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생모색야생여행기] 인생의 좌표를 보고 간다는 것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

제2부 6장 ‘나는 어떻게 하여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석기 시대 사나이,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의 제1부를 통과했지만 아직 열대에 이르는 길은 요원해보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대서양의 선상에서 이리저리 회상을 이어나갑니다. 1부가 당시 유럽 사람들의 편협한 문명관을 비판했다면 2부에서는 특히 자신의 과거에 대해 떠올립니다. 주제는 ‘나는 어떻게 하여 민족학자가 되었는가?’로 모아집니다. 열대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서, 레비 스트로스는 왜 주변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풀어놓는 것일까요?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 걸까요?   
    

 

자기를 설명하고 싶은 욕구란 레비 스트로스에게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서전을 남기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대단히 곤란한 앞-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밤에 조용히 책상 앞으로 가 낮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려 해도 쉽지가 않지요. 오늘 하루 펼쳐진 온갖 사건들 중에서 쓸 만한 것, 남길만한 것을 선별해야만 하니까요. 그러니 자신의 온 인생을 통 털어 어떤 것을 구슬로 삼아 목걸이를 꿸지 정하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과거 회상이란 지나간 온 시간을 현재적 시점에서 절단 채취하는 일입니다. 결국 자서전 쓰기란 현재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덕분에 자서전은 보통 출세가들의 전유물이 됩니다. 다들 지금의 나를 성공했다고 하니 내 현재를 굳이 성찰할 필요도 없고요. 거침없이 그 성공에 이르는 궤적을 찾아 늘어놓기만 하면 될 테지요. 그래서 카프카 같은 작가는 자기 일기조차 남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늘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자리를 의심했거든요. 그는 프라하라는 작은 도시에서 평생을 살았으면서도 매일같이 낯선 풍경을 발견할 줄 알았던 사림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절대로 자서전은 쓸 수 없었을 겁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어떨까요? 남아메리카에서의 온갖 간난신고를 민족학자로서의 성공을 위한 징검다리로 삼고자 했던 걸까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그가 자신의 이력을 설명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그는 거듭 자신의 경험을 부적절했다, 어울리지 않았다라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어떤 동아리, 어떤 학교에서도 소속감을 잘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하고요. 공부했던 철학도 법학도 인생을 걸고 달려들 만한 과제로는 보이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심지어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에게는 기억의 축적에 대한 열망이 없다’, ‘남미로 떠난 것도 알아보고 싶은 뭔가가 따로 있어서는 아니었다’를 강조합니다. 한 마디로 그는 자기가 ‘어떤’ 사람이며 열대 탐사를 통해 이룬 성취는 ‘무엇’인지를 밝힐 의사가 없는 것이죠. 
    

레비 스트로스가 얼마나 ‘자기’에 대한 애착이 없었는가는 다음의 말로도 잘 드러납니다. “해마다 수확을 거둘 일정한 토지를 온순하게 경작하고 있을 자질이 내게는 결여되어 있다.”[『슬픈 열대』, 164쪽] 그는 자신을 유목하는 저 원시의 수렵인에 비유합니다. 어제도 내일도 없이 움직이며 살며, 가진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살 궁리에 바쁘다는 것이죠. 이처럼 ‘자기’를 설명하고 싶어하지 않는데에도 왜 그렇게 길게 과거를 펼쳐놓는 걸까요? 레비 스트로스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삶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대학 시절 내내 민족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강의를 들은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민족학자로서의 어떤 소명의식이 있어서 열대로 떠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심지어 그는 저 위대한 민족학의 아버지, 『황금가지』의 저자 제임스 프레이저(J.G.Frazer; 1854~1941)가 소르본에 와서 기념 강연을 했을 때에도 참석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민족학으로 방향을 튼 것은 민족학이 좋아서였다기보다는, 사르트르 식의 변증법 즉 자와 타를 구별하고 진보된 문명을 통해 그 차이를 해소하려는 생각 방법에 질려서였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처럼 답답했던 자신의 마음에 상쾌한 바람을 불어 넣어준 두 가지 사상 조류를 언급합니다. 그 하나는 정신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입니다.    


