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해요? 그럼 후박(厚朴)!
엿 사셔요~ 산 넘고 물 건너온 울릉도 후박엿이여~
후박엿, 울릉도 호박엿의 원조라고?
수년 전 울릉도에 갔을 때 후박나무(우리나라에서는 일본목련을 후박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목련과는 다르다)를 본 적이 있다. 다른 곳에서도 스치듯 본적이 있었지만 직접 가까이에서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녹색의 두터운 이파리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무껍질이 두터워 후박이라 불린단다. 한때 울릉도는 후박나무가 가장 흔한 곳이었다. 그런데 후박나무 껍질이 한약재로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벗겨내는 바람에 인가 가까운 곳의 나무들은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단다. 즉 마을사람들이 엿을 고을 정도로 많았던 후박나무가 지금은 주로 벼랑 같은 험한 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줄었다고 한다.
아, 그렇다고 후박만으로 엿을 만든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울릉도에서는 주로 옥수수가루에 맥아(엿기름: 소화를 돕는다)를 넣어 엿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후박껍질 추출물을 첨가함으로써 후박엿이라 불린 것이다. 달면서도 약간 쓴 맛이 나는 후박엿의 출현! 이것이 발음상 호박과 비슷하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호박엿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설도 있다. 아무튼 약이 귀했던 옛 시절, 후박성분이 들어간 엿이 아마 남녀노소 누구나 먹기 좋은 소화제였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럼 후박피는 어떤 약성을 가지고 있을까?
네가 후박의 쓴맛을 알아?
약재를 그냥 쓰면 너무 강해서 쓸 수 없을 때 한방에선 주로 볶거나 생강즙, 술 등에 축여서 쓴다. 즉 약물의 질과 치료 효능을 높이고, 조제나 보관의 편의를 위해 정해진 방법대로 가공 처리 하는 것인데 이것을 법제((法製 : 또는 포제)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약의 독성이나 자극성이 제거되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다음은 후박피에 대한 설명이다.
육질이 두껍고 자줏빛을 띠고 윤기가 나는 것이 좋으며, 얇고 흰 것은 쓰지 못한다. 두둘두둘한 겉껍질을 깎아버리고 생강즙에 축여서 구워 쓰거나 썰어서 생강즙에 볶아 쓰는데, 생강으로 법제하지 않으면 목구멍과 혀를 자극한다.
─『동의보감』, 법인문화사,「탕액편」p2018 )
단단하고 쓰고 독한 후박피
후박피는 법제과정을 거친 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약성이 강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후박피를 관찰해보면 겉모양새가 오징어 구울 때 오그라드는 것처럼 말아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후박피 조각의 냄새를 맡아보면 박하향 비슷한 냄새가 연하게 난다. 호기심이 발동해 단단한 껍질을 천천히 씹어봤는데 굉장히 쓰고 독해 나도 모르게 뱉었을 정도로 약성이 강했다. 내친김에 후박차를 끓여 맛보았다. 코로는 박하향을 품은 매운 냄새를, 혀로는 쓴 맛과 매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쓴맛이 강하고 매우며 방향(芳香)이 있음’ 그리고 ‘따뜻한 성질’이 첨가되겠다. 어떻게 따뜻한 성질인 줄 알았냐고? 매운 맛이 있는 것은 대개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 예를 들어 매운 고추를 먹었을 때 입안이 불난 듯 화끈거려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던 경험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후박의 성질(따뜻하고 맵고 쓰고 방향 있음)은 우리 몸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뭉치고 막힌 곳 뚫어 뻥!
우리 몸의 어딘가에 막히거나 뭉친 것이 있어 전체적인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끼고 그것이 때로는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흔한 예로 음식을 먹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속이 답답하고 더부룩할 때 우리는 소화제를 찾는다. 이 때 한방에선 평위산을 많이 쓴다. 평위산은 막힌 것을 뚫어주고 헤치는 약이기 때문이다. 이 평위산에 들어가는 약재가 바로 후박이다. 그렇다면 후박은 뭔가 막혀서 머물러 있는 것(滯)을 뚫어주는 작용이 강할 거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잠깐 『동의보감』의 내용을 살펴보자.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쓰며(일설에는 맵다고 함)독은 없다. 여러 해 된 냉기와 뱃속이 창만(脹滿)하고 부글거리며 소리가 나는 것, 식체(食滯)가 소화되지 않는 것을 치료하고 위기(胃氣)를 아주 따뜻하게 해주어 곽란(霍亂)으로 토하고 설사하며 경련이 나는 것을 멎게 하며, 담(痰)을 삭이고 기를 내리며, 장위(腸胃)의 기능을 좋게 하고, 설사와 이질과 구역을 치료한다.
─ 『동의보감』, 법인문화사,「탕액편」,p2018
요컨대 후박은 중초 즉 뱃속을 따뜻하게 하여 비위의 기능을 좋게 하는 약임을 알 수 있다. 후박의 작용을 성질에 따라 좀 더 세분해서 설명하자면, 매운 맛은 기가 막혀 헛배가 부르면서 그득한 것을 잘 통하게 하여 뱃속의 부글거림을 가라앉히고, 쓴 맛은 기가 위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내려서 담을 삭이고 토하는 것을 그치게 한다. 그리고 후박의 방향은 습한 것을 기화되어 흩어지게 하고, 뭉쳐 더부룩한 것을 풀어준다. 후박처럼 방향(芳香)을 지닌 약물은 대개 휘발((揮發 : 액체가 기화되어 흩어짐), 방산(放散 : 풀어서 헤침)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에네르기 파처럼 뭉치고 막힌것을 뚫어주는 후박!
