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생모색야생여행기] 2화 지질학적 문체로 쓴 여행기

지질학적 문체로 쓴 여행기 


『슬픈 열대』, 우리 마음의 열대를 찾아서

편협한 유럽중심주의에 지친 레비스트로스는 유럽의 ‘바깥’을 기대하며 남아메리카 브라질로 떠났었지요. 그러나 어디에도 ‘바깥’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바깥’을 찾으려고 해도 그의 눈은 익숙한 풍경, 길든 관념밖에는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유럽에는 없는 대로와 자동차, 유럽에는 거칠고 투박한 살림살이와 먹을거리 등. 낯선 풍경 속에서 작동하는 것은 여전히 ‘유럽’이라는 척도였습니다. 우리는 『슬픈 열대』가 어떻게 이와 같은 인식의 곤란을 극복하는지를 차차 보게 되겠지요. 15년 만에 쓰인 『슬픈 열대』는 분명 인식의 딜레마를 해결한 레비 스트로스의 통찰이 들어 있을 테니까요. 
    

 

사실 본격적으로 여행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책의 전체 형식을 통해서도 레비 스트로스가 내린 대강의 결론을 짐작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슬픈 열대』의 형식에 대해 조금 알아보고 갈까요?    
    
『슬픈 열대』는 ‘열대’ 즉 남아메리카에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전체는 9부로 구성되어 있고 세부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부 여행의 마감 : 출발, 선상에서, 서인도 제도, 힘의 탐구
제2부 여로에서 : 회고, 나는 어떻게 하여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일몰
제3부 신세계 : 농무지역(적도 무풍대), 구아나바라, 남회귀선 여행, 상파울루
제4부 대지와 인간 : 도시와 농촌, 개척지대, 마법 융단, 군중, 장터

제5부 카두베오족 : 파라나, 판타날, 날리케, 원주민 사회와 그 형태
제6부 보로로족 : 황금과 다이아몬드, 선량한 미개인, 죽은 자와 산 자
제7부 남비콰라족 : 잃어버린 세계, 황야에서, 전신선을 따라, 가족생활, 문자의 교훈, 남자·여자·족장
제8부 투피 카와이브족 : 카누를 타고, 로빈슨, 숲에서, 귀뚜라미 마을, 자핌새의 소극, 아마조니아, 세린가나무의 숲

제9부 귀로 :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 럼주 한잔, 탁실라 유적, 챠웅(불교 사원) 방문


『슬픈 열대』는 1935년 레비 스트로스가 27세 때 떠나 1941년 33세 때에 프랑스로 돌아오기까지 진행한 남아메리카 연구 여행의 보고서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대에 대한 탐구는 책의 5부부터 8부까지에 불과합니다. 우림의 세부를 감싸 안는 1장부터 4장, 그리고 마지막 9장은 레비 스트로스 개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1부는 1935년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떠나기 직전 파리의 지식인들이 브라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요,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을 당하자 유대인이었던 그가 마르세유에서 뉴욕까지 얼마나 위험하게 바다를 건너게 되는지를 다룹니다(「선상에서」, 116~117쪽).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는 뉴욕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유대인이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발이 묶이게 되는데, 이 과정을 ‘강제 수용소’의 포로가 되는 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결국 레비 스트로스는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 레닌의 동료인 빅토르 세르주와 한 배를 타고 미국에 추방자이자 망명자로 도착하게 됩니다). 제2부는 시간이 훨씬 더 앞으로 가서 1934년에 남아메리카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되는 과정이 나옵니다. 게다가 2부의 6장 ‘나는 어떻게 민족학자가 되었나?’에서는 그 자신의 더 먼 이력으로 돌아가 청년 시절의 학업 과정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어떻게 철학과나 법학과에 적을 둘 수 없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처럼 『슬픈 열대』의 도입부 몇 장을 읽었을 뿐인데도 우리는 레비 스트로스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감 잡기가 어렵고 열대 이야기는 언제부터 나올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더 들어가 보면 우리는 『슬픈 열대』에 열대 우림의 마을들보다는 식민지화된 브라질의 명소라든가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의 메트로폴리스, 인도 등의 남아시아가 훨씬 더 자주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책이 끝맺음을 장식하는 장은 파키스탄의 한 불교사원입니다. 유럽의 파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불교 사원의 안마당에서 끝나고 있으니 이 여행의 시작과 끝을 견지하는 것은 열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광범위한 공간들을 자유자재로 병치시키기 때문에 시간 역시 엄청난 범위로, 그렇지만 보통의 시간 순서를 전혀 따르지 않고 주파됩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의 축은 레비 스트로스 개인의 이력입니다. 우리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책을 마무리하는 42세까지의 생애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행기의 주인공을 레비 스트로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가 마주친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말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슬픈 열대』는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추억이 자유롭게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독특한 시간의 무늬를 만듭니다. 
    

