는 어떤 얼굴을 보여 주었을까요? 다산과 정조가 서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였다면 정조와 연암은 서로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습니다. 정조는 연암 역시 또 한 명의 왕의 남자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연암은 아주 교묘하게 거부를 합니다. 최소의 생계를 위한 미관말직이나 외직만을 고집하며 정조와 멀리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지요. 정조가 싫어서가 아니라 처숙 이양천의 죽음, 벗 이희천의 죽음 등으로 ‘권력무상’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연암에게 정조는 은근은근 스타일! ^^

먼저 밝혀 둘 것은, 지난번 연암의 가족관계 편에서는 패스했었지만 사실 연암과 정조는 쫌 먼 사돈지간입니다. 연암이 『열하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열하에 갔기 때문입니다. 그럼 열하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삼종형(팔촌형) 박명원 덕분이었는데요. 당시 연행의 책임자였던 박명원은 영조의 딸 화평옹주(사도세자의 친누이)의 남편, 즉 정조의 고모부였습니다. 참 재미있게 된 것이, 그래서 넓게 보면 연암이 열하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정조 덕분이기도 한데요, 연암이 열하에 다녀와서 쓴 『열하일기』를 보고 정조가 문풍 타락의 배후로 연암을 콕 찍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는 ‘결자해지! 순정한 글을 지어 바쳐라’ 하였는데 또 재미있는 것이 연암에게 직접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문체반정의 회개자(왜 ‘회개’라고 하였는지는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를 보시면 될 텐데…하하! 이상 자사 PPL의 달인, 편집자 k였습니다;;) 남공철에게 전하라고 시킵니다. 죄를 지었다면서, 왜 벌을 받으라고 말을 못하니! 이 약한 사람, 약한 사람~!
 

그런데 정조는 연암에게 항상 이런 식입니다. 본인이 직접 뭘 시키질 않아요^^;; 연암을 처음으로 관직에 등용시킬 때도 유언호의 천거를 통해서였지요(저는 그것이 알고 싶네요. 왜 하필 연암의 절친 유언호에게 물어봤을까요? 주변에 쓸 만한 사람 좀 없니? 하고;;). 배다리 낙성식 때도 직접적으로 “와라” 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다른 사람을 시켜 쪽지를 보내게 합니다. 명을 받은 사람이 어명이라고 말도 못하고 ‘우리가 당신이랑 술이나 먹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하며 애타게 연암을 재촉하는 대목을 보면 웃음이 쿡쿡 나옵니다. 또 연암의 벗인 박제가를 불러다가 “박지원이 다스리는 마을에 문인들이 많이 놀러간다고 하던데 너만 바빠서 못 갔을 테니 휴가 내서 다녀오너라” 하며 자신의 은근한 마음도 이렇게 한 다리 건너서 드러내지요.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던가요?(응?) 마침내 연암과 정조도 만나게 됩니다(나중에도 또 만나요^^; 그건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를 통해 확인하셔요^^). 안의현감이었던 연암이 출장차 서울에 와 있을 때 웬일로 정조가 직접 연암을 부릅니다. 안의현 사정에 대해 묻고 “너는 문인이다. 수령일에 어둡지는 않느냐?” 하며 한껏 자신의 자상함을 어필합니다. 후일 이때의 일을 두고 연암은 “가슴속에 간직한 만 마디 말이 죄다 등줄기의 줄줄 흐르는 땀으로 변해 버리는 바람에 품은 뜻을 다 아뢰지 못하였다”고 회상하는데 정말 그랬던 것인지, 해본 말이었을지 저는 헷갈리네요. 천하의 연암이 저 정도로 긴장하다니 말입니다.
 

계속 피했지만 연암이 정조의 두터운 호의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조의 죽음은 다산과 마찬가지로 연암에게도 애통한 일이었습니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임금님의 융성한 지우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은혜를 조금도 갚지 못했으니 이것이 나의 지극한 한”이라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왜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에 눈이 가는 것일까요? 앞서 다산 또한 비슷하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임금과 나의 뜻이 부합되는 것이 많았는데 남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였다고, 또 심환지가 정조로부터 받은 편지들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린 이런 관계야”라고요. 아마도 이것이 정조 스타일이었나 봅니다. 남들에게 말할 순 없지만, 나에겐 너뿐이다! 같은 암시를 주는 것 말입니다. 


은근하게, 그리고 1:1로! 정조는 고도의 밀당을 활용한 왕이었네요. 후후;;


하지만 연암은 그런 암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왜 정조의 러브콜에 응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직접 어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소이다.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은 신하된 자의 큰 도리이므로 조금도 구차하게 행동할 수 없는 법이지요. 내가 주저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라오.” 한쪽에서는 제3자를 통해 은근히 찌르고, 다른 한쪽은 직접 찔러 주지는 않았다며 슬쩍 빼는 이 고도의 밀당! 『두별』을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면 더 재밌습니다!!
 

그리고 연암과 정조의 밀당 말고도 꼭 확인해 보셔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다산과 연암의 일간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요? 정조의 일간도 한번 알아보셔요. 정조의 생년월일시를 알아내어 사주를 뽑아보셔도 되지만 번거로우실 테니 그냥 『두별』을 보세요. 바로 나옵니다.ㅋ 명리학적으로 다산-정조-연암의 관계를 풀어보면 어떻게 앞에서 설명한 사연들이 가능하였는지 감이 오실 것입니다. 『두별』 147쪽을 보시면 됩니다. 참 친절하지요?^^ 다음에 또 봬염~!



_편집자 k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 10점
고미숙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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