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야구 애호가들에겐 가을은 야구의 계절이다. 길고 긴 시즌이 끝나고,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가 야구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 어김없이 이때만 되면, ‘가을 유전자’라는 말이 나온다. ‘가을 유전자’를 가진 팀이란, 가을에 열리는 1위 결정전에 참여할 수 있는 상위 4팀에 해당한다. 프로야구 시즌이 가을에 접어들어 끝이 나는데, 그 이후에도 야구하는 팀은 상위 4팀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유전자가 들어간 말 치곤 꽤 좋다. 여기엔 어떤 결정론적인 시각이 반영되지 않는다. ‘가을 유전자’가 꼭 어느 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누구든 ‘가을 유전자’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그동안 그 팀이 쌓아온 역사(가을 야구, 즉 플레이오프에 얼마나 진출하고, 얼마나 좋은 성적을 냈는지)의 반영이다. 즉 야구에서 ‘가을 유전자’란 그 팀의 역사적 기록들인 것이다.
안 변하면? 안 생겨요~(-_-)
안 변하면? 여친도 안 생겨요~(-_-)
생뚱맞게 야구 이야기를 한 것은 이번 글과 관련이 있어서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려한다. 바로 생물이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생물의 형태가 바뀔 수 있고, 또 그 유전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야구팀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팀이 바뀌고, ‘가을 유전자’를 갖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잡지 현대사상 2012년 8월호에서는 ‘생물들의 형태’들을 다룬다. 그 중「변해가는 생물들의 형태」라는 소논문은 우리에게 몸의 변화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라고? 몸이 안 변한다고?
다세포생물은 물론이고, 단세포생물에서도, 생활주기(life cycle)의 과정에서(다세포생물의 경우, 일생동안) 형태가 변하는 것이 많다. 바꿔 말하면, 형태가 전적으로 변하지 않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 인용된 논문은 밑에 요약글로 첨부했습니다^^)
놀라운 얘기라더니, 그리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원래 생물은 다 조금씩 변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 논문은 여기서부터 엄청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이 별 것 아닌 이야기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편견 하나를 깨셔야 하겠다. 우리의 몸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통념말이다. 우리는 몸의 변화를 고작 인상의 변화나 몸무게의 변화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언제나 몸은 약간씩 변해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 우린 몸이 크게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할까? 이 생각엔 유전자가 생물의 형질을 결정한다는 생물학적 견해가 깊이 깔려 있다. 바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우리의 삶과 몸을 전적으로 결정짓는다는 생각.
너무 심한가? 그래서 요즘 생물학계에서는 유전자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 또한 생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다른 요소들은 부수적인 요인일 뿐, 아무리 그것들이 중요하다 해도, 생물은 유전자 지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결국 알게 모르게 몸이라는 것은 그냥 주어진 대로 받은 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어쩌겠는가, 그것은 운명인데. 그렇다면 결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몸을 바꿀 수 없다는 건가? 우리는 고작 성형수술이나 살을 빼는 수준에 만족하며,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우리에겐 ‘가을 유전자’ 같은 건 없나?
「변해가는 생물들의 형태」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아니오’ 라고 말한다. 여기에선 유전자가 변해야 삶과 몸이 변한다는 생각을 역전시킨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않다
중앙 아메리카에 사는 한 개구리는 올챙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개구리가 된다. 잉? 보통 개구리는 올챙이에서 변태과정을 거쳐 개구리가 되는데, 이 놈은 참 특이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른 개구리와 유전적으로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만 보면 원래 이 놈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올챙이가 되었어야 한다. 나 원 참! 희한한 개구리다.
하지만 이 개구리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냈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에게 ‘개구리 선생님’이라 부르며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이 개구리는 손톱만한 크기로 나무 위에 서식한다.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그들에겐 나무 위 세상 말고 딴 세상이란 없다. 하지만 알을 낳고, 올챙이들이 자랄 물웅덩이가 없기에 나무 위 세상은 그들에게 늘 척박한 환경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뭇잎의 이슬이나 빗방울에 알을 낳는다. 하지만 태어날 올챙이는 이슬 속에서 살아갈 재량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위대한 시도를 감행한다. 재밌게도 이러한 시도는 유전자 몰래 이루어진다. 자신의 발생과정 중 올챙이 시기를 앞당겨버리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도, 유전자의 지시를 전혀 받지 않는다. 그들은 알 속에서 올챙이가 되고, 폐와 네 다리를 모두 갖춘 채, 곧장 개구리로 ‘짠’하고 부화한다. 아마 정상적인 변태를 하는 다른 개구리들의 유전자와 비교해보아선, 1%로도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원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삶의 양태를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이에 유전자형의 변화는 전혀 수반되지 않았다. 이들은 숙명에서 벗어나 표현형, 즉 삶의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몸과 삶이 변해야 유전자가 바뀐다
개구리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초파리로부터 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실험에서 초파리에 에테르라는 약품을 처리하게 되면, 날개가 1쌍 더 생기는 변이가 발생한다. 원래 초파리는 오직 1쌍의 날개를 갖는데, 에테르 처리 시엔 2쌍의 날개를 갖는다. 이런 이상형질을 바이소락스(bithorax)라고 부른다.
