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내리는 애기하마, 복령
강미정(감이당 대중지성)
복령은 이름에서부터 신령스런 기운이 느껴지듯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신령스럽다.『동의보감』에 의하면 솔풍령이라 부르는 복령은 소나무의 송진이 땅에 들어가 1000년이 지나서 생기는 것이란다. 송진은 소나무의 정즙(精汁)으로 하늘의 양기를 얻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생긴 복령은 만년이 지나면 땅속에 묻혀 있던 복령의 기가 스스로 위로 올라가 연꽃 같은 작은 나무가 자라는데 그것을 목위희지(木威喜芝)라 한다. 그 기운이 워낙 강해서 밤에도 빛을 낸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복령인지라 일생에 한 번 만나보기도 힘들 것 같지만 지금은 주문만 하면 언제든지 그 실체를 확인 할 수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적송에 균사체를 주입하여 인공적으로 재배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귀한 것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 같다. 무더위와 장마의 여름을 지내고 나면 우리 몸은 水와 火의 틈바구니 속에서 잔뜩 습을 머금게 된다. 습의 무게만큼이나 쳐진 몸을 빨리 회복시켜 한 겨울의 寒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할 계절이 가을이다. 이 가을, 습은 내리고 기운은 올리는 처방 사군자탕의 세 번째 주인공 복령을 만나러 가보자.
천년을 땅속에 지낸 것 치고는 참 귀한(?)을 내지 않는 복령. 복령이 송진의 미래였다니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나무의 정액(?)이 복령이 되었다는 이 전설을^^
담담한 복령
처음 복령이란 약재를 만나게 되면 얇게 저민 것이 꼭 흰 색의 감자칩 같은 느낌이다. 그 색깔에서 알 수 있듯이 흰 색을 띈 복령은 폐로 들어간다. 즉 복령은 金氣를 가졌기에 폐에 들어가서 폐가 줄어드는 폐병으로 생긴 담(痰)을 낫게 하는데 쓰인다. 그 맛을 보려고 한참을 씹으면 약간의 감미(甘味)와 담담하다고 표현되는 맛을 느낄 뿐이다. 복령에는 그 어떤 강렬함도 없다. 이 미미한 감미(甘味)는 우리 몸으로 들어오면 비(脾)로 들어간다. 복령은 소나무의 정(精)을 얻어 목성(木性)을 가지고 있기에 비(脾)로 들어가면 뭉쳐있던 토(土)를 성기게 하여 비(脾)을 건강하게 만든다. 비(脾)는 오행 중 토(土)에 속하므로 목성이 토를 극하는 현상이다. 또한 오행의 토는 육기(六氣)로 보자면 습(濕)에 해당한다.
오행의 土가 육기에 있어서 습(濕)이 되는 까닭은 水火木金이 서로 만나서 습이 생기기 때문이다. 水火木金이 서로 만나면서 木은 축축하게 썩고 金은 물방울이 맺히기에, 모두 토를 만들고 습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金木의 기가 교류하는 것은 적고 水火의 기가 교류하는 것은 많은데 火가 水를 데우지 않으면 한수(寒水)일 뿐 습이 아니고 水가 火를 적시지 못하면 열화(烈火)일 뿐 이 역시 습이 아니다. 반드시 火水가 함께 만나야만 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시루 속에 있는 쌀과 같은데, 물만 붓고 불로 훈증하지 않으면 쌀이 쪄지지 않고 물이 없으면 불을 때더라도 쌀이 쪄지지 않는다. 따라서 반드시 水火가 함께 만나야만 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종해,『도표본초문답』, 대성의학사, p.298
火가 水를 데운다는 것은 명문(命門)의 火가 방광(膀胱)의 수를 훈증하여 기화(氣化)한다는 것이다. 복령은 물을 잘 흘려보내는 질적 특성으로 水를 운행시키고 수중의 陽氣로써 화기(化氣) 작용을 도와 화기(化氣), 행수(行水)작용을 한다. 땅에 물이 많거나 너무 적으면 곡식이 잘 영글 수 없듯이 토(土)에 습(濕)이 적절치 못하면 음식물을 소화, 흡수시키기가 힘들다. 우리가 음식물을 먹으면 이것이 소화되어 즙이 된 영양분들이 각 장기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습(濕)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복령이 가지고 있는 감미(甘味)는 자체로 비위를 건강하게 하고, 함께 있는 담(淡)한 성질은 그 습(濕)을 관리한다. 복령의 습(濕) 치유력이 돋보이는 애틋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관리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소령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 집에는 소복이라는 남자 하인이 하나 있어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반집 딸이 하인과 결혼할 수는 없었다. 