(1) 정신분석은 삶의 전(前) 논리적 형식을 묻는다 
1920년부터 1930년대까지 프랑스의 지성계에서는 정신분석 이론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비교적 일찍 프로이트를 접했습니다. 리세에 다닐 때 정신과 의사를 아버지로 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최초로 프로이트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 중 한명이었거든요. 레비 스트로스는 파리에 정신분석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죠.  
    

레비 스트로스는 정신분석을 통해 정태적 이율배반에 관한 이론이 무의미한 장난 같은 것이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삶을 설명하면서 합리와 비합리, 지성과 정서, 논리와 전(前)논리를 넘어서는 보다 중요한 범주를 강조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그것을 시니피앙이라는 범주로 보았습니다. 시니피앙 즉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말은 시니피에 즉 ‘의미된 바’입니다. 서울 사람 상파울로 사람, 각기 다른 생활권에서 살아간다지만 그 의미된 바 이면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창발적 힘이란 공통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보기에 프로이트는 표면상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요소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근저에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무엇이 있음을 주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여기에 더해 레비 스트로스는 프로이트의 비도덕주의에 강하게 매료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환자들이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보았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애 장면을 보았다든가, 이유 없이 학대를 당했다든가 말입니다. 프로이트는 일견 부도덕해보이기만 한 이런 사건을 비판하기보다는 그 현실을 입구로 해서 인간 무의식의 심층을 해명하려고 했습니다. 정신분석은 삶을 도덕적 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지요. 삶은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자연을 해석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형식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 선하다 악하다 따질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여러 원시부족에게서 발견되는 식인 풍습, 여성 할례나 대리출산을 부도덕하다며 그것에 ‘야만’이라는 딱지를 붙이곤 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프로이트를 읽으면서, 인간이 창조해내는 어떤 관습도 자의적이거나 즉흥적일 리 없으며 그러한 표현형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라는 것이 있으리라는 직감을 얻었습니다.     
    

또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지질학의 인간적 적용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질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세(地勢)를 읽을 수 있는 감수성과 직관력입니다. 정신분석의에게도 이와 비슷한 능력이 요구되지요. 정신분석은 환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삶의 총체에 접근해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병증의 메커니즘을 읽어내야 하니까요. 환자의 삶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우발적이며 독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의사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시간을 초월한 원인들의 역학관계를 재구성해내야 하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여러 원시 문화와 유럽 문화의 근저에서 작동하는 힘 관계를 이해해 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나중에, 현재 너머의 과거라든지 현상 이면의 사고논리에 대한 집착을 ‘돈키호테주의’라고 명명하게 됩니다. 자신이 바로 돈키호테라는 뜻입니다. ^^


(2) 마르크스는 소외 없이 삶을 꿈꾼다 
레비 스트로스는 마르크스의 이론도 정신분석과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였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마르스크를 처음 접한 것은 열일곱 살 때였습니다. 방학 중에 알게 된 젊은 벨기에인 사회주의자를 통해 처음 마르크스를 접했다고 하지요. 
    

마르크스도 표면적 현상 아래로 내려가면 논리적 설명이 가능한 어떤 의식 구조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마르크스주의의 이 ‘모델 구축성’에 주목했습니다. 이 점은 그가 정신분석에서 강조한 대목과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레비 스트로스가 마르크스로부터 핵심적으로 받아들인 관점은 ‘소외’에 대한 문제입니다. 마르크스는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와 그의 산물 간에 발생하는 소외에 주목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자기 삶의 방식과 윤리를 스스로 조직할 수 없는 상태로부터 따라 나오는 소외에 주목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흔히 구조주의자로 불립니다. 그가 호모 사피엔스의 원형적 사고 모델을 두고 ‘구조적’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구조’라고 하면 거대한 건물의 철골처럼 견고한 주형적 틀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레비 스트로스에게 ‘구조’란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시도해보는 사고 실험의 어떤 형식 논리입니다. 간단하게만 말씀드리면 이 구조적 사고는 이항대립적 모델을 취하는데요, 적과 나, 먹을 것과 먹힐 것을 구분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에서 시작된 이항 대립적 사고의 ‘형태성’을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라는 단어로 강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 ‘구조’는 신축성 있게 형태적으로 변형을 거듭합니다. 자연은 늘 변화무쌍하지요. 그 안에서 전개되는 먹고 먹힘의 사슬은 무한대로 얽혀 있을 겁니다. 그런 자연 안에 자신을 밀어 넣어야 하는 인간에게는 자연의 규칙성을 파악하려는 사고 실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호모 사피엔스는 그 실험을 위해 특별한 패턴을 동원했다고 보는 겁니다. 
    