여러 세대에 걸쳐 바이소락스 이상형질을 가진 개체를 뽑아 에테르 배지에서 키우면, 날개가 2쌍인 초파리가 계속 태어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런 실험을 반복하다, 에테르 처리를 멈춘다 하더라도, 날개가 2쌍인 초파리가 계속 태어난다는 것이다. 에테르를 처리를 한다고 해서, 초파리의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개가 2쌍인 자손이 태어난 걸까?
그 이유인 즉 슨, 초파리의 날개 유전자가 2쌍의 날개에 맞춰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를 유전적 동화(genetic assimilation)라 한다. 라마르크설처럼 후천형질이 유전형질을 만들지 않지만, 에테르라는 조건에 맞춰 살아온 표현형(날개 2쌍)에 대응되는 유전자가 선택된다.
정리하면, 수 세대의 초파리에게 에테르 처리를 가하면, 처음에는 유전형의 변화없이 날개의 개수(표현형)만 변한다. 초파리에겐 그 표현형을 낳는 어떤 유전적 기초도 없다. NEVER!!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 선택의 과정을 거쳐 그 초파리 족보(계통)엔 날개 2쌍을 만드는 유전자가 떡하니 생기게 된다. 그러니 나중에 에테르 처리를 하지 않아도, 날개가 2쌍인 후손들이 마구 생겨나는 것이다. 엄청나지 않는가? 신체의 변화가 유전형 변화로 기록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DNA, 내가 만들어갈 역사
우리는 초파리, 잎개구리에게서 자신의 몸을 아주 거뜬히 바꾸어 나가는 모습을 본다. 우리의 몸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우리 몸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어 바꾸기 힘들다고 말하는가? 생물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우리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결국 유전자마저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더 이상 우리 삶을 결정하고, 어떤 모습을 가지라고 명령하는 우리의 ‘주인님’이 아니다. 유전자는 생물의 삶이나 형태가 변화한 후에 남겨진 결과를 기록하는 기억저장고이다. 우리는 이제 그 기억 저장고에 새로운 기억들을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일회적인 사건으론 우리의 노력을 유전자라는 기억저장고에 기록할 수 없다. 초파리가 수 세대에 걸쳐 그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내듯, 우리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럴 때야만 우리는 유전자라는 도서관에 새로운 장서를 꽂을 수 있다.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다는 건, 바로 새로운 유전자형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때부터이다.
인간에게는 수많은 과거들이 신체에 바글거리며, 기억은 머리가 아닌 신체로 기입된다. 그러니 어쩌면 유전자에 새로운 것이 기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에게 기억은 머리가 아닌 신체로 기입된다. 어쩌면 유전자에 새로운 것이 기억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변해가는 ‘생물의 형태’ - 발생과정의 가소성과 진화-
미우라 토오루 생물발생학
다양성과 형태
지구 위를 바라다보면 실로 다양한 생물들을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다양’하다고 말해도, 대상으로 존재하는 생물의 특질(형태, 색체, 행동, 냄새 등)도 또한 ‘다양’하다. 그것은 스냅샷으로 찍어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이해하기 가장 쉽지만, ‘형질’에는 형태 그 자체만이 아니라, 행동이나 냄새 등, ‘형태’로서 나타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생물의 형태’라고 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코끼리나 기린, 혹은 새나 곤충 등, 다세포생물을 우선 떠올린다. 그러나 다세포생물은 물론이고, 단세포생물에서도, 생활주기(life cycle)의 과정에서(다세포생물의 경우, 일생 동안) 형태가 변하는 것이 많다. 바꿔 말하면, 형태가 전적으로 변하지 않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표현형의 다양성과 게놈(Genome), 그리고 발생