소령의 아버지는 딸을 부잣집 아들과 혼인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를 눈치 챈 소령과 소복은 같이 도망을 쳐서 멀리 가서 살기로 했다. 하지만 가는 길이 험한데다 추위에 지친 소령은 풍습병이 들어 그만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소복은 밤낮으로 소령을 간호하였다. 어느 날 소복은 약초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활을 메고 산으로 들어갔다가 마침 산에서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활을 쏘아 토끼 뒷다리를 맞혔다. 토끼는 다친 다리를 끌고 한참을 달아나다가 소나무 곁에 이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간데없이 사라지고 화살만 남아 있었다. 소복이 화살을 집어 들자 그곳에 시커먼 구멍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것을 기이하게 여긴 소복이 그곳을 파 보니 하얀 덩어리가 있어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복은 하얀 덩어리를 끓여서 소령과 같이 나누어 먹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소령은 몸이 가뿐해졌다. 다음날 소복이는 다시 가서 하얀 덩어리를 더 캐와 그것을 소령에게 달여 먹였고 소령은 깨끗이 병이 나았다. 그 뒤로 이 약초는 소복과 소령이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복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풍원,『한방으로 풀어본 이야기 본초강목』
여기서 말하는 풍습병이란 것이 습이 관절부위에 정체되어 온몸의 뼈마디가 시리고 저리는 병으로 요즘의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병이다. 복령의 담(淡)한 성질이 과한 습을 소변으로 빼줌으로서 관절염을 치료한 것이다.
뼈마디가 다 쑤신다~! 이게 과도한 습 때문이라 이거지?! 그러나 예쁜 여자만 지나가면 힘이 쏟는 그대, 진정 그게 습(習)은 아닌가 ㅋㅋ
사람은 몸의 60-70%를 물로 되어 있는지라 일상에서도 늘 습과 마주 친다. 저녁에 출출하여 야식으로 맛있게 먹은 라면이 아침에 얼굴면적을 놀랍게 늘려 주기도 하고, 뱃속에 들어간 음식물은 때때로 북을 치면서 난리를 부리기도 한다. 이것이 다 물 때문이다. 이 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약재는 방광을 통해 배설시키고, 어떤 약재는 수렴하기도 하고, 어떤 약재는 말려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약재는 비의 고유(膏油-기름덩어리)를 보해서 물과 기름의 어울릴 수 없는 성질을 이용하여 물을 배출시키기도 한다. 이중 복령은 그의 담(淡)한 성질로 물을 방광을 통해서 배설하는 약재다. 수(水)가 정체되면 담이 된다. 水뿐만 아니라 육기(풍, 한, 습, 조, 화, 열)가 우리 몸과 만나 제대로 관계하지 못하면 갖가지 정체를 만든다. 이것이 담(痰)이다. 한담(寒痰), 풍담(風痰), 조담(燥痰), 습담(濕痰), 열담(熱痰) 등 담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기에 만병의 원인이 담이라고 했다. 그 종류에 따라 치료하는 방법도, 약재도 다양하다. 복령은 습이 쌓여 생긴 담에 작용하여 습을 이수시킴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기(氣)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몸을 가볍게 해준다.
먹어도 먹어도 OK
『선경(仙經)』에서는 복령을 “음식 대신 먹어도 좋다.”라고 했으며, 옛날에는 흉년이나 배고플 때 구황식물로 먹었다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있겠는가? 또 이것을 오래 먹으면 곡식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다고 한다. 약은 각각 그 약의 성질이 있기에 무조건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인삼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한들 열이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먹게 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인삼은 그 성질이 따뜻하여 열을 더 성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령을 음식처럼 오래 먹어도 좋다고 하는 것은 복령의 성질이 평(平)함을 말하는 것이다.