이렇게 글쓴이 개인에 의해 편집된 기억들이 나오고 있으니 레비 스트로스가 자신의 인식 프레임 안에 열대를 포함시키기로 결론 내렸다고 봐야 할까요? 그런데 제목이 ‘슬픈 열대’입니다. 이 모든 인간사를 감싸안는 것은 다시 또 빽빽한 열대의 숲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 방대한 여행기 안에서 유럽과 열대, 문명과 야만, 심지어 자기 개인사와 다른 이의 인생을 다채롭게 교차시켰습니다. 그러므로 레비 스트로스에게 ‘열대’란 단지 지리상의 한 장소를 의미한다기보다 그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인간들의 의식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질학의 방법으로 쓴 여행기 
  
『슬픈 열대』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다채로운 글쓰기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5부부터 8부까지는 아마존 우림 원시부족들에 대한 탐사일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는 자기 자서전, 남미를 통과한 학자들과 탐험가들의 열전, 독특한 열대의 박물지와 동식물 관찰기, 유럽과 인도의 비교 문명사 논문, 대서양 일몰 감상기, 그리고 희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심지어 탐사 중간에 적어 두었던 메모가 그대로 여행기 안에 녹아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이토록 다양한 글쓰기 양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완벽한 정보를 그러모으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느 대목에서도 객관을 지향하지는 않았지요(레비 스트로스,『가까이 그리고 멀리서』(강), 7쪽). 


레비 스트로스가 시도한 것은 주체를 확정하지 않고 대상을 지정하지도 않는 글쓰기였습니다. 『슬픈 열대』에 나오는 다양한 양식들은 풍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어떻게 한 사건의 처음과 끝을, 어떤 장소의 테두리를 정확하게 그리지 않는 여행기를 쓸 수 있었을까요? 나와 너를 이곳과 저곳을 무차별적으로 구별하지 않겠다는 것일까요? 

 

그런데 여행기를 따라 가다보면 레비 스트로스가 각각의 사건과 개별 공간의 차이를 무화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이 늘 이동하는 중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로 풍경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더 관심을 둡니다. 사건사고의 ‘발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자신의 브라질 도착에 대해서도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개입했는지, 대기와 바다는 또 얼마나 제 힘을 쏟았는지 살펴 설명하지요. 
    

레비 스트로스가 사건의 출현을 이해하는 방식은 지질학적입니다. 지질학은 지층들 간의 관계를 연구합니다.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이유로 형태를 갖게 된 각각의 지층들은 시간 순서대로 쌓이는 법 없이 풍경의 무늬를 만듭니다.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만들고 있는 중이지요. 지질학은 지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종류를 밝히고, 지층의 무늬를 결정하는 압력 관계의 패턴을 찾습니다. 『슬픈 열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어떤 대상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보지 않습니다. 그 풍경이 어떤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인간의 어떤 욕망과 만나 지금 그런 형태를 갖게 되는지를 천천히 추적합니다. 그런 다음 같은 발생적 기원을 지닌 다른 풍경들을 찾아내지요. 예를 들면 아래에서처럼 뉴욕 주 파이어 아일랜드의 지형을 베네치아의 지형과 비교하는 식입니다. 하나는 모래 언덕이고 하나는 수상도시입니다. 겉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요. 하지만 두 장소 모두 지표가 물에 대한 강도가 약해서 꿀렁거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름이 잘못 붙여진 침울한 포르투 에스페란사를 뉴욕 주에 있는 파이어 아일랜드(Fire Island)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지역으로 나는 기억한다. 나는 가장 모순적인 여건들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유사성을 보여주는 이들 두 지역을 비교하는 것이 즐겁다. 지리적으로, 인간적으로 동일한 불합리가 존재하기에 그곳은 재미있게 또는 음울하게 나타나고 있다. 

파이어 아일랜드를 생각해낸 사람이 과연 스위프트였을까? 그것은 롱아일랜드 쪽으로 뻗어 있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 화살 모양의 모래땅이다. 그곳에는 길이만 있고 넓이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떤 방향으로는 길이가 80킬로미터나 되고, 폭은 200~300미터가 되기도 한다. 대양 쪽에는 바닷물이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파도가 매우 거세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수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륙 쪽으로는 언제나 평온하며, 그곳은 깊지가 않아서 수영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고기들을 잡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 고기들이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물에서 고기를 잡는 즉시 모래 속에 파묻으라는 명령을 고기잡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시판이 정기적으로 해변가를 따라 세워진다. 

