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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뻣뻣한 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후계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28.

담(痰)과 담쌓는 혈자리, 후계


아이구 담(痰)이야

아침이다. 베개 맡에 알람이 시끄럽게 울린다. 10분만 더 자고 싶은데... 짜증을 내며 눈감고 이불 밖으로 손을 뻗는데 알람이 안 잡힌다. 결국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리자 '악!' 누가 손날로 내리친 것 마냥 목이 뻣뻣하게 당긴다. 만날 베던 베개인데도, 가끔 재수가 없는 날은 자고 일어나서 목을 가눌 수가 없다. 목의 통증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포즈로 출근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동료가 묻는다. '왜 그래?' '아놔...잠 잘못자서 목에 담 걸렸잖아~'  담? 그렇다. 우리는 이럴 때 흔히 담 걸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담이란 무엇인가? 그것도 왜 하필 주로 목에 생기는 걸까? 이 작은 질문으로 오늘의 혈자리를 향해 출발해보자. ^^


아이구 담이야!!


담 그것이 궁금하다


『동의보감』에서는 ‘십병구담(十病九痰)’이라 하여 열 가지 병 중에 아홉은 담 때문에 생긴 병이라 했다. 도대체 담이 뭐길래 이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단 말인가? 우선 『동의보감』에 나온 담에 대한 설명을 보자.



담이라는 것은 진액이 열을 받아서 생긴 것으로, 열을 받으면 진액이 훈증되어 뻑뻑하고 탁해지므로 담이라 한다. (...) 담이란 것은 화염이 타올라서 병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담의 형태는 뻑뻑하고 탁하며 (...)

─『동의보감』「내경편」<담음>, 법인문화사, 2012, 365p 


담은 진액에서 생긴 것인데, 진액이 열을 받아 졸여진 것이 곧 담이라는 말이다. 그럼 진액은 뭘까? 인용문을 연타로 날려 미안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주리가 열려서 새면 땀이 줄줄 나는데 이것을 진(津)이라 한다"라고 하였고, 음식물이 들어가서 기가 충만해지고 윤택해지면 뼈에 스며들고 뼈와 근육을 굴신하면 골이 새어나와 풀리어 뇌수를 보익해주며 피부를 윤택하게 해주는데, 이것을 액(液)이라고 한다.

─『동의보감』「내경편」<진액>, 법인문화사, 2012, 350p


오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


그렇다. 결국 몸이 뻣뻣하지 않게,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진액인 셈이다. 그럼 진액은 어디서 생기는가? 바로 ‘밥’이다. 먼저 우리 몸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위를 거쳐 대장과 소장 등의 장기를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진액이 생성된다. 땀이면 진이라 부르고, 관절에 머무는 윤활액은 액이라 한다. 음양의 차원에서 보면, 외표로 흐르는 진은 양에 해당하고, 몸 속 관절에 고이는 액은 음이라 할 수 있다. 평소 진액은 우리 몸을 물처럼 흘러 다니면서 신체활동을 돕고 몸을 적셔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진액이 열로 인해 졸아들면 뻑뻑하고 탁해진다. 그것이 바로 담이란 놈이다. 그것이 기의 흐름을 방해해서 아프고 결리게 만든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열로 인해 생긴 담이 순환을 막으면서 더 많은 열이 발생하고, 결국 담과 열의 악순환이 몸에 뿌리박히게 된다는 점이다.


담 때문이야~ 담 때문이야~


(痰)이란 한자를 들여다보아도, 변 안에 불 화(火)자가 두 개나 들어있어 화열로 인해 생긴 증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담이 생긴다는 것은 열로 인한 물의 문제, 즉 수액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담에서 생긴 열로 물이 졸아들면, 진액 중 액(液)이 모여 있는 사지관절은 뻑뻑하고 아프게 된다. 그래서 담이 많이 생기면 뼈마디가 아프고 쑤셔 운신을 못하는 것이다.



담이 중초에 머물러 있게 되면 기혈이 오르내리는 작용을 방해하여 잘 돌아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열두 장기가 각기 그 직능을 잃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 허망하게 되는데, 이것을 사수증(邪祟症/정신병의 일종)으로 보고 치료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동의보감』「내경편」<담음>, 법인문화사, 2012, 376p 


담은 매우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관절염, 어깨 결림. 체기(滯氣), 가슴이 답답한 것 모두 담으로 인한 증상일 수 있다. 이처럼 담은 증상이 다양한 일상적인 병이다. 누구나 한두 개 쯤은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병. 하지만 한편으로는 담은 사지육신을 건사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담을 가래정도로 생각하고 코웃음 쳤다가는, 미치다 못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일상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면서, 어떤 병의 원인도 될 수 있는 담. 이런 담의 특징은 순환을 막는다는데 있다. 먹은 게 내려가지 않고, 순환해야 할 기가 통하지 않으니 머리도 아프고 속도 쓰리다. 게다가 담은 꼭 한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몸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기도 하고, 생기는 부위도 여러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 몸 전체가 담이 생기는 조건을 가진 건 아니다. 종아리나 뱃살을 안고 '나 담 걸렸어!'라고 외치진 않으니까. 우리 신체에서 주로 담이 새기는 곳은 바로 목과 어깨다. 도대체 왜 목과 어깨에 담이 자주 생기는 걸까?