평(平)하다는 것은 그 성질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미 水와 火를 다 품고 있기도 하다는 뜻이다. "水火가 상증(相蒸)하여 습이 되기에 습병(濕病)은 水와 火가 모두 관련 되어 있다. 따라서 습을 치료하는 약은 그 성이 모두 平한데 이것은 水火를 다 치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당종해,『도표본초문답』, 대성의학사, p.299)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평한 성질이야말로 복령의 내공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복령도 극히 조심해야 할 사람이 있다. 몸이 너무 허약하고 차며 유정이 있는 사람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복령이 가진 담(淡)미의 이수작용도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래 먹어도 좋다기에 한번 먹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먹으려 하니『동의보감』의 “입맛을 돋우고 구역을 멈추며 마음과 정신을 안정하게 한다.”라는 구절이 걸렸다. 가을만 되면 읊조리는 천고마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난 충분히 입맛이 좋다. 거기다 먹는 만큼 정직하게 축적이 되는지라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신(腎)의 사기를 몰아내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하고 ....건망증을 낫게 한다.”가 마음을 동하게 했다. 공부하면서 돌아서면 까먹는 나의 기억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무치는지라. 열심히 끓였다. 그런데 한 모금을 삼키는데 뒤 끝에 느껴지는 다른 맛이 있었다. 분명 그냥 먹었을 때는 없었던 쓴맛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몇 번을 조심스럽게 먹어 보았지만 여전히 쓴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 쓴 맛이 나는 걸까? 혹 불순물이 들어 있는 걸까?
찬찬히 살펴봐도 약재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면 달이는 약탕기의 문제일까? 아무래도 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걸이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법랑그릇에 다시 끓였다. 조심스레 베보자기로 짜서 마셔보았다. 그곳에는 쓴맛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먹여 보니 역시나 쓴 맛이 없단다. 약탕기의 문제였다니. 옛 사람들은 약을 먹을 때 세 가지 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약을 지어주는 사람, 약을 달이는 사람, 그리고 약을 먹는 사람의 정성이 하나가 되어야 약이 제대로 효과를 낸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달이는 물이며, 약탕기며, 불의 재료며 무엇 하나 소홀함이 없었다. 요즘이야 한의원에서 다려 집에까지 배달해 주는 시스템이라 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약재들의 미묘한 변화들은 놓치기 쉽지 않을까 싶다. 몇 칠을 먹었더니 한 번에 보는 소변양이 많아지고 시원스러운 느낌이었다. 워낙 잘 붓는 체질인데 두 손을 깍지 끼면 부드럽게 잡히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신농본초경』에는 “오래 복용하면 안혼(安魂), 양신(養神)하여 장수한다.”라 적혀 있고, 또 다른 책에는 복령을 오래 먹고 몸이 가볍게 되어 늙지 않고 오래 살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있다고 한다. 장수는 안하더라도 좋은 기억력을 목표로 더 먹어볼 생각이다.^^ 이렇듯 복령은 과다한 것은 빼주고 모자란 것은 채워주는 약재다.
12월에 있을 대선으로 매일 매일 후보자들 이야기로 매스컴이 넘쳐난다. 각 후보자 진영의 잡음 중 제일 문제는 언제나 소통인 것 같다. 위아래의 원활한 기순환(의견교환)의 부재가 문제를 더 크게 키우기도 하고 망가지게 하기도 한다. 소통되지 않으면 순환할 수 없다. 서로가 과한 것이 있으면 들고 모자람이 있으면 채워 주는 것, 이것이 소통이 아닐까 싶다. 복령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통하지 못하고 큰소리 내는 이들이 다 병자다. 무엇이 이들에게 복령이 될 수 있을는지 잘 생각해 볼 문제다.
소통만 너무 외쳐서 불통된 그대들에게 복령을 진하게 달인 차 한 잔을~! 복령 먹고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습(習) 혹은 습(濕) 좀 덜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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