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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발 영화이야기

[청량리발영화이야기] #살아있다

by 북드라망 2022. 11. 8.

#살아있다

<사마에게, برای سماء, For Sama> |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 2019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리아는 1946년 독립한다. 하지만 이집트와 연합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가, 1960년대 초 연합을 탈퇴하면서 여러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 정권을 잡은 ‘알아사드’정부가 40년 넘게 부자세습과 독재정치로 시리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시민들의 무장투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독재 알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 출신들이 반군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종파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15% 정도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대부분 시아파 출신들이다. 그래서 시아파 이란과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반군을 지원한다. 2012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라크에서 발생한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 북부(알레포가 있는 지역)를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북부도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폭격이 쏟아지고 복구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외부의 지원이나 뉴스보도가 거의 끊겨 고립된 상황.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와드’와 ‘함자’ 그리고 그들의 딸 ‘사마’ 역시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웃들과 생존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일상이 되었다. 영화 <사마에게>(2019)는 알레포에서 4년 동안 살아남은 그들의 생존기록이다. 그 중 두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삶
건물이 폭격당해 한 산모가 피를 흘리며 함자가 있는 병원으로 실려 온다. 산모도 출혈이 심했지만, 충격으로 뱃속의 아이는 이미 숨을 쉬지 않았다. 의사는 그래도 탯줄을 자르고 손바닥으로 신생아의 등과 배, 온몸을 문질러본다. 이미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그것도 같은 병원에서, 영화는 묵묵히 보여주었기에 그 아이 역시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미간에는 힘이 들어가고 눈은 가늘어졌다. 그러나 순간!!! 아이의 까만 두 눈이 떠졌다. 덩달아 내 눈도 커졌다. 이때 카메라 너머 와드의 표정은 어땠을까? 아이가 쿨럭 거리자 의사도 깜짝 놀라 서둘러 그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었고 아이는 다행히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죽음
또 다른 장면, 이번에는 한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병원을 나서는데 아이의 어머니가 오열하며 뒤따라 나온다. 아버지에게 안긴 그 아이의 팔은 축 늘어져 이미 움직이질 않는다. 어머니는 울면서 현실을, 죽음을 부정한다. 어쩔 수 없이 이것 또한 함자가 있는 병원의 일상 중 하나다. 그때 옆에서 와드가 들고 있는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 그녀는 화면(카메라)을 노려보며 묻는다. “이거 지금 찍고 있는 거냐고.” 순간 내게 질문하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랐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그 앞에서 지금 카메라를 들이 대냐고 그녀가 화를 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르게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이거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다 찍어!”



영화 속 이 두 장면은 와드의 마음을 대신하는 듯하다. 이미 폐허가 된 알레포에도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삶을 떠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 여기서는 살아남는 것이 곧 저항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어떤 순간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죽음 앞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실낱같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또 마주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러나, 카메라는 급하게 희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영화 <사마에게>를 보고 ‘이 일은 역사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일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제 행동을 해야 될 때가 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에 대해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인간으로서, 나는 그 희망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와드 알-카팁 감독)”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앞에 이성이란 무력할 뿐이다. 더구나 시리아 내전처럼 종교분쟁에서 비롯된 갈등인 경우, 맹목적인 믿음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드 알-카팁 감독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학생운동 할 때부터 알레포를 떠날 때까지 그녀의 손에는 늘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카메라는 이성이 무너지지 않게, 믿음에 포획되지 않게 해 준 친구였다.

사실 이런 류의 다큐멘터리에는 감독의 인터뷰 외에 다른 성찰의 목소리를 첨언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살아남아야 희망도 보이는 법이다. 알레포의 딸 ‘사마’와 그의 가족, 친구들이 잘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도 잘 살아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글_청량리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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