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주역
주역을 공부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물론 아직 생 초짜다.^^ 그래서 주역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고 싶다. 작년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렇게나 운동만 하고 노는 것만 좋아하던 내가 공부가 하고 싶다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주역 속의 어떤 힘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 힘이 무엇인지 한번 파헤쳐 보자!
처음에 주역은 나에게 그저 ‘한자’ 였다. 뜻도 모르는 글자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이런 글자들을 외워야 한다니 막막했다. 거기에다 번역되어있는 말들은 의미 불명이었다.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대인을 만나는 게 이롭다든지(見龍在田, 利見大人), 엄지발가락에서 감응을 한다든지(咸其拇),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든지(利涉大川)…. 평소에 친구들이랑 얘기를 나누면 ‘존맛’ ‘갑분싸’ ‘오졌다’ 같은 이런 줄임말과 욕을 많이 썼다. 그리고 그저 게임, 연애, 돈처럼 가볍고 감각적 쾌락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이러니 주역의 언어가 ‘이게 뭔 말이야? 외계어인가?’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 괘마다 주제가 있었는데 이것들이 어떻게 우리들의 일상과 연결이 되는지도 아리송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몰라도 주역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외워야 했기에 외웠다. (쌤들이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뜻도 모르고 의미 불명한 말들을 계속 외우다 보니 한자를 외우는 맛이 느껴졌다. 예전의 나는 무언가를 이렇게 열심히 외워본 적이 없다. 애초에 공부랑 담 쌓고 놀기만 했으니 외울 기회도 없었고, 외우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역 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한자를 제대로 외웠고 외우는 맛에 빠져버렸다. 한 글자씩 써 내려갈 때 ‘와! 내가 한자를 쓰고 있어!’라는 신기함과 쾌감! 다 쓰고 나면 느껴지는 성취감! 거기다가 입으로 외우면서 생기는 리듬이 참 좋았다. 이때는 오직 외우는 맛으로만 공부를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엇이든지 쉽게 질리는 경향이 있다. 이전에도 이것저것 많이 배웠지만 곧 그만뒀다. 처음에는 새로운 자극이 좋아서 시작했다가 계속하다 보면 그 자극이 무뎌진다. 점점 흥미를 잃고 결국에는 그만둔다. 그래서 만약에 외우는 맛만 가지고 주역을 계속 공부했다면 오래 못했을 것이다.
주역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이치를 알려준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 때에 맞게 행동하는 것,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등 굉장히 간단해 보이고 평범한 것들이다. 하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들이다. 이 자연스러운 이치에 나의 욕망이 끼어들면서 부자연스러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빠르게’ 결과물을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내가 택견을 한창 하고 있을 때 실력을 빨리 올리고 싶어서 연습을 과하게 한 적이 있다. 그때 무릎을 다쳤는데 아직까지도 통증이 찾아온다. 연습을 무리하지 않고 착실하게 했다면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을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했다. 주역이 망치로 뒤통수를 때려 깨우쳐 주는 것 같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역이라는 고전은 나에게는 너무나 먼 학문이었다. 성인이 되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역의 이치는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에 계사전을 공부하면서 더욱 확신을 얻었다.
역경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우리의 인생과 들어맞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역경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중략) 이 뜻은 이렇게도 새길 수 있습니다. 역경은 아주 알기 쉽고 평이해 일상생활과 가장 가깝고 관계가 깊은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남회근, 『주역계사강의』, 부.키, 2018, 545~546쪽)
주역을 막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이 말을 들었다면 이해가 가질 않았을 것이다. 그때도 ‘주역에 들어 있는 64괘는 사람이 살면서 겪는 모든 상황이 적혀있다.’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그게 몸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역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괘와 효사를 내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석하며 나의 일상과 연결시켰다. 물론 글 쓰는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천택리(天澤履)괘로 글을 쓸 때였다. 글을 아무리 봐도 괘와 효사가 일상이랑 잘 연결이 되지 않아서 효사를 포기하고 괘사만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한번 읽어보니 의외로 글이 잘 나온 것 같았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창희쌤께 글을 보냈지만 돌아온 피드백은 ‘전에 쓴 게 훨씬 나은 것 같다.’라는 피드백이었다. 결국엔 새롭게 쓴 글은 버리고 예전 글을 다시 고쳐서 썼다.^^;
천택리로 글을 쓰며 학생회장 때에 있었던 일을 연결시켜 보았다. 그저 높은 자리에 심취해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긴 허물들이 보였다. 천택리괘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평소에 막혀있던 생각의 길이 뚫렸다. 새로운 길이 뚫리자 세상이 좀 다르게 보였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뭔가 부족한 퍼즐이 하나 맞춰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이 되게 편안해지고 상쾌해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영역이 개척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느낌을 받고 나서부터 주역에 더 마음이 끌렸다. 저 하늘 위에 있어서 손이 닿을 수 없는 학문인 줄 알았는데 나의 일상과 이렇게 가까운 학문이었다니! 주역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결국에 주역을 계속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한자를 외우는 것도 즐거웠고 자연스러움의 이치를 배우는 것도 즐거웠다. 그리고 제일 큰 즐거움은 평소에 막혀있던 생각의 길이 뚫린다는 것이다. 나는 인문학 공부를 하면 무조건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생각의 길을 스스로 뚫고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언젠가는 스스로 생각의 큰길을 개척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큰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작은 길부터 뚫어내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주역에서는 이런 작은 길들을 나에게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20대 초에 주역을 만난 건 진짜 행운이다.
글_김지형(감이당 주역스쿨 토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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