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청년주역을만나다] 吉, 凶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吉, 凶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주역을 공부하다 보면 ~하면 길하고, ~하면 흉하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나는 지금까지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내가 잘해서 생긴 일이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건 그저 운이 나빠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운이 나빠서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저 다가올 흉을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밖에 할 수 없다는 소리다. 이 얼마나 억울한가?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니! 그런데 주역에서는 이렇게 하면 흉하고 저렇게 하면 길하다고 하니 흉을 피할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흉을 피할 생각만 했다.^^ 길, 흉이 어디서부터 생기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계사전」을 읽으면서 길흉회린자 생호동자야(吉凶悔吝者 生乎動者也)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길흉은 움직임에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자 최근에 아침 달리기에서 생긴 일들이 생각났고 길,흉과 ‘움직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충주에 있었을 때는 하루에 약 7시간 정도 운동을 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운동량이 확 줄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저녁에 택견 전수관을 다니면서 운동을 했고 감이당에서 택견수업을 하면서 공부와 운동의 균형을 맞췄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덮치면서 그 조금의 운동도 못 하게 되었다. 몸은 점점 굳어지고 내 마음도 운동을 멀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몇 개월 전부터 6시에 일어나, 남산타워 근처까지 뛰어 올라가고 있다. 아침 공기가 매우 차가워서 폐와 몸이 얼어버릴 뻔했다.^^ 그런데 혼자 뛰니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라지만 새벽에 쓸쓸히 혼자 뛰는 상황과 감정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점점 의욕이 떨어져서 온갖 핑계를 대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이당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은 운동을 거의 해본 적이 없기에 같이 달리기를 할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권유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러자 보겸누나를 시작으로 재훈형, 하늘형, 용재, 현숙쌤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는 공익이라는 특성 때문에 청년들과의 교류가 적다. 평일에는 9시에 복지관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한다. 감이당에 최대한 오래 있어야지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공부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질 못한다. 게다가 퇴근하고 아무리 빨리 감이당에 와도 이미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 있어서 혼자 밥 먹기 일쑤다. 청년들과 동선이 엇갈리다 보니 교류가 적을 수밖에….ㅠ 그런데 달리기를 할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 같이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2월이 되자 수업이 하나, 둘씩 개강하면서 청년들이 바빠졌다. 청년들은 아침마다 자강불식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자강불식이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청년들을 위해 생활리듬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아침에 다큐를 보기도 하고 영어로 낭송을 하기도 한다. 자강불식의 시작 시각은 아침 8시다. 적어도 30분 전에는 연구실에 도착해서 준비해야 하니 평소에 달리기를 한 시간 당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기에 많~이 걱정됐다. (아침에 내 옆에서 청소기를 돌려도 나는 잘 수 있다.^^) 다른 청년들도 6시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어떻게 모은 사람들인데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6시에 하자고 했다. 그런데 웬걸? 내 예상과는 다르게 다들 동의를 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문제가 생겼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외워야 하는 주역의 양이 확 늘었고 내가 신청한 1년짜리 프로그램에서 조장도 맡게 되었다. 거기다가 주역 세미나와 택견과 주역을 엮어서 영상도 찍어야 했고 대학(大學)도 외워야 했다. 물론 다른 청년들에 비하면 난 한가한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내 평생 이런 스케쥴은 처음이었다! 머릿속에서 한 번에 정리되지 않는 스케쥴이라니….! 압박하는 일정들에 치여 매일 늦게 잤다. 그런데 달리기는 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야 했다. 잠이 부족한 나의 신체는 점점 처지기 시작하고 정신이 혼탁해졌다. 읽어야 하는 책이 머릿속에 안 들어오고 잠이 쏟아졌으며 급기야 세미나 시간에도 졸기 시작했다. 잠이 부족한데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이런 스케쥴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어쩌다 눈이 일찍 떠져도 곧바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눈에 아주 무거운 추가 달린 것 같았다. 숙소에서 출발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달리기 시간에 지각이 잦아졌다. 결국, 같이 뛰는 형들이 한마디 했다. “시간 좀 맞춰서 와” “지각하는 거 자주 봤어…!” 내가 만든 운동모임인데 정작 만든 사람이 달리기 시간에 지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충주를 떠나 연구실에 들어와서 공부를 시작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서 기뻤다. 공부도 하고 택견도 하고! 일석이조였지만 코로나가 한국을 덮치면서 택견을 못 하게 되었고 나의 몸은 점점 굳어졌다. 게다가 공익근무가 시작되면서 청년들과의 거리가 생겼다. 그래서 아침 달리기라는 모임을 만든 것이고 이 모임에서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을 같이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나의 부주의로 인해 지각도 많이 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길, 흉이 번갈아 가면서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이렇듯 모든 길, 흉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고 갑자기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움직임에서 나오는 것이다.

吉凶悔吝이라는 것은 결국 움직이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길흉이 없어요. 우리의 길흉회린이 생겨나는 것은 항상 우리가 사회적 행동을 취하는 데서 생겨나는 겁니다. 아무 일도 없이 가만히 있으면, 길흉회린도 생겨날 수 없겠지만, 그 인간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인간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용옥, 『주역 계사전 강의록』, 158쪽)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내가 가만히 있겠다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나는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몸 안에서는 나를 살리기 위한 생명유지 장치들이 계속 활동하고 있다. 이 활동들로 인해 배가 고파져서 밥을 먹게 되고 볼일을 보러 화장실도 간다. 이렇게 나의 움직임도 있지만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도 움직이고 있다. 올해 들어 내가 이렇게 바빠진 것도 공부하려는 나의 마음과 행동이 감이당에서 열리는 여러 프로그램과 만나서 이루어진 결과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길, 흉은 생겨나는 것이다.

즉 내 인생에 길, 흉이 생기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걸 이해하고 나니 흉을 전보다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흉만 계속 이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흉했다고 생각했던 일이 세상 흐름 속에서 어떠한 인연 조건을 만나 길하게 될 수도 있고, 길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금 당장 흉하다고 너무 좌절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내다보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 길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달리기를 하며 완전히 망가진 생활리듬과 신체를 바꾸기 위해 일찍 자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길, 흉은 그저 삶의 조건 중 하나다!

 

글_김지형(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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