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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生 모색 야생 여행기

[공생모색야생여행기]『슬픈 열대』1화 우리가 정말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by 북드라망 2021. 6. 23.

* 안녕하세요? 저는 엄마-인류학자입니다. 에~ 엄마이니 인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오호호. ^^ 이제부터 공생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쓴 여행기 『슬픈 열대』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으려고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 하면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묻는 ‘야생의 사고’가 떠오르시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에게 ‘본연’은 없으며, 대신 우연과 모순을 처리하려는 대칭적 사유의 패턴이 우선한다고 보았지요. 사고의 전체적 틀이 인간의 행위와 무리의 사건을 출현시킨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20세기 전체에 걸쳐 ‘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큰 영향력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거창한 철학담론이나 인류학적 성과는 아니고요. 제가 레비스트로스가 걷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을 보면서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으면서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고, 사람의 살림살이에서 지혜를 구하고, 열대에서 살아남고, 글 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제 처지에서 출발한 읽기였지만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 저를 바라보게 되었답니다. 실제로 거친 열대를 향해 여행을 떠난 사람은 레비 스트로스였지만, 저 역시 『슬픈 열대』안에서 제 마음의 황야를 보았습니다. 고난의 열대 행군기를 쓴 레비 스트로스와 고행의 인류학 책읽기에 도전한 저를 소개해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   

 

공생을 모색하는 야생 여행기, 『슬픈 열대』
— 우리가 정말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내 마음의 열대를 찾아서 
 
세상에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여행지가 있고, 또 그만큼이나 많은 여행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이야기』도 영웅 길가메쉬가 떠나는 지옥 여행기이고요, 그 밖에 가르침을 향해 떠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삼장법사와 원숭이 손오공의 『서유기』, 구원의 길 단테의 『신곡』, 삶의 지복을 노래한 괴테의 『파우스트』, 온갖 이상한 나라가 다 튀어나오는 『걸리버 여행기』 등이 있습니다. 19세기가 되면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지하로도 우주로도 떠나는 과감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덕분에 SF(science fiction)라고 하는 하나의 문학 장르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우주별이건, 진리가 태어나는 이상국이건, 추방된 자의 지옥이건, 지금도 누군가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쉼 없이 걸어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행이 호기심 많은 특별한 사람들의 취미에 그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왜 우리는 여행에 매료되는 것일까요?  
    

 

많은 북아메리카의 부족들 사이에서는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사춘기 때 그가 겪어야 하는 시련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먹을 것 없이 홀로 뗏목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어떤 이는 맨몸으로 빗물, 맹수, 추위에 자신을 던집니다. 어떤 때에는 몇 달씩 음식을 끊어야만 한다고요. 정말이지 함께 먹고 입던 모든 관습을 내려놓는 일이며, 숲이라고 하는 압도적 자연을 날 것으로 체험하는 일입니다. 만약 통과의례를 뚫고 돌아올 수 있다면, 귀환한 그는 열렬한 환호 속에서 집단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처럼 낯선 미지의 세계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여행’의 이미지와 매우 비슷합니다. 북아메리카의 부족민들에게는 이러한 바깥으로의 경험 없이는 성인이 될 수 없다고 보았는데요, 우리가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이런 성숙을 향한 열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여행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지도 보기도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구글맵으로 우리나라 서해안의 윤곽을 따라가 본다던가 지리산의 여기저기 등산로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일을 종종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머릿속에서 종종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든가 〈세계 테마 기행〉프로에서 보았던 지상의 낯선 공간들이 떠오르고요, 그럴 때면 마음이 설렙니다.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밑에, 혹은 저 앞 나무 기둥 뒤에 이상한 세계로 가는 입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였죠. 『해리 포터』가 처음 나왔을 때, 소년이 역사(驛舍)의 기둥을 지나 호그와트라고 하는 마법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에게 여행은 늘 지금이 아닌 어딘가에 나 자신을 갖다 놓고, 분주하고 심란한 지금 여기로부터 한숨 돌리기 위한 방편이었지요. 누군가에게는 성숙의 한 걸음, 누군가에게는 여유의 한 숨인 여행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좀 독특한 여행관을 제시하는 책이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라는 인류학자의 여행기 『슬픈 열대』입니다. 열대가 슬프다니요? 열대가 사람도 아닌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요? 사실 레비 스트로스는 책에서 단 한 번도 ‘이 장면이 슬프군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여행기를 장악하는 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경외감이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시선이 머무는 도처에서 삶의 신비로움을 발견하거든요. 

