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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본초서당

봄에 피고지는 부지런한 본초, 진통작용을 하는 현호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11.

아픔, 현호색과 함께 사라지다



약이 되지 않는 풀은 없다?!


옛날 옛적 깊은 산골에 약초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이 그에게 “이 산에서 약이 되지 않는 풀을 하나만 구해 오면 하산해도 좋다.”고 하자 그는 매우 쉬운 일이라 생각하고 풀을 구해왔지만 가지고 가는 것마다 퇴짜를 맞으며 십년이 흘렀다. 이제 그의 눈엔 약으로 쓰이지 않는 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낙담하여 “도저히 그런 풀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스승은 “이제 하산 하여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하고 싶은 말은 어떤 풀도 그 특성을 잘 알면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째서 일까?


이건 뭐 세상에 약재가 아닌 것이 없으니...천하의 장금이도 약재는 어렵다.


약은 모자라는 기운을 돋우거나 넘치는 기운을 덜어내어 몸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몸 밖에서 취하는 것이다. 약은 치우친 몸이 균형을 되찾기 위해 취하는 몸 ‘밖’의 것, 다시 말하면 ‘남’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그 ‘남’이 약이 되기 위해서는 나와 비슷한 ‘남’이 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치우친 내 몸의 균형을 잡아 주기 위해서는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치우친 ‘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많이 치우쳐 있으면 ‘남’도 많이 치우쳐 있어야 약이 된다.

그런데 특정한 기운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독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부자의 경우 뜨거운 기운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다시 말하면 너무 뜨거워서 사약으로 사용되는데 몸이 너무 찰 경우 적정 양을 사용하면 약이 된다. 이렇듯 내 몸이 지나치게 치우쳐있으면 독을 약으로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치우쳐 있는 만큼(그건 어떻게 보면 나도 ‘독’하다는 뜻이니까) 독한 사람, 지독한 사건을 만나 된통 홍역을 겪어야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 아닐까^^? 어쨌거나 약은 이러한 것이기 때문에 풀을 약으로 쓰기 위해서는 풀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풀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자란 곳과 계절, 모양, 생활상을 살펴야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의학에서는 본초의 특정 성분이 몸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그 본초가 자란 땅과 계절의 기운, 다시 말하면 공간성과 시간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초가 어떤 시공간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거기서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식물의 생활상을 잘 살펴야 한다(가령 꽃이 밤에 피는지 낮에 피는지 등등). 또 본초의 성질은 형태를 통해 유추할 수 있으므로 형태를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초의 성질과 형태와 관련해서는 본초서당 ‘마늘’의 형태부분 참조)

 

 너무 부지런한 보랏빛의 묘약


각설하고, 오늘의 본초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요즘 산이나 들을 걷다보면 아주 오묘한 보랏빛 꽃 무더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몸을 낮추고 가까이서 보면 꽃 하나하나는 마치 종달새의 머리 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봄바람에 흔들리는 이 꽃을 종달새가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노래를 하는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무리지어 노래하는 보랏빛 종달새의 이름은 현호색이다.


종달새마냥 옹기종기 모여있는 현호색


현호색은 한창일 땐 제비꽃보다 훨씬 쉽게 볼 수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낯설다. 그 까닭을 식물학자 이유미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현호색이 부지런하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몸을 녹이면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곧바로 꽃을 피워 이른 봄 한 달을 살다가는 열매를 맺어버린다. 다른 식물들처럼 꽃이 지고 나면 잎이라도 달고서 여름을 보내다가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을 앞에 두고 죽는 것이 아니고, 봄에 이 모든 일을 마치고는 흔적도 없이 땅에서 사라져버린다.” ( 『한국의 야생화』, 217쪽) 그래서 바로 지금 흙길을 밟아보지 않으면 한두 달 새 부지런히 제 모든 생애를 살고는 사라지는 현호색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천남성은 사약으로 사용될 만큼 독성이 강하다.


그런데 혹시 운 좋게 현호색을 만나더라도 꽃을 따먹는 낭만적인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천남성이나 미치광이 풀 정도로 강한 독은 아닐지도 그 야리야리한 꽃엔 독이 있기 때문이다. 그 독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생애를 마치고 사라지는 생활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 폭발하는 양기이고, 다른 하나는 모르핀에 견줄 정도의 진통 작용이다. 그래서 잘못 쓰면 몸을 상하게 되므로 그 성질을 차분히 살피고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 보는 것이 좋겠다.

현호색은 뿌리를 거두면 덩이줄기가 달려 나오는데, 덩이는 달래의 덩이와 비슷하지만 달래보다 두 배정도 크고, 일 년 내내 어두운 땅속에서 지낸 것 같지 않게 표면이 하얗고 겉껍질을 벗기면 속은 노랗다. 현호색은 연호라 부르기도 한다. 보통 풀 나무의 이름엔 그 특징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현호색도 예외는 아니다. 첫 자인 검을 현(玄)은 이 풀이 음(陰)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꽃의 색인 보라는 흰색, 푸른색과 더불어 음(陰)에 속한다. 또 꽃잎이 4장이라는 것도 음적 성질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짝수는 음수로 본다. 그래서 본초를 볼 때 꽃잎이나 잎이 짝수로 나는 것에는 음적인 속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엄청난 양기를 저장하고 있다는 현호색의 덩이줄기


물론 보라색엔 양적인 속성을 의미하는 붉은 빛이 잠재해 있으며, 양기가 충천하는 봄에 나서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사라지는 전 과정을 마치는 만큼 단번에 뚫고 나가는 힘이 강하다. 이 힘은 덩이줄기에 잘 응축되어 있다. 본시 덩이줄기란 땅의 양기를 한껏 뿜어 올려 든든히 저장하느라 뚱뚱해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엔 폭발적 양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맛 또한 폭발하는 맛인 매운맛을 지닌데다 더운 기운을 품고 있다.(덩이줄기의 폭발력은 마늘을 참조)  때문에 이 부분을 약재로 쓰는 것이다.