시작하기에 앞서, 생물의 형태는 어떻게 규정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이 같이 질문한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유전자, 혹은 게놈에 그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DNA 염기배열의 정보가 결정된다고 해서, 그 생물의 형질이 (DNA에 따라) 일의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생물이 놓여진 시공간적인 조건에 의존해서, 그 형질은 역동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후에 상세히 말할 것이지만, 환경에 반응해 적응적으로 표현형을 변화시키는 것도 있고, 또, 완전변태곤충에서는 유충과 성충이 완전히 다른 표현형을 보여주는 듯이, 게놈 속에 그려진 표현형은 한가지만이 아니다. 또, ‘생물의 형태’ 특히 다세포생물의 형태는, 발생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이다. 그리고 형태가 다르게 되거나 형태가 다양화된다는 것은, 그 발생과정이 다르거나 다양화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발생과정의 진화 - 발생과정이 진화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지구 상에는 다양한 형질을 가진 다양한 생물이 존재한다. 다세포생물은 어떠한 생물이든 알(卵)로부터 발생하는 과정 속에서, 그 생물고유의 특징이 나타난다. 즉 형태의 차이라는 건, 그 형태를 만드는 과정의 차이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발생과정이 진화하고 나서부터야, 각 계통 간 체제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다른 형태를 가진 생물 사이의 비교에서 그 형태자체의 비교는 물론, 발생과정을 비교하는 것이 진화를 생각하는데 중요하고, 그것은 예전부터 비교발생학이라 불렸고, 현재는 진화발생학(Evo-Devo)로서 발전해왔다.
잎서 말했듯이, 발생과정의 진화는, 형질진화를 사유하는데 대단히 중요하지만, 동물의 체제를 계통 간 비교하면, 비교적 닮은 부분과 다양화가 진행된 부분이 있다는 걸 안다. 예를 들면, 사지동물에서는, 후각(後脚)에 비해서 전각(前脚)이 다양화된 점이나, 곤충은 대단히 다양하지만, 머리, 가슴, 배의 구조나 6개의 다리 같은 기본 패턴은 공통된다. 또, 척추동물 무리에서는 배발생 과정이 대단히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점은 절지동물의 배발생 과정으로도 말할 수 있다. 이 초기발생의 공통된 패턴은 바우플란 bau-plan 이라고 불리고, 진화적으로 보존된 발생과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 다양화된 발생패턴과, 보존된 발생패턴은 무엇이 다른 걸까. 그것은, ‘적응’, ‘선택’이나 ‘발생 구속’이라고 하는 개념과 밀접히 관계한다. 동물의 후각(後脚)은, 이족보행동물을 포함해, 뱀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육상생물에서, 보행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최소한의 보행을 위한 후각(後脚)이 있다면, 전각(前脚)은 다른 기능을 수행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조류에서는 비행을 위한 날개로, 두더지에서는 땅속을 파기 위한 앞발로서, 영장류에서는 다양한 작업을 하는 ‘손’으로서, 기능이 다양화된다. 한편, 발생의 극히 초기의 경우, 정해진 발생 프로세스로부터 일탈하는 것은 즉 ‘죽음’을 의미하고, 그와 같은 다양화 혹은 일탈은 자손에게 전달되지 않고, 진화하기 어렵다. 이 같은 발생 상의 제약을 ‘발생구속’이라 한다.
생물의 특정 계통에서,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제약이 어떤 진화적 요인(환경에 대한 적응 등)때문에, 어떤 경로를 일탈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즉 ‘발생구속’이 엄격한 경우이다. 이 과정은 운하화 cannalization이라고 불린다. 운하화는 영국의 발생학자 코나드 헐 워딩턴(Conard Hal Waddington)이 명명한 것에서, 일본어로는 ‘운하화’라고 번역된다. 워딩턴은 생물의 발생과정을, 중력에 따라 어떤 지형을 굴러다니는 구슬로서 표현했다. 구슬은, 골짜기를 굴러가지만, 골짜기가 얕으면, 어떤 계기로 다른 골짜기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골짜기가 깊다면 다른 경로로 이동할 수 없게 된다. 이 지형을 후성유전적 풍경(epigenetic landscape)(그림 1)이라 한다. 운하화는, 진화경로에서 이 골짜기가 깊어진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동물의 성장이나 환경에 의한 가소성을 생각하는 데에서, 이 운하화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표현형 가소성처럼 환경요인에 의해서 발생과정이 변하는 경우에는, 비교적 다른 변이(variance)도 허용하는 그런 완만한 골짜기를 형성하고, 표현형 다형(多形)이라 하는, 불연속적인 다형(多形)이 환경조건에 반응해 나타나는 그런 경우에는, 구슬이 분기한 골짜기의 어디로 굴러갈지, 라는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 게놈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표현형변화 1 : 개체발생
게놈정보 그 자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짧은 시간span 동안의 표현형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발생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표현형 변화.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환경조건에 반응하는 가소적인 표현형 변화이다.
