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새로운 삶과 정치를 꿈꾸는 자, 전위가 되라!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전위는 새로운 삶과 정치를 꿈꾼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의심할 줄 알아야 행동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의심을 찬양한 바 있다. 아마도 실천하려면 따질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의미에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Chto delat’?, 1902)는 제대로 의심하고, 앞서서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 준 드문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언어가 혈혈단신 적진으로 들어간 장수의 호흡처럼 거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레닌도 통념에 자리 잡아 인기를 얻는 데 급급한 사람들과 레닌 자신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점(「서문」)을 분명히 했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레닌은 이들과 전쟁 중이었다.

레닌이 이 책을 쓴 것은 1901년 봄부터 겨울 사이이다. 당시 러시아 혁명가들은 농촌공동체가 곧바로 사회주의로 진입할 수 있다고 하는 ‘조야한 인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낡은 인민주의가 뒤에서 대중운동을 조정했다. 낡은 견해가 새로운 견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 레닌의 스승 게오르기 플레하노프(Georgii V. Plekhanov)도 맑스주의자의 가면을 쓴 채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다. 레닌은 스승의 낡은 견해와 단절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맑스주의를 구상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레닌은 낡은 견해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그 비판과 함께 기존의 맑스주의를 완전히 새롭게 창안한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와 함께 기존 사상과 단절하고 혁명가로서 비로소 독자적인 사상을 펼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레닌의 비판 :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 없다


우선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문제다. 레닌은 당시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노동운동이 ‘경제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경제주의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이나 환경 개선 같이 눈에 보이는 협소한 경제문제만을 목표로 삼는 입장이다. 경제주의자들은 이 입장이 ‘새로운 경향’이고, 따라서 이들에게 ‘비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적법한 투쟁만을 추구하고, 전제정치(차르 체제)에 대한 투쟁은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이다. 그래서 ‘비판의 자유’도 기회주의적 경향을 자유롭게 인정하자는 기만적인 자유일 뿐이다. 레닌은 이런 노동운동을 전제정치(차르체제)를 전복하는 정치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럼 어떻게 전환시키는가?

바로 뒤따라 나오는 문제가 ‘자생성’과 ‘의식성’의 문제이다. 노동운동이 경제투쟁에만 매몰된 이유는 노동자들이 ‘먼저 눈에 보이는’ 문제들부터 ‘순수하게’ ‘자생적으로’ 거머쥐어야 한다고 보는 데서 발생한다. 일견 노동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훨씬 오래, 훨씬 포괄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노동자가 현장에서 자생적으로 투쟁할 때조차 그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는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자생적인 운동을 강조하고 지도자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시도는, 당사자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로 노동자들에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만 강화하고 만다. 이건 하나의 역설이다. ‘자생성’의 틀에서는 뛰고 날아 봐야 부르주아 손바닥이고, 부르주아 완승인 셈이었다. 이를 간파한 레닌은 ‘지도자의 의식성’을 외부에서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선진적인 정치의식을 가진 혁명가들(외부의 의식성)이 경제투쟁에 매몰된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서 경제투쟁뿐 아니라 정치투쟁까지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혁명이론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 이르러 레닌의 그 유명한 테제가 나온다. — 혁명적 이론이 없다면 혁명적 운동도 있을 수 없다!


케테 콜비츠, <직공들의 행진>



이를 돌파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바로 ‘전위당’(前衛黨)이라는 새로운 조직이다. 우선 레닌이 말하는 전위투사, 직업적 혁명가는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1863)에서 소개된 ‘특별한 인간’ 라흐메토프와 같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나 감정을 뒤로 하고, 오로지 혁명에 모든 존재를 거는 진정한 혁명가로 소개된다. 만일의 경우 자신이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시험하려고 수천 개 못이 박힌 볏짚 바닥에 잠을 자 보는 장면은 혁명가의 강렬한 상징이다. 아마도 전제주의 국가에서 정치 경찰에 맞서 싸우려면 그런 정도까지 전문적으로 단련되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혁명운동에 전문적으로 단련된 직업혁명가들의 지도하에 ‘운동의 수공업성’을 탈피하고 규율 잡힌 운동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다. 이런 운동을 수행하는 조직이 바로 ‘전위당’이다. 당시 차르 체제의 압제하에서 공개적이고 느슨한 대중운동만으로는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레닌의 전술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레닌은 대중운동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운동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전위당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레닌이 보기에 대중운동을 뒤따라가며 노동자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오히려 노동자들을 모욕하는 것일 뿐이다.



레닌의 발명 : 전위는 혁명을 ‘혁명’한다


이처럼 혁명적 의식을 갖춘 혁명적 투사들의 출현은 자생적이지 않다. ‘자생적’이라는 말은 앞서 보았듯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기존 통념에 매몰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식적’이라는 것은 기존 통념과 질서, 다시 말하면 부르주아적 정치 질서와 방식을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다. 이는 전제주의 정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정치방식’을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는 레닌만의 독특한 정치학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위당’은 기존 질서를 떠나 혁명에 이르는 수없이 많은 길을 실제로 묶고 사실로 만드는 힘이다. 그 힘은 혁명을 발명하는 힘이다. 따라서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도 없다”는 테제는 “혁명은 혁명하는 방식조차 ‘혁명’한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의미에서 전위는 혁명하는 방식조차 끊임없이 혁명하는 자이다. 오로지 그럴 수 있을 때 전위는 전위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교수형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위당은 상당히 의미 있는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1917년 러시아혁명(10월혁명)은 이 전위당 모델의 승리이기도 했다. 혁명세력이 철저히 보안 속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차르 체제나 케렌스키 정부 같은 집권세력은 혁명세력을 일망타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혁명세력은 집권세력의 눈을 피해 노동자·병사들과 항상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특히 1917년 7월, 혁명이 사그라질 위기에 처했을 당시 볼셰비키가 극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스탈린 진영은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도 전위당 모델을 소련 공산당의 형태로 계속 유지하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전위당 모델이 갖고 있던 장점인 ‘보안성’이 러시아 민주주의를 억압한 꼴이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려 했던 레닌을 하나로 고정시켰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분명히 보여 준 사태라고 할 수 있겠다.

맑스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부르주아가 되기 위해 노동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르주아적인 삶의 양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안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르주아적인 삶을 모두 철폐하고 전혀 다른 삶을 꾸리려 한다. 이들은 부르주아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삶의 비전과 경로를 꿈꾼다. 그런 의미에서 레닌이 창안한 전위는 끊임없이 새로운 삶을 꿈꾸고, 실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맑스주의의 창조적 재발명이었다. 레닌의 말대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일 아닌가! 아마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매번 새로운 삶과 정치를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전위’가 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레닌은 시베리아 유형, 1905년 혁명의 실패, 오랜 망명과 당내 분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등 늘 파국적인 상황 속에서 매번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으며 항상 새롭게 혁명을 창안하고, 늘 책임 있게 그것을 실천하였다. 우리가 레닌을 다시 읽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정신, 그 실천일 것이다."


인물 톡톡 - 10점
채운.수경 엮음/북드라망
무엇을 할 것인가? - 10점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박종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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