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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詩간지

속이 깊어도 너~무 깊어 알 수 없는 임수 사람!

by 북드라망 2012. 12. 8.

壬水 - 알 수 없는 마음

호수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 만하니
눈 감을밖에


블라디미르 쿠쉬, <존재의 응시>



물의 달, 壬子월이 왔다. 9번째 시간지를 준비하면서 이번에도 적당한 시를 물색한다. 사실 조금 찔리기도 했다. 이거 너무 잘 알려진 시 아닌가? 혹여 독자들이 진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나? (이렇게 나의 얕은 밑천이 다 뽀록난다^^)


하지만 사실, 임수는 나에게 가장 알 수 없는 천간이다. 예전에는 나머지 오행을 모두 품은 토(土) 기운을 가장 알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토사람들의 덤덤함은 일관되기라도 하지! 아마 내가 평생을 가도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은 내 남동생일 것이다. 그 아이의 일간은 임수다. 그 녀석은 과묵하기는커녕 아주 가볍고 장난스럽다. 내가 아무리 구박해도 오버액션과 막말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_-;). 그런데 이렇게 가벼운 아이가 불쑥불쑥 돌연 다른 사람처럼 돌변할 때가 있다. 그렇게 날뛰는 와중에도 상황을 꿰뚫어 보는 눈, 호쾌함 안에서 우울함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그녀석이 낯설다. 또 내가 경험했던 임수 사람은 같이 공부하는 언니 중 한 사람이다. 이 분은 내 동생과는 정반대로 첫인상부터 과묵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고 좋다싫다는 말도 잘 안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청난 과격파였음이 드러났다! 도대체 어떻게 이 모습을 감추고 지금까지 살았는지…. 예고도 없이 모드전환이 이루어지고, 진심이 드러난다. 뚜렷한 경계 없이 어느 순간에 확 범람하는 이 정서.

 

이것이 내가 본 임수의 모습이다. 수(水) 기운 중에서도 양기(陽氣)인 임수는 바다, 호수, 댐 등등의 큰물을 상징한다. 물은 투명한 성질이다. 하지만 이 물이 모여 깊이를 이루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수면 위는 잔잔해도 수면 밑에서는 수백 종의 생물들이 자생적으로 생태계를 이뤄, 도대체 저 밑바닥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 건지, 호수를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 시에도 호수가 나온다. 하지만 시를 그냥 얼핏 보면, ‘호수’는 결국 내 얼굴은 가려도 널 보고 싶은 마음은 도저히 못 가리겠다는 닭살멘트를 위한 수식어처럼만 보인다. 내 얼굴크기 작다는 자랑과 널 보고 싶어 죽겠다는 염장질(?)을 단 30글자에 담아낸 이 용자시인. (교과서대로 해석하면 그리움을 절절하게 성찰한 시라고^^)

 

그런데 한 줄 한 줄 곱씹어 읽다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왜 하필 호수였을까? 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호수’에 빗대고 싶었을까? 호수는 거대한 물이다. 하지만 시인이 단지 ‘크기’ 때문에 그리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 거다. 세상에 커다란 것은 바위, 산, 들, 하늘, 태양 등등 많고 많으니까. 호수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물이라는 유동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물은 오행 중에서 움직임이 가장 자유롭다. 땅으로 스며들 수도 있고 지면을 따라 흐를 수도, 공기 중으로 날아가거나 얼어버릴 수도 있다. 호수처럼 옴폭 파이면 그 안에 수많은 것들이 살게 된다. 어떤 고정된 상태도 거부한  이것이 바로 30개의 글자 속에서 ‘호수’라는 짧은 단어를 통해 시인이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네가 없으니까 슬픈 표정, 슬프다는 단어, 당장 이런 것들은 고작해야 “손바닥 둘로 / 폭 가릴” 수 있는 것이다. 얼굴은 모든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는 간판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진심은 자신조차도 판단불가능한 것이다. 내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다. 뭐가 튀어나오고 흘러 다니고 폭발할지 예측불가다. 너를 향한 마음도 ‘그립다’라는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한 호수다. 큰물이 범람하듯 나에게 주어진 표현수단의 경계를 범람하는 마음. 그 운동의 정체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저 “눈 감을 밖에.”


깊고 깊은 바다처럼, 이들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 시는 포커페이스에 달인인 임수의 시라고 해도 좋겠다. 그들의 깊은 마음은 거대한 바다와도 같아서 철썩거리는 그 움직임이 표정이나 감정으로는 좀처럼 모습을 다 드러나지 않는다. 하긴, 꼭 임수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두 손으로는 가릴 수도 담을 수도 없는 마음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내 마음에 거대한 호수 혹은 바다가 있는 것이다. 의뭉스럽다고 말하지 말라,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이 심연을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리 역시 눈 감을 밖에(^^).


 

_ 김해완(남산 강학원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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