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약 기계 벗어나기
2등 - 구혜원
병원은 2,3년에 한번 가고 약은 잘 먹지 않는다. 가끔 기운 없을 때 쌍화탕을 털어먹긴 해도 진통제나 소화제를 먹은 일은 손에 꼽는다. 온갖 병원과 약을 섭렵한 내 친구들과 비교하면, 이상하게 그런 쪽과 연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관심도 별로 없다. 그런 내가 <인문약방>을 읽은 이유는 제목이 재밌어서다. ‘약국’은 아무래도 이과의 공간인데 ‘약방’이라고 하면 신기하게도 그런 느낌이 덜하다. 거기에 ‘인문’이라고 하니까 처방전대로 약만 주는 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사람 사는 정다운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이것은, 북드라망 도서 중에서는 희귀한, 감성 넘치는 ‘힐링’ 도서가 아닐까? 그런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겼다.
결론만 말하면 반은 틀렸다. 분명 이 책은 환자와 만나는 현직 약사의 고민이 드러나는, 거기에 공부하는 인문학책의 내용이 진하게 반영된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약’도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구체적인 복약지도라니. 가볍게 읽으려고 들었다가 어느새 줄을 ‘쫙’ 치게 된다. 그러니까...영양제는 종합비타민에 무기질이 들어간 걸 먹으면 된다는 거구나!
물론 이 책은 복약지도 핸드북이 아니다. 오히려 기계적인 복약을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의 약은 인간과 동물을 ‘대상화’ 하면서 탄생했다. 이 책 초반에 나오는 실험용 쥐 수십 마리가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지는 장면은 끔찍하지만, 약은 그렇게 쥐와 같은 동물을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대상화’ 한 끝에 출시된다. 그런데 쥐 수십 마리를 거쳤다 해도 거기서 도출된 평균값이 인간에게 바로 대입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게다가 인간은 각자 다른 맥락 속에서 살아왔는데, 병명과 약명이 1:1로 대응되어 처방되는 것도 이상하다. 이는 약이 “처음엔 동물들의 대상화, 그 다음엔 사람들의 대상화” 과정이 속에서 “각각의 몸의 특이성을 삭제하고 동질화”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내 감기와 내 친구의 감기는 전혀 다른데, 약은 감기약, 두통약 등등 병명을 달고 버젓이 나와 똑같이 처방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저자는 감기에 걸렸을 때 빨리 낫고 싶어서 고함량 항생제를 먹고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고 한다. 본인에게 과한 용량을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함량’이라고 적은 제약회사는 약의 성분과 병의 대응관계만을 고려할 뿐 약을 먹는 환자의 몸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과학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계적인 약의 작동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몸의 아픔도 기계적으로 대하게 된다. 심플하다. 아프면 약으로 그것을 제거하면 된다.” 이때 환자의 몸은 “약이 들어와 작동하는 기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약을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아픈 데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몸이 아프다면, 지금보다 늙어서 일상생활이 어렵다면, 나는 알지도 못하는 이름의 병에 걸린다면 나 또한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빨리 나을 수 있는 약을 달라고 하지 않을까? ‘약이 들어가 작동하는 기계’를 자청하지 않을까? 그때 내 몸을 제대로 돌봐줄 의사나 약사가 있을까? 사실 내가 병원을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환자 얼굴은 보지도 않고 5분 만에 처방전만 주고 내치는 취급이 너무 싫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병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의사나 약사의 전문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시스템은 내 몸을 그저 상품을 복용하는 대상으로만 보는데 말이다.
저자는 일리치의 ‘전문성’ 개념을 원용하며 “의료가 전문직으로 소수 사람들에게 독점되어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돌볼 기회를 빼앗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료가 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화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신화는 단순히 사람을 속이는 게 아니라 자기를 돌볼 능력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내 몸과의 관계 사이에 전문성으로 무장한 의료 권력을 두고, 그걸 거치지 않으면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건강하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그런 거 안 먹어’라고 쿨하게 말하기에는, 여기 나오는 약 대부분은 처음 듣는 것들이다. 어쩌면 내심 ‘아프면 약 먹고 말지’ 하는 마음에 나 자신을 방치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의학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게 뭔지도 모르고 한껏 기대서 살아온 것인지도. “심플하다. 아프면 약으로 그것을 제거하면 된다.” 라고. 그야말로 현대 의학에서 대상화된 몸, 약 먹는 ‘복약 기계’를 나도 모르게 자처하고 있었던 셈이다.
저자는 갑자기 발생한 알레르기성 천식을 고치려고 노력한 일화를 소개한다. 처음에는 단식과 채식으로 치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약사로서의 자존심을 구기며 스테로이드를 받아들였는데, 이 시도들은 사실 천식을 “비정상”으로 진단했다는 점에서 사실 같은 차원에 있었다. 이래서야 계속 ‘약 먹는 기계’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식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발명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질병을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럼 병은 외부에서 찾아온 아프고 힘든 비정상이 아니게 된다. 살아가는 과정으로서 겪어야 하는 문제가 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나의 한 부분이 된다. 이때 ‘병과 함께 산다’는 건 몸을 병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공부하고 실험하는 시도일 것이다. 그럴 때야말로 몸은 외부의 병과 치료약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기계이기를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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