자, 그러다보니 이런 비판을 받게 되지요. ‘인간이 어떤 사고 ‘구조’의 산물이란 말인가? 개인의 자유 같은 것은 없고? 개인의 욕망과 문화 전체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소외의 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가 보기에 서양의 현대 문화야말로 사람들을 자기 삶에서 소외시키는 온갖 시스템들로 가득해보였습니다. 전문화되고 관료제화 되어 가는 사회 안에서 개인은 자기 삶을 구체적으로 꾸려갈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었으니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기간에 나치즘의 인종학살을 가까이에서 경험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하나의 문화가 자기 정체성을 고집하기 위해 타인종을 공동체의 테두리 밖으로 내치려는 태도였고, 내 문화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들 중 한 종을 박멸하려 했던 조직적이고 파괴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러한 편집증적인 자문화중심주의야말로 근대적 개인주의가 낳은 산물이었습니다. 생멸하는 자연 안에서 온갖 존재들과 삶을 나누고 있는 ‘나’를 특정한 정체성 안에 구겨 넣으려 하다 보니, 내 삶 안에서 그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들을 박멸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입니다. 정체성에 집착하는 결벽증이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자기 삶의 생동적인 현실을 구체적으로 직시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소외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독일인들도 신음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슬픈 열대』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나치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객관이라고 믿고 따르는 자문화의 테두리 같은 것도 결국은 우발적 필요가 낳은 생각의 틀에 불과하다는 점을 여러 예를 들면서 보여줍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거듭 자기 상식이나 문화적 정체성에 갇히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각자의 상식이 어떤 과정 속에서 구성되어 나타난 것인지 그 역사성에 주목하는 것이죠. 레비 스트로스는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소외 없는 삶,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마르크스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사랑은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늘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동향을 주시했지요. 하지만 아카데미 안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강조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글이 잘 쓰이지 않거나 작업에 진척이 없을 때면 『자본론』몇 페이지를 읽고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역사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레비스트로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나 봅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철학   


레비 스트로스는 6장 ‘나는 어떻게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이후부터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며 남아메리카로 들어갑니다. 관점과 조건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느긋하게 바라보기도 하고요. 파리에서의 나는 허상이고 열대에서의 내가 진짜다! 라고 주장하지 않지요. 각기 다른 좌표 속에서 내가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바라볼 뿐입니다. 

 

여행을 할 때 우리는 상이한 공간을 주파하는 동일한 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레비 스트로스에 따르면 상이한 공간과 함께 상이한 나가 출현합니다. 공간의 이동과 함께 사회적 서열이 변하기도 하니까요. 파리에서 학비로 전전긍긍했던 레비 스트로스였지만 대서양과 적도를 건너 브라질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지위는 상승됩니다. 유럽과 남미의 물가 차이도 있고, 제국주의의 나라로부터 온 백인에 대한 선망의 시선이 있기도 해서지요.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 미국에 빈털터리로 도착했을 때는 이 상황이 또 역전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아메리카라지만 뉴욕에서는 가난한 망명객이나 다름없는 유대인을 그리 곱게 보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이 모든 과정을 회상하면서 한 인간, 한 사물의 본질 같은 것을 따지는 일의 부질없음을 통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난하였던 내가 이곳에서는 부자가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의 물질적 조건이 바뀌었다는 것과, 이 지역의 물건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값이 싸다는 것이었다. [중략] 게다가 배의 기항(寄港)이라는 것이 으레 일으키게 마련인 안일한 심리상태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어차피 모든 선객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인데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의당 가져야 할 자제심도 마비돼버려 낭비도 의례적으로 필요할 때도 있다는 이상한 심리상태가 되어 자신을 완전히 해방감에 빠지게 만드는 이상야릇한 심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을 이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이런 경험을 나는 휴전 뒤에 호주머니에 단돈 한푼도 없이 뉴욕에 도착하였을 때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행이란 많거나 적거나, 더 좋든지 아니면 더 나쁘든지 간에 어떤 종류의 변화를 여행자의 상황에 반드시 나타나게 하는 법이다. 여행자는 이 세계에서 기어오를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그가 방문하는 지역의 향기와 느낌은 그가 그곳에서 차지하게 될 사회적 척도상의 정확한 위치와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 『슬픈 열대』, 211~212쪽


