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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요절복통((腰折腹痛)시대! 위중한 허리를 위한 위중혈(委中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3. 21.

 

오금아, 날 살려라! - 위중혈(委中穴)

 



에피소드 1

1636년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 조선의 왕 인조(仁祖). 궁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세상의 중심인 궁을 떠나는 왕. 평생을 살아온 집을 떠나는 한 인간.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아프고 쓰린 것. 몰아치는 12월의 칼바람과 시시각각 전해져오는 패전의 소식들. 그리고 막혀버린 피난길. 이 앞에서 누군들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첫 목표였던 강화도 길은 이미 봉쇄된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인조는 남대문을 열고 남한산성으로 길을 잡는다. 허나, 얼마쯤 갔을까. 인조는 백탑고개를 넘어가다 한숨을 몰아쉬며 주저앉고 만다. “아이고, 오금이 아프다.” 그렇다. 피난길도 삶이다. 쉬어가야 하고 사람들과 말을 쉬게 해야 한다. 그는 도망치는 왕이지만 여전히 조선의 리더가 아닌가. 그가 쓰린 가슴을 어루만지고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던 곳. 지금의 송파구 오금동은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오금이 아파오는 고갯길. 오금동.

에피소드 2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불법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수도 있습니다.


호환(虎患), 마마(媽媽)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불법 비디오. 고백컨대 많이 봤다.(--;) 그때마다 의구심이 들었다. 왜 호환-마마와 불법 비디오는 동급인가. 호환이란 무엇이고 마마란 무엇인가. 호환이란 호랑이에게 물려 흉액을 당하는 조선시대의 교통사고(?)다. 길 떠나는 사람에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없다. 마마란 천연두다. 이것에 걸리면 십중팔구 목숨을 잃는다. 하여, 호환-마마란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어찌 불법 비디오 따위가 그것들보다 더 무서운 것일 수 있으랴! 음흉한 언어의 계략!(푸코) 그러나 이 호환 때문에 마을이름이 오금동이 된 곳이 있다. 경기도 군포의 오금동. 이곳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언덕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언덕을 지나며 “오금이 저린다.”는 말로 죽음의 공포를 표현했다. 과연 불법 비디오는 죽음의 공포로 오금을 저리게 하던가. 죽음만이 오금을 떨고 저리게 한다

오금. 그것은 왜 사람을 주저앉게 하고 죽음의 공포를 표현하는 단어가 되었는가. 오늘은 이 질문을 길잡이 삼아 위중(委中)이라는 혈자리를 탐사한다.

오금과 공포의 친족관계 

오금이란 어디인가. 무릎 뒤쪽, 걸을 때마다 접히는 곳. 여기가 오금이다. 하여 ‘오금에서 불이 나게’라는 말은 무척 바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일어나 걸어보시라. 오금이 가장 많이 접혔다 펴졌다를 반복할 것이다. 반면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을 때 ‘오금이 얼어붙었다. 오금이 굳어버렸다.’라고 표현한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가야했던 인조의 경우가 그것. 죽음을 피해 너무 먼 거리를 왔기에, 너무 많이 걸어야 했기에 쉬어야 한다는 몸의 신호. 피로할 때 몸은 제일 먼저 다리, 오금을 묶는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 이유는 다리로 내려가는 동맥이 오금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다리를 움직여 걷게 하는 것은 이 동맥의 힘인 것. 그렇기에 이 동맥을 통해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다리를 움직이지도 걸을 수도 없는 셈이다. 반대로 너무 많이 걸어 동맥으로 내려오는 에너지가 모자라면 몸은 더는 걷지 못하도록 오금을 아프게 만든다. 곧 몸의 생리인 것.