이렇듯 현호색에는 양적속성이 강하지만 그럼에도 약성이 장부의 음경(수족태음경, 족궐음경)에 작용하는데 현(玄)이란 글자는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지 않고 잡아낸 것이리라. 또 둘째 자, 오랑캐 호(胡)를 통해 척박한 땅에서도 억척스럽게 잘 살아가는 생명력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꼬일 색(索)은 싹이 꼬이면서 돋아나고, 줄기가 중간 중간 뭉쳐 덩이져 있는 특성에서 유래한 것인데, 덩이줄기에서는 뚫고 나가기 위해 응축된 힘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음양이 오묘하게 결합하여 생긴 보랏빛의 현호색은 양적인 속성을 약으로 쓰지만 음경에 작용한다. 그렇다면 임상에서는 현호색이 어떻게 쓰였을까?

 

풀어주고, 어루만져 통증을 해결

 

해산 후 어혈로 생긴 여러 가지 병을 낫게 한다. 월경이 고르지 못한 것, 배 속의 혈괴, 붕루, 산후혈훈(어혈로 인한 어지럼증)을 낫게 한다. 다쳐서 생긴 어혈을 삭게 하고, 유산시키며 징벽(癥癖)을 삭히고 어혈을 헤친다. 기병을 치료하며, 심통(가슴앓이)과 소복통(아랫배의 통증)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좋다.

『동의보감』, 「탕액편」, 여강, 3013쪽


또한 『본초강목』에서는 기와 혈이 막혀서 생기는 병인 혈중기체(血中氣滯)와 기중혈체(氣中血滯)를 풀어서 일신의 상하에 모든 통증을 다스리며, 쓰임이 적중하면 신묘한 효과를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전해 오는 사례를 하나 보자.


우리 눈엔 그냥 보통의 풀들이 소중한 약재로 제시되어 있는 본초서당의 교과서, 본초강목


형목왕의 비(妃) 호씨가 메밀로 만든 면을 즐겼는데 자주 화를 냈다. 그러다 위에 병이 들었는데 가슴앓이가 심해 통증을 참아낼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의원들이 약을 썼지만 목구멍으로 약이 넘어가기 전에 모두 토하니 효과가 없었다. 덩달아 대변도 수일씩을 못 보았다. 『뇌공포자론(雷公炮煮論)』에 심통으로 곧 죽을 듯 하면 급히 현호색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현호색을 가루 내어 따뜻한 술에 타 먹게 했더니 비로소 토하지 않았는데, 약이 들어가자 곧 변을 보고 통증이 사라졌다.


임상사례나 약성가(한약의 특성을 정리해 구전되어온 노래)의 처방을 보면 활혈거어(活血祛瘀 : 혈을 생기 있게 하고 어혈을 없앰)와 지통(止痛 : 통증을 그치게 하는 것)은 현호색의 매우 중요한 효능이다. 기가 통하지 않으면 혈 역시 잘 통하지 않고 정체되어 어혈이 생기는데, 어혈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생명활동을 크게 저해한다. 그럴 때 몸은 통증을 느끼게 함으로써 어혈의 존재를 알린다. 현호색은 기와 혈을 순환시켜서, 기혈응체를 풀어주어 통증을 해소시킨다. 그래서 타박상으로 멍이 들고 부은 데에도 사용할 수 있고, 몸에 혈액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여 생기는 가슴의 통증이나 팔다리의 통증, 월경이 고르지 못한 증상, 임산부가 해산 이후 생기는 통증이나 현기증, 가슴앓이와 아랫배가 아픈 것을 치료한다. 다만 임신을 했을 때에는 유산을 유발 수 있으므로 사용하면 안 된다.

이렇듯 현호색은 막힌 기혈을 뚫어 통증을 없애기도 하지만 양귀비처럼 마취, 환각작용에 의해 통증을 없애기도 한다. 그래서 제약업계에서는 뛰어난 진통효과에 주목하여 현호색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진통제를 만들어 두통이나 치통 등에 사용하고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른 것은 유의하세요

 

보랏빛 진통제 현호색으로 본초서당의 활명수 시리즈가 마무리 된다. 현대인의 체기를 시원하게 내려준 활명수는 ‘평위산(활명수편 참고)을 기본으로 하여 몇 가지가 첨가된 약이다. 예전엔 평위산 만으로 웬만한 체기를 다스렸지만 지금은 약효를 더 높여야만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먹거리와 생활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미 활명수에서 이야기 했듯이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이고 있으니 식체(食滯)를 풀려면 더 강력한 약이 필요해진 것이다. 현호색이 활명수에 첨가되면서 행기파혈(行氣破血 : 기를 돌리고, 어혈을 없앰)과 진통효과가 높아졌다. 


과식하지 말고 적당히 드세요.


활명수는 생을 빠르게 마무리하는 속전속결의 명수 현호색의 도움을 받아 빠르고 강하게 막힌 것을 뚫고, 아픔을 가라앉히게 되었다. 하지만 빠르고 강한 행기파혈 작용은 기를 손상시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강력해진 소화제 활명수를 남용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보라색 묘약 현호색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양생적인 삶, 즉 적게 먹고 적당히 움직여 몸에 담음이 생기지 않게 하는 삶이 먼저 아닐까?

 

오선민(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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