 

레비 스트로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고 여행에 대한 저의 이미지를 하나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여행하기뿐만 아니라 생각하기나 글쓰기에서도 천천히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슬픈 열대』를 읽고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발견해야 할 것은 낯선 이국이 아니고 찾아야 할 것은 지금 없는 여유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어요. 열대 우림 탐방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저는 자기 감각을 바꾸어 가며 지금 여기에서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을 다르게 느끼게 되는 것보다 더 멋진 여행법은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를 따라 아마존의 열대 우림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숲을 빠져 나오고보니 ‘아이구 깜짝이야!’ 바로 제 방 안인 겁니다. 마치 그레고르 잠자가 ‘눈을 떠보니 갑충이 되어 있더라’ 했던 것처럼요. 책을 덮고 나니 책이며 소품들로 장식된 이 방이 열대 우림보다 낯설어 진 것이죠.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게 될 것은 『슬픈 열대』라고 하는 여행기를 여행한 저의 여행담입니다. 이 책은 20세기에 서양 철학의 흐름을 크게 바꾼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1935년부터 40년대 초반까지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그의 남미 여행 경험담이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룹니다. 하지만 저는 레비 스트로스가 제공하는 인류학적 지식 이상으로 그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바꾸어 가는지가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북미 아메리카 원시부족들의 통과의례 이야기는 『슬픈 열대』4장 ‘힘의 탐구’에서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슬픈 열대』는 형식적으로 조금 독특한 이야기인데요, 남미의 원시부족 이야기가 여행기의 후반 전부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감싸 안고 있는 것은 레비 스트로스 자신과 그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여행기는 마지막에는 어느 불교 사원에서 끝납니다. 여행기의 틀로서만 본다면 레비 스트로스는 남미를 여행하고 난 전후 자신 정신의 풍경을 그려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에게 여행이란 그 자신에게 이미 있었으나 들여다보지 못했던 어떤 마음을 열대라는 독특한 거울을 통해 비춰 보는 일과 같았던 것이지요. 그에게 ‘열대’란 불교 사원에서 명상하듯이 그려보는 자기 내면의 우글거리는 욕망의 숲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제목에 나오는 ‘슬픔’이란 레비 스트로스 자신의 슬픔일 수도 있겠습니다. 
    


15년 동안 쓸 수 없었던 여행기

레비 스트로스는 1955년에 『슬픈 열대』라는 여행기를 썼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남아메리카를 직접 탐험하고 돌아온 인류학자로서 이때는 이미 몇 편의 저서를 발표하고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행문은 인류학적 사실의 제공이라는 점에서는 그다지 큰 매력은 없는 책입니다. 자기의 사변적 감상이나 이국에 대한 주관적 묘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원시 부족에 대해 설명을 할 때에도 단편적인 삽화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에서의 출세를 생각해서라면 굳이 낼 필요가 없는 저작인 셈이죠. 실은, 문제는 좀 더 심각했는데요. 이 책 안에는 당대 철학의 조류라든가, 천박한 이국 취미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기 때문에 출간이 곧 분란이 될 것이 뻔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 스트로스는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레비 스트로스는 왜 여행이 끝나고 15년이나 지나서야 이 책을 썼던 것일까요, 그것도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말이지요.    
    

게다가 더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독자는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라는 문장과 만나게 됩니다. 이 문장은 나중에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 방법과 인간관을 비판하는 호사가들에게 종종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여행이 싫으면 안 가면 됩니다. 굳이 여행기를 썼다면 이런 문장은 불필요하지요. 사람들은 레비 스트로스가 말장난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만 아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제대로 된 여행지 정보를 주기를 꺼린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슬픈 열대』를 몇 페이지만 넘겨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얼마나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미지의 것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찬 사람인지를요. 그러니까 레비 스트로스는 특정한 방식의 어떤 ‘여행’을 거부하면서 저 먼 남아메리카를 다녀왔고, 그런 여행을 한 사람들이 남기는 여행기와는 다른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에서부터 따라 읽으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나의 여행기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브라질을 떠나 온 지도 벌써 15년이나 지났으며, 그동안 내내 이 책을 써볼 생각을 수없이 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부끄러움과 혐오감이 앞서서 그만두고는 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 시시하고 무미건조한 사실이며 사건들을 상세히 서술해야 한단 말인가.”[레비 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한길사), 105쪽]

여기서 우리는 장장 15년 동안 레비 스트로스를 괴롭힌 그 ‘여행’이 부끄러움과 혐오감, 시시함과 무미건조함을 수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15년은 그것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부끄러움과 혐오가 시시함과 무미건조함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무엇을 부끄럽고 혐오스럽다고 본 것이며 그것은 왜 시시하고 무미건조했던 것일까요? 『슬픈 열대』는 바로 이 모순된 감정들을 해소하면서 쓰인 책이었습니다. 이 감정들의 극복은 레비 스트로스에게는 자신의 학적 경력 이상으로 중요했던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혐오를 넘어서  

레비 스트로스는 뭔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사건의 정황을 만드는 근본적 인식 틀 같은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슬픈 열대』를 통해 정확하게 그의 여행관을 추려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싫어하는 여행은 비교적 선명하게 나옵니다. 
    

