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물자체’로 무엇을 할 것인가
월간 이수영 2022년 10월호
칸트는 ‘물자체’의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물자체란 우리가 알 수 없는 총체로서의 ‘사물 그 자체’를 말합니다. 칸트는 초월성이나 신적인 대상을 고민하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물자체 개념을 도출해냅니다.
물자체: 주체의 시작
칸트 이전의 형이상학은 감성의 영역을 무시했었습니다. 오직 지성만을 중요시했던 것이죠. 하지만 칸트는 인간은 감성이라는 조건을 통해서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적 필터에 의해서만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보를 지성이 종합하고 구성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시공간이라는 감성적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역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물자체입니다.
이렇게 보면, 물자체는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적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면서 비일관성을 만나게 될 때, 나타나는 것이 물자체입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기존의 표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숭고미라고 부르죠. 또 우리가 욕망했던 대상이지만, 곧 그 대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비일관성과 균열의 장면들이 바로 우리가 물자체를 현실에서 마주치는 예입니다.
칸트의 주체는 이러한 비일관성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출현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인과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C라는 사건이 B에 의해서 생겨나고, B라는 사건은 또 그 이전의 A라는 사건에 의해 발생합니다. (A -> B -> C) 이렇게 하나의 사건에 대하여, 선행되는 원인들이 쭉 있습니다. 하지만 칸트는 이런 인과가 전부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모든 사태 속에서 원인이 작동할 때, 그 원인을 원인이 되게끔 만든 것은 원인 바깥의 원인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이 그 원인을 그렇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의 인과 질서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주체가 작동할 수 있는 틈이 있습니다. 이 틈으로부터, 즉 세계의 비일관성으로부터 발생하는 물자체가 우리가 주체임을 깨닫게 하는 타자로서 작동합니다.
정언명령: 모든 행위의 조건은 ‘무조건’ 주체
칸트의 윤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칸트가 생각하는 윤리는 인식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의 행위를 결정합니다. 이 윤리는 도덕 교과서나 십계명의 권위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 행동이 철저히 나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칸트의 정언명령입니다. 칸트는 정언명령을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원리에 타당하도록 그렇게 행위하라’고 정식화 했습니다. 여기에는 무엇을 하라는 행동이 구체적으로 없습니다. 옳고 그름도 없습니다. 행동의 결정은 철저히 ‘나의 자유’를 따릅니다. 정언명령에 의하면, 모든 행위의 원칙은 ‘무조건 나’에게 있습니다. 행위를 할 때 바깥의 조건이 아니라, 그 행위의 조건이 무조건적으로 주체에게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행위는 나의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함이라는 준거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칸트의 주체는 개별성을 뛰어넘어,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자주 ‘자아’나 ‘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주체는 칸트가 이야기하는 주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모든 개인이 칸트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인식할 때 균열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주어진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정에 의해 그리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타당해야 비로소 칸트가 이야기하는 주체로서 활약할 수 있습니다.
녹취 정리 - 양희영(글공방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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