생물도감을 보면, 생물 종마다 대표적인 형태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생물의 형태는 발생을 수반해 역동적으로 변한다. ‘발생’이라고 말해도, 통상 알 속에서 일어나는 ‘배발생’(embryogenesis 또는 embryonic development)과 ‘후 배발생’(postembryonic development)이 있다. 배발생이란, 수정란에서 부화(태생의 경우는 출산)까지의 과정을 말하고, 후 배발생이란, 부화해서부터 성체로 되기까지(경우에 따라서는 죽을 때까지)의 발생과정을 말한다. 생물(특히 동물)의 형태는, 이 발생과정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부화 시의 형태는 비교적 성체에 유사한 것도 있지만, 완전히 닮지 않은 것도 있다. 비교적 성체와 유사한 생물종은, 서서히 몸 크기를 증가시키고, 그와 동시에 생식기능도 발달하고 성체로 된다. 이 경우를 ‘직접발생’이라고 한다. (그림 2)
한편으로, 곤충의 유충이나 해양무척추동물인 다수의 플랑크톤처럼, 부화(출산)시의 형태가 성체의 형태와 전혀 다르고, 후 배발생의 과정에서 변태를 동반하는 것을 ‘간접발생’이라고 한다. 간접발생의 경우, 유생과 성체의 바우플란(bauplan) 체제는 크게 다르지만, 이것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유생 때의 형태와 성체 때의 형태에 다른 선택압이 계속 관계한 결과, 획득된다고 생각될 수 있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서, 완전변태곤충의 발생과정을 들 수 있다. 완전변태곤충은, 유충 시에는 애벌레나 구더기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고, 많이 섭식하고, 계속 성장한다. 그리고 후에 변태를 하고, 번데기 단계를 거쳐 성충이 된다. 유충 때는 ‘성장’에, 성충 때는 ‘번식’ 및 ‘분산’에 특화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나비나 나방 같은 인시목 곤충이든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같은 초시목 곤충(갑충)이든, 유충 시에는 말랑말랑한 표피(큐티클)을 가지고, 먹은 만큼 성장하고, 성충은 단단한 큐티클과 날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번식활동을 한다.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 즉 유충에서 번데기를 거쳐 크게 체제를 변화시키는 곤충은, 유충과 성충에 관한 선택을 완전히 분리함으로써 크게 번영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곤충 이외에도, 성게같은 해양무척추동물은, 알에서 부화한 시점에서, 유생(프리즘 유생이나 푸루테와스 유생)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 후 변태를 하고 이른바 ‘성게’의 형태를 취한다. 이 경우도 유생기에 부유생활에 의해서 먼 쪽으로의 분산을 가능하게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생물이어도 발생단계(성장단계)에 대응해서 다른 형태를 취하는 예는 매우 많다. 다른 이야기를 하면, 예를 들면, 어떤 곤충 종 게놈에는, 성충형태의 설계도뿐만이 아니라, 유충이나 번데기 등, 각 단계의 표현형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처럼 극단적인 바우플란(bauplan, bodyplan)의 변화 없이도, 발생과정이 진화적으로 변화해버리는 일이 있다. 발생과정이 진화적으로 변경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어떤 발생경로가 부가되거나, 생략되거나, 다른 부분에서 일어나는 경로가 다른 부분에서 생기거나 (이소성 異所性) 하는 것 같은 다양한 변화의 방식이 있다. 그 중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발생과정의 타이밍이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이 많이 보인다. 이 변화를 ‘이시성(異時性) Hetrochrony’ 라고 한다. 가장 현저한 예로, 중앙 아메리카의 수상성(樹上性) 개구리의 발생이 알려져 있다. 이 개구리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산란도 수목의 비나 이슬 등에 한다. 다른 양서류와 다르게, 산란이 물속에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유생인 올챙이는 나무위에는 생존할 수 없다. 때문에, 이 개구리는 알 속에서 개구리의 몸으로까지 발생해서, 부화하면 이미 개구리로서 육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적응하고 있다. 이처럼 다른 개구리와 비교하면, 유생 시기를 건너뛰고, 사지(四肢)형성 같은 발생의 타이밍이 배발생 시기에서 앞당겨져 이루어진다. (그림3)
이시성에는, 발생과정이 생략되는 것인지, 부가되는 것인지, 속도가 빠르게 되는지, 느리게 되는지 같은 패턴에 의해서, 다시 세분화할 수 있지만, 그 분류에 관해서는 논의가 많다. 이시적으로 발생과정이 변하는 과정을 계통 사이에서 상세하게 파악함으로써, 실제 진화 상에서, 어떻게 발생기구 혹은 분자기구가 원인이 되어, 어떤 이시적 변화가 생겼을지를 고찰할 수 있다.