본질적인 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어디에서 살고 누구와 무엇을 함께 하고 있는가를 잘 알아야 한다는 걸까요? 매번 달라지는 내가 있을 뿐이라며 그 변화를 유유자적 타고 흘러 다니기만 해도 될 텐데 말이지요. 
    

자기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왜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실 나 자신의 좌표를 정하기 어려운 시대여서 그렇기도 합니다. 최근에 저는 두 가지 사건으로부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아이들이 더는 동요를 안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만화영화 주제곡도 아는 것이 거의 없고요, 동요는 정말 모르더라구요. ‘뽀로로’ 이후에 바로 방탄 소년단입니다. ‘동구 밖 과수원길’이라든가 ‘노을’이라는 노래 따위를 안 부르는 것이 왜 문제인가 하실지도 모릅니다. 아이 어른이 똑같이 K-pop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가족 간 민족 간 화목을 도모할 수 있는 첩경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취미나 취향이 점점 하나로 모아지는 것, 아이의 문화와 어른 문화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지는 데에 대해 좀 머물러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취미를 공유할 때 아이와 어른이 갖는 나이 차이라든가 성별의 차이 같은 것은 흥겨운 리듬과 함께 휘발되어 버립니다. 거리가 없어지는 것이죠. 함께 K-pop을 즐기며 정서적으로 몹시 가까워지는 것의 장점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은 어른 아이 각자가 처한 자리의 차이 같은 것이 사라져버리게 되지는 않을까요? 저는 친구 같은 부모가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레비 스트로스 식으로 말하자면 서로 공유될 수 없는 상이한 좌표값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리에서의 레비 스트로스와 열대에서의 레비 스트로스가 다른 상황값을 갖는다면, 각기 다른 좌표를 가진 부모와 아이도 감각하는 세계가 각자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레비 스트로스라면 분명 부모의 역할이 있고 아이에게는 아이의 역할이 있어서 한 가족 안에서 상보하면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했을 겁니다. 각자 주어진 조건에 영향 받으며 살기는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보고 감으로써 소외 없이 공동체 안에서 제 역할을 찾아가는 길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하나는 어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봄에 몇 개의 대형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과제를 이메일 등으로 받곤 했는데요. 메일을 열면 보내는 사람 이름도 없고, 안녕 하시냐 어쩌냐 하는 최소한의 안부 인사도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첨부파일 안에도 이름이 없어서 누가 쓰신 글인지 결국 찾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보내고 있는 당신이 어디에 계시는 누구시며, 글을 받는 저는 또 어디에 있는 누구인가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다는 점이 당황스러웠지요. 그러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위치한 좌표에 관심이 있어야 타인이 어떤 좌표 위에 있는지도 잘 들어올 것 같았습니다. 좌표 상의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 서로의 차이를 계속 가져가는 관계 방식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좌표에 신경을 쓴다고 해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레비 스트로스도 그랬지요. 그는 분명 자신이 유럽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고민 속에서 여행을 시작했는지를 길게 썼습니다. 하지만 그가 집중적으로 주의를 기울였던 지점은 자기 생각이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대성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상파울로의 빈민가 앞에서, 열대 우림의 전신선을 따라. 레비 스트로스는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자기 여행을 바깥에서 바라보면서 기술해 갑니다. 그가 매번 지금은 어디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언급했던 까닭은 ‘자기의 여행’임을 강조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어디에 도착할지를 밝히고자 해서가 아니라, 다만 지금 익숙했던 자기를 떠나는 과정임을 주의깊게 관찰하려고 해서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다만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궁금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의 마지막을 작은 불교 사원에서 끝냅니다. 만물을 포용하는 지혜를 구하면서 명상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지요. 『슬픈 열대』의 도입부에서 그토록 자기 과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까닭은, 민족학자로서 출세할 수도 있었던 자기의 도착지가 궁금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싶다는 자신의 비전에 방향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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