한편 공포에 질렸을 때 ‘오금이 저린다.’라고 말하는 것. 이것은 오금을 지나는 경맥과 관련된다. 오금의 한 가운데, 여기로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이 흘러간다. 족태양방광경은 어떤 경맥인가. 족(足)+태양(太陽)+방광(膀胱)+(經). 겨울(膀胱)의 차가운 물(太陽)이 흘러가는 다리(足)의 큰 길(經). 그렇다면 방광은 왜 겨울이며 태양은 왜 차가운 물인가. 한의학에서 방광-水-겨울이 하나의 계통이라면 태양-한수(寒水)가 하나의 계통을 이룬다. 그러니 경맥의 이름대로 ‘겨울의 차가운 물’일 수 있는 것. 이런 정황들 속에서 족태양방광경은 가장 쿨(cool)한, 가장 차가운 경맥이다. 이 차가운 경맥은 공포심이 들 때 요동친다. 공포영화를 볼 때 ‘등골이 오싹하다.’라고 말하는 것도 방광경 때문이다. 눈 안쪽(정명혈)에서 시작하여 머리를 넘어 등을 타고 내려가 새끼발가락 끝(지음혈)에서 마무리되는 방광경이 자극되어 차가운 물의 기운이 등골(척수)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 방광경이 지나가는 오금이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차가운 물의 기운이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 그렇기에 몸에서 공포와 오금은 방광경을 매개로하는 친족(?)관계다. 

그런데 왜 하필 오금인가. 방광경이 흘러가는 많은 곳들 가운데 왜 무릎 뒤쪽인가. 오금과 방광경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여기에 방광경의 중요한 혈자리, 위중(委中)이 있다.

위중(委中), 굴신(屈伸)의 축
 


위중(委中)은 그 이름으로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위(委)는 벼 화(禾)와 계집 녀(女)를 합한 글자. 여자(女)가 가을에 수확한 볏단(禾)을 등에 진 모양이 이 글자의 기원이다. 아무리 힘이 장사인 여자라도 볏단을 지려면 몸을 낮춰야 한다. 즉, 볏단을 지기 위해 구부려야 하는 곳, 그 가운데(中)에 위치한 혈자리가 위중(委中)이라는 것이다. 다른 책들에서는 위중의 이름을 이렇게 설명한다. “위(委)는 구불구불한 것을, 중(中)은 한가운데를 뜻한다. 따라서 위중혈은 우리 몸에서 구불구불하며 한가운데에 위치한 혈자리임을 알 수 있다. 한방에서는 이곳 혈자리를 찾을 때 반드시 구부러진 곳에서 찾아야 하므로 이와 같이 이름하였다.” ( 산차이원화, 내 손으로 하는 경혈지압·마사지 324, 국일미디어, 2010, p.240) 즉, 위중이란 이름은 구부리는 것, 굴신(屈伸:굽히고 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위중은 별명이 많은 혈자리로도 유명하다. 혈극(血郄), 극중(郄中), 중극(中郄), 위중앙(委中央), 퇴요(腿凹), 괵중(膕中). 이 많은 별명들이 위중이 얼마나 중요한 혈자리인지를 간증한다. 무릎 뒤쪽 중앙에 있다는 것을 이토록 많은 별명들로 표현하고 있음이 그것. 이 가운데 주목해야 하는 것은 혈극(血郄)이라는 별명이다.

 

위중혈은 곧 혈극(血郄)이다. 오금 가운데 있으며, 피를 빼면 고질병이 다 나을 수 있다. 오금 안쪽의 두 힘줄과 뼈 사이 우묵한 가운데 있다. 또한 “무릎 뼈 뒤 가운데이며 다리가 굽어지는 곳의 가운데인데, 무릎 뒤쪽에서 취혈한다.”라고 하였다. 오금 주위에 검붉은 핏줄에서 피를 빼는데, 핏줄이 덩굴같이 뭉친 곳에서는 피를 빼지 못하는 바, 피를 빼면 멎지 않고 계속 나와 도리어 요절하게 만든다.

─『동의보감』, 「침구(針灸), 법인문화사, 2012, p.2184

 

혈극(血郄)이란 피(血)를 뽑아내는 틈(郄)이라는 뜻. 오금의 가운데, 위중에서 피를 빼면 고질병(痼疾病), 즉 오래된 병도 다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 위중이 얼마나 중요한 혈자리인지 감이 온다. 한발만 더 나가보자면 위중은 사총혈(四總穴) 가운데 하나다. 사총혈이란 365혈 가운데 4개만을 추린 것으로 4개의 혈자리로 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병을 잡겠다는 야심찬 기획이다. 그 넷이란 합곡(合谷), 열결(列缺), 족삼리(足三里), 위중(委中)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암송거리였으면 노래로 만들어버렸다. 이름하여 사총혈가(四總穴歌). 잠시 감상해보자.

