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생모색야생여행기] 레비 스트로스의 ‘문명’ 개념- 문명의 슬픔

『슬픈 열대』(5) 레비 스트로스의 ‘문명’ 개념
문명의 슬픔 

 


신세계, 시작과 동시에 타락하는 대륙

대서양을 건너, 레비 스트로스는 마침내 1935년 후끈시큼한 남아메리카 신세계에 도착합니다. 참 재미있지요, ‘신세계’라니요. 지구 입장에서 보면 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대륙들일 텐데 어떤 곳은 ‘옛-대륙’이라 하고 어떤 곳은 ‘새-대륙’이라고 하니까요. 이름 붙이기에는 다 명명자(命名者)의 이해가 들기 마련이지요. 신대륙이란 구대륙 유럽인들의 눈에 뭔가 이용할 거리가 많은 천연의 땅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1935년 상파울로에서부터 신세계를 경험해 들어갑니다. 제4부 대지와 인간은 열대 깊숙이로 들어가기 전 신세계의 표면을 훑어가는 장입니다.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는 첫 대면에서부터 ‘이건 아니다~’ 싶은 느낌을 팍! 받습니다. 구세계에서부터 신세계로 떠나왔으니 분명 아메리카는 유럽보다 더 세련되고 우아해야 마땅할 테지요.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상파울로는 유행이 휩쓸고 지나가기에 바빠 불과 몇 주 전에 산 지도도 쓸모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변화가 일어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천지개벽의 과정은 거칠고 상스러워보였어요. 

“1935년에 상파울루에서, 그리고 1941년 뉴욕과 시카고에서 나를 우선 놀라게 한 것은 이들 도시의 새로움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초래하는 황폐의 속도였다. 나는 이들 도시가 유럽의 도시들처럼 10세기 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내가 감명을 받은 것은, 그 도시들의 그토록 많은 부분이 벌써 50살이라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저처럼 부끄럼도 없이 버젓하게 퇴색한 빛을 과시할 수 있을까 하는 사실이었다. 이 도시들이 지닌 유일한 장식이 젊음이었는데, 그 젊음이라는 것이 이들 도시나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순간적으로 지나쳐버리는 현상일 뿐이었다.”(『슬픈 열대』, 227~228쪽)     

상파울로만이 아니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1941년에 뉴욕과 시카고를 방문하게 되는데요, 이때에도 같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이들 아메리카의 도시들은 과도한 문명화의 열병을 앓고 있는 환자같았어요. 도시들은 새 건물 새 시스템을 입히기에 바쁘면 바쁠수록 황폐해지기만 했던 거지요. 참 이상하지요.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휴가철마다 2000년도 더 된 로마 유적지를 순례하며 문명을 찬미하는데, 어째서 신대륙은 이렇게 타락에 타락을 거듭하는 중일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신대륙에서 진행되는 문명화과정을 씁쓸하게 지켜보면서 ‘진보’라는 말을 회의했습니다.  


독이 든 성배

레비 스트로스는 신세계의 황폐화를 이해하기 위해 현미경과 만원경을 들고 사태를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1935년부터 38년까지 레비 스트로스는 상파울로 대학의 교수로 근무했었어요. 그 주변에는 늘 신세계의 신인(新人)인 대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유럽식 학제로 중무장한 대학이니 학비는 오죽 비쌌을까요? 유복한 처지의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니 씁쓸하기 그지없었지요.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최우선의 이유는 출세에 있었고, 프랑스 지식은 졸업장을 돋보이게 해줄 장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자기 안에서 성숙시킬 최소한의 시간도 아까워하며 유럽산(産) ‘새 것 새 것’만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찰과 사색으로 채워져야 할 학생들의 논문에는 온통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오귀스트 콩트의 인용문만 덕지덕지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런 철학자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학생들은 그런 고매한 이름의 권위를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유럽에서 온 교수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쓸 기세였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듯이었죠. 『슬픈 열대』를 읽다보면 레비 스트로스가 얼마나 호기심이 많고 성실한 연구자인지 잘 알 수 있는데요, 그런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 모양이었으니 레비 스트로스는 학교에서 자괴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뭐 하러 여기에 왔나~ 그래도 레비 스트로스의 주된 관심은 열대 연구였으니까 크게 상처받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의 대학 시스템을 독이 든 성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청춘들이 얼마의 비용을 들이든 간에, 어느 정도로 유럽 지식을 소유하게 되든지 간에, 그들은 평생 프랑스에 갈 일이 없을 겁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포장지만 화려한 그 지식이 브라질 안에서는 딱히 쓸모도 없으리라는 점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걱정은 모두 레비 스트로스의 몫! 신대륙의 신인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유럽 사람들처럼’ 벌고 쓰는 삶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현미경을 내려놓은 다음에는 만원경을 써보았죠. 레비 스트로스는 도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을 틈타 상파울로 바깥으로 필드워크를 떠났지요. 그런데 사태는 더 심각했습니다. 소위 기계문명은 열대의 전통을 타락시키기에 바빴거든요. 레비 스트로스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도로였습니다. 어디서나 자동차가 즐비했어요. 상인과 농부, 어른과 아이, 양과 소가 함께 걷던 길은 오직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의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고속 운송수단인 이 자동차들은 열대의 지형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도로망 탓에 발통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비가 오면 진창으로 변해버리는 도로 때문에 거대한 물보라가 올 때마다 큰 차체에 의해 패인 자국이 문제가 되었거든요. 큰 바퀴에 맞지 않은 차들은 아예 길을 다닐 수도 없었고, 덕분에 비가 멈추고 땅이 마를 때까지 자동차들이 길에 서 있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바닷길은 어땠을까요? 증기선 덕분에 브라질 전통의 양항(良港)들은 고립되어 버렸습니다. 증기선에 실릴만한 물건 즉 ‘상품’으로 인정받은 것만 시장을 통과할 수 있게 되자, 전통적인 교역물도 교역방식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지요. 증기선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항구도시가 갑자기 개발되는 동안 그 바다로부터 내륙까지 이어지는 교통망은 여전히 옛것을 활용해야 했는데요. 때문에 제대로 물건을 이어 나를 수가 없어서 항구에는 물건이 쌓여만 갔습니다. 열대 깊숙한 곳까지 깔릴 것이 기대되었던 철로도, 전신선도, 풍토와 사람들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계 덕분에 곳곳에서 진행을 멈추고 쇠락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할 기회도, 새로운 방식으로 생을 꾸릴 조건도 박탈당한 채 사람과 물건의 흐름이 끊긴 도처에서 스러져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유럽식으로 모든 것을 다 바꾸어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도대체 누구의 기준에 맞춰 ‘개발’하고 있는 것인지, 레비 스트로스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열대의 사람들은 대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문명화의 대가로 지불했고, 그 결과 얻은 것은 문명으로부터의 ‘고립’이었습니다. 

