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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詩간지

신금의 예민함은 타고난 장인 기질!

by 북드라망 2012. 11. 10.

辛金 - 아프니까 장인이다!


칼날도 아프다 


                                  남혜숙

어느 날 사과를 깎다가 베인 손가락
아프다고 소리치다가
언뜻 칼을 보았다
파랗게 질려 있는 칼의 아픔


예민함이란 장점일까 단점일까? 생긴 건 비록 붕어이지만 나라는 사람도 가끔씩 이유 없는 성격파탄자가 되는 순간이 있다. 히스테릭을 부리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왜 나는 이런 예민한(?!) 성정을 타고 태어난 것인가. 몸만 괴롭고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오직 ‘눈치’ 뿐이다! (나는 처세술을 지향하는 을목이다ㅋㅋ) 하지만 의역학에서 늘 말하듯 이 세상에 고정된 실체는 없다. 예민함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도 수만 가지의 다른 양상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 나의 어중간한 예민함과는 질적으로 다른 예민함, 이른바 ‘예술가의 신체’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신금(辛金)이라고 본다.

신금은 음금(陰金)이며, 십천간 중에서도 가장 음(陰)적이다. 경금만 해도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의 뜨거움을 가슴에 품고 있고, 임수와 계수 같은 수기는 앞으로 태어날 봄의 씨앗을 감추고 있다. 그에 반면 신금은 낙엽을 떨어뜨리는 날카로운 가을의 정기를 순수하게 농축시킨 엑기스라고 하겠다. 그래서 신금인 사람들은 태생이 장인이다. 끊고, 깎고, 자르고, 다듬고, 새겨 넣기. 인류가 이러한 도구의 능력을 손에 넣었을 때 비로소 문명이 탄생했다. 실제로 그들은 만들어내는 능력이 출중하다. 마지막 티끌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까지 겸비한 ‘Born to 장인’인 셈이다.


이탈리아 장인의 한땀한땀이 떠오른다...^^;;


그러나 겉으로만 봐서는 신금의 파워를 모두 알 수 없다. 신금의 칼날이 옆의 사람을 향할 때, 그렇게 우리 자신도 세공당하는 순간, 그제야 우리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신금 사람들은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절대로 까먹지 않는 영민한 기억력과 집요하게 되갚는 끈기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에게 원한을 사면 좀 곤란하다^^;) 그러니 우리 또한 언제 “사과를 깎다가 베인 손가락”을 입에 물고서 “아프다고 소리칠”지 모른다. 아야, 좀 살살해! 하지만 칼날이 잘 갈아졌다고 칭찬하다가 나중에 내 손이 베였다는 이유로 트집 잡는 건 좀 치사한 일이 아닐까? 이것이 어찌 칼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장인정신과 예민함이야말로 칼을 완성시키는 ‘양날’이기 때문이다.

이 양날은 사실 누구보다도 신금 자신을 옥죈다. 실제로 보면 신금의 캐릭터는 별로 무섭지(?) 않은데, 왜냐하면 신금의 벡터는 기본적으로 내면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칼날이 가장 많이 세공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혜숙 시인의 <칼날도 아프다>라는 시는 과연 신금을 위한 소나타라고 하겠다. “파랗게 질려 있는 칼의 아픔.” 가만히 생각해보면 칼날을 갖기 위해서 가장 많이 깎여야 하는 건 칼 자신이다. 뭔가를 벤다는 것은 모든 사물 중에서 가장 높은 밀도와 얇은 두께를 유지한다는 뜻이고, 칼날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과 마주치든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칼의 강함은 칼이 견뎌야 했던 압력에 비례한다. 하지만 더욱 날카로워지는 것은 칼이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비유는 현실에서 즉각 적용되는데, 가령 신금 중에는 감정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칠정상’을 많이 입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한마디라도 쏘아붙이면 괜히 그 한마디가 맘에 걸려서 밤잠을 설치는, 의외로 푼수캐릭터(^^)인거다. (관찰해보시길!)


나는 신금이 예민하다는 걸 이렇게 이해한다. ‘벨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그들에게는 똑같은 상황이라도 그렇지 않은 남들보다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늘 칼을 피할 일만 생각한다. 하지만 칼 자신은 매번 결정해야 할 것이다. 벨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떻게, 얼마나, 어디를 세공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꾸로, 이만큼의 강도 없이는 우리는 뭔가를 ‘베거나’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수고로움을 감당하지 않고 뭔가를 얻어가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욕심이 아닐까? 신금이 생각하기를 그치고 칼을 휘두르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가장 분명한 형태를 손에 넣는다. 한계를 짓는 것과 형태를 갖추는 것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따라서 수많은 한계선들을 이해하고 있는 자의 손끝에서 필연적으로 가장 수려한 작품이 태어나는 것이다.


페르난도 보테로, <정물>


여타의 성질들이 그런 것처럼 예민함은 그 자체로 단점도 장점도 아니다. 언제나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의 문제다. 나로서는 수행을 감수하는 이 능력자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을목으로 일단 칭칭 감아올리면…뭐가 어떻게 만들어지지 않을려나? 쩝.) 어쩌면 ‘칼날도 아프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비로소 칼이 되는 건 아닐까! 자꾸만 흘러가는 세상 위에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뭔가를 박아나가는 장인, 사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갈고 닦고 있는 셈이다. 존재 자체가 칼이자 보석. 예술가들.



_김해완(남산강학원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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