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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이수영

[월간 이수영] 신적 폭력이란 무엇인가?

by 북드라망 2023. 10. 4.

신적 폭력이란 무엇인가?

월간 이수영 2022년 11월호

 


벤야민은 ‘신화적 폭력’과 비교하며, ‘신적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신화적 폭력은 법을 보존하게 하며, 피를 흘리게 하는 폭력입니다. 하지만 신적 폭력은 법을 파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피를 흘리지 않고 목숨을 앗아간다’고 합니다.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폭력은 도대체 어떤 폭력일까요? 

 


‘무조건적’ 성격의 윤리적 주체
칸트의 윤리적 주체는 물질과 쾌락을 욕망하다가, 좀 더 고상한 상위의 대상으로 욕망을 옮겨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될 수도 없습니다. 칸트의 윤리는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완전히 결별하는 순간에 생깁니다. 칸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정념적이라고 합니다. 이 정념적 세계에서 윤리적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의 존재 변환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실체변환(Transubstantiation)이라고 불립니다.

윤리적 주체는 인과적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원인 조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원인이 있지만, 그 원인이 결과를 만들도록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로 주체인 ‘나’입니다. 따라서 주체는 어떤 조건과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 때문에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행동합니다. 외부 세계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면서도, 내가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원인 조건대로 행동했다면, 주체의 자리는 없어집니다.

그런데 정념적 개인에서 윤리적 주체로의 변환은 ‘내가 변하겠어’라는 의지로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타자성처럼 옵니다. 일제시대의 독립투사의 경우, 자신의 활동으로 가족과 자기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독립 투쟁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그 외부의 조건과 타협하는 순간, 주체가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독립투사의 경우처럼, 칸트의 윤리성은 생명 이상의 차원을 가집니다. 윤리적 주체는 개인의 생명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정념성의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떤 것을 위해서 생명마저도 내던질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입니다. 물리적으로 살고는 있으나, 살아 있는 것과 같지 않은 상징적 질서를 다른 동물들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신적 폭력의 형태는 윤리적 주체 탄생의 순간
윤리적 주체는 신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정념적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윤리성의 세계는 바로 신의 세계입니다. 벤야민은 신적 폭력은 ‘피를 흘리지 않고 목숨을 앗아간다’고 했습니다. 이 피를 흘리지 않는 신적 폭력의 죽음은 윤리적 주체의 죽음과 같습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순간, 살아도 이미 죽은 순간, 이것이 윤리적 주체가 훼손될 때 겪는 죽음입니다.

윤리적 주체가 자기 개인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표현될 때는, 폭력성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이때의 폭력은 이미 생명성을 초월했으므로 비타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리성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무조건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비타협성을 가집니다. 보통 국가나 제도가 갖고 있는 폭력은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윤리성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국가나 법적인 권력의 한계입니다. 오빠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서 크레온 국가 전체를 위협했던 안티고네가 바로 그 예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이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당장 개선하라’는 것이 전장연의 요구이고, ‘지금은 예산이 없으니 그대로 살라’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도, 그들의 물리적인 생명 유지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무조건적인 요구를 조건적으로 보고, 출근길을 지연시키므로 불편하다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치의 장애인 제거 프로그램인 ‘T4 프로그램’과 같은 무시무시한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비마이너

 


녹취정리 - 양희영(글공방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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