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에 바람이 분다, 소해(小海)
혹시 조인성, 송혜교를 보고 클릭하셨다면 아.... 낚을 의도는 없었습니다. -.-;;;
드라마 열혈시청자라면 제목보고 ‘어! 이거 어디서 본 듯한데’ 하셨을 거다. 그렇다. 요즘 한창 뜨는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패러디 했다. <혈자리 서당> 어떻게든 보게 하려고 이런 짓까지 서슴치 않는다고 핀잔하지 마시라! 아무 연관도 없는데 무턱대고 붙인 건 아니니까. ‘마디에 바람이 분다’에서 ‘마디’는 우리 몸의 관절을 말하고, ‘바람’은 인체에 병을 일으키는 사악한 기운 중에 하나인 풍(風)을 말한다. 고로 ‘관절에 풍이 생겼다’는 말이다. 관절에 풍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익힌 음양오행 상식으로 한번 추론해 보시라. 한의학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의학이다. 의학적 추론이 자연스러운 학문이니까 누구든지 나름대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해답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추론이 척척 되시는 분도, 영... 감이 안 오시는 분도 마디에 바람이 부는 건 뭔지, 혈자리 소해는 거기에 무슨 짓(?)을 하는지 나의 추론을 따라와 보시면 어떨까?
마디, 몸의 빈 공간 – 토의 철학
마디는 뼈와 뼈가 맞닿은 부분이다. 관절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서로 인접한 뼈가 움직일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는 부분을 말한다. 사실상 마디와 관절은 같은 부분을 가리키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마디는 위치에, 관절은 그 역할에 포커스가 있다. 먼저, 관절부터 보자. 우리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 걷거나 뛰거나 놀거나 뺑이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관절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관절이 어떻게 되어 있길래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지, 관절 속이 궁금하지 않는가? 대표적인 관절 중에 하나인 윤활관절을 보자. 윤활관절은 팔다리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뼈와 뼈 사이에 윤활액이 들어 있다. 말랑말랑한 테니스공처럼 작은 물주머니가 팔다리에 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 물은 달걀의 흰자위처럼 맑고 투명하고 끈적거리는데, 뼈에 붙어있는 물렁뼈(연골)와 더불어 쿠션 역할을 하면서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관절이 튼튼해야 다리 찢기도 가능하죠.
하지만 우리가 진정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관절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하지?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해 보시라. 거기에 답이 있으니까. (ㅋㅋ) 그렇다. 머리, 즉 뇌다. 팔다리는 뇌의 명령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 뇌 기능이 멈춰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은 몸통의 장기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똥오줌은 물론 월경까지 하는데 팔다리는 움직이지 못한다. 이것은 뇌에 문제가 생기면 팔다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음, 마디를 보자. 마디는 뼈와 뼈 사이를 말한다. 그 사이에 윤활액이라는 것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어떤 형(形)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뼈와 뼈 사이의 강(腔:속빌 강)이라고 말한다. 腔을 풀이하면 몸(月=肉)의 빈 공간(空)이다. 이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마디가 비어있지 않고 딱딱하게 형을 이루고 있다면 우리는 활동할 수 없다. 그렇다면 뼈와 뼈 사이에 위치하는 마디는 토로 추상할 수 있다. 토는 방위라는 공간적 의미로 봤을 때 한가운데인 중앙을 말한다. 가운데 있다는 것은 그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덕을 지녔다는 말일 터. 중용의 덕을 지니고 가운데 위치한 토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남쪽의 주장이든 북쪽의 주장이든 서로 잘 달래서 조화를 이루게 하는 능력이 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뼈와 뼈 사이에 위치한 마디는 이러한 토의 속성대로 뼈와 뼈 사이를 중재한다. 몸 속 빈 공간이 되어 스스로를 비우면서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하는 마디는 오행상 토가 분명하다. 목에서 화로 분산할 때 토가 중재하듯, 화에서 금으로 수렴될 때 토가 중재하듯, 뼈와 뼈 사이를 중재하는 마디는 스스로를 비우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중용의 덕을 지니고 가운데서 중재하는 덕을 지닌 土
또한 마디는 성장을 주도한다. 사람의 뼈도 마디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키가 크는 것은 뼈의 끝부분에 있는 성장판이 자라기 때문인데, 성장판은 부드러운 연골조직에 가깝다. 이 성장판은 마디에 있는 윤활액으로부터 보호와 자양을 받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듯한 것이 뼈를 자라게 하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니 이것이 비움의 철학, 사이의 철학, 토의 철학이 아닐까?