게놈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표현형변화 2 : 표현형 가소성
발생과정에서 표현형의 변화는, 그 종이라면 어떤 개체든지 지나쳐야 할(obligatory) 시간계열의 변화이다. 한편, 환경조건에 따라서(facultative) 가소적으로 생기는 표현형도 있다. 이 현상은 일반적으로 ‘표현형 가소성(phenotypic plasticity)라 불리고, 이 경우, 환경조건변화가 어떤 생물학적 프로세스를 거치고, 게놈 상의 유전자 발현 양태를 변경하는 것에 의해서, 표현형 변화가 행해진다. 환경요인을 느끼고 받아들여서 표현형변화로 나타나기까지의 기간(timespan)은 다양하고, 해당 개체가 가역적으로 변화되는 것에서부터, 비가역적인 것, 또 모성효과에 의해서 다음 세대의 표현형이 결정되는 경우 등 실제로 다양하다.
또 가소성에서 변화가 연속적이기도 한 것이라면,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있고, 불연속적인 것을 특히 ‘표현형 다형 polyphenism'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에서, 곤충류에서 많이 보여지는 계절 다형(多形)이나 밀도 의존적으로 유시(有翅)․ 무시(無翅)가 바뀐 날개다형, 사회성곤충, 또 많은 수생 플랑크톤 등에게서 보이는 포식유도 다형 같은 다양한 것들이 있다.
환경요인에 반응해서 어떻게 표현형을 발현하는지를 모니터하는 것은 가소성의 기구와 진화적 의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환경요인과 표현형과의 관계를 그룹으로 표현한 것은, 울트렉(Woltrek)이 물벼룩의 포식방어형태인 머리의 뿔길이와 미끼 조건과의 대응을 나타냈던 것이 최초이다. 이 관계를 반응기준(reaction norm)이라 하고, 이 형상에 의해, 환경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가소성인지, 불연속하게 변화하는 표현형다형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
표현형 다형의 경우, 반응기준은 시그모이드(sigmoid s자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반응기준을 그리는 것에 의해 어떻게 환경조건에 반응할지가 상세하게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나비는 춘형(春形)과 하형(夏形)(혹은 추형秋刑)의 두 가지 형이 있지만, 이것은 각각의 유충기간이 가을이나 초여름이라는 시기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에도, 실험적으로 중간의 온도, 중간의 일장 조건으로 사육하면 중간적인 형태(날개의 모양)의 개체를 얻을 수 있다. 한편, 많은 표현형 다형곤충에서 보여지듯이, 환경요인은 중간이어도 어느 쪽이 큰 타입인지 작은 타입인지 딱 나누어지기 때문에, 이 곤충들에게는 체내의 생리기구에 환경요인에 대한 역치가 있기 때문에, 불연속한 형태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림 5)
발생의 가소성과 진화
‘생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한다’ 라는 것을 처음에 알아차린 사람은 라마르크이지만, 그 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변이, 선택, 유전에 의해서 생물의 형질이 진화한다는 것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라마르크의 이론은 퇴색했다. 라마르크는, 생물 형질의 진화를 두 가지 법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즉, ‘환경조건에 의해서 표현형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제 1법칙과, ‘획득형질은 유전한다’는 제 2법칙이다. 지금까지 봐왔듯이, 제 1법칙은 틀리지 않았지만, 제 2법칙은 일반적으로 틀렸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몇몇 생물학자들이 정말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가, 라는 주제에 몰두해 오고 있고, 최근에도 몇몇 흥미로운 설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웨스트 에버하드(West-Eberhard)가 제창하고 있는 설을 다루고, ‘순응’과 ‘적응’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앞서 본대로, 많은 생물은 환경요인에 대해 가소적으로 표현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같은 부드러운 성질이 없다면, 환경에 반응한 새로운 형질은 그만큼 일찍이 진화하지 못하고, 지구 상의 무수한 니치(niche)에 적응한 다양한 생물들이 진화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라는 식의 생각이다. 그녀는, 우선 ‘환경에 따라 표현형이 가소적으로 변하는 과정’인 “phenotypic accommodation"(표현형 순응)이, 새로운 표현형 획득의 전적응으로서 존재하고, ‘환경에 반응해 표현형이 나타나는 방식’에도 개체 사이의 유전적인 변이가 있고, 거기에 선택이 걸림으로써, ‘표현형이 나타나는 방식’이 세대를 넘어 변화함에 의해서, 새로운 표현형이 고정되거나, 크게 변동하는 환경에도 교묘히 대응한 표현형 다형을 획득하거나 한다는 그러한 생각이다. 후반에 ‘표현형이 나타나는 방식에 관한 유전적 변이에 선택이 걸리고 집단 속에 고정되는’ 과정은, 유전적 순응(genetic accommodation)이라고 불린다.