또, 같은 병이라도 허증(虛症)인지 실증(實症)인지에 따라 쓰는 약이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실증일 경우에는 사(瀉)해주고 허증일 경우에는 보(補)해준다. 예컨대, 복창(腹脹 : 배가 그득하고 팽창한 증후)의 치료에 실증일 경우에는 후박을 쓰고 허증인 경우에는 인삼을 쓴다. 실증일 경우, 무거운 습으로 인한 비위(脾胃)의 복창을 다스려야 하므로 그 습을 빼주는 후박을 쓰고 허증일 경우엔 허약한 비위를 보(補)해주는 인삼을 쓴다는 말이다. 가령 실증일 경우에 사(瀉)해줘야 하는데 후박대신 인삼(補)을 쓰면, 인삼은 인체 내에 있는 병사(病邪)의 세력을 더욱 강하게 하여 병이 낫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병증의 허실(虛實)에 맞게 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한약의 보사성능(補瀉性能)에 대해 덧붙인다. 보(補)는인체의 기혈이나 장부의 기능이 허손(虛損)되어 음양의 평형을 상실하였을 때 허한 쪽을 보충해줌으로써 평형을 회복시켜주는 치료법이다. 즉 보(補)는 항상 인체의 허약한 부분을 보익해주고 각 기관의 기능을 증강시켜줌으로써 질병에 대한 면역능력을 높여준다. 반면 사(瀉)는 병의 원인을 제거하여 병리상태를 정상으로 바로잡아주고 신체기능을 조절해주며 병세의 진행을 저지시켜준다.
후박, 다른 약들의 효과도 쑤욱~ 높여주지
후박은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배합되는 약물에 따라 그 약성의 효과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일체의 서병(暑病)과 토사곽란을 치료하는 향유(香薷, 노야기)라는 약재는 후박이 함께 배합됨으로써 그 효과를 한층 높일 수 있다. 향유산(향유, 후박, 백편두로 조제됨)이 그 대표적인 약이다. 그럼 향유산(香薷散)을 처방한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이야기 속 경극 배우와는 달리 두번 다시 부탁하고 싶지 않은 하하와 홍철이의 경극 ㅋㅋ
예전에 유명한 북경 경극 가수가 있었다. 무더운 음력 6월, 그는 성공적으로 가극을 마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공연을 본 어느 부호가 거금을 내놓으며 극장주에게 다시 한 번 그 가수의 무대를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는 다시 무대 위에서 미친 듯이 열연했다. 그런데 무대를 내려와서 화장을 지우던 그가 토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부호는 그에게 명의를 보내주었다. 의사는 가수의 온 몸이 땀투성이며, 호흡이 촉급(促急)함을 알았다. 맥을 짚어보니 여섯 맥(양손의 촌관척맥)이 모두 힘이 없어 잘 잡히지도 않았다. 의사는 서사(暑邪)가 심(心)을 공격한 증세라고 말하고는, 집안 식구에게 신발 한 짝을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고대인들이 돌덩이나 흙덩이를 불에 달구어 인체의 국부를 따뜻하게 해주어 한(寒)을 몰아내고 통증을 줄였듯이, 의사는 신발을 불 위에 쪼여서 뜨겁게 한 후 가수의 배꼽 위를 슬슬 문질러주었다. 한참 후에 가수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 향유산을 복용시켰다. 『동의보감』의 다음 내용을 보면 향유산을 처방한 까닭을 알 수 있다.
더위로 인해 곽란이 생겨 토하고 설사하며, 배가 아프고 근육이 뒤틀리며, 사지가 싸늘한 것을 치료한다. 급히 이 약을 달여 찬물에 식혀서 먹어야한다. 다른 약으로 구하지 못한다.─ 『동의보감』, 법인문화사,「잡병편」, p1274
즉 향유산은 더위로 인한 열을 발산시키고 습을 제거함으로써 토사곽란을 멈추게 하며, 비위의 기능을 회복시켜줌으로써 싸늘했던 사지에 온기가 돌게 해주는 약이기에 처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례를 통해 보건대, 여름철 여행갈 때 물, 기후, 음식 등 환경 변화에 의하여 갑자기 발생되는 질병에 구급상비약으로 준비해가면 유용할듯하다. 가루약이니 휴대하기도 간편하다. 이 외에도 후박은 습(濕)을 없애주는 창출과 함께 배합하면 비위의 불필요한 습체(水氣가 몰린 것)제거에 좋고, 기를 강하게 돌려주는 지실과 배합하면 식체(음식물이 위나 장에 정체된 상태)에 효과적이며, 열을 똥으로 잘 빼내는 대황을 배합하면 열체로 인한 변비를 잘 해소시킨다. 다시 말해, 먹은 음식을 소화하고 싸는 기능이 원활하지 않을 때 후박이 뚫거나 내려줌으로써 속을 편안하게 해줌을 알 수 있다. 다만 후박의 약성상 임신부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달달한 맛으로 다른 약들을 잘 조화시키는 대추나 감초와는 달리 후박은 쓰고 매워 우리 입에 잘 감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주 무기가 되어 뚫고 흩어주는 작용을 확실하게 함으로써 아픈 사람의 고통을 물리친다. 마치 삶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고생했던 경험이 큰 힘이 되듯 말이다. 하여 후박은 당당하게 말한다. “쓴 약이 몸에는 더 좋은 법이여!”라고. ^^
안순희(감이당 대중지성)
아무리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지만... 언제나 약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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