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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식탐으로 멍든 소장을 위한 혈자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21.

소장의 외침, 음식은 나다


올해도 어김없이 감기가 공격해 들어왔다. 이 감기와 일주일째 싸우노라니, 내 몸의 허약함이 다시금 무참하다. 내가 워낙 추위 타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근래 들어 운동이 뜸하고, 더불어 정신력도 나태해진 탓이 클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 사무실 안에만 종일 앉아 추위를 피하는데 급급했던지라, 그걸 시샘하는 사기에 더욱 쉽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예년에는 외부 출장이 잦아서 오히려 추운 기운에 단련되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그럭저럭 이불 뒤집어쓰고 며칠 자고 나면 괜찮아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최근에 따뜻한 사무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출퇴근시간에만 살짝 나가 지하철을 타니 추위에 단련되지 못한 몸이 그 순간의 추위를 못 참고 금세 감기에 걸려 버린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감기는 예년보다 훨씬 오래 머물렀다.


아이구 삭신이 쑤신다.


그리고 증상도 약간 달랐다. 물론 사기가 침범해서 목이 따끔거린 것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시에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머리가 멍해지면서 귀에서 초음파음 같은 소리가 한동안 울렸다, 멈췄다 한다. 하긴 밖이 너무 추우니까, 계속 목과 어깨를 필사적으로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런 소리는 더 커지는듯했다. 아마도 움츠러들면 들수록 귀 밑이 경직되니까, 귀가 제대로 안 들렸던 것도 같다. 사람이란 한두 번 이상한 제스처에 물들면 쉽게 빠져들기 마련이다. 움츠러드는 것도 이번 겨울에 물든 고약한 버릇이다. 아무튼 끔찍한 일주일이었다. 목은 따끔거리고, 이내 몸살이 등과 어깨부터 슬슬 번지기 시작했다. 귀에 이상이 생기면서, 또한 움츠러드는 빈도도 높아졌다, 더불어 초음파 소리도 심해지고, 점점 더 멍해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추위와 함께 손님은 귀와 목 양쪽 문을 두들기며 찾아온 셈이었다.


그런데 아픔들에 차츰 익숙해지던 중에, 다른 아픔이 찾아왔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허리가 땅기며 아팠다. 그런 증상과 함께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이 점점 주기가 짧아졌다. 동시에 귀에 열이 났다. 아니, 열은 그 전부터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니까 귓가에 맴돌던 초음파 소리 때문에 열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리에 익숙해지니 이제 열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설사가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10번은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한다. 이게 웬 일인가. 목이 컬컬하고, 몸살은 기세 등등이고, 아랫배는 주기적으로 아파왔다. 거기에다 귀에서는 '긱긱'거리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니,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천재들이 광기에 사로잡히는가?!



소장, 음식을 기억하다


일단 설사가 많이 난다는 말은 무슨 일일까? 서양의학에서 설사는 장운동을 마비시키고, 독소를 내뿜어 장의 벽에서 수분을 빠져나오게 하는 미세한 세균들에 감염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본다. 그래서 보통 설사가 났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독소가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들 한다. 장(腸)은 음식물을 흡수하고, 나머지 찌꺼기를 대변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기관이기 때문에, 설사가 난다는 것은 그런 흡수와 찌꺼기 처리에 이상이 있다는 말일게다. 그런데 장은 음식을 흡수할때부터 이 음식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식별한다. 만일 과거에 먹어본 일이 없는 이상한 음식이 들어오면, 장은 이를 거부한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역사적 판단이다. 내가 있기 전부터 신체에 각인된 그런 것으로부터 나오는 판단이다. 이처럼 신경 전달 물질과 호르몬의 측면에서 장은 뇌와 아주 유사한 기관이다. 뇌가 상황을 판단하듯이, 장은 음식들을 판단한다. 어쩌면 설사가 나는 것이, 이런 판단을 어기고 들어온 음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의학에서도 그런 유사한 인식을 보여주는데, 장중에도 소장은 오행 상 불(火)로서 심(心)과 같다. 음양으로 살펴보면 심(心)이 음(陰)이고, 소장(小腸)은 양(陽)으로 서로 짝을 이룬다. 사실 그래서 심장이 피로하면 반드시 소변이 노래지고 누기가 힘들어지는 등, 병증에서도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락상으로도 ‘심-소장-방광-신’이 한 계통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능도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심장은 영양분을 온몸에 분배하고 소장은 영양분을 섭취한다.


