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고양이와 상추쌈과 담배와 벌레와 정(情)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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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상추쌈과 담배와 벌레와 정(情)에 관하여





담배가 맛있을 때

책상에 앉아 글을 읽을 때, 중얼중얼 반나절을 보내노라면 목구멍이 타고 침도 마르는데, 먹을 만한 것이 없다. 글 읽기를 마치고 화로를 당겨 담배를 비벼 넣고, 천천히 한 대 피우면 달기가 엿과 같다.


…  길고 긴 겨울밤 첫닭 우는 소리에 깨어 대화할 상대가 없고 할 일도 없을 때, 잠시 부시를 탁 하고 쳐서 튀는 불꽃을 받아 천천히 이불 아래에서 은근히 한 대 피우면 봄기운이 빈 방에 피어난다.


… 산길의 허름한 주막에서 병든 노파가 밥을 파는데, 밥은 벌레와 모래가 뒤섞여 있으며 젓갈은 비리고 김치는 시었다. 다만 내 몸, 내 목숨 때문에 할 수 없이 토하고 싶은 것을 참고 억지로 삼키노라면 위장이 멈춰 움직이지 않는다. 수저질을 겨우 마치고 곧 담배 한 대를 피우면 마치 생강과 계피를 먹은 듯하다. 이러한 담배 맛은 모두 그러한 상황을 당해본 자만이 알 것이다.




상추쌈

매년 한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면 상추잎이 매우 실해져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된다. 큰 동이의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 정갈하게 씻어내고, 이어 반의 물로 두 손을 깨끗이 씼는다. 왼손을 크게 벌려 승로반처럼 만들고, 오른손으로 두텁고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놓는다. 이제 흰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퍼서 거위 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상추 위에 올려놓되, 그 윗부분을 조금 평평하게 만든 다음, 다시 젓가락으로 얇게 뜬 송어회를 집어 황개장에 담갔다가 밥 위에 얹는다. 여기에 미나리와 시금치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더하여 송어회와 어울리게 한다. 또 가는 파와 향이 나는 갓 서너 줄기를 집어 회와 나물에 눌러 얹고, 곧 새로 볶아낸 붉은 고추장을 조금 바른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상추잎 양쪽을 말아 단단히 오므리는데 마치 연밥처럼 둥글게 한다. 이제 입을 크게 벌려 잇몸은 드러나고 입술은 활처럼 되게 하고, 오른손으로 쌈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받친다. 마치 성이 난 큰 소가 섶과 꼴을 지고 사립문으로 돌진하다 문지도리에 걸려 멈추는 것과 같다. 눈은 부릅뜬 것이 화가 난 듯하고, 뺨은 볼록한 것이 종기가 생긴 듯하고, 이는 신이 난 것이 무언가를 쪼개는 듯하다. 이런 모양으로 느긋하게 씹다가 천천히 삼키면 달고 상큼하고 진실로 맛이 있어 더 바랄 것이 없다. 처음 쌈을 씹을 때에는 옆사람이 우스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야 된다. 만일 조심하지 않고 한번 크게 웃게 되면 흰 밥알이 튀고 푸른 상추잎이 주위에 흩뿌려져, 반드시 다 뱉어내고 나서야 그치게 될 것이다. 


나는 상추를 유달리 좋아하여, 때때로 이 방법대로 쌈을 싸 먹곤 한다. 비록 그 법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또한 먹으면 달게 느낀다. 이미 달게 먹고 나서는 재미삼아 '불로경'을 지어 세상의 채소 맛을 아는 이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고양이

가축 중에 가장 사람에게 친근한 것으로 고양이만 한 것이 없다. 고기를 먹이고 담요 위에서 잠자게 하니 은혜 또한 지극하다. 고양이가 보답하는 것이란 오직 도둑질을 막는 일 한 가지인데, 간혹 쥐잡기에 게으르고 닭을 노리는 데에 용감한 놈이 있으니, 이것은 고양이 중에서도 형편없는 놈이다.

일찍이 듣건대, 숙종조에 금고양이 한 마리를 궁중에서 길렀는데, 임금이 돌아가시자 고양이는 먹지도 않고 여러 날 울어대다가 빈전의 뜰에 엎어져 죽었으므로 이에 명릉의 동구 밖에 묻어주었다. 그때 사람들이 <금묘가>를 지어 송나라의 도화견에 견주었다. 비록 성덕이 어떤 것에든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에서 연유함이지만, 고양이 또한 평범한 것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아, 참 기이하다.




벌레

경박스런 공자가 재능을 믿고 세력을 빙자하여, 화려한 옷을 입고 기운 센 말을 타고, 자신을 뽐내며 남들을 가볍게 여기는 자를 달관의 안목으로 보면 곧 일개 잠자리이다.

… 바야흐로 훨훨 휙휙, 어지러이 너울너울 움직이며 천지 사이에서 벌레는 어떤 물(物)이며, 나는 어떤 벌레인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지위가 높고 재능이 두텁고 덕이 갖추어지고 권세가 큰 자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우리들은 쌔근쌔근 숨쉬고 꼼틀꼼틀 움직이는 것으로 일개 하루살이, 일개 멸몽(진디등애)임에랴. 어찌 감히 몸뚱이가 조금 더 크고, 지각이 조금 더 지혜롭다 하여 이 여러 종류의 벌레들을 하찮다고 비웃겠는가?

… 저 상에 붙어 있고 창에 끼어 있는 벌레 중에 일개 사바세계가 있고, 일개 석가여래의 일개 뛰어난 제자가 있지 않으리라고 내 어찌 알겠는가? 나 또한 어찌 그것이 작다고 하여 홀만이 볼 수 있겠는가? 나와 저들은 모두 벌레이다.





정(情)

대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情)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 이 세상이 있으매 이 몸이 있고, 이 몸이 있으매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있으매 곧 이 정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찰하여 그 마음의 사정(邪正)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현부(賢否)를 알 수 있고, 그 일의 득실을 알 수 있고, 그 풍속의 사검(査檢)을 알 수 있고, 그 땅의 후박(厚薄)을 알 수 있고, 그 집안의 흥쇠를 알 수 있고, 그 나라의 치란(治亂)을 알 수 있고, 그 시대의 오륭(汚隆)을 알 수 있다.

대개 사람의 정이란 혹 기뻐할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기뻐하기도 하며, 혹 성낼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성내기도 하며, 혹 슬퍼할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슬퍼하기도 하며, 또 즐겁지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하고자 하는 것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모두 그 정의 진실함을 살펴볼 수가 없다. 그런데 유독 남녀의 정에서만은 곧 인생의 본연적 일이고, 또한 천도(天道)의 자연적 이치인 것이다.




※ 이옥 전집 중 백운필(白雲筆), 연경(烟經), 이언(俚諺) 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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