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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청년 주역을 만나다

[청년주역을만나다] ‘가는 바’를 두어야 나아갈 수 있다

by 북드라망 2021. 8. 4.

‘가는 바’를 두어야 나아갈 수 있다


주역을 공부하다 보면 자주 보이는 단어들이 있다. 리섭대천(利涉大川), 무구(无咎), 리정(利貞) 등등 이런 글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외울 때는 이 글자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게 된다. 쉽고 외우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에 유독 눈길이 가는 글자가 있었다. 바로 유유왕(有攸往) 이다. 이 단어에는 앞에 불리(不利)나 리(利)가 많이 붙는데 이상하리만큼 입에 착 달라붙었다. 이 단어는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길을 한 발자국 내딛기 전에 방향이나 목표를 잡고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 관용구가 들어가는 효사 중에 내가 인상 깊게 본 게 하나가 있다. 대축괘의 구삼효다. 대축괘의 뜻은 ‘큰 것을 축적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큰 것이란 덕과 도를 말한다. 축적이라고 하면 보통 재물을 축적하거나 지식을 축적하는 것처럼 어떤 것을 계속 쌓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대축괘의 축적은 완전히 반대다. 괘사에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길하고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不家食 吉 利涉大川)’라는 구절이 있다. 집이란 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부모님이 먹을 거 챙겨줘…. 잠도 재워줘…. 아마 집 밖으로 나오기 싫어질 것이다.^^ 이렇게 편안한 곳에서만 힘을 축적하면 세상과 연결되기 힘들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이 축적한 무언가를(기술, 지식, 지혜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면 나 혼자만 길한 것이 아니고 세상이 길하게 될 수 있다.

九三 良馬逐, 利艱貞, 日閑輿衛, 利有攸往

구삼효, 좋은 말이 달려가는 것으로 어려움을 알아서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로우니, 날마다 수레 타는 것과 방위하는 것을 연습하면,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대축괘는 상괘가 산을 뜻하는 간괘고 하괘는 하늘을 뜻하는 건괘다. 구삼효는 강건한 건괘의 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강건한 재능으로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과 뜻을 함께하여 나아간다. 이때 나아감이 거침이 없어서 좋은 말을 타고 달려가는 것처럼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강건한 재능이 있고 양강한 사람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축적의 길은 신중히 나아가야 한다. 무작정 빠르고 거침없이 나아간다면 아무리 엄친아라고 하여도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매일 수레를 끄는 것과 방위하는 것을 연습하라고 한다. 어느 정도 축적이 된 상태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지만 제대로 축적도 안 됐는데 나눠주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나도 그나마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택견을 해서 이제야 겨우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일주일밖에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택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르칠 수 있는 기술도 없을뿐더러 정확한 동작을 알려줄 수도 없다. 그래서 매일 수련을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삼효에서는 매일 수련을 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나아가라고 한다. 이런 수련들을 매일 하기 위해서는 나아갈 바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택견을 할 때는 사범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충주에서 5년간 택견의 지식과 기술들을 축적했다. 기술은 쌓여만 가는데 충주에만 있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답답했다. 택견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충주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고 결국 슬럼프까지 찾아왔다. 그때 우연히 감이당을 만나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택견과 인문학을 같이 하는 길을 가고 있다. 아직은 택견과 인문학이 따로 놀고 있지만, 나중에는 인문학과 택견을 결합시키고 싶다. (이건 먼 훗날의 이야기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아직 수련을 더 해야 한다. 내가 평소에 해오던 수련과는 다른 수련 말이다. 바로 ‘공부하는 신체’ 만들기다. 계속 운동만 해오던 나의 신체는 당연히 ‘공부근육’이 없었다. 공부근육 만들기 1단계! 바로 세미나 책 읽기다. 세미나 책은 너무 어려웠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통 이해하질 못했다. 특히 청백전 화요반에서 읽었던 푸코의 『성의 역사』 1권은 진짜 ‘Hell’이었다. 처음 보는 단어, 빽빽한 글씨, 고대 그리스의 배경 등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성에 대한 역사를 봐서 뭐 하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성에 대해 알아야 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너무 어려워서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거나 밖으로 나갔다. 한번 나가면 한 20분은 밖에서 서성거리다 들어왔다. 그렇게 해도 성의 역사 1권은 펴기만 하면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미나 전까지 책을 다 읽어가야 하니 이해를 못 했어도 글자를 읽는 것에 의미를 뒀다. 그렇게 읽고 세미나에 가면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만 듣고 중간중간에 맞장구만 쳤다. 세미나에서 할 말이 없었다. 그때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없었는지…!

 


하지만 이 길을 가기로 정하고 나자 견디어내는 힘이 생겼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고 책도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세미나에서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미나에서 한마디 하기 위해 10분 동안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심호흡 한번 한 뒤에 얘기했다.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내가 드디어 얘기했어!’ 라는 생각에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아서 힘들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책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공부근육이 붙고 있다.

지금 돌아보니 충주에서 답답하고 지루했던 이유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무작정 수련만 해서 그런 것 같다. 나아갈 바를 두지 않고 기술들을 내 안에 축적만 하니깐 꽉 막혀서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해졌다. 그러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리가 됐고 내 속에 꽉 막혀있던 응어리가 풀린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축적한 기술을 순환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학, 취업 말고도 분명히 나에게 더 가치 있고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제 할 일은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뿐!

 

글_김지형(감이당 주역스쿨 토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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