그리고 심장은 정맥혈을 폐에 보내고 소장은 소장 안에 있는 내용물을 대장에 보낸다. 또한 소장은 오부 중에서도 그 존재를 가장 알기 쉬운 존재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복통이 생기면 어린애도 그 동작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다. 이를 두고 소장을 양중의 양(陽中之陽腑)이라고 한다. 그것은 심장도 마찬가지다. 오장 중에서 가장 알기 쉬운 장이다. 그래서 심장을 음중의 양(陰中之陽藏)이라고 한다. 그런 소장에 의한 복통을 동의보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장병의 증상은 아랫배가 아프고, 허리뼈에서 고환으로 땅기며, 때때로 노책증이 있은 후에 귀 앞에 열이 나는 것이다. 아랫배에서 고환으로 땅기고 허리와 등골까지 땅기며, 통증이 명치로 치받는 것은 사기가 소장에 있기 때문이다. 소장의 기가 실조되면 설사가 난다. 소장에 기가 몰려있으면 아랫배가 아프고, 소장에 혈이 몰려있으면 소변이 막히며, 소장에 열이 몰려있으면 음경이 아프다.


─『동의보감』「내경편」, ‘소장부(小腸腑)’ 433쪽


장은 잘못된 음식을 먹었을 때 경고 신호를 보낸다. 특히 소장은 아주 독특하고 섬세한 기관인데, 이곳에는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음식뿐만 아니라 세대를 거슬러 우리 조상들이 먹지 못했던 음식까지 모든 것을 기록되어 있다. 즉 장은 좋은 음식과 해로운 음식들을 기억한다. 만일 해로운 음식이 들어오면 가스를 만들어서 뒤틀리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소장과 뇌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몸에 가당찮은 음식이 들어오면 소장은 자신의 기억을 검색해서 Yes, No를 판단하고서, 바로 공격한다. 아마도 우리가 아랫배가 아프며, 경련이 일어나는 것은 이런 기억의 신호이자 공격일 것이다. 소장은 한 마디로 음식을 기억하는 뇌의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그 자체로 심(心)이다. 우리는 심(心)으로 음식을 받아들인다.


빌어먹을.. 착한 소장이 화났다.

그런데 소장은 대체로 착한 기관인데, 왜냐하면 영양분을 흡수할 때, 정말 문제가 있는 음식인 경우에만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그는 웬만해선 성질을 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소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랫배가 당기듯이 아프다는 것은 소장에 이상이 생긴 것이고, 그것은 웬만해선 발생하기 힘든 상황, 즉 몸에 진짜 나쁜 일이 생겼다는 다급한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들은 곧바로 사기(邪氣)가 된다. 특히 그것은 열을 동반한 사기가 되어 위로 솟아오른다.


아마도 내 경우엔 이 열이 목에 들어온 사기와 맞물리면서 복통을 동반한 몸살로 바뀐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울러서 그 열이 귀를 공격해서 일시적으로 ‘이명’까지 발생시킨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 보건대, 나는 아마도 최근에 기름진 음식과 더불어서 방만한 식사를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야 그런 아픔이 생겨난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장은 그것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서 이리 성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소장의 신호, 음식은 나다


이처럼 소중한 소장을 주관하는 맥이 바로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이다. 특히 소장과 이명에 대해서 황제내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태양소장경이 주관하는 액(液)의 소생병은 (소장은 액을 주관한다.) 귀가 먹어 들리지 않고 (경맥이 청궁혈로 들어간다.) 눈이 노래지고 (경맥이 눈초리에 이른다) 뺨이 붓고 (뺨으로 올라간다.) 목, 아래턱, 어깨, 위팔, 팔꿈치, 아래팔의 외후렴(外後廉)을 따라 아픕니다.


