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배운 치유와 일상의 ―『쿠바와 의생활: 쿠바에서 만난 생활의 치유력』이 출간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북드라망 독자님들!
역마-공부의 달인 김해완 선생님의 신간 『쿠바와 의생활: 쿠바에서 만난 생활의 치유력』이 출간되었습니다. >_<
전작 『뉴욕과 지성』으로 뉴욕 생활과 공부를 정리하신 바 있는 해완샘, 남미 문학을 공부하고자 쿠바로 건너갔는데, 뜻밖에도 시작한 공부는 의학! (이 사연은 지니TV 백미 토크를 참고해 주세요.) ⇒ 링크
아바나의과대학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하면서 해완샘은 놀라운 쿠바의 의생활(衣생활 아니옵고, 醫생활입니다!)을 만나게 됩니다.
말, 말, 말. 시냇물처럼 끊이질 않는 말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마을 진료소, 콘술토리오consultorio가 나왔다. 그 장면이 머리에 콱 박혀 나도 모르게 현장에 발을 들였다. (......) 가족주치의가 상주하는 곳, 간호사가 출퇴근 도장을 찍는 곳, 갓난아기부터 임종을 앞둔 노인까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방문하는 마을 진료소다.
이 수다 -진료소에는 각자 자기 역할이 있다. 환자들은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헤비 토커’heavy talker다. 콘술토리오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들은 동네의 잡다한 소식을 공유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 간호사는 걸어 다니는 ‘검색 엔진’search engine이다. 주민들의 숟가락 개수부터 최근 이들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일상의 사소한 변화 하나라도 사람들의 안녕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주치의는 모든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종합해 내는 ‘리스너’listener다. 이 정보는 진료하는 동안 적재적소에 활용된다. (김해완, 『쿠바와 의생활』, 38쪽)
쿠바 의료의 목표는 “주민들 생활에 최대한 밀착하여 실용적인 의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의사-환자-주민이 맺는 관계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평등하고 열린 관계로, 가족주치의는 자신도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동등한 위치에서 환자에게 자기 삶을 돌볼 것을 요구”하며, “환자 또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함께 모색”한다니, 저희가 흔히 일상에서 접하는 의사-환자 관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병원에 가면 의사-환자 사이가 평등하다고 보기 힘들고, 무엇보다 환자인 나 자신이 내 병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전문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 보살핌이 필요하게 되면, 전문가를 만나고 당장의 어려움은 해결한다 해도 돌봄의 문제가 남습니다. 이 돌봄은 가족에서 요양보호사로 점점 넘어가고 있고요. 이 가운데 환자와 노인은 자신이 꾸리던 일상에서 분리되어 버립니다. 일상에서의 분리는 보통 치유를 더 어렵게 하지요.
해완샘은 건강은 ‘병의 부재’가 아니라 ‘총체적인 안녕’이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정의를 다시 말합니다. 언제든 의술과 의료에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변화를 겪을 때마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감과 조언을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가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면서요. 그리고 이렇게 생로병사를 함께하는 든든한 관계가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모습을 쿠바에서 생생하게 목격하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의료기술’만이 아니라 ‘치유를 함께할 든든한 관계’임을 찬찬히 보여 줍니다.
미사여구로 가려지지 않는 삶의 민낯 앞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를 긍정하면서도 결핍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진정한 치유가 병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풍요가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면, 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쿠바와 의생활』에서 나는 쿠바인들이 이 질문 앞에서 나름대로 찾아낸 답을 스케치하고자 했다. 이 현장 스케치가 불충분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다. 질문의 크기에 비해 답의 규모가 지나치게 미시적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다.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쿠바에서 몇 년을 살면서 목격했던 의醫의 저력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모습을 드러내다가 사라졌다. 치유에는 뚜렷한 형태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어려움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근본을 묻는 질문일수록 대답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 구해야 한다. 근본을 통찰하는 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지리멸렬한 생활 속에서도 나의 실존을 긍정하는 역량이다. 그래서 의생활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생활을 가꾸는 숙제로 돌아가야 한다. 쿠바 의생활은 힌트가 되어 줄 뿐이다. (김해완, 『쿠바와 의생활』, 251쪽)
생로병사의 현장인 우리 신체와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책, 『쿠바와 의생활』은 그간 양극단의 시각(공공의료로 보장된 건강 평등 vs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며 실상은 지옥)으로만 다루어져 왔던 쿠바의 의료와 쿠바의 모습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함께 생로병사를 나눌 관계를 고민하시는 독자님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책은, 서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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