 

肚腹三里留(두복삼리유) : 두복(肚腹)의 병에는 삼리(三里)를 유념해두고,
腰背委中求(요배위중구) : 요배(腰背)의 병에는 위중(委中)을 찾는다.
頭項尋列缺(두항심열결) : 두항(頭項)의 병에는 열결(列缺)을 찾으며,
面口合谷收(면구합곡수) : 면구(面口)의 병은 합곡(合谷)이 수습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복부의 병은 족삼리를 쓰고, 등과 허리엔 위중을 쓰고, 머리와 목엔 열결을 쓰며, 얼굴과 입엔 합곡을 쓴다는 의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등과 허리 및 몸의 뒤쪽에 생긴 병엔 반드시 위중이 쓰인다는 것. 또한 등과 허리, 몸의 굴신(屈伸)에 문제가 생기면 위중이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한다는 것. 그 이유 때문에 노래로 만들어 망각의 힘에 저항했다는 것. 그렇다면 공포에 질려 다리의 굴신이 어려울 때 오금이 저린 것은 바로 이 위중(委中)이 자극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왜 하필 오금이냐는 질문은 오금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귀결된다. 최소한 경락과 혈자리라는 구도 안에서라면 말이다. 그런데 여기, 위중을 반드시 써야 한다는 등허리의 질병. 그것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가. 이제 위중의 실질적 효능을 따라가 보자.

요절복통(腰折腹痛), 요통세상

허리가 끊어지고 배가 아플 정도로 우스운 이야기. 그것은 요통(腰痛)에 관련된 이야기다. 『동의보감』엔 요통의 원인을 10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신허요통(腎虛腰痛), 담음요통(痰飮腰痛), 식적요통(食積腰痛), 좌섬요통(挫閃腰痛), 어혈요통(瘀血腰痛), 풍요통(風腰痛), 한요통(寒腰痛), 습요통(濕腰痛), 습열요통(濕熱腰痛), 기요통(氣腰痛) 등 열 가지가 있다.

─『동의보감』, 「외형」, <허리(腰)> 법인문화사, 2012, p.782

 

순한문이라 이해하기 어렵기에 노래처럼 풀어놓은 것을 좀 더 보자.


요통(腰痛)은 갓 생긴 것이든 오래되었든 모두 신허(腎虛:신장의 기운이 허해서)의 소치인데, 외감(外感:외부와 감응해서 생긴 것)이면 갑자기 아프고 한(寒:차가운 기운)이면 등이 땅긴다네. 습(濕:물의 기운)이면 아프면서 허리가 무겁고, 열(熱:뜨거운 기운)이면 번열이 나면서 안절부절 못하며, 풍(風:바람의 기운)이면 다리와 무릎이 당기고 경직되어 펴기가 어렵다네. 내상(內傷:내부에서 생긴 것)이 의지를 상실하여 생긴 것이면 허리가 팽팽하게 불러 오르고, 근심과 분노로 생겼으면 배와 옆구리가 아파서 요통이 심해진다네. 담(痰)이면 등과 옆구리까지 이어지고, 식적(食積:먹은 것이 쌓인 것)이면 허리를 젖히기 힘들며, 삐어서 어혈(瘀血)이 생겨 기운이 거슬러 오르면 밤에 유독 아프다네. 과로하면 혈맥(血脈)이 두루 자양하지 못하고, 성생활이 과하면 통증이 지속되거나 허리를 세우지 못한다네.

