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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포토로그

[북-포토로그] 내가 가진 책 중 가장 나이 많은 책

by 북드라망 2025. 4. 8.

 

내가 가진 책 중 가장 나이 많은 책 

 

 


『한국단편문학전집』 4권.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양장본 껍데기 케이스는 너무 낡아서 책을 넣거나 꺼내거나 할 때마다 끝이 바스러져서 가루가 날릴 정도다. ;;; 책의 나이는 판권에 나온다. 판권을 보면 



1958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1965년에 증보신판이 발행되었다. 내가 가진 책은 1966년에 발행된 증보5판이다. 5월에 발행되었으니, 만으로 거의 60년이 된 책이다. 가격은 530원. 1966년의 짜장면 값이 30원 정도였다니, 꽤 비싼 값이다.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이 『한국단편문학전집』 이 네다섯 권 있었는데, 지금 남은 것은 이것 한 권뿐이다. 내가 이 4권만 따로 보관하고 챙겨온 이유는 바로 한 작품 때문이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이 작품을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교내 방송으로 처음 접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우리 학년이 1회 입학생인 신생 중학교였다. 이 신생 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이곳이 교장으로 첫 부임한 곳이었고, 그래서인지 의욕에 넘치는 분이었다. 주변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셨고(당시 체육선생님의 아내 분이 영문학을 전공한 미국인이셨는데, 그 선생님이 오셔서 주말에 한 번 영어회화 시간을 진행하신 일이라든지……;;), 선생님들이 다소 피곤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로, 목소리가 고우셨던 한 국어선생님께서 한국 단편소설을 교내 방송으로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당연히 제대로 듣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지만… 나는 소설이 재미있어 늘 귀 기울여 들었다. 그때, 열네 살인 나에게 한국 단편소설은 이를테면 김동인의 「감자」나 김유정의 「봄봄」,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뭐랄까… 시골 느낌이 배어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났다”로 시작되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를 들었을 때 눈이 번쩍 떠졌다(고 기억한다…;;;).

이렇게 ‘도시’적인 한국 단편소설이 있다니(게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사춘기 소녀는 그 소설에 얼마간 흠뻑 빠졌고, 집에 있는 책 중에 그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책만 거실의 책장에서 빼내어 내 책상으로 가져와 몇 번을 읽었고, (그 덕에 다른 한국 단편소설들도 같이 꽤 읽게 되었고) 40년 가까이 소중히(?) 보관해 오게 된 것이다.

대학 때 다시 이 책을 우연히 봤을 때 이 ‘한국단편문학전집’의 편자가 문학평론가 ‘백철’ 선생이고, 뒤에는 그의 해제도 실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다음 한동안은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보다는 백철의 해제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이 책의 다 떨어져 가는 케이스에 남겨진, 아마도 남동생이 써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알 수 없는 점수표가 나에게 웃음을 준다.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부터 나와 동생을 고교야구를 보러 동대문운동장에 데려가셨던 아버지 덕분에, 동생과 나는 프로야구가 출범하자마자 열광했는데, 동생은 어린이청룡에 가입하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삼성, 동생은 청룡(지금의 LG), 나는 OB(지금의 두산)를 응원했는데, 이 기록을 왜 했었는지, 점수의 의미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늘 일하느라 주말에도 함께 있지 못하셨던 아버지이지만, 야구 생각을 하면, 아버지와 함께 갔던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과 잠실야구장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출판연도를 보건대, 아버지께서 아마 스무 살 무렵 사셨던 책인 것 같다. 그 책을 아버지보다 내가 훨씬 더 열심히 보았고, 아마도 이 책을 읽지는 않았을 내 동생은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한 작은(?) 흔적을 이 책 케이스에 남겨 놓았다. 이렇게 『한국단편문학전집』 이 우리 가족의 어떤 작은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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