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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과학

유전자에 접혀 있는 기억의 주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17.

변화하는 몸, 생성되는 유전자

 

정철현(남산강학원Q&?)

 

 

팀이 바꿔야 ‘가을 유전자’가 생긴다 

 

나 같은 야구 애호가들에겐 가을은 야구의 계절이다. 길고 긴 시즌이 끝나고,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가 야구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 어김없이 이때만 되면, ‘가을 유전자’라는 말이 나온다. ‘가을 유전자’를 가진 팀이란, 가을에 열리는 1위 결정전에 참여할 수 있는 상위 4팀에 해당한다. 프로야구 시즌이 가을에 접어들어 끝이 나는데, 그 이후에도 야구하는 팀은 상위 4팀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유전자가 들어간 말 치곤 꽤 좋다. 여기엔 어떤 결정론적인 시각이 반영되지 않는다. ‘가을 유전자’가 꼭 어느 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누구든 ‘가을 유전자’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그동안 그 팀이 쌓아온 역사(가을 야구, 즉 플레이오프에 얼마나 진출하고, 얼마나 좋은 성적을 냈는지)의 반영이다. 즉 야구에서 ‘가을 유전자’란 그 팀의 역사적 기록들인 것이다.

 

 

안 변하면? 안 생겨요~(-_-)

안 변하면? 여친도 안 생겨요~(-_-)

 

생뚱맞게 야구 이야기를 한 것은 이번 글과 관련이 있어서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려한다. 바로 생물이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생물의 형태가 바뀔 수 있고, 또 그 유전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야구팀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팀이 바뀌고, ‘가을 유전자’를 갖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잡지 현대사상 2012년 8월호에서는 ‘생물들의 형태’들을 다룬다. 그 중「변해가는 생물들의 형태」라는 소논문은 우리에게 몸의 변화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라고? 몸이 안 변한다고?

 

다세포생물은 물론이고, 단세포생물에서도, 생활주기(life cycle)의 과정에서(다세포생물의 경우, 일생동안) 형태가 변하는 것이 많다. 바꿔 말하면, 형태가 전적으로 변하지 않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 인용된 논문은 밑에 요약글로 첨부했습니다^^)

 

놀라운 얘기라더니, 그리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원래 생물은 다 조금씩 변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 논문은 여기서부터 엄청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이 별 것 아닌 이야기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편견 하나를 깨셔야 하겠다. 우리의 몸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통념말이다. 우리는 몸의 변화를 고작 인상의 변화나 몸무게의 변화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언제나 몸은 약간씩 변해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 우린 몸이 크게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할까? 이 생각엔 유전자가 생물의 형질을 결정한다는 생물학적 견해가 깊이 깔려 있다. 바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우리의 삶과 몸을 전적으로 결정짓는다는 생각.

 

 

너무 심한가? 그래서 요즘 생물학계에서는 유전자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 또한 생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다른 요소들은 부수적인 요인일 뿐, 아무리 그것들이 중요하다 해도, 생물은 유전자 지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결국 알게 모르게 몸이라는 것은 그냥 주어진 대로 받은 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어쩌겠는가, 그것은 운명인데. 그렇다면 결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몸을 바꿀 수 없다는 건가? 우리는 고작 성형수술이나 살을 빼는 수준에 만족하며,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우리에겐 ‘가을 유전자’ 같은 건 없나?

 

「변해가는 생물들의 형태」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아니오’ 라고 말한다. 여기에선 유전자가 변해야 삶과 몸이 변한다는 생각을 역전시킨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않다

 

중앙 아메리카에 사는 한 개구리는 올챙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개구리가 된다. 잉? 보통 개구리는 올챙이에서 변태과정을 거쳐 개구리가 되는데, 이 놈은 참 특이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른 개구리와 유전적으로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만 보면 원래 이 놈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올챙이가 되었어야 한다. 나 원 참! 희한한 개구리다.

