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소축, 가장 높은 하늘의 도, 오직 스스로 낮출 뿐(2)
주왕은 가볍고 만만한 상대가 결코 아니었다. 섣부르게 대항했다가는 되려 큰 화를 불러들일 것이었다. 그렇다고 주왕의 폭정을 그냥 가만히 두고 볼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바로 여기서 서백이 찾은 길이 ‘작은 것’의 힘이었다. 작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작기에 할 수 있는 일. 거칠고 위험한 기운을 길들이는 것은 오히려 유순한 힘이라는 것. 하여 서백은 자신을 낮추는 그 공손함으로 주왕과 마주한다.
서백은 우선 유리옥에서 나오기 위해 주왕에게 선물을 보냈다. 최고의 미녀와 준마(駿馬), 그리고 여러 특산물들이었다. 주왕은 미녀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에다가 보물까지 바쳤냐며 한껏 신나서는 서백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더해 주변 제후국들을 정벌할 권한 또한 서백에게 안겨주었다. 그러자 서백은 다시 자신의 땅 일부분을 주왕에게 바쳤다. 그리고 포락의 형벌을 없애줄 것을 요청했다. “흥미롭게도” 주왕은 서백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음…서백 앞의 주왕은 뭔가 주왕답지 않다. 아무리 선물이 마음에 들었었기로서니 군대를 허락한다고? 심지어 자신이 개발(?)한 형벌놀이조차 포기한다고? 세상의 온갖 진귀한 물건들을 없는 게 없이 가지고 있었을 텐데, 왜 유독 서백의 선물 앞에서는 주왕의 마음이 풀어졌던 것일까. 서백과 얽힌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이런 의구심을 더욱 크게 만든다.
주왕에게서 풀려난 서백은 드러나지 않게 덕을 베풀고 선정을 행했다. 나날이 백성이 늘어갔고 제후들 또한 주왕을 등지고 서백을 따랐다. 주나라의 기세를 심상치 않게 여긴 몇몇의 신하들이 주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늘의 뜻이 주나라로 향하고 있다는 간언이었다. 하나 주왕은 아무런 걱정을 할 게 없다며 그 말을 단박에 물리쳤다. 거기엔 주왕 특유의 자만심이 있었겠지만, 서백을 대하는 주왕의 태도에는 분명 남다른 데가 있다. 서백에 대한 어떤 믿음, 그런 게 느껴진다.
주왕이 서백을 받아들인 것은 물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서백의 공손함과 진실됨이 있다. 서백이 주왕에게 보낸 선물은 뇌물들과는 달랐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주왕을 부정하고 증오하는, 그런 아첨이 아니었던 것. 서백은 주왕의 은나라를 받아들였다.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서백에게는 주왕을 해칠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거다. 주왕은 서백의 그 마음을 느낀 것이다. 하여 그는 서백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그를 받아들였다. 비록 주왕의 성정도, 그의 폭정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서백은 누구도 감히 멈출 수 없었던 포락의 형을 그치게 했고, 그 모진 시대에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어 줄 주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서백에게로 옮겨간다. 어떻게 서백은 그 포악한 주왕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 어째서 인간 같지도 않은 그런 자에게 자신을 낮춰야 했던 것일까. 사실 이런 물음은 서백에게는 적절치 않다. 서백이 머리를 숙인 것은 주왕이 아니라, ‘천리’였기 때문이다.
천지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고 변하는 흐름 그 자체다. 모든 일이 형통한 때가 있는가 하면, 뭘 해도 안 되는 꽉 막힌 시절 또한 있는 법이다. 그것은 곧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존재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하여 여기서 중요한 건 지금이 힘든 시기라는 것이 아니라. 이 답답한 시절 역시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다시 밝고 안온한 기운이 천지를 채울 것이다. 그러니 원망할 것도, 절망할 것도 없다. 누구의 잘못도, 누군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때가 그런 것이고, 그 때에 맞게 자신이 해야 할 바가 있을 따름이다.
하여 소축의 때, 서백은 주왕과 상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천리였으며, 그에게 유일한 문제는 천리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의 관심은 권력이 아닌 천리였다! 그것은 주왕이 없어야만 열리는 그런 길이 아니었다. 주왕과 같은 인물 때문에 어두워질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 그것이 천리이고, 그렇기에 천리이다. 그러니 서백의 마음 어디에 주왕을 해칠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주왕은 서백에게서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여 서백에게만큼은 그 강폭한 기운 또한 내려놓을 수 있었으리라.
천리에 대한 서백의 믿음. 날이 궂으면 궂은 대로,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작든 크든 자신의 천리를 행해 나가는 것. 이것이 서백의 전부였다. 서백은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그 길을 따라 천리의 밝은 빛은 흘러들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었다. 작은 구름들이 서서히 모여들어 매마른 땅을 적시는 비를 내리듯이 말이다.
그런데! 서백은 여기서 다시 한번 자신의 작음을 말한다. 그 시원한 빗줄기를 자신은 맞을 수 없을 거라고. 서백은 “자신이 어느 것 하나 이루어놓은 것 없이 살다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역 강의』, 리하르트 빌헬름, 진영준 역, 소나무, 175쪽) 다시 말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영광도, 그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기회도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거다. 그에게 허락된 일은 오직 구름을 모으는 일일 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서쪽 제후국의 수장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었다. 밀운불우 자아서교. 密雲不雨, 自我西郊. 구름이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내가 서쪽 교외에서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토록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출 수가 있을까. 서백은 자신이 누리지도 못할 비를 위해 구름을 모았다. 왜? 비는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자신이 아니어도 그 언젠가, 그 누군가는 내리는 비에 목을 축이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서백은 그렇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일에, 그리 생색나지 않은 그 길에 마음을 다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상황은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서백이 그 마음을 냈기에 비는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돌아올 결과에 대한 기대도 욕심도 모두 내려놓은 자리, 비구름은 거기에만 들어찰 수 있을테니 말이다.
서백은 이렇게 자신의 때를, 자신의 도를 그려나갔다. 거기에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서백이, 그 공손함의 덕이 밝게 빛나고 있다. 그것은 천리에 대한 진실한 믿음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주왕의 강폭한 기운으로부터 그를 지켜준 것도, 그에게 두려운 마음을 떨치게 해 준 것도 모두 이 믿음의 힘이었다. 풍천소축에 담긴 작은 것의 이 큰 힘은 그렇게 서백을 문왕으로 만들었다. 하여 훗날 소축괘의 효사를 지은 이는 서백의 이 덕을 담아 이렇게 4효를 썼다. 六四, 有孚, 血去, 惕出, 无咎. 육사, 유부, 혈거, 척출, 무구. 육사효, 진실한 믿음을 다하면 피 흘리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니 허물이 없다. <끝>
글_ 근 영(글공방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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