─『황제내경』 ,「권상 경락제이」, 77쪽


수태양소장경은 새끼손가락의 끝에서 시작하여 어깨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결분으로 들어가 심(心)으로 얽고, 식도를 따라 횡경막을 뚫고 내려가 위(胃)를 거쳐 소장(小腸)에 가서 속한다. 또 한 가지는 결분에서 뺨으로 올라가 다시 귀로 들어간다. 이렇게 죽 나열해보면 ‘심-소장-귀’ 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랫배가 땅기고, 열이 올라 몸살이 나고, 여기에다 귀까지 이명이라면 바로 수태양소장경의 이 혈, 양곡(陽谷)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양곡은 손 외측 손목 가운데 예골(銳骨)의 아래 우묵한 곳에 있다. 수태양경맥의 기가 흘러가는 곳이니 경혈이다.


수태양소양경은 요렇게 흐릅니다.

 

(陽)은 음양(陰陽)의 양을 뜻하고 곡(谷)은 산 사이의 계곡 또는 살이 만나는 곳을 뜻한다. 이 혈은 완골(腕骨) 후방의 척골두(尺骨頭)와 삼각골(三角骨) 사이의 함요부에 있고 형태가 계곡과 같으므로 양곡이라 하였다. 즉 바깥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명명한 것이기도 하다. 열을 내리고 화기(火氣)를 없애는 효과가 있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눈과 귀를 총명하게 한다. 또한 이곳을 지압하면 눈이 아찔한 증상이 없어지며 멍한 귀울림증으로 인한 고생도 해결된다고 하니, 지금 내가 앓는 증상은 죄다 여기 있다. 특히 쌀쌀하게 바람 부는 가을이나 겨울철에 감기 때문에 목이 붓고 침 삼킬 때마다 따끔거리면서, 아랫배가 당기기도 하다면 이 양곡(보) 하나로 그 자리에서 풀어 줄 수 있다고 하니, 이리 간단한 방식으로도 몸살을 풀 수 있다.


몸살 감기에는 양곡혈을 꾹꾹


아마도 작년에 5~6년 간 채식을 끝내고 기름진 음식을 다시 개시하게 되었는데, 몸이 이것에 이제야 반응하는 것 같다. 몇달 전부터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신경 쓰이고 걱정스럽긴 했다. 몸은 분명히 기름진 음식들에게 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서 장에서 고기를 소화하는 데 필요한 이른바 ‘소화효소’가 분비되지 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입으로 고기가 들어가긴 하나, 속은 거북했다. 이게 아니더라도 지난 8개월간(세월은 정말 빠르다. 다시 고기를 먹은지 8개월이나 되었나니!) 음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육식을 다시 하게 되자 익힌 고기의 유혹이 식사 때 마다 되살아났다. 식탁 위에 생선 쪼가리라도 올라오면 입에 군침이 돈다. 행여 행사가 있어서 뷔페 같은 데라도 가면, 언제 먹으랴 이것저것 온갖 고기들부터 손이 간다.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에는 그저 모른 체한다. 분명 나는 소장의 입장에서 그리 미더운 보호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 마음은 그런 걱정을 이내 덮어버렸다. 그러던 차에 몸이 이 지경이 되었다. 소장은 기억한 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을 뿐이겠지만, 나로선 뼈아픈 후회를 일으키는 신호였다. 갈수록 음식이야말로 우리 몸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된다. 소장이 자꾸 신호를 보낸다. 음식이 바로 너라고. 아무래도 올해 다시 채식을 시작해야할 것 같다. 음식은 나다. 나는 음식이다.


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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