“인간과 대지와의 관계에서, 구세계에서는 몇 천 년 동안이나 상호작용을 통해 유지해온 친밀한 관계의 바탕이 되는 저 섬세한 상호관계가 이곳에서는 일찍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곳 브라질의 땅은 약탈당하고 파괴되어버렸다. 농업이라는 것도 신속하게 이익을 얻기 위해 땅을 강탈하는 짓이 되어버렸다. 사실 100년도 못되어 개척자들의 활동 영역은 상파울루 주를 가로지르며, 천천히 타오르는 불길처럼 처녀지를 잠식하면서 이곳을 폐허화시켜버렸다. 19세기 중엽에 광맥이 고갈되어버리자 광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던 것과 같은 방식의 농업이 동으로 서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나 자신도 파라나 강 상류의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이와 같은 광경을-한 곳에는 나무줄기가 베어져 여기저기 넘어뜨려져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거주지역을 빼앗긴 가족들이 있는 혼란상태-목격할 수 있었다.”[『슬픈 열대』, 223]

 


문명의 최후 형태, 카스트의 비인간화

하지만 레비 스트로스는 신대륙의 타락을 간단히 ‘서유럽’ 문명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문명들을 비교해볼 필요를 느꼈지요. 그래서 인도 문명을 하나의 비교축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슬픈 열대』가 출간된 것은 1950년인데요 레비 스트로스는 1939년 남아메리카를 떠난 뒤에 미국과 파키스탄 인도 등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슬픈 열대』 4부를 쓰면서 이때 목격한 문명의 고도(古都)와 신도(新都)를 함께 비교한 것입니다. 이 비교 과정에 대해 레비 스트로스는 재치있게도 마법융단을 타고 하늘을 날면서 생각해본 것이라고 합니다. 문명화 과정을 비판한다고 해서 대단히 심각하게 글이 쓰였을 것 같지만, 『슬픈 열대』의 문체는 침착하고 발랄합니다. ^^ 
    

레비 스트로스가 문명화 과정의 핵심 문제로 주목한 것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였습니다. 왜일까요? 레비 스트로스가 보기에 ‘카스트 제도’는 문명의 근원적 모델입니다. 카스트 제도란 간단히 말해 직업에 따라 구획된 신분제를 말합니다. 브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왕, 귀족, 장군), 바이샤(상인, 수공업자), 수드라(농민, 육체노동자), 계급 외인 찬달라(불가촉천민)로 크게 나뉜다고 하지요. 어떤 문명도 결국은 인구 배분의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각 문명에게 주어진 사회적 공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람과 동물의 자리를 잘 만드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문명화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관료제는 기능에 따라 구성원들의 자리를 고르게 만들면서도 중복이 잘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조직화 기술이라고 보아도 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도의 카스트를 관료제의 최후 형태로 생각했던 겁니다. 또 따지고 보면 인도문명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문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인도의 최후가 어떤 모습인지는 다른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해하기에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카스트는 비참해보였습니다. 인도 문명은 인류사에서 최고로 문명화 즉 제도화의 기술을 발달시켰으나 그 결과 인간을 한낱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만들고 말았거든요. 레비 스트로스를 태운 거리의 운전사들은 갈 수 없는 곳을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를 모시는 임시 고용인들은 자기 체면을 위해 레비 스트로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부추기기도 했지요. 주인의 사치가 자신의 사치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자기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를 위해 간이든 쓸개든 빼줄 것처럼 굴고, 자신이 뱉은 말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비루함! 낮밤 없이 구걸하고 누운 자리에서 변을 보고. 살아있음이나 죽음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필요가 없는 비참함!(『슬픈 열대』, 290쪽 참고) 
    

