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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청년 주역을 만나다

[청년주역을만나다] 훈련소에서 저지른 만행

by 북드라망 2021. 7. 13.

훈련소에서 저지른 만행



나는 공익이다. 그런데 선복무 제도로 인해 훈련소를 나중에 가게 되어서 이번에 갔다 왔다. 처음에는 빨리 가고 싶었지만 막상 가게 되니 좀 무서웠다. tv에서 본 교관들이 무서웠고 그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훈련소 안에서는 시간이 매우 안 간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이틀 같은 훈련소! 긴장과 두려움 속에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이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해져서 오후 4시쯤에야 막사에 도착하고 짐을 풀 수 있었다. 짐을 풀고 나니 할 게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랑 같은 방을 쓰게 된 열 명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고 마스크는 밥 먹을 때 말고는 벗지 말아야 했다. 심지어는 잘 때도 마스크를 써야 했다. 이틀 동안 밥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검사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그러다 보니 분대원들의 겉모습만 보고 온갖 상상을 다 했다. 특히 내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은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얼굴도 험상궂게 생겨서 조폭인줄 알았다. 코로나 검사가 나오는 날에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들 너무 착했고 자기 할 일들을 알아서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괜히 혼자 망상에 빠져서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제일 가깝게 지낼 사람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주역점을 쳐주고 싶었다. 사실 훈련소를 들어가기 전부터 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이천 선생님이 해석한 주역 책과 산가지를 들고 갔다. 우리 분대원들에게 주역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몇몇이 관심을 보였고 그들을 점 쳐줬다. 한 동기의 질문은 어떤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았는데 이번에 신입이 세 명이나 들어왔다고 했다. 근데 공익 근무를 하면서 잘 이끌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했다. 내가 잘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질문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괘에 효사가 나온 것이다! 내 나름대로 막힘없이 해석을 할 수 있었고 이런 모습을 본 동기는 감탄하며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비행기를 태워줬다. 이 동기 말고도 다른 동기들의 점을 칠 때마다 질문에 적중하는 괘가 나왔고 그럴듯한 해석이 가능하니깐 점점 ‘나 주역에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흥분됐다. 나의 콧대는 하늘을 찔렀다.

그 뒤에 훈련소를 갔다 와서 점쳐준 이야기를 의기양양하게 글을 썼다. 당연히 칭찬을 받을 줄 알고 썼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창희쌤의 엄청난 피드백이었다. ‘이런 태도로 공부를 하면 사이비도사가 되기 십상이다. 네가 알고 있는 걸 과시하려는 이런 태도로는 주역으로 글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감이당에서도 공부를 계속하기 어렵다.’ 철렁! 심장은 내려앉았고 뒤통수에 망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가슴은 두근두근 거리고 머릿속은 너무나도 복잡해졌다. ‘창희쌤 많이 화나셨나? 어떡하지?’ ‘내가 이런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이러다가 여기서 쫓겨나나?’ 등 온갖 상상을 다 했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창희쌤 입장에서는 내가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이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나 자신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심정이 매우 복잡해졌는데 창희쌤이 택뢰수 괘로 마음을 한번 돌아보라고 하셨다. 택뢰수 괘는 뒤따름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나의 만행과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조금 깊게 파고 들어가 보니 아주 큰 연관이 있었다.

隨, 元亨, 利貞, 无咎
수, 원형, 리정, 무구 – 뒤따름은 크게 형통할 수 있으니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이롭고 허물이 없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2020년, 384쪽)


택뢰수 괘는 무엇을 뒤따른다고 말한 걸까? 이 괘의 모습은 연못 가운데에 우레가 치는 모습이다. 우레는 움직임을 뜻하니 우레의 진동에 연못이 같이 요동치는 모습이다. 연못이 진동으로 인해 생긴 움직임을 뒤따라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군자는 이 모습을 보고 때에 맞게 적합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즉 때를 따르는 것이다. 해가 떴을 때는 활동을 하고 달이 떴을 때는 잠을 자는 것처럼 때에 맞게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때를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 한다. 주역에서는 뒤따름의 도의 길함은 오직 선함을 뒤따르는 데 있(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2020년, 395쪽) 다고 한다. 이 선이라는 것은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다.

 


주역을 처음 했을 때는 쌤들이 시켜서 했고 하다 보니 주역의 맛을 느꼈고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서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길은 잊고 주역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심취해 있었다. 주역공부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니 주역 공부를 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주역을 다 배우지도 않았고 한자를 아는 것도 아니고 동양사상을 배운 것도 아니다. 완전 생 초보 수준인데 남의 운명에 개입하려고 한 것이다. 때를 뛰어넘어도 한~참 뛰어넘었다.

때를 뛰어 넘으려고 했던 것은 나를 뽐내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나 이런 공부하는 사람이야!’처럼 그냥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이 우쭐하고 싶은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온다. 기계체조를 할 때도 그랬다. 기본기를 다 마스터하지 못했는데 내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 혼자서 연습 하려다가 크게 다칠 뻔한 일이 있었다. ‘우쭐함’ ‘잘난척’ ‘겉멋’ 쉽게 벗겨지지 않는 나의 허물이다. 꽤 예전부터 이런 성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버려둬도 크게 상관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작은 허물이 이렇게 큰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제는 이 허물을 벗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택뢰수 괘가 알려준 ‘때에 맞게 행하는 것!’ 지금의 나에게 매우 필요한 수행이다.

 

글_김지형(감이당 주역스쿨 토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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