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름의 자유, 나의 천리를 따른다는 것(2)
기원전 11세기, 중국에선 주(周)무왕 희발이 상(商)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 주(周)나라를 건국했다. 하지만 무왕은 건국 후 2년만에 사망했고 그 아들 성왕이 아홉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는 아직 새로운 왕조의 건국 열기가 식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주무왕과 함께 주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주공(周公)은 가장 유력한 잠재적인 최고 권력 후보였다. 더구나 주공은 향후 수천 년간 중국 정치 제도의 근간이 되는 봉건제도를 설계한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나라들을 직접 주나라에 편입시키며 명실상부한 제국의 건설을 주도했다. 요컨대 주공의 업적은 아버지인 주문왕이나 형인 주무왕에 비추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사실 시세를 따른다는 명분을 따른다면 어린 조카 성왕의 자리는 주공이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주공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이룬 업적과 주위에서 부추기는 사람들의 말들에 마음이 들뜨고 쏠렸다면, 아마 그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명분이야 만들기 나름이니까. 하지만 주공은 조카 성왕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한 성인이 될 때까지 왕(성왕)에 대한 신하(주공)의 신분으로 선을 넘지 않았다. 주공의 천리 즉 스스로 옳은 길을 따랐던 것이고, 이것이 곧 중국 역사 속에 주공이라는 인물을 주공으로 남게 했다. 이는 동아시아 만세의 스승 공자가 주공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공자는 수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수괘를 본받아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편한 휴식에 들어간다.”[君子以嚮晦入宴息(군자이향회입연식)]. 향회(嚮晦)는 어둠을 향해간다는 뜻이고, 연식(宴息)은 편안하게 쉰다는 뜻이다. 보기에 따라선 ‘따름(隨)’의 때에 대한 설명으로는 살짝 갸우뚱할 수 있는데, 나는 이 말에 공자의 지혜와 통찰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설명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때를 따른다는 말을 반쪽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때에 따르는 것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그 말을 내 임의로 다시 의미화시키고 있었다. 때(즉 천리)에 따른다는 건 그때 그때 시절 인연에 맞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사심없이 하는 것이라고.
물론 이 말 자체에 모순은 없다. 하지만 공자의 한 마디는 때에 따른다는 말의 전제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한 번 생각해보자. 때라는 건 계절로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고 하루를 기준 삼아 보면 오전, 오후, 저녁, 밤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각 사건 사건의 때가 있을 수도 있다. 요컨대 열심히 씨 뿌리고 노동하는 계절의 때가 있고, 수확을 마친 이후 씨앗을 저장하고 다음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때가 있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후까지 무엇인가 활동하는 시간(때)이 있다면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몸을 쉬고 회복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즉 천리로서의 때를 따른다는 것은 활동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준비하는 때에도 해당하는 것이어야 한다. 더 간단히 말하면 낮이 열심히 활동하고 일할 때라는 걸 아는 사람은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일을 갈무리하고 돌아가 쉬어야 할 때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지적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밤을 낮 삼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꿈꾸고 있었을 지 모른다.
“따름(隨)에 얻는 바가 있다면, 올바르더라도 흉하다.(隨有獲, 貞凶).” 수괘의 네 번째 효는 이렇게 경고한다. 따르는 일과 관련하여 얻는 바가 있다는 건 일차적으로 나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는 굳이 나쁠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따를 수 있는 만큼 누군가 따를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시세에 따라서는 이 또한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을 잘라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고, 양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는 법이다. 나에게 좋은 일은 누군가에게 곤란한 일일 수 있고, 어느 때에 좋은 일이 다른 때에는 정반대로 나쁜 일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세상 일에는 언제나 얻음이 있으면 잃는 게 있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주역>이 말하는 변화의 원리나 음과 양으로 대표되는 끝없는 관계성 등은 의외로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상황들이라 할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내가 얻는 것이 때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시세에서는 곤란한 지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소현세자와 인조의 관계?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8년만에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귀국 두 달여만에 돌연 사망한다. 소현세자의 사망에 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강한 의심은 아버지이자 왕이었던 인조의 작품(!)이었다는 것. 약소국의 세자였고 인질에 불과했지만 소현세자는 당시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겪으면서 향후 조선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고 듣고 배웠던 선진(?) 세계는 조선에서 단 1퍼센트도 시도되지 못했다. 인조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순간 소현세자는 더이상 소중한 아들이 아니라 다만 정치적 라이벌일 뿐이었기 때문이다.그런 상황에서라면 소현세자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너무도 좁아진다. 비록 올바르게 행동하더라도 결과는 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현세자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었을까. 수괘의 네번째 효는 앞선 경고에 이어 이렇게 전한다. “진실한 믿음, 도리 지키기, 그리고 명철하게 처신하기! 이렇게 한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有孚, 在道, 以明, 何咎).” 어찌보면 뻔한 경구처럼 보이지만,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주나라의 주공(周公)을 생각해봐도 좋을 듯하다. 소현세자와 주공은 모두 ‘덕이 백성들에게까지 미쳤고 백성들이 그들을 추종’했다. 즉 ‘따름’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둘의 결과는 왜 그렇게 달랐을까.
수괘 네번째효의 마지막 구절은 “허물이 없다(无咎)”이다. 흥미롭게도 마음의 떳떳한 도리를 따르는 밝은 덕을 밝혔음에도, 어째서 효사는 그것을 길(吉)하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허물이 없다(无咎)고만 말했을까. 이 대목에 이르면 다시 한번 수괘가 말하려는 ‘따름’의 때와 도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한 발자국 쯤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것은 언제나 그리고 무엇인가를 따른다. 밤은 낮을, 땅은 하늘을, 여자는 남자를. 그런데 그 반대가 되는 때도 있다. 어떻게? 낮이 밤을, 하늘이 땅을, 남자가 여자를. 왜? 따름의 때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소현세자나 주공, 아니 역사 속에 있는 수많은 소현세자들과 주공들에게 길한 것은 그들이 왕을 꿈꾸지 않는 데에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왕이 되기에 자질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때가 왕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명론이 아니다.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어야 운명론을 넘어갈 수 있다. 때에 맞는 길을 간다는 건, 스스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는 곳에서 열린다. 따름(隨)의 절대성, 그리고 따름의 자유! 그러므로 내 마음 밖에서 때의 기준을 구할 수는 없다. 내 마음과 어긋난 천리[때]가 있을 수 있겠는가. 주공은 때를 따랐고, 소현세자는 때를 따르지 못했다. 주공은 무구했고, 소현세자는 흉했다.
글_문성환(글공방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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