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몽(童蒙)’이 구해야 한다
관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나에게는 간디학교가 세상 전부였다. 친구들과는 함께 뛰어놀며, 학교 규칙을 어기면서 게임도 하고 학교 밖에 있는 마을 매점에 들락거렸다. 선생님들에게 걸릴까 봐 긴장 속에서 먹던 라면의 맛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들과도 잘 지냈다. 같이 축구도 하고 장난도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례했던 장난들도 쳤다. 수업 시간에 수업 진행을 못 할 정도로 웃고 떠들기도 했고, 둘째가 생긴 남자 선생님에게 야한 농담도 했었다. 어휴…..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이때는 세상 모든 어른이 간디학교 선생님들처럼 나를 이해해주고 혼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택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했을 때 그저 밀도가 높아진 운동만 잘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상상도 못 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바로 내 생활태도였다! 그중에 기억이 남는 것이 청소다.
어느 날 관장님이 내가 대충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셨다. 관장님은 평소에 나를 이름으로 부르시는데 그날은 ‘야’ 라고 나를 불렀다. 그것도 낮은 목소리로….! 전수관은 얼어붙고 밖에서 들리던 온갖 소리는 언제 났었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몇 초간의 침묵이 너무나 무겁고 두려웠다. 관장님이 입을 여셨다. ‘옛날에 무예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스승을 찾아가서 청소부터 시작했다. 청소, 빨래, 밥 등 이런 잡일들을 스승이 인정해 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그게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제일 기본적인 일들을 열심히 할 수 있어야 다른 것들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관장님이 화내시는 것을 봤다.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은 평소에 운동할 때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관장님과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주역에 있는 몽괘가 떠오른다. 몽(蒙)은 ‘무지해서 어리석다’라는 뜻이다. 괘의 모습은 멈춤을 뜻하는 산이 위에 있고 위험을 뜻하는 물이 아래에 있다. 위험을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렇게만 보면 되게 흉한 괘인 것 같지만 주역에서 몽괘는 형통하다. 어리석은데 형통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어린이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계몽할 수 있는 이치가 잠재되어 있으니, 형통할 수 있는 뜻이 있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2020년, 145쪽) 어린이는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세상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즉 어린이의 어리석음이란 내 생각에 갇혀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여러 공부를 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꼭 내 생각이 다 맞는 것은 아니구나’를 알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형통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스승님이다. 匪我求童蒙, 童蒙求我(내가 어린아이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나를 찾는 것이다.) 몽괘의 괘사 중 일부분이다. 괘사에서 말한 나(我)는 구이효를 말하고 어린아이는 육오효를 말한다. 육오효는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스승님을 찾아오는 자이고 구이효는 강중의 덕으로 어리석은 자들을 포용하고 깨우쳐 주는 자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자가 진심으로 가르침을 받기 위해 스스로 스승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는 사회에 대해, 나에 대해, 택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아니,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것을 몰랐다. 아무런 지식도 없고 나이에 비해 성숙하지도 않고 심지어 예절도 없는 ‘어린아이’를 관장님은 보자마자 참 막막하셨을 것이다.^^ 사람 꼴을 만들기 위해서 혼내시기도 하고 기술도 가르쳐 주시고 피드백도 해주셨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늦게까지 게임도 하고 친구랑 만나서 밤을 새워가며 놀았다.
그런데 관장님이 시키신 운동을 하면 할수록 내 몸에서 변화가 느껴졌다. 처음에 관장님이 시키신 운동량은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양인가 싶었다. 이렇게 많은 운동을 하면 뭐가 좋아지는지 잘 몰랐다. 그저 시키니깐 할 뿐!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나자 발차기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몸에 힘이 붙었다. 그때 느꼈다. ‘아! 관장님은 아무 이유 없이 무언가를 시키지 않으시는구나!’ 그때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에 관장님이 혼을 내시면 받아들이고 시키시는 것이 있으면 군말 없이 했다. 하지만 술 많이 마시지 않기, 일찍 자기, 아침에 런닝 꼬박꼬박하기, 아침 꼭 먹기 등 이런 것들은 따르지 못했다. 아마 마음 한켠에 배움이란 내가 아니라 관장님이 깨우쳐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이 안 좋은 건 알지만 정말로 문제가 되면 관장님이 말려주시겠지!’ 이런 생각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많이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게 되었다. 나는 그저 관장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배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상으로 내가 뭘 해보려거나 가르침을 구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로 배우니 관장님이 많은 것을 가르쳐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받아드렸다. 제대로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니깐 관장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배움은 나아가지 못했다. 질문의 횟수는 점점 줄었고 나중에는 택견을 알고 싶은 욕구마저 없어졌다. 더는 택견에서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하니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쩔 수 없어서 할 때랑 정말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낸다면 배움의 새로운 맛들을 느끼면서 더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 나에게 정말 필요한 훈련이다.
글_김지형(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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