먼저 1장을 들어가면서 레비 스트로스는, 모든 여행은 낯선 세계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개의 여행법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탐험’입니다. 이 여행은 레비 스트로스를 비롯한 당대 인류학자들의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학술보고를 위한 오지-탐험여행이지요. 이 여행의 특징은 숱한 노력과 낭비입니다. 인류학자는 아마존의 열대우림 깊숙한 곳에 사는 여러 부족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먼 거리를 무거운 장비를 지고 들어가야 할까요? 완전히 다른 풍토가 압도하는 생존의 공포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풍습이 강요하는 삶의 방식을 통과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겠지요. 그런데 이 탐험에서 얻은 결과란 미천하기 그지없을 때가 많습니다. 먼 부족의 알려지지 않은 신화나 낯선 결혼제도, 다양한 토테미즘적 관습들에 대한 몇 개의 소개가 전부이기가 쉽지요. 게다가 그 각각의 물건들이 갖는 의미를 재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들의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혹은 그것들이 이해된다고 해도 지금 나를 있게 한 저 과거의 구태의연한 풍습 같아 보이기가 쉽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자의 탐구란 겨우 지금의 이 문명의 초기 단계의 확인에 불과한 것이어야 하냐며 한탄합니다.  
    

또 하나의 여행은 단순한 이국 ‘유람’입니다. 1 2차 세계대전 사이 간기에 꽤 적극적인 세계여행 열풍이 불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며 티베트 그리고 아마존 등을 예전처럼 힘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가볍게 이국의 정취를 즐기고 돌아온 사람들은 소위 ‘미개인’들을 찍은 사진과 그들의 공예품을 전시하거나 책으로 편집해서 출간했는데요. 그러한 외국 여행서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새롭다느니 독창적이다라느니 같은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런 책들을 ‘낡은 정보의 나부랭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심히 불쾌한 것은 이런 책자에서 이국의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었지요. 여행지 속에 등장하는 아마존의 풍경들은 초라했는데, 이는 그러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편견을 오히려 더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인류학자에게 탐험 여행의 목적은 문명의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부족을 찾아 인류의 과거를 탐험하는 것입니다. 반면 유람객들에게 관광 여행은 자신들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낯선 풍속을 맛보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에게는 탐험과 관광 모두가 둘이 똑같이 시시했습니다. 왜냐하면 둘 모두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 시선에서부터 외부 대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내 기준으로 이미 판단된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굳이 떠날 필요도 없어 보이는 무용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추적하는 고고학자들에게는 큰 딜레마가 있다고 합니다.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고 싶지만 몇 만 년 전을 살아볼 수 없는 바에야, 인류의 원 모습을 재구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고고학자들은 보통 그 기원 찾기 위해 지금 인류를 돌아보지요. 그래서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까운 형태를 가진 인류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직립 보행의 흔적 같은 것 말입니다. 이 과거 탐험의 근거는 지금에 있고, 고고학자들은 역사의 흔적들 속에서 지금과 가장 유사한 것들을 발견하려고 하니까, 결국 그들은 연구하게 되는 것은 ‘지금 인류’가 됩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하는 바도 이 점입니다. 우리는 어째서 늘 우리가 믿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만 하는가! 
    

일상이 피곤해서 저 바깥을 돌아다니는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들이 발견하고 싶은 것은 ‘유럽은 아닌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이들 관광객들도 ‘유럽’이라는 기준을 갖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셈입니다. 결국 고고학자나 현대의 이국 여행객들에게는 지금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자명한 하나의 삶 형식이 되어 있는 거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들 탐험-관광객들을 정말 딱하다는 듯 바라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바로 이런 자기중심적인 ‘탐험가+유람가’의 형상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의 창립자이자 자신의 은사였던 조르주 뒤마로 1장에서부터 설명합니다.  
    