가난한 이들만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레비 스트로스를 식사에 초대한 어떤 귀족은 4끼 식사로 이미 부른 배를 안고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다시 저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창 밖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 가는지도 몰랐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일말의 양심도 없이 자신을 카스트 제도 안에 밀어 넣고 사는 사람들을 보며 속이 뒤틀리는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런 타락이 일어난 것을 과도한 문명화가 낳은 대지와의 소외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인도에서는 5천 년 또는 1만 년 전부터 농업이나 수공업이 진행된 탓에 인간의 생활 기반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산림이 없어져서 땔감이 사라졌으며 음식을 익히기 위해 논밭에 주어야 할 비료를 아궁이에서 태워야 할 지경이 되고 말았지요. 경작할 수 있는 토지는 너무나 많이 갈고 닦여져 빗물에 쓸려 바다로 가 버릴 정도로 지력이 약해 있었습니다. 굶주린 가축은 인간보다 증식력이 줄어들고 있었지요.  
    

서로 돕고 공생하며 살자고 만든 문명의 모든 시스템은 인구를 늘린다고 하는 본연의 임무에 너무 충실했던 탓에 사람을 잡아먹는 기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구가 증가하는 과정에서는 예속을 피할 수가 없지요. 처음에는 사람들의 활동 범위를 조정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갖가지 장치들이 이제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 꼼짝 못하게 묶어두는 족쇄가 되는 거지요. 사람은 그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제 몫을 누릴 수 있는데, 시스템은 그를 사람으로는 보지 않고요.  
    

여기서 잠깐 생각을 좀 해볼까요? 그래도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간종(人間種) 중 일부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지정하고 시스템 바깥으로 빼내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그런데 뭔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레비 스트로스는 문명 비판의 제4부를 마무리하면서 홀로코스트를 언급합니다(『슬픈 열대』, 310~311쪽). 레비 스트로스는 유대인입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라는 극악한 반인간주의의 기원을 독일의 파시즘에서 찾지 않고 문명화 과정 속에서 발견합니다. 홀로코스트란 국가적 시스템이 인구의 일부에 대해 온갖 혐오와 증오를 퍼부은 뒤 사회 바깥으로 내치려는 기획이었다고요. 레비 스트로스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도 불가능할 때까지, 자기 자신이 제도의 부품으로 타락할 때까지, 결국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스스로를 학대하는데 까지 내달리고 마는 인간 지성의 무능력을 깊이 한탄했습니다. 
   

신과 함께

레비 스트로스는 이런 문명화의 슬픔으로부터 어떤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요? 대지와 인간의 비참을 다룬 제4부의 마지막에서 그는 갑자기 해변에서 혼자 기도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너무 아름다운 문장이니까 우리도 한번 읽어볼까요?    

“나는 카라치에 가까운, 인도양에 면한 클리프턴 비치를 산책하던 때를 떠올린다. 1킬로나 계속되는 모래언덕과 늪의 끝에 도달하면 어두운 빛깔을 띤 모래사장이 있는 긴 바닷가로 나오게 된다. 그날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축제가 있는 날은 주인보다 더 화려한 옷을 걸친 낙타를 타고 군중들이 대거 몰려든다고 한다. 바다는 푸르스름한 흰색이었고 태양은 지는 중이었다. 역광을 받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빛이 모래와 바다에서 오는 듯이 느껴졌다. 터번을 두른 한 늙은이가, 케밥을 굽고 있는 근처 가게에서 빌려온 두 개의 철제 의자를 이용해서 즉석에서 개인용 모스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서 혼자 기도를 하였다.”[298] 

어떤 문명에 속해 있건 인간은 하나의 인간입니다. 각자 자기 앞의 신을 모시고 사는 인생만이 고난 앞에서도 고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만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굴러가는 제도화의 바퀴에 압살당하지 않게끔 도와주지요. 위의 인용문에서 레비 스트로스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비참한 인도인이 실은 평화로운 내면을 지녔다라는 반전 드라마가 아닙니다. 우주는 필연의 수레바퀴로 돌아간다고 하나, 그 부분인 우리에게는 온통 불가해한 사건들이 닥칩니다. 잘 살기 위해 이 사회 안에 있건만 여기의 문화가 족쇄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떤 문턱에서도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할 자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홀로 기도하는 사람을 보며 마음 속에 신을 모시는 사람, 자기 원칙과 윤리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속악한 문명화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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