 

하지만 이 개구리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냈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에게 ‘개구리 선생님’이라 부르며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이 개구리는 손톱만한 크기로 나무 위에 서식한다.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그들에겐 나무 위 세상 말고 딴 세상이란 없다. 하지만 알을 낳고, 올챙이들이 자랄 물웅덩이가 없기에 나무 위 세상은 그들에게 늘 척박한 환경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뭇잎의 이슬이나 빗방울에 알을 낳는다. 하지만 태어날 올챙이는 이슬 속에서 살아갈 재량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위대한 시도를 감행한다. 재밌게도 이러한 시도는 유전자 몰래 이루어진다. 자신의 발생과정 중 올챙이 시기를 앞당겨버리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도, 유전자의 지시를 전혀 받지 않는다. 그들은 알 속에서 올챙이가 되고, 폐와 네 다리를 모두 갖춘 채, 곧장 개구리로 ‘짠’하고 부화한다. 아마 정상적인 변태를 하는 다른 개구리들의 유전자와 비교해보아선, 1%로도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원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삶의 양태를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이에 유전자형의 변화는 전혀 수반되지 않았다. 이들은 숙명에서 벗어나 표현형, 즉 삶의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몸과 삶이 변해야 유전자가 바뀐다

 

개구리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초파리로부터 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실험에서 초파리에 에테르라는 약품을 처리하게 되면, 날개가 1쌍 더 생기는 변이가 발생한다. 원래 초파리는 오직 1쌍의 날개를 갖는데, 에테르 처리 시엔 2쌍의 날개를 갖는다. 이런 이상형질을 바이소락스(bithorax)라고 부른다.

 

여러 세대에 걸쳐 바이소락스 이상형질을 가진 개체를 뽑아 에테르 배지에서 키우면, 날개가 2쌍인 초파리가 계속 태어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런 실험을 반복하다, 에테르 처리를 멈춘다 하더라도, 날개가 2쌍인 초파리가 계속 태어난다는 것이다. 에테르를 처리를 한다고 해서, 초파리의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개가 2쌍인 자손이 태어난 걸까?

 

그 이유인 즉 슨, 초파리의 날개 유전자가 2쌍의 날개에 맞춰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를 유전적 동화(genetic assimilation)라 한다. 라마르크설처럼 후천형질이 유전형질을 만들지 않지만, 에테르라는 조건에 맞춰 살아온 표현형(날개 2쌍)에 대응되는 유전자가 선택된다.

 

정리하면, 수 세대의 초파리에게 에테르 처리를 가하면, 처음에는 유전형의 변화없이 날개의 개수(표현형)만 변한다. 초파리에겐 그 표현형을 낳는 어떤 유전적 기초도 없다. NEVER!!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 선택의 과정을 거쳐 그 초파리 족보(계통)엔 날개 2쌍을 만드는 유전자가 떡하니 생기게 된다. 그러니 나중에 에테르 처리를 하지 않아도, 날개가 2쌍인 후손들이 마구 생겨나는 것이다. 엄청나지 않는가? 신체의 변화가 유전형 변화로 기록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DNA, 내가 만들어갈 역사

 

우리는 초파리, 잎개구리에게서 자신의 몸을 아주 거뜬히 바꾸어 나가는 모습을 본다. 우리의 몸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우리 몸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어 바꾸기 힘들다고 말하는가? 생물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우리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결국 유전자마저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더 이상 우리 삶을 결정하고, 어떤 모습을 가지라고 명령하는 우리의 ‘주인님’이 아니다. 유전자는 생물의 삶이나 형태가 변화한 후에 남겨진 결과를 기록하는 기억저장고이다. 우리는 이제 그 기억 저장고에 새로운 기억들을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일회적인 사건으론 우리의 노력을 유전자라는 기억저장고에 기록할 수 없다. 초파리가 수 세대에 걸쳐 그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내듯, 우리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럴 때야만 우리는 유전자라는 도서관에 새로운 장서를 꽂을 수 있다.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다는 건, 바로 새로운 유전자형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때부터이다.  

 

인간에게는 수많은 과거들이 신체에 바글거리며, 기억은 머리가 아닌 신체로 기입된다. 그러니 어쩌면 유전자에 새로운 것이 기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에게 기억은 머리가 아닌 신체로 기입된다. 어쩌면 유전자에 새로운 것이 기억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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