초파리를 에테르 처리를 하면 네 날개의 바이소락스(bithrorax)라는 이상형질을 발현하지만, 에테르에 계속 놓아서 어떤 세대라도 바이소락스 개체를 선택하는 실험을 행하면, 후에 에테르의 자극없이도 바이소락스 개체를 만들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워딩턴이 행했던 ‘유전적 동화’“genetic assimilation"을 보여준 유명한 실험이다. 위의 웨스트 에버하드 해석에서는, 유전적 동화는 유전적 순응의 한 가지 패턴이라고 말하게 된다. 유전적 동화의 경우, ‘가소성→고정’의 과정에서의, 유전자 빈도의 변화이지만, 새롭게 가소성이 획득되는 그러한 경우나, 환경에서 유도된 이상형질이 적응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숨기려는 다른 기구가 획득되어 가는 과정도 유전적 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발생의 가소성이 후에 새로운 형질로 진화할 가능성(이것을 진화가능성 evolvability라고 부른다)으로도 될 수 있다.
‘유전인가 환경인가’과와 같은 문제는 옛날부터 주목받아왔지만, 현재의 이해로는 환경에 반응해서 어떻게 형질을 변화시킬지가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 가소적인 표현형 발현능의 유전적 차이가 신다윈주의적인 법칙으로 자손에게 전달됨으로써, 형질은 진화해간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라면, 형질이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경우도, 빠른 속도로 환경에 적응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표현형적 순응에서 유전적 순응을 거쳐, 형질이 진화하는 과정(그림 6)을 설명하면, ‘그것은 획득형질이 유전한다는 것인가’라고 자주 질문 받는다. 그와 같이 보이지만, 답은 ‘아니오’다. 정확히, 단기간에 환경에 반응해서 응답하는 (획득된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기구에게 선택이 작동하는 것에 의해서 ‘획득된 형질이 유전되는’ 것처럼 보인다, 는 것이다.
기린의 목을 예로 들면, 높은 나무의 잎을 먹으려 하면 목을 늘이는 것에 의해, 해당 세대에서 다소 목이 늘어난다. 신장운동에 의한 목의 늘어난 상태(응답의 정도)에 유전적인 변이가 있고, 거기에 선택이 가해지는 것에 의해, 보다 목이 긴 개체가 진화했던 건 아닐까. 물론 정말 이 같은 과정으로 진화했을지 어떨지는 알지 못하지만.......라마르크주의가 부정되고 다윈주의를 단순히 채용한 지금까지의 설명에서는, 목의 길이에 유전적 변이가 있고(이 경우, 목의 길이라는 표현형은, 유전자형에 의해 그대로 결정되고), 거기에서 선택이 걸리고, 보다 긴 목을 가진 개체의 비율이 차례로 증가해 가고, 라는 식으로 된다. 이 설명이라면, 우연히 목이 긴 개체가 변이에 의해 출현하지 않으면, 교묘하게 진화할 수 없게 된다. 그에 반해, 가소성을 개입된 경우, 가소적인 목의 신장이 전적응으로 되고, 선택이 걸리게 된다. 가능한지 어떤지는 별도로 하고, 가급적 근연의 기린 개체를, 하나는 높은 곳에 목을 늘려서 먹이를 주고, 또 하나는 낮은 장소에서 섭취를 계속하게 시킨 때에, 목의 신장 정도에 가소성이 있을지 없을지를 보는 건 대단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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