마디에 부는 풍한습
마디가 가지고 있는 중재자로써의 역할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증상들이 나타날까? 마디가 중재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뼈와 뼈 사이가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사이’에 문제가 생길 터. 사이의 공간에 염증이 생긴다든지, 가장 심한 경우는 뼈와 뼈 사이가 없어지는 형태, 즉 마디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현대의학에서는 이를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부른다. 환자 10명에 7명꼴로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뼈 사이 윤활막(윤활액의 가장자리)에 염증이 생기고 관절조직이 파괴되는 질환이다. 윤활막의 염증 때문에 열이 나면서 통증을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근육통과 피로, 강직 등의 가벼운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염증세포가 분열하면서 관절을 침범하고, 조직들을 서서히 파괴시켜 변형을 일으킨다.
헛... 15세에 류마티스가!!
류마티스 관절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퇴행성 관절염과는 차이가 있다. 퇴행성 관절염은 뼈 밑에 붙어있는 연골조직이 세월의 무게에 따라 점차 닳아 없어져 완충작용을 하지 못해서 생긴다. 주로 노년층에서 자주 발병하기 때문에 노인성 관절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류마티스 관절염이 염증성 관절염이라면 퇴행성 관절염은 비염증성 관절염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또한 류마티스 관절염은 자가면역질환이다. 자가면역이란 면역계가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이나 세균을 공격해야 하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내 몸의 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유전적 소인,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한의학에서는 역절풍(歷節風)이라고 한다. 제목대로 ‘마디에 바람이 분다’는 말이다. 바람이 그러하듯, 한 곳에 진득하니 있지 못하고 뼈마디를 돌아다니면서 아프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의보감』에서 소개하는 역절풍을 보자.
역절풍은 고방(古方:예로부터 전해오는 좋은 약방문)에서는 ‘통비’(痛痺:사지의 뼈마디가 저리고 아픈 병)라고 하였고, 요즘 사람들은 ‘통풍’(痛風:관절이 붓고 아픈 관절염)이라고 한다. 통풍은 대체로 혈이 열을 받아서 끓어오른 상태에서 찬물을 건너가거나, 습한 곳에서 서 있거나, 앉거나 누워서 서늘한 바람을 쏘여서 뜨거워졌던 혈이 한사(寒邪)를 받아 피가 탁해지면서 잘 돌지 못하게 되므로 통증이 생기는 것인데, 밤이면 통증이 심해지는 것은 사기(邪氣)가 음분(陰分)으로 돌기 때문이다.
─ 『동의보감』, 「풍(風)」, 법인문화사, 1051쪽
감이당에 없어서는 안 될 인용(引用) 기록유산 동의보감
역절풍은 혈이 열 받아있는 상태에서 풍한습(風寒濕)을 만났을 때 생긴다. 몸 안에서 화와 열이 몰리면 물 기운이 잘 돌지 못하고 습이 생긴다. 습과 열은 힘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습이 몰려서 생긴 열이 피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피가 상하면 힘줄은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힘줄이 오그라든다. 결국 상한 힘줄은 뼈를 간수하지 못하고 뼈마디가 뒤틀리게 된다. 『동의보감』에는 이럴 때 맛이 맵고 성질이 매우 세고 빠른 약을 써서 몰린 것을 헤쳐주라고 한다. 기를 잘 돌게 해서 어혈을 풀어주고 담을 삭혀야 병이 낫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역절풍일 때 먹지 말아야 할 것도 적어 놓았다.