아이구 목이야...


소중한 목 - 양경맥의 집결지

목은 우리 몸에 있는 6개의 양경맥(陽經脈)이 지나가는 통로다. 족태양방광경과 수태양소장경 등등, 거기다 음과 양의 성질을 가지고 몸의 상하축을 순환하는 임맥과 독맥도 목을 지난다. 『동의보감』에는 목의 중요성에 대해 이르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거양(巨陽)은 전신의 모든 양경(陽經)을 통솔한다. 그 경맥은 풍부혈에 이어져 일신의 양기(陽氣)를 주관한다."라고 하였다. 그러한즉 진실로 상한(傷寒)이 시작되는 곳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북쪽에 사는 사람은 다 털로 목을 싸고, 남쪽에 사는 사람도 허약할때는 역시 비단으로 목을 보호하는데, 속칭 삼각(三角)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대체로 허약한 사람은 뒷목을 보호하는 것이 좋다.

─『동의보감』「외형편」<경항>, 법인문화사, 2012, 729p


꽃샘추위가 오면 풍부혈을 지켜요!

거양은 곧 태양(太陽), 즉 태양경을 말한다. 태양경은 전신의 모든 양경맥을 통솔하는데, 이 경맥이 (風府)혈에 이어져있다고 한다. 풍부는 바람(風)이 머무는 집, 중앙관청(府) 같은 곳이다. 바람이 들어오기 가장 쉬운 곳이라 하여 풍부(風府)란 이름이 붙었다. 이 풍부혈도 목에 있다. 그래서 남쪽사람이든 북쪽사람이든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사이좋게 목을 싸매고 다닌다는 거다. 왜? 그래야 몸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으니까! 한편 얼굴은 추위에 아주 강하다. 한파 주의보가 내린 날, 장갑은 껴도 복면(?)은 챙기지 않는다. 에베레스트나 북극엘 가도, 눈썹에 고드름이 달리고 코에 간혹 동상이 걸릴지언정, 얼굴이 얼어 터지는 건 못 봤다. 왜 그럴까? 얼굴은 그야말로 양기가 몰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음경맥은 모두 목에서 몸으로 되돌아가지만, 여섯 개의 양경맥은 목을 지나 얼굴까지 순행한다. 양기로만 이루어진 곳이 얼굴이니, 추위에도 끄떡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기가 얼굴까지 전해지는 통로인 목은 어떨까? 당근 열이 많다. 그래서 목은 그만큼 진액이 마르고 담이 생기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덧붙여 목은 양기의 통로임과 동시에, 천지의 교합처라고도 한다. 머리(天/陽氣)와 몸(地/陰氣)을 이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글타, 목은 이렇게나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 목에 담이 걸렸다고? 오마이갓~~!

막힌 곳을 뚫어주는 후계


수태양소장경의 경맥


천지가 교합하고 양기가 지나가기에도 바쁜 목. 그곳에 불청객처럼 들이닥친 담으로 인해 고생하는 이들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정보가 있다. 우리의 만병통치서(?) 동의보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앞 뒷목이 아플 때는 후계혈을 취한다.” 그렇다. 목이 뻐근하거나, 베개를 잘못 베고 잤을 때 찾아야 할 혈자리는 바로 후계다. 왜냐? 후계는 수태양소장경의 수(輸)혈로 목(木)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먼저 수태양소장경은 어깨를 지나 목, 얼굴에까지 이르는 경맥을 말한다. 담이 주로 발생하는 목을 지나가는 것이다. 이때 수태양소장경의 혈자리 중 하나로 목(木)의 성질을 가진 후계(後谿)를 자극해주면 목(木)기운이 경맥을 타고 쭉쭉 뻗어올라가 목이나 어깨의 담을 제거해주는 것이다.

후계혈은 바로 여기


후계의 위치는 주먹을 쥐면 새끼손가락 옆쪽 볼록 튀어나온 살 아래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다. 뼈 뒤쪽에 움푹 들어간 곳이라 하여 후계(後谿)라고 한다. 담(痰) 뿐만 아니라 목디스크, 요통, 어깨 결림 등에도 주효하며, 다래끼, 두통, 이명(耳鳴/귀울림), 코피 등 머리 쪽에 열이 몰려 생긴 병에도 쓰이는 유용한 혈자리다. 



잦은 야식과 컴퓨터 업무로 어깨에 담을 지고 사시는 분들. 아마 많으실 거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어깨에 담 두어 놈이 올라타고 있는 것만 같다. 담은 일단 순환하지 못한 몸의 비명이므로, 몸을 움직여서 기운을 돌려주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피를 끈적끈적하게 만드는 기름진 음식도 열을 내고 담을 만드는데 일조하므로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오늘의 포인트는, 담이 왔다 싶을 때면 사정없이 후계를 자극하시라는 것! 


조현수(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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