조르주 뒤마는 프랑스에서 심리학을 연 의사로서도 큰 지적 입지를 차지한 인물이었습니다. 뒤마는 레비 스트로스가 사회학과 교수로 취임하게 되면서 남아메리카를 탐험할 계기를 제공해준 상파울루 대학을 “19세기 심리학이 열어놓은 과학적 전망에 흥분하고 감동하여 신대륙의 정신적 정복을 향해 나서던” 마음으로 설립했었어요.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가 보기에 그것은 뒤마 자신이 자부한, 유럽과 남아메리카,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의 조우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레비 스트로스가 보기에 조르주 뒤마의 흥분은 자기 안에 간직되어 있던 늙은 유럽의 두 단편이 결합된 것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조르주 뒤마는 남프랑스 신교도 가계 출신이며, 신대륙을 정복한 지 400년의 세월이 흐른 결과 그곳에서 느릿느릿 세련되고 퇴폐적인 생활만을 이어온 중산계급의 취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뒤마가 발견하고자 한 신대륙은 사실 정복자의 시선으로 이미 선제적으로 의미화된 공간이었지요. 이 긴 세월 동안 남아메리카는 식민지 개척자의 거친 손길에 의해 이미 상당부분 훼손되어 원래 모습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국주의적 시선 아래 자기 부정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신대륙에 대한 지적 정복열로 흥분한 뒤마가 실은 유럽식 속물주의로 신대륙을 이미 해석해버렸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그와 브라질 사회 사이에는 첫눈에 반해버리는 사랑 같은 것이 싹트려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어떤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남프랑스 신교도 가계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열대에서 느릿느릿 살아가고 있는 매우 세련되고 약간 퇴폐적이기도 한 중산계급에서, 그 특유한 생활 환경이 간직되고 있는 400년이나 된 늙은 유럽의 두 단편(斷片)이 서로를 알아보고 재결합한 것 같았다.
한데, 조르주 뒤마의 잘못은 바로 이러한 결합의 진실로 고고학적인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그가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브라질―잠깐 동안의 정권 장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정한 브라질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지만―은, 점차 자기들의 자본을 외국 자본이 참여한 산업투자 쪽으로 옮기고 있던 지주들 중심의 브라질이었다.”[앞의 책, 111]  

 

뒤마가 반색을 한 브라질이란 이미 자본주의에 침윤되어 외국식 삶-양식이 물밀 듯이 들어와 토착적 삶을 쓸어가고 있던 브라질이었습니다. 소위 지주-자본가들은 상파울루 대학을 유럽식 자본주의를 소개해줄 사상들의 도매점으로 보고 있었으며, 그곳 학생들의 상당수 역시 그런 지식의 도매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상파울루에 가게 되면 옷차림에 신경쓰라는 뒤마 선생님의 말을 환멸에 가까운 어조로 회상하며 여행기의 첫 장을 마무리합니다. 

 

“시멘트에 묻힌 폴리네시아 섬들은 남쪽 바다 깊이 닻을 내린 항공모함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아시아 전체가 병든 지대의 모습을 띠게 되고, 판잣집 거리가 아프리카를 침식해 들어가고, 아메리카·멜라네시아의 천진난만한 숲들은 그 처녀성을 짓밟히기도 전에, 공중에 나는 상업용·군사용 비행기로 인해 하늘로부터 오염당하고 있는 오늘날, 여행을 통한 도피라는 것도 우리 존재의 역사상 가장 불행한 모습과 우리를 대면하게 만들기밖에 더하겠는가? 이 거대한 서구문명이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기적을 낳기는 했으나, 부작용이 안 생기도록 만드는 데는 분명히 성공하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낸 서양문명 최대의 고명한 작품인 원자로의 경우처럼, 서구의 질서와 조화는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막대한 양의 해로운 부산물의 제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행이여, 이제 그대가 우리에게 맨 먼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139~140]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듭니다. 사실 어떤 존재도 자기 인식의 한계를 갖습니다. 거미는 거미의 감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고양이는 고양이의 감각으로 세계를 경험합니다. 마투라나 바렐라가 설명하고 있듯이 인간 역시 인간 지각의 한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앎의 나무』). 바렐라는 객관적 관점 같은 것은 없다고 하지요. 프란스 드 발이라는 진화인지 영장류학자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프란스 드 발은 ‘움벨트’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합니다(『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움벨트는 주관적 경험 양식인데요. 주체와 환경이 서로를 공생산하는 관계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저수지 안에는 개구리의 움벨트, 송사리의 움벨트, 버드나무의 움벨트가 각각 따로 있어서 그 환경으로부터의 접속면이 다른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의 시공간 안에는 종마다 다른 수많은 경험들이 매번 다르게 작동을 개시합니다. 그러니 프란스 드 발에 따르면 어떤 존재도 자기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거미가 거미가 아닌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맺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지요. 거미는 절대로 개구리의 세계를 느낄 수 없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유럽사람들이 편협하다고는 하지만, 레비 스트로스 역시 유럽인이며 그가 남아메리카로 떠나기 전에 받은 교육은 전부 유럽 철학사의 전통 아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그가 정통에 반하는 태도로 공부했다고 해도 그의 이단적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그 정통입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딜레마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유럽이 전부라고 믿는 자신의 스승과 동료들보다 자신의 시선이 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가? 레비 스트로스는 긴 여행의 도중에서 자신이 이 속물적 유럽 유람단에 소속되어 있기에 열대를 그토록 열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낯선 여행지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늘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뒤마 선생님에게서 보았던 그 불쾌와 혐오는 결국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런 한계 안에서 우주 어디를 돌아다녀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다니는 이 어리석음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은 없는 것일까요? 

 

글_오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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