─ 이천, 『의학입문』, 「요통」, 법인문화사, 2009, p.1369-1372


근육맨도 어쩔 수 없는 허리통증~


너무 많이 먹어서 아프고(食積), 찬바람(風寒)이 불거나 무덥고 비오는 날(濕熱) 아프고, 의지가 없어서 아프고, 근심과 분노 때문에 아프고, 삐어서 아프고, 성생활을 너무 즐겨서 아프다. 이대로라면 어디 허리 안 아픈 사람 찾기가 어려울 정도. 그런데 여기에 ‘우리’라는 주어를 넣어보자. 먹을 것이 너무 많은 시대 너무 먹어서 아픈 우리. 이유 없는 불안과 대상 없는 분노 때문에 아픈 우리. 인터넷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성적 도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기력과 싸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이렇게 보니 진정 ‘우리’ 시대가 요절복통(腰折腹痛), 허리가 끊어지고 배가 무지하게 아픈 시대가 아닌가. 이른바 요통세상! 질병은 시대를 증언하는 몸의 역사다. 시대는 그 역사를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몸에 새긴다. 질병이면서 동시에 역사인 것. 그렇다면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줄이고 비우라. 이 상식적인 멘트를 벗어나 혈자리로 대답한다면 바로 위중(委中)이다.

 

허리가 구부러져 펴지지 않는 경우에는 위중(委中)혈에 침을 놓아 출혈시키면 곧 낫는다.
-『동의보감』, 「외형」, <허리(腰)> 법인문화사, 2012, p.790

 

허리, 위중(委中)하십니까

위중은 어떻게 허리를 고치는가. 이 물음을 풀기에 앞서 위중의 정확한 위치부터 짚어보자. 위중은 “오금의 중앙, 가로 간 금 가운데 맥이 뛰는 우묵한 곳에 있다.” ( 동의보감, 침구(針灸), 법인문화사, 2012, p.2184) 말로만 들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실제로 오금을 만지다보면 금방 느낌이 온다. 특히 허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위중을 만져주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자극이 확실하게 오는 곳에 위중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위중은 족태양방광경의 합혈(合穴)이자 토(土)혈이다. 오수혈 특집에서 살폈듯 합혈은 주로 만성병(慢性病)을 다스리는 데 쓰인다.(오수혈 특집 참조!) 위중을 찔러 피를 빼면 고질병이 다 나을 수 있다고 했던 것도 이 맥락이다. 위중은 만성이 되어버린 허리의 고질병을 고친다. 주목해야할 것은 토(土)혈이라는 것이다. 토(土)는 중재와 매개 그리고 변화를 담당하는 오행이다. 땅에 씨앗이 떨어지면 그것은 다음 해 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땅 위에 선다. 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토(土)다. 몸의 굴신 또한 움직임, 곧 변화다. 즉, 위중의 토(土)가 몸의 변화, 굴신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만든다는 것. “평소 운동 부족으로 근골이 뻣뻣하고, 허리를 굽힐 때 손가락이 지면에 닿지 않는 사람들은 근골이 유연해짐을 느낄 수 있다.” (신차이원화, 내 손으로 하는 경혈지압, 마사지 324, 국일미디어, 2010, p.240) 이것 모두 토(土)의 힘이다.


한 겨울 얼음장마냥 차가운 족태양방광경.


족태양방광경은 한 겨울의 차가운 얼음장 같은 물이 흐르는 경맥이다. 이 경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기운을 받을 때 차가운 한기가 동(動)해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주저앉으며 통증이 발생한다. 차가운 한기는 뜨거운 열기로는 중화시킬 수 없다. 둘이 상극인 탓이다. 둘이 붙여놓으면 한기는 한기대로 열기는 열기대로 요동친다. 한기를 중화시킬 수 있는 건 토(土). (土)의 중재와 매개의 힘을 이용하는 것. 이 힘으로 위중은 허리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고친다.

위중은 요통뿐만 아니라 아랫배에 열이 나고 아픈 것, 붉은 소변이 나오고 잘 나오지 않는 것, 코피가 줄줄 흐르고 멎지 않는 것, 다리가 약해져서 무릎이 틀어진 것, 반신불수(半身不隨),,땀이 나지 않는 것 등에도 쓰인다. 그러니 기억하자. 세상의 중심인 왕을 주저앉힌 것, 몸의 중심인 허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여기엔 모두 위중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기 쉬운 시대에 사는 그대들이여. 내 몸 안에 있는 오금동을 기억하라.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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