파이어 아일랜드의 모래언덕은 매우 불안정하고, 물에 대한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갑자기 아래에 있는 바다 속으로 무너져내릴 위험이 있어서, 다른 게시판을 세워 그곳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다. 운하가 움직이는 베네치아와는 반대로 이곳에서는 움직이는 것이 바로 땅이다. 그래서 섬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작은 촌락인 체리 그로브의 주민들이 왕래하기 위해서는, 말뚝 위에 세워진 목재로 된 구름다리를 반드시 이용해야만 한다.”[330~331] 



역사의 변증법에 반대하며

레비 스트로스가 지질학적 방법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질학이 모순을 다루기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지층들은 가장 모순적인 여건에서 만들어져 각기 다른 이유로 결합되어 있지요. 우리나라 서해안의 적벽강에 가면 한반도 화산 활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다채로운 지질 풍경을 볼 수 있는데요. 바닷가에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형이 펼쳐져 있습니다. 책의 페이지처럼 수평으로 층층히 쌓아올려져 있는 퇴적암 아래로 뜬금없이 양쪽에서 힘을 받아 습곡을 이룬 지층이 붙어 있기도 하고요, 성질이 다른 두 종류의 암석의 상호작용해서 만든 독특한 암석 페퍼라이트가 나오기도 합니다. 지질학은 지층들 간의 중재될 수 없는 차이를 지구의 풍요로운 활동 중 하나로 보지요. 어떤 지층이 ‘잘못’ 튀어나왔다고 판단한다든가, 이 지층들이 결국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 거라든가 하는 예측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지층의 모든 단면들은 지구의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들이니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하나의 풍경 안에서 차이와 모순을 발견하기를 즐기는 지질학을 좋아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어릴 때부터 지질학에 관심을 둔 이유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슬픈 열대』전체를 상이한 지층들, 그러니까 다양한 글쓰기 양식들의 종합이라는 스타일로 쓴 까닭은 실은 동시대 역사학의 횡포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세기 이래로 역사학은 인류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보’한다고 하는 사회진화론적 역사관을 바탕에 두고 유럽 문명을 기준점으로 한 문명사관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을 관통하는 것은 변증법입니다. 변증법이란 만능이어서 처음에 주어진 사태 속 진술문 하나를 세워, 정확히 그것에 반대되는 다른 명제를 제시한 다음, 둘 모두의 상위에 있는 진술로 둘의 부분성을 타파합니다. 변증법은 모든 차이를 이항대립으로 단순화하지요. 나와 너를 극단적으로 나누고, 그 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초월적인 지점을 계속 도출해냅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사악한 변증법의 화신으로 직접적으로 주목하는 사람은 사르트르입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쓴 『야생의 사고』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과 분석적 이성을 구분하고 후자를 휴식하는 이성이라 명명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역사가 편향성을 가진다고 보았습니다(『야생의 사고』(한길사), 369쪽 참고). 그래서 변증법적 이성을 기준으로 문명인과 비문명인을 구분했지요. 이것은 사르트르가 프랑스 혁명을 인간 이성과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진실한 의미에서의 역사)으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비 스트로스는 프랑스 혁명이 왜 인류 이성의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인류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변혁의 노력을 경주해왔거든요. 
    

레비 스트로스는 변증법이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세련된 형식 논리에만 집착한다는 점을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변증법이 강조하는 단계적 종합에서 현재는 늘 극복되어야만 하는 부정의 지점이 됩니다. 유럽의 인문과학은 유럽 바깥을 야만으로 재단하며 무차별적으로 정복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변증법의 단순하고 거친 종합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지요. ‘고딕 양식은 필연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보다 나으며, 고딕 양식에서는 플랑부아양 양식이 프리미티프 양식보다 완벽한 것이라고 가르치되,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문하지 못하는 꼴 아닌가!’ 레비 스트로스가 보기에 서양 철학은 변증법이라는 틀을 붙들고 그것을 절대화함으로써 생동하는 현실을 관조하는 데에 만족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물어야 할 것은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본성 같은 것일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는 변증법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파리의 아카데미를 거침없이 비판합니다. ‘어떻게 이토록 ‘소박한 확신’과 ‘빈약한 사고’의 결합이 가능한가?’ 라고요(음. 과격한 성정이셨더라구요. ^^;;). 

거미는 거미가 아닌 방식으로 세계를 만날 수 없고, 문어는 문어가 아닌 방식으로 타자를 바라볼 수 없지요. 우리 각자는 자기 관점에 갇혀서 허우적대며 오늘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를 바라본다, 이치를 깨닫겠다, 큰소리 치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이런 안타까운 사정을 앞에 두고서, 자신의 유한한 경험 세계를 넘어 타자를 만나고 자연을 이해할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풍경, 다양한 인간을 공평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궁리했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열대를 돌아다니면서 이 꿈을 이룰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 다음 시간에는 『슬픈 열대』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보겠습니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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