대체로 맛이 신 것은 근맥(筋脈)을 상하게 하여 늘어지게 하고, 맛이 짠 것은 뼈를 상하게 하여 저리게 하며, 열이 나게 하여 통비(痛痹)와 마목(痲木) 등으로 변하게 한다. 이 병이 들었을 때 조심할 것은 반드시 물고기, 비린내 나는 것, 국수, 술, 장, 식초를 먹지 말아야 한다. 고기는 양에 속하여 화를 크게 도와주기 때문에 역시 잘 참작해서 먹어야 한다. 통풍이나 여러 가지 비증(痹證) 때도 다 이와 같이 하면 된다.
─『동의보감』, 「풍(風)」, 법인문화사, 1055~1056쪽
신 것, 짠 것, 화와 열, 습이 역절풍에는 금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신 것은 뼈마디를 상하게 하고, 짠 것은 진액을 엉기게 하고 그러다 보면 습이 생기고, 담이 생기고, 열이 생기고, 풍이 생기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자! 이제 오늘의 혈자리 소해로 들어갈 차례다. 음식으로 역절풍을 이겨낼 방도가 있다면 경맥에도 그런 혈자리가 있지 않겠는가. 그곳이 바로 소해다.
마디를 보(補)하려면 소해를 사(瀉)하라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
소해(小海)는 한자 그대로 풀면 ‘작은 바다’다. 그런데 여기서 小는 작다, 적다, 약하다의 뜻이 아니라, 소장경의 小를 가리킨다. 수태양소장경의 맥이 모여 바다가 된 곳이라는 뜻. 소장경의 맥이 바다를 이루었으니 소장의 장부병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침구갑을론』에도 소해는 소장경의 맥기가 한데 모여 있어서 소장경의 만성병 치료에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럼 소해는 어떻게 류마티스 관절염을 완화시키는 것일까? 앞에서 설명했듯이 류마티스 관절염은 염증성 관절염이다. 마디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은 그 부위에 열과 습이 충천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는 무더위와 습도가 높아지는 여름 장마철에 통증이 더 심해진다.
수태양소장경의 소해 반대편에 수소음심경의 소해가 있다. 두 혈자리는 혼동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수소음심경의 소해를 알고 싶은 분들은 혈자리 서당의 지난 포스팅 '중심을 잡는 탁월함, 소해혈' 참고
소해는 수태양소장경의 합혈(合穴)로 토의 기운을 가진 혈자리다. 토의 미덕은 중용에 있다. 비어있는 마디가 뼈와 뼈 사이를 중재하듯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을 섞어 각각의 성질을 잃게 하거나 가라앉힌다. 그래서 소해는 고온다습한 몸을 풀어준다. 딱딱하게 굳은 관절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한다. 소해에 침을 놓을 때는 수태양소장경맥이 흐르는 반대방향으로 놓는다. 이렇게 하는 것을 사법(瀉法)이라고 한다. 뼈마디에 생긴 풍한습을 없애줘야 하기 때문이다. 소해의 위치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팔뚝을 90도로 굽히면 팔꿈치부위에 가로무늬가 생긴다. 그 가로무늬 가장 바깥쪽, 즉 엄지손가락 쪽으로 움푹 파인 곳이 소해다. 소해는 류마티스 관절염 뿐만 아니라 하복부통, 이명, 중이염, 두통 등 열과 습으로 생긴 병에 주로 쓴다.
소해혈을 쓰면서 마디에 대해서, 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디는 뼈와 뼈 사이에 있어 빈 공간이라는 것, 그 빈 공간에서 성장을 돕고 유연한 움직임을 만드는 물이 흐른다는 것. 하여 토는 흙을 쌓고 쌓아 튼튼한 성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흙을 비우고 비워 유연한 흐름을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이라는 것. 토야, 너 참 멋지구나!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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