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산에 나무를 심다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그 향기가 맡아졌다. 1월에 왔을 때와는 달리 온 사방이 초록으로 뒤덮인 데다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5월의 공원이었다. 숲의 변화가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무자람터에 도착했더니 청년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나무심기를 이끌어줄 활동가였다. 개별 개미로 온 세 사람은 예전에도 만난 적이 있다며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젊은 활동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청년인데, 지금은 ‘노을공원시민모임’(이하 노고시모) 활동가로 자원해서 6개월째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 할 일을 설명하면서 참가자들과 눈도 못 맞추고 어색해하는 모습이 풋풋했다. 활동가를 따라 나무자람터 고랑 사이에 잡초 뽑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흘러내린 흙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을 한 후, 자람터에서 묘목들을 뽑아서 오늘 나무를 심을 공원의 경사면으로 이동했다. 자람터에는 여러 나무 묘목이 심겨 있었는데, 내가 심게 된 나무는 복자기나무였다.
삽을 들고 공원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려니 경사가 제법 가팔랐다. 함께 했던 교회 청년들이 스스럼없이 도와주는 덕에 겨우 따라 내려갈 수 있었다. 노고시모에서 설치했다는 빗물통 근처에 나무를 심기로 한 터가 있었다. 터라고는 하지만 여러 풀들이 한창 세력을 넓히는 때를 맞아 풀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그 풀을 헤치고 나무를 심을 만한 자리를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주변에 어린 묘목들이 제법 자리를 잡았는가 하면, 어떤 묘목들은 여전히 여렸다. 땅을 파려고 삽날을 밀어 넣자 시멘트 덩이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리저리 삽날로 파도 나무를 심을 만한 구덩이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도심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외부 생태계와 단절된 공원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건강한 숲으로 천이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2011년부터 활동해온 노고시모 회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공원의 숲이 달라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동물들이 깃들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배설물 등을 통해 숲의 천이가 이루어지는 사이, 사람이 이 공원 밖에서 자란 씨앗들을 옮겨다 심어주는 노력을 보태보면 어떨까. 이들은 나무자람터에서 싹을 틔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면에 옮겨 심는 일에도 힘을 쏟게 되었다. 수십 년간 쓰레기를 매립해서 솟아오른 산인데다 매립을 끝내던 무렵에는 주로 건축 폐기물을 매립했다. 이런 땅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지금까지 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노고시모 사람들의 노고가 저절로 느껴졌다.
젊은 활동가가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은 방법을 설명하면서 “임보 받는 강아지처럼” 묘목을 다뤄달라고 했다. 서툰 삽질로 이리저리 땅을 파는 내내 그 말이 맴돌았다. 내가 묘목을 잘 심어주지 못해서 죽어버리면 어쩌나 싶은 염려까지 따라 일어났다. 서툰 삽질에 나중에는 손으로 흙을 파내고 나서야 내가 맡은 복자기 나무 묘목 두 그루를 겨우 심었다. 빗물통에서 물을 담아 와서 충분히 뿌려주었다. 내 입장에서 충분이지 묘목에게도 그럴까. 마침 날씨까지 더워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계속 불안한 마음도 가시지 않았다. 같이 활동했던 일행들이 하나둘 씩 맡은 묘목들을 다 심었고, 나무들 주변으로 풀들을 뽑아 햇빛을 더 잘 받도록 해주고 이 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경사면에서 다시 올라와 일행들과 헤어졌다. 세 시간 정도 작업했으니 5시 무렵에 끝났다. 오랜 만에 힘을 쓰는 작업을 해서 그런가 몸은 노곤했다. 노을 공원 입구 쪽으로 내려오면서 삼삼오오 노을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지나쳤다. 세 시간 전에 공원 한 쪽에 있는 나무자람터로 올라가다보니, 한 쪽에서는 신혼부부의 웨딩촬영이 한창이었다. 노을 공원에서 서울 페스타 2024 프로그램으로 바비큐를 굽는다는 장소 안내 팻말도 보았다. 한 공간에서 이 모든 일들이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었다. 노을 공원을 뒤로 하고 내려오며 나는 불안했던 내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결혼식을 준비하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축제를 즐기고, 숲 가꾸기에 하루를 쓸 수 있는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어떤 평화 속에 있지 않은가. 다음 날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도 있었다. 그 소식에 내가 심은 복자기 나무 두 그루의 생육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었다. 노을 공원 일몰이 그렇게 멋지다는데, 언젠가 그 노을을 보기 위해 이 둘레길을 또 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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